2020년 08월 02일(SU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107문답

[질문] 주님께서 가르치신 기도에서의 마감 말씀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칩니까? [대답]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이라는 주님께서 가르치신 기도의 마감 말씀은 기도자로 하여금 기도할 담력을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얻고(단 9:4, 7-9, 16-19; 눅 18:1, 7-8),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하나님께 돌림으로써 기도할 때에 하나님을 찬송할 것을 가르칩니다(대상 29:10-13; 딤전 1:17; 계 5:11-13).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리라는 소원과 확신의 표시로 우리는 "아멘"이라고 합니다(고전 14:16; 고후 1:20; 계 22:20).

웨스트민스터 소신앙고백 제107문답은 주기도문의 마지막 부분을 다루면서 지금까지 달려 나온 대장정을 끝맺습니다. 이제 마지막 부분을 다루기에 앞서, 이렇게 주기도문과 같은 내용으로써 기도할 수 있게끔,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 데 대해 다시 한 번 감사의 고백을 드리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 무거운 죗값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었고, 나아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양자 입양되기까지 한 가운데, 지금과도 같이 주기도문의 정신으로써 기도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는 바울이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 4:6-7)라고 한 바대로입니다.

먼저, ‘기도자로 하여금 기도할 담력을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얻는다’고 했습니다. 주기도문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한 말로써 시작한 끝에 이제 최종적으로 바로 그 ‘우리 아버지’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드높이는 것으로서 끝마칩니다. 그러할 때에 처음부터 ’나라이 임하옵시며’라고 했듯이 마지막도 ’나라와 … 아버지께 … 있사옵나이다’라고 한 말로서 마칩니다. 그렇게 주기도문의 중심인 ‘우리 아버지의 나라’에 머무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전히 ‘우리’ 및 ‘아버지’가 강조된 것을 잊어서는 안 되는데, 이는 결국 하나님의 모든 것은 결과적으로 자녀인 우리의 모든 것이 되기 마련이라는 데 비추어 볼 때, 실로 우리로 하여금 기도할 담력을 얻게 해주는 것이라 아니할 수 없게 됩니다. 

기도에 관한 이론이 아무리 출중하다 할지라도 정작 기도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은 자명합니다. 기도는 통상 신앙의 호흡이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신앙생활의 활성화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사실상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닙니다. 믿음은 오직 기도하는 데서 그 모습을 보다 더 분명하게 드러내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로서 혹 어떠한 침체에 빠져 있다 할지라도 능히 벗어나 기도할 수 있기 위해서는, 필히 뒤를 돌아보는 동시에 앞을 내다볼 수 있어야 합니다.

뒤를 돌아본다는 것은, 지난 날 죄의 왕노릇하는 데 사로잡혀 비참한 삶을 살던 데서 벗어나, 은혜의 왕노릇하는 데 순종할 수 있게 된 것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자신의 도덕성이 어떠한 수준이냐를 묻는 것이기에 앞서, 지금 현재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어 있는 사실, 현실, 실제를 주목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않은 사람으로서는, 지금 현재 교회의 지체로서 자리매김을 하고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오직 택함을 입은 자인 것을 확인하는 가운데, 세례를 베풀어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로 받아들이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천국 열쇠의 권세를  행사하는 유일한 기관입니다. 교회는 구도자의 신앙상태를 주도면밀히 살핀 끝에, 그에게 세례를 베풀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 연합시킴으로써, 그가 하나님의 자녀인 사실을 공적으로 선포하게 됩니다. 교회가 그렇게 결정하는 때에, 하늘에서도 재가가 이루어집니다. 성도는 모름지기 과거에 죄를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였던 데 따라, 교회 앞에서 세례를 받아 지금처럼 하나님의 자녀인 신분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상기하는 데서, 자신의 상태가 아무리 극도로 침체되었다 할지라도, 능히 기도로써 하나님 앞에 나아가리 만큼의 담력을 얻게 될 것입니다.   

다음으로, 앞을 내다본다는 것은,  마치 포도나무와도 같은 모태 교회의 품으로부터 생명력을 공급받음으로써 신앙적 열매를 풍성히 맺어 나가는 것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신앙적 열매란 무슨 업적이나 공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마음 품기를 지속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즉 자신의 마음 자리에서 세상이 차지하는 비중 대신, 예수 그리스도께 더 자리를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란, 죽은 후에야 들어가는 세계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생명력을 이 지상에 교회의 모습으로 구현하시는 데 따른 것인데, 성도로서는 그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성립시키는 데 최선을 다하는 만큼, 구원의 확신도 증가되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할 때에 언필칭 위로부터 베푸시는 능력을 공급받기 위하여 기도에 들어가기 마련인 것은, 육신의 힘으로는 늘 한계에 부딪히는 것을 절감하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통해서, 자기가 속한 교회가, 하나님 나라로서의 면모를 드러내게 된다는 사실 앞에서, 바로 그 놀라운 영광을 위하여 자신의 몫에 최선을 다하려는 때에,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라고 한 기도와 고백에 성립되게 되는 것이요, 동시에 하나님을 찬송하는 행위 그 자체도 되는 법입니다. 

