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9일 (SU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21문답 묵상2018년

[질문]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들의 구속자는 누구이십니까? [대답]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들의 구속자는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시 49:7-8; 요 14:6; 행 4:12; 딤전 2:5-6). 그분은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로서(시 2:7; 마 3:17; 17:5; 요 1:18) 사람이 되셨고(사 9:6; 마 1:23; 요 1:14; 갈 4:4), 한 위에 양성을 가지신 하나님이시고 사람이셨으며, 지금도, 그리고 영원토록 그러하십니다(행 1:11; 롬 9:5; 골 2:9; 히 7:24-25).

지금까지 소신앙고백문답을 통하여 직전에 주로 죄론을 다루었다면, 이제부터는 구원자 주제로 넘어갑니다. 제21문답에서는 개괄적인 선포를 하고, 다음 문답부터 구체적인 설명으로 들어갑니다. 먼저 “사람들의 구속자는 오직(다만)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선포했습니다. 실제로 성경이 선포하고 있는 구원론을 간단하게 제시해 본다면, “영생은 유일하신(only)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요 17:3)”이로되, 좀 더 간단하게는 “독생자를 믿는 것(only begotten Son, 요 3:16)”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유일한’, 또는 ‘오직’, ‘다만(only)”이라고 한 단어는 정말 중요합니다. 이것을 사도 바울은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행 4:12)라는 식으로 강조하였습니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들의 유일한 구속자이십니다. 하지만 왜 예수님만이 선택된 자의 유일한 구속자입니까?  이것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주권에 속하는 문제인데, 그럴지라도 하나님께서 가장 지혜롭고 당위의 방법으로써 그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로 세우셨다는 것을 유념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구속자 되심에 대해 이렇게저렇게 설명해 나갈지라도, 원칙적으로 하나님께서 이러한 방법을 제정하시고, 구현하셨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으니, 얼마나 논리적이고 실효적인가에 대해서도 경탄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으로 말미암아 실제가 된 이와 같은 하나님의 구원 방식에 대해 ‘하나님의 의’라고 선포했습니다(롬 3:21).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어느 하나 예외없이 의롭습니다.

신앙고백문답이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속자로 제시할 때에 먼저 선포하는 것은 예수님만이 지니신 이성 일인격의 특수성에 대해서입니다.  즉 “한 위에 양성을 지니신 분이십니다”라고 한 것입니다.  이 말은 오직 예수만이 영원한 신성과 참되신 인성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그러므로 우리의 구속자가 될 자격과 능력을 가지고 계시다 하는 의미이기도 한 것입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삼위일체 중의 한 위격이십니다. 즉,  그분의 존재와 지혜와 능력과 거룩과 의와 선하심과 진실하심이, 무한하시며 영원하시며 불변하십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라고 불려졌고(사 9:6; 요 20:28), 하나님의 속성을 지니신 분이셨고(요 1:1 2:24-25), 하나님의 전능하신 사역을 하실 수 있으셨고(요 5:21; 골 1:16), 하나님만이 받으시는 예배를 받으셨습니다(요 20:28; 계 5:12-14).

둘째,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인간이십니다. 완전한 하나님이신 분이 이제 때가 이르매 완전한 인성을 취하심으로 인간이 되신 것입니다. 이에 대해 사도 요한은 “말씀이 육신이 되셨고 우리 중에 거하셨다”(요 1:14)고 표현했습니다. 하지만 성자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심에 있어서, 그럴지라도 하나님이심을 중단함이 없이 인간이 되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은 달리 말해서, 하나님으로서의 신성은 변하지 않았고, 다른 것과 혼합되지도 않았고, 또한 혼동됨이 없이 그렇게 독립적으로 인성에 연합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양성 문제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그 두 본성의 하나 혹은 둘 모두가 변한 데 따른 필연적인 결과라고 생각하거나, 인간이 되심으로 성부와 성령과 동일한 본체가 삭감되었다고 생각하거나, 인성이 신성에 연합됨으로 우리 인간들과는 다른 위대한 존재로 높여졌다고 생각하는 것 등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신성도 인성도 아닌 이 둘의 중간 상태인 새로운 본성으로 혼합되었다고 생각하거나, 두 본성이 변화되지도 혼합되지도 않았으므로 각기 서로 다른 분리된 인격체로 존재한다고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이제 요약하자면,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칭호는 다음 사실을 가리킵니다.  첫째, ‘주’라는 표현은 사실상 구약의 여호와와 똑같습니다. 그것은 자존하시며 지존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라고 하신 위대한 선포와 분리되지 않습니다. 둘째, ‘예수’라는 말은 ‘여호수아라’라는 구약의 용어와 동일합니다. 물론 이 이름은 다른 많은 의미들도 가지고 있지만, 결국 우리 주님의 인성의 실재를 가리키는 데 핵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그리스도’라는 말은 ‘기름 부음 받은 자’를 가리키는데, 구약에서 줄기차게 예언된 ‘메시야’를 가리킵니다.

