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4일 (SU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16문답 묵상2018년

[질문] 아담의 첫 범죄 때에 모든 사람이 타락하였습니까? [대답] 아담과 맺으신 언약은(창 2:16-17; 약 2:10) 아담 한 사람만이 아니라 그의 후손까지 위한 것이므로, 보통 출생법으로 아담의 후손이 된 모든 인류는 아담의 첫 범죄 때에 그의 안에서 죄를 짓고 그와 함께 타락하였습니다(시 51:5; 58:3; 롬 5:12-21; 고전 15:21-22).

웨스트민스터 소신앙고백문답은 제12문답에서 ‘생명 언약’과 관련하여 ‘언약’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당시 생명 언약을 ‘행위 언약’이라고도 칭하지만, 그렇지라도 ‘은혜 언약’과 대치되는 입장에서 잘못 이해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지금 제16문답에서 ‘아담과 맺으신 언약’이라고 한 것은 바로 이 ‘생명 언약’을 가리키는 것인데, 이것을 아담이 지켰는가, 그렇지 않은가를 묻는 것입니다.

여기서 언급한 ‘아담의 첫 범죄’라고 한 표현은 바로 이 ‘생명 언약’을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을 가리키는 것인데, 특이한 것은 그가 불순종함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범죄한 사실을 들어, 향후 그를 통하여 태어나는 ‘모든 사람’에게까지 확장시켰다는 데 있습니다. 이렇게 한 까닭은 당시 아담의 지위 또는 신분이 향후 그를 통하여 태어나는 모든 인류를 대표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맺으신 언약은 아담 한 사람만이 아니라 그의 후손까지 위한 것이므로 ...”라고 한 고백한 바를 주목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아담이 범죄하고 타락했을 때, 사실은 오늘날의 우리 자신 역시 범죄하고 타락하였던 것입니다.

지금 인간은 예외 없이 아담의 후손이므로, “보통 출생법으로 아담의 후손이 된 모든 인류는 아담의 첫 범죄 때에 그의 안에서 죄를 짓고 그와 함께 타락하였습니다”라고 바에 속합니다. 오늘날 모든 피조물이 탄식할 정도로 우주 전체에 편만한 저주는(롬 8:20-22) , 예외 없이 아담의 죄에서 흘러 퍼진 것이며, 그것이 그의 모든 후손에게 연장되어도 불합리한 것은 없습니다. 인간은 필경 부패를 물려받았는데(롬 5:12), 이것에 대해 교부들은 원죄(Original Sin)라고 불렸습니다.

원죄 사상이 성경의 핵심 진리라는 데 대해서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고, 부정되어서도 안 됩니다. 왜냐하먼 기독교 구원론은 이 토대를 전제로 전개되어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 51:5)라고 고백했습니다. 지금 다윗은 부모의 죄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잉태될 때부터 죄악되었다고 고백했는데, 더욱이 다윗은 지금 인류의 공통된 처지를 대표해서 그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불순한 씨인 우리는 죄의 전염(the contagion of sin)과 함께 이 오염된 세상에 들어오는 것입니다(욥 14:4).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토록 중요한 원죄 사상은 초기부터 훼방을 받았습니다. 가령, 펠라기우스파(the Pelagians, 354-420)와 그의 추종자 셀레스티안파(the Celestians; 2.3.5, 7; 3.17.15; 3.23.5)는 이것을 ‘번식이 아닌, 모방에 의해서’라고 주장하였던 것입니다. 물론 어거스틴이 이를 잘 반박하여 우리가 모태로부터 타고난 결함이 있다는 것을 잘 증명하였습니다. 실제로 이 사실은 우리의 경험 속에서도 확실하게 증명되는데, 즉 루소의 주장처럼 제아무리 교육을 잘 실시해도 범죄가 근절되지 않는 것은, 실제로 인간은 원죄로 말미암은 부패에 빠져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실로 아담은 시조였을 뿐만 아니라 또한 인간의 뿌리(root)였으며, 따라서 그의 부패에 의해서 전 인간 자손이 당연히 부패했고, 바로 그 반대로 그리스도 안에서 의와 생명이 회복되었습니다(롬 5:12, 17). 그러므로 바울이 아담과 그리스도를 대조한 것에 근거하여(롬 5:19), 펠라기우스처럼 ‘아담의 죄는 모방에 의해서 번식되는 것이다’라고 한다면, 우리가 그리스도의 의를 얻는 것도 그를 모방하기 때문이라고 해야 하는 터무니 없는 모순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의는 그의 의와 생명이 우리에게 전달되고 나누어지는 방식으로 우리의 것이 됩니다. 즉 아담에 의해서 우리에게 잠입한 죄와 죽음이 그리스도(의 이러한 생명의 나누어주심)에 의해서 없어지는 것입니다(고전 15:22; 롬 8:10).

