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16일(SU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48문답

[질문] 제1계명에서 “나 외에는” 또는 “내 앞에서”라는 말씀이 우리에게 특별히 가르치는 것은 무엇입니까? [대답] 제1계명에서 “나 외에는” 또는 “내 앞에서”라는 말씀이 특별히 우리를 가르치는 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보고 계시면서 우리가 조금이라도 다른 신을 섬기는 죄를 특히 눈 여겨 보시고 매우 싫어하신다는 것입니다(신 30:17-18; 시 44:20-21; 겔 8:12).

소신앙고백문답 제48문답은 제1계명 시리즈를 마감하는 문답입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경외하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코람데오(Coram Deo)의 정신으로 살아가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이러한 자세는 종교개혁기에 개혁자들의 슬로건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찰하는 분이십니다. 이 사실은 너무도 명약관화하기 때문에 혹시라도 하나님의 눈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사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정작 실제 생활 속에서는 마치 하나님을 얼마든지 속일 수 있다는 듯이 행동한다는 때가 종종 일어난다는 데 있습니다. 아마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다기 보다는 하나님께 대한 신앙의 태도가 확실하게 정립되어 있지 않은 까닭이겠습니다. 즉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신앙적 충성심이 어설픈 것입니다. 여기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실을 강조합니다.
첫째, 모름지기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면 범사에 하나님 앞에서 살아간다는 생각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감시를 받는다는 것을 생각하자는 그런 소극적인 차원이 아니고, 마치 부모님 앞에서 행동거지를 똑바르게 하는 것이 자식된 도리이듯이 그렇게 효도하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는 차원에서입니다. 게다가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눈동자와도 같이 지켜 보호하시는 분이십니다. 모세는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신 32:10)라고 고백했습니다. 이 사상은 시편에서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 감추사”(시 17:8)라는 찬양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혹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죄 가운데 빠져들게 될 경우, 당신의 자녀를 지키시는 여호와의 눈동자를 범하는 것이 되고 맙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를 노략한 열국으로 영광을 위하여 나를 보내셨나니 무릇 너희를 범하는 자는 그의 눈동자를 범하는 것이라”(슥 2:8)라고 한 것이 이 때문입니다. 칼빈은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할 수 있을 때에, 거기에 참된 경건, 즉 진정한 신앙이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이라면 자신이 죽는다는 것 이상으로 무엇을 더 싫어할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이러한 본성을 거슬러 ‘하나님을 거역하거나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는 것’을 더 싫어할 수 있을 정도로, 그런 만큼이나 우리로서는 하나님의 지극히 높고 높으심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죄의 모든 형태는 다 싫어하고 증오하시며 그에 따라 반드시 심판하시는 공의로운 분이시지만, 특별히 미워하시는 죄목으로서 ‘우상숭배’를 따로 규정하셨습니다. 이것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기타 이어지는 일체의 것들은 의미가 없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까닭에 십계명에서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라고 한 계명이 제일 먼저 선포된 데 대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습니다.
현대에 들어 우상숭배 형태는 다양한 옷을 입고 나타납니다. 물론 옛적의 모습과는 형태가 좀 다르다는 의미이지 배후에 도사린 정신 상태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르네상스 이후로 전개된 인간주의와 연결되는 것으로서, 이것이 극치에 달한 것으로 보이는 오늘날에는 다양한 문화와 문명이라는 옷을 입고 정착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에 여러 가지 하나님보다 더 높이고 받들고 소중히 여기는 것이 있을 경우 명백히 우상숭배라고 규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이교 국가들은 거짓 신들을 섬기면서 그것들의 형상까지도 만들었습니다. 현대인들이 섬기는 많은 거짓 신들에는, 핵가족주의에서 오는 자녀 사랑의 절대성, 황금만능시대가 낳은 재물에 대한 가히 생명을 건 애착, 온갖 형태의 쾌락, 경계가 무너진 성생활의 자유화, 명예와 권력에 대한 욕구,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음식과 의복들, 유명한 운동 선수들과 스크린을 장식하는 배우들에 대한 동경 기타 등등 그러한 종류의 여러 가지 것들입니다.

