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20일(SU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66문답

[질문] 제5계명을 지킬 이유로 이어서 말씀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대답] 제5계명을 지킬 이유로 이어서 말씀하신 것은 이 계명을 지키는 모든 사람이 장수하고 번영하리라는 약속입니다. 다만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그들에게 선이 되는 한 그렇습니다(출 20:12; 신 5:16; 엡 6:2-3).

두 번째 돌판을 시작하는 제5계명은, 첫 번째 돌판의 두 번째 계명의 경우처럼, 계명을 잘 지키는 자들에게 축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출애굽기 본문을 보면 “네 부모를 공경하라”라고 한 다음 즉각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라고 했습니다(출 20:12).  이는 첫 번째 돌판의 두 번째 계명에서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라고 한 다음 즉각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 20:4-7)라고 한 구도와 같습니다.

지난 번에도 언급했듯이, 십계명은 두 돌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 번째 돌판에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조항들이 실려 있고, 두 번째 돌판에는 사람과의 관계에 관한 조항들이 실려 있습니다. 물론 문장 형태는 대체적으로 ‘부정명령’ 형식이지만, 첫째 돌판에서의 마지막 조항을 형성하는 네 번째 계명(안식일 준수)과 둘째 돌판의 첫 번째 조항을 형성하는 다섯 번째 계명(부모 공경)은 각기 ‘긍정명령’ 형식을 취함으로써 두 돌판의 분리될 수 없는 ‘상호 연결성’ 또는 ‘하나님 공경’과 사람에 대한 ‘공정성 유지’의 ‘상관관계’를 보여주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십계명은 비록 두 돌판에 나뉘어져 있지만, 사실은 ’신앙의 정도’라고 하는 중심 사상을 형성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십계명 두 돌판의 구조 및 관계를 다시 한 번 상세히 살펴본 이유는,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반드시 기억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먼저 첫째 원리인데, 이는 ‘부정명령’을 대할 때 사실은 ‘긍정명령’, 즉 ‘부작위의 죄’ 문제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하고, 따라서 ‘긍정명령’을 대할 때에는 역시 ’부정명령’, 즉 ‘작위의 죄’ 문제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하는 원리입니다.  사안의 중요한 성격상 제42주차를 해설할 때 설명한 내용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가령, 어떤 무엇인가가 금지될 경우, 이는 동시에 이것과 상반된 의무가 명령되는 것이며, 동시에 이와 비슷한 모든 종류의 죄도 금지된다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모든 외적인 행위뿐만 아니라, 모든 모든 죄를 향한 내적인 애정까지도 금지되는 것이다.  또한 안식일 준수 명령과 부모 공경 명령의 경우처럼, 무슨 의무이든지 명령되게 되면 그와 상반된 것은 더불어 금지되는 것이고, 역시 비슷한 모든 종류의 의무들, 즉 거기로 향하는 모든 합당한 애정들과 함께, 거기에 이르는 데 도움을 주고 촉진시키고 조장시키는 수단들의 사용,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순종하도록 도움을 주고 고무시켜 주기 위한 우리의 모든 노력과 의무들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원리는, 하나님께 대한 신앙은 그 자체의 순수성과 더불어 일상 대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의 ‘공정성’의 유지 문제, 특별히 윗사람인 부모님께 대해 자식으로서 마땅한 도리를 행하는 것과 결코 분리되지 않는다고 하는 원리에 대한 것입니다. 첫 번째 돌판에 대한 신실성은 네 번째 계명(안식일 준수)이 시금석 노릇을 하듯이, 두 번째 돌판에 대한 신실성은 다섯 번째 계명(부모 공경)이 시금석 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하나님께서 레위기의 말씀을 베푸실 때에 이 둘 간의 관계를 하나로 보시면서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레 19:3)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이상 살펴본 두 가지 원리를 염두에 둔다면, 이제 네 번째 계명과 다섯 번째 계명에 각기 붙어 있는 약속의 말씀은, 실상은 그 두 계명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는 십계명의 모든 조항에도 마찬가지로 첨부된 약속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하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나타난 모든 하나님의 계명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취해주신 구속사역의 모든 공효를 덧입게 되었음에 따라, 신약시대의 성도들에게는 더 강력한 실천력이 요구됩니다. 물론 냉혹한 의무조항으로서가 아니라, 자신에 이루어져 있는 ‘새 생명’의 가치를 한껏 발휘하고 즐기는 차원에서입니다. 잊지 마십시다. 우리가 이 땅에서 받은 구원이란, 궁극적으로는 영원한 부활 생명이 확보되었다는 의미로되, 이 부활 생명의 실상과 가치는 성도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평생에 걸쳐 실제로 경험되는 효험으로서 확증되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도는 기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으로서 사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단계에서 좀 더 나아가야 하는 것은, 성도가 발휘하는 ‘부활 생명’의 진상을 자기 한 사람 개인의 인격이 도덕적으로 보다 고상해지는 그런 차원을 뛰어 넘어,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에 연합되어 있는 앞뒤좌우의 형제자매들과 매우 친밀하게 상합하고 연락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품위를 세상 앞에 넉넉히 구현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장수의 복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주일예배순서 2019년 10월 20일 (10:00)
. (09:30 준비) 사도신경송-시편찬송-십계명송
. 송영
. 신앙고백 (다같이)
. 언약선포 (십계명 교독)
. 시편찬송 013편
. 목회기도 (설교자)
. 시편찬송 014편
. 말씀선포 막 1:35-39
. 말씀설교 예수님의 전도에 대한 소고
. 시편찬송 015편
. 주님의 만찬 (매 분기말마다)
. 주기도문 (다같이)
. (예배 이후) 애찬 및 성도의 교제
. (13:00부터) 평강의 예배 (성경학습)
주언교회 - 역사 속에서 개혁된 교회를 계승하는 ...

