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1월 19일(SU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79문답

[본문] 제10계명이 무엇입니까? [대답] 제10계명은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 하신 것입니다(출 20:17; 신 5:21).

제79문답부터는 십계명 중의 ‘열 번째 계명’을 다룹니다. 주제의 핵심은 한 마디로 말해서 ‘탐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탐내는 마음에 대해서 신약성경은 단도직입적으로 ‘우상숭배’라고 선언하는 것을 주목하면서 이 부분을 다룰 필요가 있습니다. 즉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골 3:5)라고 한 것입니다. 탐심이란 욕심에 대한 또 다른 표현임에 다름이 아닙니다. 이것은 자기의 분수에 넘치게 남의 것을 소유하거나 누리고자 하는 마음을 가리킵니다.

사리 판단이나 분별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에 따라 그야말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것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게 되는데, 그에 따라 범법 행위까지 서슴지 않게 됩니다. 통상 탐심이나 욕심이 실정법에 연루되는 까닭이 이 때문입니다. 오늘날 사회가 복잡하게 얽혀져 가는 경향 속에서, 사람들은 재산, 명성, 권력, 고소득의 직장, 떼 돈 버는 장사 등등에 가히 집착하다시피 하는데, 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러한 것들이 성공의 척도이고 안전한 미래를 보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대문입니다. 이것은 자신이 이미 부자이든, 혹 자신이 가난할지라도 자신의 나라가 복지 정책을 잘 시행하는 부유한 나라이든 간에, 상관없이 여하튼 오로지 돈벌이와 출세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겨 타인의 것을 훔치거나 하여 손해를 끼치지 않는 한, 탐심이나 욕심을 품은 것 그 자체는 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십계명의 열 번째 계명이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라고 했을 때, 이 역시 본래 사람에게 있는 ‘부패한 성향’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의 두 부분을 구체적으로 살펴봅시다. 먼저,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주택 소유 문제는 가히 자신이 살아가는 이유 그 자체가 된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주택 소유에 대한 욕구가 강렬합니다. 이것은 어느 정도 이해해줄 수 있다 할지라도, 이미 자신이 다리를 쭉 뻗고 살만한 집을 장만한 사람들조차도 계속해서 이것을 갈망합니다. 이우는 집 장만이 가장 손쉬운 돈벌이가 되고 있는, 한국의 경제적 상황과도 맞물려 있기도 합니다. 쉽게 말해서 집 장만은 곧장 그 차액으로 인한 돈벌이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다소 뜸한 말이 되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강남에 ’복 부인’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였던 것입니다.

본디 세계의 각 국가마다 취하고 있는 ‘공화주의’가 제대로 자리잡게 될 경우, 첫째, 모든 국민의 주택 문제 해결, 둘째, 모든 국민의 교육의 수혜, 셋째, 모든 국민의 의료 혜택 등이 실현되는 데서 절정에 달할 것이지만, 이제까지의 역사 속에서 이런 국가는 아직 단 한 번도 출현한 적이 없습니다. 이러한 나라는 오직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함으로써만 가능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도래하기까지, 하나님의 백성들은 오로지 근면하고 성실한 삶을 살아감으로써 자신의 생명을 잘 유지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한 중에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은 ‘탐심’이나 ‘욕심’을 품어, 타인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자신을 영화롭게 해서는 결코 안 된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다음에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고 한 데서 명확합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영역에서 남의 것을 넘보는 태도를 가리킴이 자명합니다.  실로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 전체가 ‘사랑’과 ‘헌신’의 정신으로서 살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로서는 이와 반대되는 어떠한 탐욕이나 욕심도 갖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이 계명은 제8계명을 통해서 “도적질하지 말지니라!”라고 내용과도 연결되는 것으로서, 이웃의 것에 대한 탐심과 욕심은 결국 도적질이나 사기 및 기만으로 발전하고야 말 것입니다. 성도로서는 어떠한 것이 되었든지, 이웃의 손실을 초래할 만한 탐욕이나 생각을 품지 말아야 합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라고 한 말씀은 항상 우리의 귓전을 울려야 할 것입니다.

