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16일(SU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48문답

[질문] 제1계명이 명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대답] 제1계명이 우리에게 명하는 것은 하나님은 유일하고 참되신 하나님이시로되 우리의 하나님이심을 알고 인정하며(신 26:17; 대상 28:9; 사 45:20-25; 살전 1:9), 그에 합당하게 하나님을 경배하고 영화롭게 하라는 것입니다(시 29:2; 95:6-7; 마 4:10).

제46문답부터는 십계명의 각 계명들에 대한 구체적인 신앙고백으로 들어갑니다. 이곳의 핵심은 하나님은 자기만이 온 우주만물 가운데 유일한 살아 있는 신이시므로, 최고의 지위를 지니시며 완전한 권위를 행사하시는 데 대한 합당한 응답을 원하신다는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긴다는 것은 단지 어리석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명백히 죄가 됩니다. 이 명령은 하나님의 신성의 영광을 감하거나 흐리게 하는 불경건과 미신을 일소하라고 것이고, 진실하고 열렬한 경건으로 자기를 경배하며 앙모하라고 것입니다.

칼빈에 의하면, 우리가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이 무수히 많지만 모든 것을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첫째, 앙모(adoration)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위대성에 머리를 숙여 공경과 경배를 드리는 것이요, 하나님의 율법에 우리의 양심을 바치는 것을 포함합니다. 하나님에 대해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분’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실로 하나님의 한없으신 위대성을 가리키는 것인데, 이러한 분께서 우리로 하여금 더더욱 풍성한 생명 활동을 하게 해주시려고 베푸신 일체의 율법에 대해 최고의 신실함으로 응답하는 데서 ’앙모’의 실상이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경건이나 경외 또한 숭배와 경배 등등의 단어로써 묘사하고자 하는 모든 신앙적 태도를 대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둘째, 신뢰(trust)입니다. 이것은 성경이 계시하는 하나님의 모든 속성을 굳게 믿고 안심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주지의 사실이듯이 하나님의 속성은 크게 공유적 속성과 비공유적 속성으로서 분류할 수 있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러한 분류에 따른 속성들을 단순히 이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적극 신뢰하고 의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자신을 친근한 아버지로써 신뢰하고, 자신의 가족을 위해 부지런히 일하시는 전능자 하나님으로 의지하게 하려는 것이, 성경이 하나님의 속성들을 다양하게 계시하시는 목적이라는 것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셋째, 기원(invocation)입니다. 이것은 앞의 신뢰와 연결된 것으로, 범사에 하나님의 신실과 도움만을 의지하여 믿고 구하는 마음의 습성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육체의 습성’이 아니라 ‘마음의 습성’이라고 한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기원 또는 기도란 근본적으로 마음의 문제이지, 육체의 문제가 아닙니다. 다시 말하자면, 기도를 응답 받기 위한 기술이나 비법을 계발하는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은 전체적으로 미신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상보훈의 가르침에서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마 6:5-8)라고 하신 바를 제대로, 그리고 충분히 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넷째, 감사(thanksgiving)입니다. 이것은 모든 선한 일에 대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태도를 가르칩니다. 이 세상에서는 수많은 좋고 나쁜 일들이 반복되지만, 지극히 작은 것 하나도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벗어나 제멋대로 일어나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할 때에 하나님의 섭리의 중심은 항상 ‘자기 백성의 안녕’을 위한 데 있다는 것을 명심함으로써, 어떠한 악재 앞에서도 성도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그 일을 통하여 자신에게서 죄가 발견되면 지체 없이 회개하여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진정한 성도는 낮아질지라도 낙망하지 아니하고 높아질지라도 교만치 아니한 가운데, 범사에 줄곧 그래왔듯이 여전히 하나님께 감사로 일관합니다. 즉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18, 28)라고 한 말씀을 굳게 붙잡는 것입니다.

정리하겠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너는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제45문답)라고 선포하시면서 그에 대한 합당한 경배를 요구하십니다(제46문답). 실로 이 명령은 저 멀리 초월자로부터 날아온 냉랭한 명령인 것이 아니라, 당신의 독생자 외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으신 희생으로서 사신 ‘언약 백성’이라는 토대 위에서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라면 의당히 실로 유일무이한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친근한 아버지로서 적극적으로 경배하고 의지하는 것을 삶의 원동력으로 삼아야 합니다. 오직 이것을 자신이 이 세상에서 행하는 모든 활동의 유일한 목표로 삼고 갈망하면서, 다른 것을 의지하거나 신뢰하는 바 일체의 미신을 몰아내야 합니다. 여하튼 간에 하나님의 영광을 티끌만큼이라도 감축하는 것은 부당하며, 만물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므로 항상 모두를 하나님께 돌릴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제1문답을 상고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주일예배순서 2019년 6월 16일 (10:00)
. (09:30 준비) 사도신경송-시편찬송-십계명송
. 송영
. 신앙고백 (다같이)
. 언약선포 (십계명 교독)
. 시편찬송 117편
. 목회기도 (설교자)
. 시편찬송 119-1편
. 말씀선포 막 1:1-8
. 말씀설교 하나님의 복음
. 시편찬송 119-2편
. 주님의 만찬 (매 분기말마다)
. 주기도문 (다같이)
. (예배 이후) 애찬 및 성도의 교제
. (13:00부터) 평강의 예배 (성경학습)
주언교회 - 역사 속에서 개혁된 교회를 계승하는 ...