주일예배순서 2019년 6월 16일 (10:00)
. (09:30 준비) 사도신경송-시편찬송-십계명송
. 송영
. 신앙고백 (다같이)
. 언약선포 (십계명 교독)
. 시편찬송 117편
. 목회기도 (설교자)
. 시편찬송 119-1편
. 말씀선포 막 1:1-8
. 말씀설교 하나님의 복음
. 시편찬송 119-2편
. 주님의 만찬 (매 분기말마다)
. 주기도문 (다같이)
. (예배 이후) 애찬 및 성도의 교제
. (13:00부터) 평강의 예배 (성경학습)
주언교회 - 역사 속에서 개혁된 교회를 계승하는 ...

  1. 주언교회는 하나님께서 개혁교회의 창시자 존 칼빈과 그의 사상을 계승한 개혁자들을 통해서 세계 최초로 프랑스 개혁교회(1559)와 스코틀랜드 장로교회(1560)를 출범시키심으로써 교회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주신 섭리에 감사드리며 이를 소중히 받듭니다.
  2. 주언교회는 교회개혁이란 동전의 양면의 관계와도 같이 분리될 수 없는 두 가지 사실에 성립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는데 첫째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라고 한 신앙고백이 보다 더 정확하고 섬세한 '제반 신앙고백들'로 확정되었고 둘째는 '모든 것을 품위있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고전 14:40)고 하신 바대로 신앙고백을 성경적으로 구현하는 교회질서(정치)가 제정된 것이었습니다.
  3. 주언교회는 이 두 가지 중요한 원리를 대하면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적 임재방식'이라는 신앙고백의 핵심에 깨달았고 동시에 이와 같은 신앙고백은 개혁된 교회의 전통에 따른 성경적 교회질서에 성립될 때에 비로소 '교회의 삼대 표지'를 제대로 구현할 수 있게 된다는 각성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4. 주언교회는 더더욱 겸손히 고개숙여 역사 속에서 개혁된 교회신앙학(신학과 신앙)을 계속 깊이 배우고 계승하면서 '거룩한 공회를 믿사오며 ...'라고 고백하는 바대로 보편의 교회와 함께 정통 신앙고백교회질서에 성립되는 것을 통하여 교회로서의 온전한 품위를 구현하는 사명을 위하여 한 길로 줄곧 나아갑니다.

성경해석의 원천: 기독교강요

주지의 사실이듯이 칼빈을 빼놓고서는 '참된 교회'에 대한 논의는 그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빈을 따른다고 외치지만 오히려 칼빈이 그렇게도 배척한 신앙 형태를 자행하는 어처구니 없는 모순도 벌어지고 있다. 진정으로 개혁사상을 계승하려 한다면 칼빈의 신학과 신앙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는 기독교강요를 필수적으로 학습해야 하고, 그럴 경우 성경 해석과 선포를 보다 풍성하게 해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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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신앙의 모범: 칼빈의 개혁목회

칼빈의 위대성은 그의 독창성에서보다는 기독교 메시지를 일관성 있게 이해하면서 교회라고 하는 신앙의 현장에서 줄기차게 개혁을 실현해 나갔다는 데서 찾아야 한다. 칼빈의 신학은 책상 머리에서 이책저책 뒤적거려 짜낸 이론들로 그럴듯하게 뜯어 맞춘, 그래서 늘 말은 거창하게 하지만 정작 삶으로는 자신의 이론을 뒷받침하지 못하는 이론만의 종교주의자가 아니었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임을 아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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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현장의 용사: 교회학 박사

제네바 교회를 섬기면서 칼빈은 목사회 모임을 이끌었고, 거기서 배출된 목사들이 프랑스에서 세계 최초의 개혁교회를 세웠다. 또한 칼빈에게서 개인적으로 배운 존 녹스 역시 스코틀랜드에서 세계 최초의 장로교회를 세웠다. 이것은 오늘날 사방에 그렇게도 많은 신학교들이 널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목사다운 목사가 배출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 앞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와 도전이 참으로 크고도 크다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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