주기도문은 최종적으로 ‘아멘’이라고 한 말로써 마치게 됩니다. 이것에 대해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리라는 소원과 확신의 표시’라고 했습니다. 실로 성도로서는 아버지께서 약속해주신 말씀에 따라, 그러한 믿음의 확신과 정당한 내용으로서 기도한 것이므로, 의당히 자신의 기도가 응답되리라는 확신도 가질 수 있는 것이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멘’하면서 기도를 마치게 됩니다. 아멘!

주일예배순서 2020년 8월 9일 (10:00)
. (09:30 준비) 사도신경송-시편찬송-십계명송
. 송영
. 신앙고백 (다같이)
. 언약선포 (십계명 교독)
. 시편찬송 093편
. 목회기도 (설교자)
. 시편찬송 094편
. 말씀선포 막 8:31-38
. 말씀설교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
. 시편찬송 095편
. 주님의 만찬 (매 분기말마다)
. 주기도문 (다같이)
. (예배 이후) 애찬 및 성도의 교제
. (13:00부터) 평강의 예배 (성경학습)
주언교회 - 역사 속에서 개혁된 교회를 계승하는 ...

  1. 주언교회는 하나님께서 개혁교회의 창시자 존 칼빈과 그의 사상을 계승한 개혁자들을 통해서 세계 최초로 프랑스 개혁교회(1559)와 스코틀랜드 장로교회(1560)를 출범시키심으로써 교회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주신 섭리에 감사드리며 이를 소중히 받듭니다.
  2. 주언교회는 교회개혁이란 동전의 양면의 관계와도 같이 분리될 수 없는 두 가지 사실에 성립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는데 첫째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라고 한 신앙고백이 보다 더 정확하고 섬세한 '제반 신앙고백들'로 확정되었고 둘째는 '모든 것을 품위있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고전 14:40)고 하신 바대로 신앙고백을 성경적으로 구현하는 교회질서(정치)가 제정된 것이었습니다.
  3. 주언교회는 이 두 가지 중요한 원리를 대하면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적 임재방식'이라는 신앙고백의 핵심에 깨달았고 동시에 이와 같은 신앙고백은 개혁된 교회의 전통에 따른 성경적 교회질서에 성립될 때에 비로소 '교회의 삼대 표지'를 제대로 구현할 수 있게 된다는 각성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4. 주언교회는 더더욱 겸손히 고개숙여 역사 속에서 개혁된 교회신앙학(신학과 신앙)을 계속 깊이 배우고 계승하면서 '거룩한 공회를 믿사오며 ...'라고 고백하는 바대로 보편의 교회와 함께 정통 신앙고백교회질서에 성립되는 것을 통하여 교회로서의 온전한 품위를 구현하는 사명을 위하여 한 길로 줄곧 나아갑니다.

성경해석의 원천: 기독교강요

주지의 사실이듯이 칼빈을 빼놓고서는 '참된 교회'에 대한 논의는 그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빈을 따른다고 외치지만 오히려 칼빈이 그렇게도 배척한 신앙 형태를 자행하는 어처구니 없는 모순도 벌어지고 있다. 진정으로 개혁사상을 계승하려 한다면 칼빈의 신학과 신앙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는 기독교강요를 필수적으로 학습해야 하고, 그럴 경우 성경 해석과 선포를 보다 풍성하게 해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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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신앙의 모범: 칼빈의 개혁목회

칼빈의 위대성은 그의 독창성에서보다는 기독교 메시지를 일관성 있게 이해하면서 교회라고 하는 신앙의 현장에서 줄기차게 개혁을 실현해 나갔다는 데서 찾아야 한다. 칼빈의 신학은 책상 머리에서 이책저책 뒤적거려 짜낸 이론들로 그럴듯하게 뜯어 맞춘, 그래서 늘 말은 거창하게 하지만 정작 삶으로는 자신의 이론을 뒷받침하지 못하는 이론만의 종교주의자가 아니었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임을 아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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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현장의 용사: 교회학 박사

제네바 교회를 섬기면서 칼빈은 목사회 모임을 이끌었고, 거기서 배출된 목사들이 프랑스에서 세계 최초의 개혁교회를 세웠다. 또한 칼빈에게서 개인적으로 배운 존 녹스 역시 스코틀랜드에서 세계 최초의 장로교회를 세웠다. 이것은 오늘날 사방에 그렇게도 많은 신학교들이 널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목사다운 목사가 배출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 앞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와 도전이 참으로 크고도 크다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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