그와는 반대로 우리의 생각과 행동은 가급적 이웃의 행복과 유익에 연결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찌니라”(행 20:35)라고 했습니다. 탐심이나 탐욕을 이기는 좋은 방법 중의 하나는, 항상 이웃의 필요를 살피는 가운데 가급적 비록 지극히 작은 부분이라 할지라도 항상 그에게 도움이 되어 주려는 마음을 갖는 것이겠습니다. 실로 의지적인 행동이 없이, 탐심 그 자체에 머무는 경우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자체를 금하시는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러한 신앙이 자세는 다음 제80문답에서 이어집니다.

주일예배순서 2020년 1월 19일 (10:00)
. (09:30 준비) 사도신경송-시편찬송-십계명송
. 송영
. 신앙고백 (다같이)
. 언약선포 (십계명 교독)
. 시편찬송 043편
. 목회기도 (설교자)
. 시편찬송 044-1편
. 말씀선포 막 4:21-25
. 말씀설교 등불 비유
. 시편찬송 044-2편
. 주님의 만찬 (매 분기말마다)
. 주기도문 (다같이)
. (예배 이후) 애찬 및 성도의 교제
. (13:00부터) 평강의 예배 (성경학습)
주언교회 - 역사 속에서 개혁된 교회를 계승하는 ...

  1. 주언교회는 하나님께서 개혁교회의 창시자 존 칼빈과 그의 사상을 계승한 개혁자들을 통해서 세계 최초로 프랑스 개혁교회(1559)와 스코틀랜드 장로교회(1560)를 출범시키심으로써 교회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주신 섭리에 감사드리며 이를 소중히 받듭니다.
  2. 주언교회는 교회개혁이란 동전의 양면의 관계와도 같이 분리될 수 없는 두 가지 사실에 성립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는데 첫째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라고 한 신앙고백이 보다 더 정확하고 섬세한 '제반 신앙고백들'로 확정되었고 둘째는 '모든 것을 품위있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고전 14:40)고 하신 바대로 신앙고백을 성경적으로 구현하는 교회질서(정치)가 제정된 것이었습니다.
  3. 주언교회는 이 두 가지 중요한 원리를 대하면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적 임재방식'이라는 신앙고백의 핵심에 깨달았고 동시에 이와 같은 신앙고백은 개혁된 교회의 전통에 따른 성경적 교회질서에 성립될 때에 비로소 '교회의 삼대 표지'를 제대로 구현할 수 있게 된다는 각성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4. 주언교회는 더더욱 겸손히 고개숙여 역사 속에서 개혁된 교회신앙학(신학과 신앙)을 계속 깊이 배우고 계승하면서 '거룩한 공회를 믿사오며 ...'라고 고백하는 바대로 보편의 교회와 함께 정통 신앙고백교회질서에 성립되는 것을 통하여 교회로서의 온전한 품위를 구현하는 사명을 위하여 한 길로 줄곧 나아갑니다.

성경해석의 원천: 기독교강요

주지의 사실이듯이 칼빈을 빼놓고서는 '참된 교회'에 대한 논의는 그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빈을 따른다고 외치지만 오히려 칼빈이 그렇게도 배척한 신앙 형태를 자행하는 어처구니 없는 모순도 벌어지고 있다. 진정으로 개혁사상을 계승하려 한다면 칼빈의 신학과 신앙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는 기독교강요를 필수적으로 학습해야 하고, 그럴 경우 성경 해석과 선포를 보다 풍성하게 해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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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신앙의 모범: 칼빈의 개혁목회

칼빈의 위대성은 그의 독창성에서보다는 기독교 메시지를 일관성 있게 이해하면서 교회라고 하는 신앙의 현장에서 줄기차게 개혁을 실현해 나갔다는 데서 찾아야 한다. 칼빈의 신학은 책상 머리에서 이책저책 뒤적거려 짜낸 이론들로 그럴듯하게 뜯어 맞춘, 그래서 늘 말은 거창하게 하지만 정작 삶으로는 자신의 이론을 뒷받침하지 못하는 이론만의 종교주의자가 아니었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임을 아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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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현장의 용사: 교회학 박사

제네바 교회를 섬기면서 칼빈은 목사회 모임을 이끌었고, 거기서 배출된 목사들이 프랑스에서 세계 최초의 개혁교회를 세웠다. 또한 칼빈에게서 개인적으로 배운 존 녹스 역시 스코틀랜드에서 세계 최초의 장로교회를 세웠다. 이것은 오늘날 사방에 그렇게도 많은 신학교들이 널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목사다운 목사가 배출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 앞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와 도전이 참으로 크고도 크다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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