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16일 (SU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22문답 묵상2018년

[질문]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사람이 되셨습니까? [대답]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성신의 능력으로 잉태되어(눅 1:27, 31, 35)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참된 몸과 지각 있는 영혼을 취하심으로(마 26:38; 눅 2:40; 빌 2:6-7; 히 2:12, 17)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처럼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으나 죄는 없으십니다(고후 5:21; 히 4:15; 7:26; 요일 3:5).

제22문답은 한 마디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에 관한 고백입니다. 마태복음 1장과 2장 그리고 누가복음 1장과 2장은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주님의 동정녀 탄생 사건에 대해 말해줍니다. 여기서 주목할 단어 두 가지가 있는데, ‘그리스도’와 ‘탄생’입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제2위이시지만 구속주가 되시기 위하여 인간의 아들로 태어나셨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취하신 극도의 겸손을 보여줍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피조물을 지으신 창조주이시지만, 인간의 신분을 입으시까지 자신을 낮추셨고, 나아가 온갖 고난과 수모에 더하여 가시관을 쓰신 채 십자가에서 그토록 모진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소신앙고백문답의 이 중요한 고백과 관련하여 두 가지 오류를 조심해야 합니다. 첫째, 동정녀 마리아에게까지 소급하여 죄가 없다고 가르치는 오류입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엉뚱하게도 마리아까지도 무죄하다고 가르치려고, 그녀가 예수님을 낳은 후 남편과 생활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요셉이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마 1:25)라고 함으로써 그가 예수님을 낳은 후에는 정상적인 부부 생활을 했다고 가르칩니다.

들째, 아예 어떤 기적도 부정하는 합리주의자들의 오류입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무죄 탄생을 부정합니다. 하지만 이 교리는 기독교의 사활이 걸린 것이므로 확실하게 해두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만에 하나라도 예수께서 단순히 인간 아버지의 씨를 통해서 태어나셨다고 한다면, 원죄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담 안에서 태어나는 인류는 누구도 원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현대주의자들의 주장처럼 요셉이 예수님의 육체적 아버지였다면, 예수께서 죄성을 가진 인간 아버지를 두셨다는 것이 되고, 그러면 우리처럼 죄성을 지니고 태어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므로, 그렇다면 결코 예수님은 우리의 구주가 될 수 없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신의 능력으로써 마리아의 태에 잉태되셨고, 그런 식으로 참된 인간이 되셨으되, 죄는 결코 없으셨습니다. 이는 원죄와 상관없으셨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성령의 권능으로 된 것이므로, 어떤 면으로도 처녀 마리아의 거룩이나 덕성에 기인한 것은 아닙니다. 당시 천사는 마리아에게 나타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눅 1:35)라고 했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는다’고 한 말은 성신께서 마리아의 몸에 아이를 잉태시키신다는 의미입니다. 세상이 처음에 무에서 유로 창조될 때에 성신께서 만물과 생명을 내신 것처럼 마리아의 몸에 생명을 심으신 것입니다. 즉 더 정확하게는 제2위 하나님의 도성인신을 이루신 것입니다.  도성인신(道成人身)이란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는 뜻입니다(요 1:14).

그러므로 소신앙고백문답이 ‘참된 몸과 지각 있는 영혼’이라고 한 뜻은, 예수님은 무죄한 하나님이시지만, 우리 인간과 똑같이 그렇게 인간이 되셨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옛날에는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인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요즈음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쪽으로 집중되는 경향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분명 ‘지각 있는 영혼’을 취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 인간이 몸과 영혼을 가진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인간으로서의 몸과 인간으로서의 영혼을 가지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서의 참된 인성이나 참된 신성을 부정하게 되면, 이는 기독교의 구원론 자체가 무너지는 것이므로,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이셨지만 동시에 인간이셨으므로 우리처럼 배고픔을 느끼셨고, 목이 마르셨고, 고통도 느끼셨고, 기쁨도 느끼셨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저자는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히 2:17-18)라고 한 것입니다.

정리하겠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요셉과 마리아에 의해 잉태되셨다면, 그는 또 하나의 동일한 인간일 뿐이어서 아담의 죄로 인한 부패를 벗어나지 못하기에 예수님조차도 지옥 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런 사상이 도대체 가능하기나 한 것이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성신에 의해 잉태되었기 때문에, 죄가 없는 인성을 가진 신적인 사람이고, 그렇기에 우리의 온전한 구주가 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온전한 의는 우리에게 주어졌고, 그리고 우리의 죄 값은 예수께서 짊어지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님은 마리에게 잉태되고 태어나셨으나, 아담의 죄와 우리네와 같은 자범죄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계셨습니다.