  1. 주언교회는 하나님께서 개혁교회의 창시자 존 칼빈과 그의 사상을 계승한 개혁자들을 통해서 세계 최초로 프랑스 개혁교회(1559)와 스코틀랜드 장로교회(1560)를 출범시키심으로써 교회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주신 섭리에 감사드리며 이를 소중히 받듭니다.
  2. 주언교회는 교회개혁이란 동전의 양면의 관계와도 같이 분리될 수 없는 두 가지 사실에 성립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는데 첫째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라고 한 신앙고백이 보다 더 정확하고 섬세한 '제반 신앙고백들'로 확정되었고 둘째는 '모든 것을 품위있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고전 14:40)고 하신 바대로 신앙고백을 성경적으로 구현하는 교회질서(정치)가 제정된 것이었습니다.
  3. 주언교회는 이 두 가지 중요한 원리를 대하면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적 임재방식'이라는 신앙고백의 핵심에 깨달았고 동시에 이와 같은 신앙고백은 개혁된 교회의 전통에 따른 성경적 교회질서에 성립될 때에 비로소 '교회의 삼대 표지'를 제대로 구현할 수 있게 된다는 각성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4. 주언교회는 더더욱 겸손히 고개숙여 역사 속에서 개혁된 교회신앙학(신학과 신앙)을 계속 깊이 배우고 계승하면서 '거룩한 공회를 믿사오며 ...'라고 고백하는 바대로 보편의 교회와 함께 정통 신앙고백교회질서에 성립되는 것을 통하여 교회로서의 온전한 품위를 구현하는 사명을 위하여 한 길로 줄곧 나아갑니다.

성경해석의 원천: 기독교강요

주지의 사실이듯이 칼빈을 빼놓고서는 '참된 교회'에 대한 논의는 그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빈을 따른다고 외치지만 오히려 칼빈이 그렇게도 배척한 신앙 형태를 자행하는 어처구니 없는 모순도 벌어지고 있다. 진정으로 개혁사상을 계승하려 한다면 칼빈의 신학과 신앙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는 기독교강요를 필수적으로 학습해야 하고, 그럴 경우 성경 해석과 선포를 보다 풍성하게 해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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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신앙의 모범: 칼빈의 개혁목회

칼빈의 위대성은 그의 독창성에서보다는 기독교 메시지를 일관성 있게 이해하면서 교회라고 하는 신앙의 현장에서 줄기차게 개혁을 실현해 나갔다는 데서 찾아야 한다. 칼빈의 신학은 책상 머리에서 이책저책 뒤적거려 짜낸 이론들로 그럴듯하게 뜯어 맞춘, 그래서 늘 말은 거창하게 하지만 정작 삶으로는 자신의 이론을 뒷받침하지 못하는 이론만의 종교주의자가 아니었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임을 아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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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현장의 용사: 교회학 박사

제네바 교회를 섬기면서 칼빈은 목사회 모임을 이끌었고, 거기서 배출된 목사들이 프랑스에서 세계 최초의 개혁교회를 세웠다. 또한 칼빈에게서 개인적으로 배운 존 녹스 역시 스코틀랜드에서 세계 최초의 장로교회를 세웠다. 이것은 오늘날 사방에 그렇게도 많은 신학교들이 널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목사다운 목사가 배출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 앞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와 도전이 참으로 크고도 크다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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