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 19일 (TUE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31문답

저녁상을 다 차린 후 엄마는 뜰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부릅니다. “저녁 다 됐다.”라는 말을 들을 때 어떤 아이는 즉각 들어오지만 어떤 아이는 들은 척 만 척 합니다. 지금 효과적인 부름을 설명하려고 이 예를 들었습니다. “효과적”이라는 말은 의도한 일이 반드시 일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효과적인 부르심이 있으면 반드시 거기에는 응답이 있습니다. 그래서 부르신 목적에 맞는 일을 하게 됩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13-14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여기서 하나님의 구원해 주시는 은혜가 최종적으로 우리에게서 효력을 일으키는 수단에 대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그러면 왜 하필 그런 수단이 필요한 것입니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한 가지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이야기 해봅시다.

주일예배순서 2019년 3월 24일 (10:00)
. (09:30 준비) 사도신경송-시편찬송-십계명송
. 송영
. 신앙고백 (다같이)
. 언약선포 (십계명 교독)
. 시편찬송 092편
. 목회기도 (설교자)
. 시편찬송 093편
. 말씀선포 갈 5:1-6
. 말씀설교 성령으로써 역사하는 믿음
. 시편찬송 094편
. 주님의 만찬 (매 분기말마다)
. 주기도문 (다같이)
. (예배 이후) 애찬 및 성도의 교제
. (13:00부터) 평강의 예배 (성경학습)
주언교회 - 역사 속에서 개혁된 교회를 계승하는 ...

  1. 주언교회는 하나님께서 개혁교회의 창시자 존 칼빈과 그의 사상을 계승한 개혁자들을 통해서 세계 최초로 프랑스 개혁교회(1559)와 스코틀랜드 장로교회(1560)를 출범시키심으로써 교회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주신 섭리에 감사드리며 이를 소중히 받듭니다.
  2. 주언교회는 교회개혁이란 동전의 양면의 관계와도 같이 분리될 수 없는 두 가지 사실에 성립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는데 첫째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라고 한 신앙고백이 보다 더 정확하고 섬세한 '제반 신앙고백들'로 확정되었고 둘째는 '모든 것을 품위있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고전 14:40)고 하신 바대로 신앙고백을 성경적으로 구현하는 교회질서(정치)가 제정된 것이었습니다.
  3. 주언교회는 이 두 가지 중요한 원리를 대하면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적 임재방식'이라는 신앙고백의 핵심에 깨달았고 동시에 이와 같은 신앙고백은 개혁된 교회의 전통에 따른 성경적 교회질서에 성립될 때에 비로소 '교회의 삼대 표지'를 제대로 구현할 수 있게 된다는 각성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4. 주언교회는 더더욱 겸손히 고개숙여 역사 속에서 개혁된 교회신앙학(신학과 신앙)을 계속 깊이 배우고 계승하면서 '거룩한 공회를 믿사오며 ...'라고 고백하는 바대로 보편의 교회와 함께 정통 신앙고백교회질서에 성립되는 것을 통하여 교회로서의 온전한 품위를 구현하는 사명을 위하여 한 길로 줄곧 나아갑니다.

성경해석의 원천: 기독교강요

주지의 사실이듯이 칼빈을 빼놓고서는 '참된 교회'에 대한 논의는 그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빈을 따른다고 외치지만 오히려 칼빈이 그렇게도 배척한 신앙 형태를 자행하는 어처구니 없는 모순도 벌어지고 있다. 진정으로 개혁사상을 계승하려 한다면 칼빈의 신학과 신앙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는 기독교강요를 필수적으로 학습해야 하고, 그럴 경우 성경 해석과 선포를 보다 풍성하게 해내게 될 것이다.

준비중

고백신앙의 모범: 칼빈의 개혁목회

칼빈의 위대성은 그의 독창성에서보다는 기독교 메시지를 일관성 있게 이해하면서 교회라고 하는 신앙의 현장에서 줄기차게 개혁을 실현해 나갔다는 데서 찾아야 한다. 칼빈의 신학은 책상 머리에서 이책저책 뒤적거려 짜낸 이론들로 그럴듯하게 뜯어 맞춘, 그래서 늘 말은 거창하게 하지만 정작 삶으로는 자신의 이론을 뒷받침하지 못하는 이론만의 종교주의자가 아니었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임을 아는 사람이었다.

더보기

개혁현장의 용사: 교회학 박사

제네바 교회를 섬기면서 칼빈은 목사회 모임을 이끌었고, 거기서 배출된 목사들이 프랑스에서 세계 최초의 개혁교회를 세웠다. 또한 칼빈에게서 개인적으로 배운 존 녹스 역시 스코틀랜드에서 세계 최초의 장로교회를 세웠다. 이것은 오늘날 사방에 그렇게도 많은 신학교들이 널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목사다운 목사가 배출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 앞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와 도전이 참으로 크고도 크다 아니할 수 없다.

준비중

최근 글

xxxxxx-1[1]

제013호. 복음증거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주권

물론 하나님께서 이처럼 복음 전파에 있어서 일체의 주도권을 행사하신다고 해서 사람 편에서의 계획이나 노력 등이 전혀 필요 없는 것처럼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아까도 말했듯이, 사람은 복음이 확장되어 나감에 있어서 도구 노릇을 하는 것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동적으로 가만히 있기만 해도 된다거나, 매 번 하나님께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시면서 직접적으로 계시하시는 것은 더보기

xxxxxx-1[1]

제012호. 믿음과 소망과 사랑

한 공동체 안에서 단순한 우정을 넘어, 사랑을 베풀며 사는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만의 특징입니다. 이는 하나님은 근본적으로 사랑이시며, 우리는 사랑이신 하나님의 자녀인 데서 오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아버지를 닮기 마련인 것이요, 이런 의미에서 그처럼 자녀라 일컬어지는 법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당신의 온전하심을 닮게 하시기 더보기

xxxxxx-1[1]

제011호.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구원

사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싶어 한다고 해서, 그렇게 알고자 하는 열망만 가지면 우리에게 하나님이 자동적으로 알려지시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알게 해주지 않으시면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대해서 논한다 할지라도,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신을 알려주시는 바대로, 그대로 알아 나간다는 차원이라는 것을 더보기

xxxxxx-1[1]

제010호.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자

오늘날 전도자들 중에는,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하고 외치는 사람들, 주야장천(晝夜長天) 그렇게만 외치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틀렸다는 말이 아닙니다. 누가 감히 그렇지 않다고 하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은 동시에 무자비한 심판자이십니다. 소돔과 고모라 같은 세상적인 삶을 지속하면서 도무지 회개하지 않는 자들, 죄를 고집스럽게 즐기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