 

주일예배순서 2019년 1월 13일 (10:00)
. (09:30 준비) 사도신경송-시편찬송-십계명송
. 송영
. 신앙고백 (다같이)
. 언약선포 (십계명 교독)
. 시편찬송 062편
. 목회기도 (설교자)
. 시편찬송 063편
. 말씀선포 갈 3:15-18
. 말씀설교 약속의 불변성과 내용
. 시편찬송 064편
. 주님의 만찬 (매 분기말마다)
. 주기도문 (다같이)
. (예배 이후) 애찬 및 성도의 교제
. (13:00부터) 평강의 예배 (성경학습)
주언교회 - 역사 속에서 개혁된 교회를 계승하는 ...

  1. 주언교회는 하나님께서 개혁교회의 창시자 존 칼빈과 그의 사상을 계승한 개혁자들을 통해서 세계 최초로 프랑스 개혁교회(1559)와 스코틀랜드 장로교회(1560)를 출범시키심으로써 교회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주신 섭리에 감사드리며 이를 소중히 받듭니다.
  2. 주언교회는 교회개혁이란 동전의 양면의 관계와도 같이 분리될 수 없는 두 가지 사실에 성립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는데 첫째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라고 한 신앙고백이 보다 더 정확하고 섬세한 '제반 신앙고백들'로 확정되었고 둘째는 '모든 것을 품위있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고전 14:40)고 하신 바대로 신앙고백을 성경적으로 구현하는 교회질서(정치)가 제정된 것이었습니다.
  3. 주언교회는 이 두 가지 중요한 원리를 대하면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적 임재방식'이라는 신앙고백의 핵심에 깨달았고 동시에 이와 같은 신앙고백은 개혁된 교회의 전통에 따른 성경적 교회질서에 성립될 때에 비로소 '교회의 삼대 표지'를 제대로 구현할 수 있게 된다는 각성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4. 주언교회는 더더욱 겸손히 고개숙여 역사 속에서 개혁된 교회신앙학(신학과 신앙)을 계속 깊이 배우고 계승하면서 '거룩한 공회를 믿사오며 ...'라고 고백하는 바대로 보편의 교회와 함께 정통 신앙고백교회질서에 성립되는 것을 통하여 교회로서의 온전한 품위를 구현하는 사명을 위하여 한 길로 줄곧 나아갑니다.

성경해석의 원천: 기독교강요

주지의 사실이듯이 칼빈을 빼놓고서는 '참된 교회'에 대한 논의는 그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빈을 따른다고 외치지만 오히려 칼빈이 그렇게도 배척한 신앙 형태를 자행하는 어처구니 없는 모순도 벌어지고 있다. 진정으로 개혁사상을 계승하려 한다면 칼빈의 신학과 신앙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는 기독교강요를 필수적으로 학습해야 하고, 그럴 경우 성경 해석과 선포를 보다 풍성하게 해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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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신앙의 모범: 칼빈의 개혁목회

칼빈의 위대성은 그의 독창성에서보다는 기독교 메시지를 일관성 있게 이해하면서 교회라고 하는 신앙의 현장에서 줄기차게 개혁을 실현해 나갔다는 데서 찾아야 한다. 칼빈의 신학은 책상 머리에서 이책저책 뒤적거려 짜낸 이론들로 그럴듯하게 뜯어 맞춘, 그래서 늘 말은 거창하게 하지만 정작 삶으로는 자신의 이론을 뒷받침하지 못하는 이론만의 종교주의자가 아니었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임을 아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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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현장의 용사: 교회학 박사

제네바 교회를 섬기면서 칼빈은 목사회 모임을 이끌었고, 거기서 배출된 목사들이 프랑스에서 세계 최초의 개혁교회를 세웠다. 또한 칼빈에게서 개인적으로 배운 존 녹스 역시 스코틀랜드에서 세계 최초의 장로교회를 세웠다. 이것은 오늘날 사방에 그렇게도 많은 신학교들이 널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목사다운 목사가 배출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 앞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와 도전이 참으로 크고도 크다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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