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9일 (SUNDAY) ● 웨스트민스터 소신앙고백문답 제008문답 묵상2018년

  • [질문]: 하나님께서 자신의 작정을 어떻게 이루십니까? [대답]: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작정을 창조와 섭리의 일로써 이루십니다(시 148:8; 사 40:26; 단 4:35; 행 4:24-28; 계 4:11).
  • 여기 제8문답은 앞의 제7문답에서 하나님의 작정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은 것과 계속 연결되어 있습니다.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작정을 이루시는 방법에 대해 다루면서, 장조와 섭리의 일로써 그렇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이따금씩 세상 사람들은 이 세상 만물에 대한 하나님의 지배력을 무시하기 위하여 두 가지 사상을 잘 제시합니다.
  • 첫째로, 통상 우연” 혹은 “우발적 사건”이라고 부르는 것이 있습니다. 가령, 주사위 놀이나 카드 놀이를 할 때, 일이 어떻게 진전될 것인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지건 이기건 간에 우연이라는 표현으로써 그것의 결과를 말하곤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하기를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 16:33)라고 했습니다. 열왕기상 22장에서 우리는 여호와의 경고를 거스려 전쟁을 치를 “우연한 기회를 얻은” 아합왕에 관해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22:34에서는 어떤 특별한 표적을 겨냥하지도 않고, 막연히 공중에 활을 쏜 수리아 군인에 대한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쏜 그 화살은 아합 왕을 죽이기까지 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실상은 그 모든 것은 여호와께서 아합을 죽이기로 하신 데 따라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 실현에 있어서 “우연”이란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모든 것을 섭리하시기 때문입니다.
  • 둘째로, 하나님의 섭리는 인간의 “자유의지”와는 어떤 관련이 있습니까? 인간의 결정조차도(선악간에)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이미 결정되었다고 믿어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이것은 성경의 선포입니다. 성경은 신자나 불신자를 막론하고 인간이 행하는 모든 결단은 영원부터 하나님에 의해서 이미 계획되었다고 선포니다.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던 자들의 행악까지도 하나님의 섭리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 준 바 되었거늘 너회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도다”( 2:23). 악인들이 하나님을 거스려 행하지만,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바를 실행할 수 있을 뿐입니다. 누구라도 하나님의 계획을 망가뜨리겠다고 나설 수는 있겠으나, 하지만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는 도구 노릇밖에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불신자에게도 사실일진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더욱 틀림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는 하나님이 전데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2:10).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선택, 즉 그리스도를 믿으려는 선택도 하나님이 미리 정하신 데 따른 것이요, 그렇게 되도록 섭리하신 데 따른 것입니다.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전파할 때,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13:48)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바울의 발걸음을 섭리하셨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어떤 것도 하나님의 계획밖에 있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완전합니다. 그의 계획은 일어날 모든 것들을 포함합니다. 곧 섭리입니다.
  •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되어질 모든 것을 예정하셨고(7문답), 반드시 그렇게 되도록 섭리하신다(8문답)”는 사실을 들어, 다른 잘못된 사상의 근거로 삼지 않도록 두 가지를 조심해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이 죄의 조성자라는 추론은 잘못입니다. 하나님이 처음 만물을 창조하셨을 모든 것이 선했습니다. 죄는 나중에 이 피조물들에게서 발생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계획은 이것까지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죄의 조성자가 되는 그런 방법으로는 분명 아닙니다. 이 사실은 그냥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억지로 조화시킬 필요는 없고, 그런다고 해서 믿음이 더욱 돈둑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둘째, 인간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는 노예가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은 이미 모든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지명하신 대로 어떤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며(살전 5:9), 어떤 이는 하나님이 정하신 대로 버려질 것입니다( 4). 그런데 성경은 구원 받는 자들이 자신의 선택과 의지에 따라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고 강조하는 만큼, 반대로 버려진 자들에 대해서는 그들 자신의 선택으로 스스로 버려진 자가 되기를 자초했다고 합니다. 물론 그 전에 하나님께서 작정하셨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하지만 책임은 인간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의 작정은 어떠한 방법으로도 인간의 책임을 약화시키거나 말살시켜러지 습니다.
주일예배순서 2018년 10월 14일 (10:00)
. (09:30 준비) 사도신경송-시편찬송-십계명송
. 송영
. 신앙고백 (다같이)
. 언약선포 (십계명 교독)
. 시편찬송 022편
. 목회기도 (설교자)
. 시편찬송 023편
. 말씀선포 갈 2:1-10
. 말씀설교 진리의 교회
. 시편찬송 024-1편
. 주님의 만찬 (매 분기말마다)
. 주기도문 (다같이)
. (예배 이후) 애찬 및 성도의 교제
. (13:00부터) 평강의 예배 (성경학습)
주언교회 - 역사 속에서 개혁된 교회를 계승하는 ...