바울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 2:3)라고 말한 것은, 모든 사람이 이미 모태에서 저주를 받은 것이 아니라면 성립되지 않을 것이고, 그리스도께서도 선언하셨듯이 육으로 난 것은 육이므로(요 3:6), 거듭나지 않으면 생명의 문이 닫혀 있고야 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연히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신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라고 하신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원죄 교리를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의의 전가 교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중요한 기반이라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주일예배순서 2018년 12월 9일 (10:00)
. (09:30 준비) 사도신경송-시편찬송-십계명송
. 송영
. 신앙고백 (다같이)
. 언약선포 (십계명 교독)
. 시편찬송 047편
. 목회기도 (설교자)
. 시편찬송 048편
. 말씀선포 갈 2:20-21
. 말씀설교 그리스도와의 연합 구원
. 시편찬송 049편
. 주님의 만찬 (매 분기말마다)
. 주기도문 (다같이)
. (예배 이후) 애찬 및 성도의 교제
. (13:00부터) 평강의 예배 (성경학습)
주언교회 - 역사 속에서 개혁된 교회를 계승하는 ...

  1. 주언교회는 하나님께서 개혁교회의 창시자 존 칼빈과 그의 사상을 계승한 개혁자들을 통해서 세계 최초로 프랑스 개혁교회(1559)와 스코틀랜드 장로교회(1560)를 출범시키심으로써 교회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주신 섭리에 감사드리며 이를 소중히 받듭니다.
  2. 주언교회는 교회개혁이란 동전의 양면의 관계와도 같이 분리될 수 없는 두 가지 사실에 성립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는데 첫째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라고 한 신앙고백이 보다 더 정확하고 섬세한 '제반 신앙고백들'로 확정되었고 둘째는 '모든 것을 품위있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고전 14:40)고 하신 바대로 신앙고백을 성경적으로 구현하는 교회질서(정치)가 제정된 것이었습니다.
  3. 주언교회는 이 두 가지 중요한 원리를 대하면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적 임재방식'이라는 신앙고백의 핵심에 깨달았고 동시에 이와 같은 신앙고백은 개혁된 교회의 전통에 따른 성경적 교회질서에 성립될 때에 비로소 '교회의 삼대 표지'를 제대로 구현할 수 있게 된다는 각성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4. 주언교회는 더더욱 겸손히 고개숙여 역사 속에서 개혁된 교회신앙학(신학과 신앙)을 계속 깊이 배우고 계승하면서 '거룩한 공회를 믿사오며 ...'라고 고백하는 바대로 보편의 교회와 함께 정통 신앙고백교회질서에 성립되는 것을 통하여 교회로서의 온전한 품위를 구현하는 사명을 위하여 한 길로 줄곧 나아갑니다.

성경해석의 원천: 기독교강요

주지의 사실이듯이 칼빈을 빼놓고서는 '참된 교회'에 대한 논의는 그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빈을 따른다고 외치지만 오히려 칼빈이 그렇게도 배척한 신앙 형태를 자행하는 어처구니 없는 모순도 벌어지고 있다. 진정으로 개혁사상을 계승하려 한다면 칼빈의 신학과 신앙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는 기독교강요를 필수적으로 학습해야 하고, 그럴 경우 성경 해석과 선포를 보다 풍성하게 해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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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신앙의 모범: 칼빈의 개혁목회

칼빈의 위대성은 그의 독창성에서보다는 기독교 메시지를 일관성 있게 이해하면서 교회라고 하는 신앙의 현장에서 줄기차게 개혁을 실현해 나갔다는 데서 찾아야 한다. 칼빈의 신학은 책상 머리에서 이책저책 뒤적거려 짜낸 이론들로 그럴듯하게 뜯어 맞춘, 그래서 늘 말은 거창하게 하지만 정작 삶으로는 자신의 이론을 뒷받침하지 못하는 이론만의 종교주의자가 아니었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임을 아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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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현장의 용사: 교회학 박사

제네바 교회를 섬기면서 칼빈은 목사회 모임을 이끌었고, 거기서 배출된 목사들이 프랑스에서 세계 최초의 개혁교회를 세웠다. 또한 칼빈에게서 개인적으로 배운 존 녹스 역시 스코틀랜드에서 세계 최초의 장로교회를 세웠다. 이것은 오늘날 사방에 그렇게도 많은 신학교들이 널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목사다운 목사가 배출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 앞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와 도전이 참으로 크고도 크다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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