결론적으로 신앙고백문답은 이 세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통하여, 우리의 구원자는 유일하신 구속자로서의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주), 두 가지 구별된 본성을 가지신 하나님과 사람이시며(주와 예수), 영원토록 한 분(그리스도)이시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주일예배순서 2018년 12월 9일 (10:00)
. (09:30 준비) 사도신경송-시편찬송-십계명송
. 송영
. 신앙고백 (다같이)
. 언약선포 (십계명 교독)
. 시편찬송 047편
. 목회기도 (설교자)
. 시편찬송 048편
. 말씀선포 갈 2:20-21
. 말씀설교 그리스도와의 연합 구원
. 시편찬송 049편
. 주님의 만찬 (매 분기말마다)
. 주기도문 (다같이)
. (예배 이후) 애찬 및 성도의 교제
. (13:00부터) 평강의 예배 (성경학습)
주언교회 - 역사 속에서 개혁된 교회를 계승하는 ...

  1. 주언교회는 하나님께서 개혁교회의 창시자 존 칼빈과 그의 사상을 계승한 개혁자들을 통해서 세계 최초로 프랑스 개혁교회(1559)와 스코틀랜드 장로교회(1560)를 출범시키심으로써 교회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주신 섭리에 감사드리며 이를 소중히 받듭니다.
  2. 주언교회는 교회개혁이란 동전의 양면의 관계와도 같이 분리될 수 없는 두 가지 사실에 성립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는데 첫째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라고 한 신앙고백이 보다 더 정확하고 섬세한 '제반 신앙고백들'로 확정되었고 둘째는 '모든 것을 품위있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고전 14:40)고 하신 바대로 신앙고백을 성경적으로 구현하는 교회질서(정치)가 제정된 것이었습니다.
  3. 주언교회는 이 두 가지 중요한 원리를 대하면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적 임재방식'이라는 신앙고백의 핵심에 깨달았고 동시에 이와 같은 신앙고백은 개혁된 교회의 전통에 따른 성경적 교회질서에 성립될 때에 비로소 '교회의 삼대 표지'를 제대로 구현할 수 있게 된다는 각성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4. 주언교회는 더더욱 겸손히 고개숙여 역사 속에서 개혁된 교회신앙학(신학과 신앙)을 계속 깊이 배우고 계승하면서 '거룩한 공회를 믿사오며 ...'라고 고백하는 바대로 보편의 교회와 함께 정통 신앙고백교회질서에 성립되는 것을 통하여 교회로서의 온전한 품위를 구현하는 사명을 위하여 한 길로 줄곧 나아갑니다.

성경해석의 원천: 기독교강요

주지의 사실이듯이 칼빈을 빼놓고서는 '참된 교회'에 대한 논의는 그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빈을 따른다고 외치지만 오히려 칼빈이 그렇게도 배척한 신앙 형태를 자행하는 어처구니 없는 모순도 벌어지고 있다. 진정으로 개혁사상을 계승하려 한다면 칼빈의 신학과 신앙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는 기독교강요를 필수적으로 학습해야 하고, 그럴 경우 성경 해석과 선포를 보다 풍성하게 해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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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신앙의 모범: 칼빈의 개혁목회

칼빈의 위대성은 그의 독창성에서보다는 기독교 메시지를 일관성 있게 이해하면서 교회라고 하는 신앙의 현장에서 줄기차게 개혁을 실현해 나갔다는 데서 찾아야 한다. 칼빈의 신학은 책상 머리에서 이책저책 뒤적거려 짜낸 이론들로 그럴듯하게 뜯어 맞춘, 그래서 늘 말은 거창하게 하지만 정작 삶으로는 자신의 이론을 뒷받침하지 못하는 이론만의 종교주의자가 아니었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임을 아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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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현장의 용사: 교회학 박사

제네바 교회를 섬기면서 칼빈은 목사회 모임을 이끌었고, 거기서 배출된 목사들이 프랑스에서 세계 최초의 개혁교회를 세웠다. 또한 칼빈에게서 개인적으로 배운 존 녹스 역시 스코틀랜드에서 세계 최초의 장로교회를 세웠다. 이것은 오늘날 사방에 그렇게도 많은 신학교들이 널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목사다운 목사가 배출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 앞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와 도전이 참으로 크고도 크다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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