  1. 주언교회는 하나님께서 개혁교회의 창시자 존 칼빈과 그의 사상을 계승한 개혁자들을 통해서 세계 최초로 프랑스 개혁교회(1559)와 스코틀랜드 장로교회(1560)를 출범시키심으로써 교회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주신 섭리에 감사드리며 이를 소중히 받듭니다.
  2. 주언교회는 교회개혁이란 동전의 양면의 관계와도 같이 분리될 수 없는 두 가지 사실에 성립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는데 첫째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라고 한 신앙고백이 보다 더 정확하고 섬세한 '제반 신앙고백들'로 확정되었고 둘째는 '모든 것을 품위있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고전 14:40)고 하신 바대로 신앙고백을 성경적으로 구현하는 교회질서(정치)가 제정된 것이었습니다.
  3. 주언교회는 이 두 가지 중요한 원리를 대하면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적 임재방식'이라는 신앙고백의 핵심에 깨달았고 동시에 이와 같은 신앙고백은 개혁된 교회의 전통에 따른 성경적 교회질서에 성립될 때에 비로소 '교회의 삼대 표지'를 제대로 구현할 수 있게 된다는 각성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4. 주언교회는 더더욱 겸손히 고개숙여 역사 속에서 개혁된 교회신앙학(신학과 신앙)을 계속 깊이 배우고 계승하면서 '거룩한 공회를 믿사오며 ...'라고 고백하는 바대로 보편의 교회와 함께 정통 신앙고백교회질서에 성립되는 것을 통하여 교회로서의 온전한 품위를 구현하는 사명을 위하여 한 길로 줄곧 나아갑니다.

성경해석의 원천: 기독교강요

주지의 사실이듯이 칼빈을 빼놓고서는 '참된 교회'에 대한 논의는 그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빈을 따른다고 외치지만 오히려 칼빈이 그렇게도 배척한 신앙 형태를 자행하는 어처구니 없는 모순도 벌어지고 있다. 진정으로 개혁사상을 계승하려 한다면 칼빈의 신학과 신앙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는 기독교강요를 필수적으로 학습해야 하고, 그럴 경우 성경 해석과 선포를 보다 풍성하게 해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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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신앙의 모범: 칼빈의 개혁목회

칼빈의 위대성은 그의 독창성에서보다는 기독교 메시지를 일관성 있게 이해하면서 교회라고 하는 신앙의 현장에서 줄기차게 개혁을 실현해 나갔다는 데서 찾아야 한다. 칼빈의 신학은 책상 머리에서 이책저책 뒤적거려 짜낸 이론들로 그럴듯하게 뜯어 맞춘, 그래서 늘 말은 거창하게 하지만 정작 삶으로는 자신의 이론을 뒷받침하지 못하는 이론만의 종교주의자가 아니었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임을 아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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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현장의 용사: 교회학 박사

제네바 교회를 섬기면서 칼빈은 목사회 모임을 이끌었고, 거기서 배출된 목사들이 프랑스에서 세계 최초의 개혁교회를 세웠다. 또한 칼빈에게서 개인적으로 배운 존 녹스 역시 스코틀랜드에서 세계 최초의 장로교회를 세웠다. 이것은 오늘날 사방에 그렇게도 많은 신학교들이 널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목사다운 목사가 배출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 앞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와 도전이 참으로 크고도 크다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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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01호. 예레미야의 시대에 대한 구속사적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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