  1. 주언교회는 하나님께서 개혁교회의 창시자 존 칼빈과 그의 사상을 계승한 개혁자들을 통해서 세계 최초로 프랑스 개혁교회(1559)와 스코틀랜드 장로교회(1560)를 출범시키심으로써 교회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주신 섭리에 감사드리며 이를 소중히 받듭니다.
  2. 주언교회는 교회개혁이란 동전의 양면의 관계와도 같이 분리될 수 없는 두 가지 사실에 성립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는데 첫째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라고 한 신앙고백이 보다 더 정확하고 섬세한 '제반 신앙고백들'로 확정되었고 둘째는 '모든 것을 품위있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고전 14:40)고 하신 바대로 신앙고백을 성경적으로 구현하는 교회질서(정치)가 제정된 것이었습니다.
  3. 주언교회는 이 두 가지 중요한 원리를 대하면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적 임재방식'이라는 신앙고백의 핵심에 깨달았고 동시에 이와 같은 신앙고백은 개혁된 교회의 전통에 따른 성경적 교회질서에 성립될 때에 비로소 '교회의 삼대 표지'를 제대로 구현할 수 있게 된다는 각성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4. 주언교회는 더더욱 겸손히 고개숙여 역사 속에서 개혁된 교회신앙학(신학과 신앙)을 계속 깊이 배우고 계승하면서 '거룩한 공회를 믿사오며 ...'라고 고백하는 바대로 보편의 교회와 함께 정통 신앙고백교회질서에 성립되는 것을 통하여 교회로서의 온전한 품위를 구현하는 사명을 위하여 한 길로 줄곧 나아갑니다.

성경해석의 원천: 기독교강요

주지의 사실이듯이 칼빈을 빼놓고서는 '참된 교회'에 대한 논의는 그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빈을 따른다고 외치지만 오히려 칼빈이 그렇게도 배척한 신앙 형태를 자행하는 어처구니 없는 모순도 벌어지고 있다. 진정으로 개혁사상을 계승하려 한다면 칼빈의 신학과 신앙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는 기독교강요를 필수적으로 학습해야 하고, 그럴 경우 성경 해석과 선포를 보다 풍성하게 해내게 될 것이다.

준비중

고백신앙의 모범: 칼빈의 개혁목회

칼빈의 위대성은 그의 독창성에서보다는 기독교 메시지를 일관성 있게 이해하면서 교회라고 하는 신앙의 현장에서 줄기차게 개혁을 실현해 나갔다는 데서 찾아야 한다. 칼빈의 신학은 책상 머리에서 이책저책 뒤적거려 짜낸 이론들로 그럴듯하게 뜯어 맞춘, 그래서 늘 말은 거창하게 하지만 정작 삶으로는 자신의 이론을 뒷받침하지 못하는 이론만의 종교주의자가 아니었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임을 아는 사람이었다.

더보기

개혁현장의 용사: 교회학 박사

제네바 교회를 섬기면서 칼빈은 목사회 모임을 이끌었고, 거기서 배출된 목사들이 프랑스에서 세계 최초의 개혁교회를 세웠다. 또한 칼빈에게서 개인적으로 배운 존 녹스 역시 스코틀랜드에서 세계 최초의 장로교회를 세웠다. 이것은 오늘날 사방에 그렇게도 많은 신학교들이 널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목사다운 목사가 배출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 앞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와 도전이 참으로 크고도 크다 아니할 수 없다.

준비중

최근 글

xxxxxx-1[1]

제129호. 교회 시대의 올바른 헌금 자세

이후 존 칼빈 같은 개혁자들을 통해서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로마 카톨릭 교회의 타락을 말끔히 벗어버린 개혁교회가 출범하게 된 것은 참으로 하나님의 각별하신 은혜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진리를 위해 생명을 바쳐 충성을 다한 믿음의 선진들을 쓰셔서 ‘세 개가 하나’를 이루는 ‘네 쌍의 신앙고백’이라고 하는 반석 위에 개혁교회를 든든히 세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더보기

xxxxxx-1[1]

제128호. 거룩한 성례: 주님의 만찬 ②

신앙고백서들이 십일조 헌금을 신약 교회가 지켜야 할 규례로 보지 않는 까닭은, 구약의 모든 의식법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예표하였던 것이고,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구속 사역을 완수하심에 따라, 그것들은 당연히 폐지되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앙고백서들은 보다 큰 문제, 곧 구약의 각종 절기들과 같은 의식법들이 폐지된 사실을 선포하는 방식으로, 더보기

xxxxxx-1[1]

제127호. 거룩한 성례: 주님의 만찬 ①

개혁교회는 ‘성찬’이라는 말보다는 ‘주님의 만찬’이라는 말을 더 선호하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이것이 로마 카톨릭의 그 동안의 잘못처럼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가 아니라, 자기 백성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배설하신 만찬’이라는 점을 부각시킵니다. 이 점을 확실하게 인식한다면 용어 사용의 문제는 크게 중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하튼 주님의 만찬은 성격상 식사이고 잔치입니다. 이 식사 자리에서 더보기

xxxxxx-1[1]

제126호. 거룩한 성례: 세례

사실 원칙적으로 예배시 설교를 통해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가 실현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도들을 모두 품에 안고, 성부 하나님의 보좌로 나아가십니다. 이는 오직 성신의 능력 안에서 일어나는 신비한 역사요, 또한 신비한 효과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성도들은 하나님의 존전에 부복한 자들에게서 일어나기 마련인 위엄 의식에 사로잡힙니다. 하지만 이러한 의식은 개인적인 감정에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