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25일(SUN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12주차(31-32문답)

[제31문] 왜 그분을 그리스도, 곧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고 부릅니까? [대답] 왜냐하면 그분은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임명을 받고 성신으로 기름 부음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시 45:7; 사 61:1; 눅 3:21-22; 4:18; 행 10:38; 히 1:9). 그분은 우리의 큰 선지자와 선생으로서 우리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감추인 경륜과 뜻을 온전히 계시하시고(신 18:15; 사 55:4; 마 11:27; 요 1:18; 15:15; 행 3:22; 엡 1:9-10; 골 1:26-27), 우리의 유일한 대제사장으로서 그의 몸을 단번에 제물로 드려 우리를 구속하셨고(시 110:4; 히 7:21; 9:12, 14, 28; 10:12, 14), 성부 앞에서 우리를 위해 항상 간구하시며(롬 8:34; 히 7:25; 9:24; 요일 2:1), 또한 우리의 영원한 왕으로서 그의 말씀과 성신으로 우리를 다스리시고, 우리를 위해 획득하신 구원을 누리도록 우리를 보호하고 보존하십니다(시 2:6; 슥 9:9; 마 21:5; 28:18; 눅 1:33; 요 10:28; 계 12:10-11). 

신앙고백문답 제31문답과 32문답은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설명하고 적용합니다. 이 이름은 구주라는 뜻이지만, 예수님의 부모님이 지어준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직분으로, 구세주로서의 예수님의 직무와 의무를 나타냅니다.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뜻을 지닌 그리스어 ‘Christos(크리스토스)’에서 왔습니다. 구약에서 이 직분은 히브리어로 ‘메시아’입니다. ‘메시아(히브리어)’와 ‘그리스도(그리스어)’ 둘 다는 동일하게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의미입니다.

신앙고백문답은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서 ‘선지자’와 ‘제사장’과 ‘왕’의 세 가지의 공적 직분을 수행한다고 가르칩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 때 이 세 가지 주된 직무를 제정하심으로써 이스라엘을 특별한 나라로 삼으셨습니다. 모세, 엘리야 그리고 이사야와 같은 선지자들이 있었고, 아론이나 엘리와 같은 제사장들이 있었으며, 그리고 다윗이나 솔로몬과 같은 왕들이 있었는데, 모두가 하나님께서 기름을 부어 세우시거나 또는 특별히 지명하셨습니다. 기름부음의 의식은 기름을 사람의 머리에 부음으로 거행되었습니다. 이러한 의식은 자신의 직무를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성신에 의한 지혜와 능력이 충만케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에게 선지자, 제사장 그리고 왕, 이 세가지 직분을 수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시던 현장에서 이 세가지 직분을 수행케 하시려고 비둘기처럼 내려오신 성신에 의해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마 3:16).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구약보다 더 위대한 선지자와 제사장과 그리고 왕을 모시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고백문답에서는 이와 같은 세 가지 직분의 분리된 직무를 자세히 가르칩니다.

첫째, 선지자처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진리를 완전히 선포하셨습니다(요 15:15). 둘째, 제사장처럼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희생제물로 바치시고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십니다(히 7:25-27). 셋째, 왕처럼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통치를 베푸십니다.

예수님은 지상에서 ‘그리스도’로서 이 세 가지 직무를 수행하셨지만, 이제 하늘에서도 계속해서 이 직무들을 수행하십니다.

[제32문] 그런데 우리는 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립니까(행 11:26)? [대답] 왜냐하면 우리가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어 그의 기름 부음에 참여하기 때문입니다(사 59:21; 욜 2:28; 행 2:17; 고전 6:15; 12:13; 요일 2:27). 우리는 선지자로서 그의 이름의 증인이 되며(마 10:32-33; 롬 10:10; 히 13:15), 제사장으로서 자신을 감사의 산 제물로 그에게 드리고(출 19:6; 롬 12:1; 벧전 2:5; 계 1:6; 5:8, 10), 또한 왕으로서 이 세상에 사는 동안은 자유롭고 선한 양심으로 죄와 마귀에 대항하여 싸우고(롬 6:12-13; 갈 5:16-17; 엡 6:11; 딤전 1:18-19; 벧전 2:9, 11), 이후로는 영원히 그분과 함께 모든 피조물을 다스릴 것입니다(딤후 2:12; 계 22:5). 

당신은 관직에 앉기를 좋아합니까? 정치인들은 관직에 오르기를 열망합니다. 그리고 종종 그것을 취하기 위하여 아주 열심히 일할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수여 받을 수 있으면서도, 사실상 최고로 명예로운 직책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칭호를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직임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의 문자적인 의미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인데,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직함의 칭호이며 직임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의 직무에 가담한 사람이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직무를 수행하시기 위하여 받으신 기름부음에도 동참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토록 의미 있고 중요한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은 처음에는 대적자들에 의해 비난과 경멸하기 위한 의도로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붙여진 이름이었습니다. 이 말은 신약성경에서 오직 세 번만 발견됩니다(행 11:26; 26:28; 벧전 4:16).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이름을 기쁨으로 여기고 이것을 자랑스럽게 인정합니다.

그리스도의 삼중직책에 따르면(제31문답), 우리도 역시 선지자, 제사장 그리고 왕으로서의 삼중직책을 지니고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의 처음 부모인 아담은 창조될 때에 삼중직책을 부여 받았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범죄로 말미암아 그는 마귀의 거짓을 말하는 선지자가 되고, 마귀의 일에 스스로를 바치는 제사장이 되고, 마귀를 대신하여 세상의 지배권을 행사하는 왕이 됨으로써, 결국 사단을 섬기는 선지자, 제사장 그리고 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삼중직책이 회복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우리는 아담의 원죄를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선지자, 제사장 그리고 왕이 되었습니다.

첫째, 우리는 선자자로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고백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의 진리를 선포합니다(해 2:17; 롬 10:9; 엡 4:25). 둘째, 우리는 제사장으로서 우리 자신을 그리스도께 바치는 산 제물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도록 모든 것에서 성별되었습니다. 여기에는 우리의 재능과 우리의 재물도 포함됩니다(롬 12:1-2; 벧전 2:9). 셋째, 우리는 왕으로서 우리 자신과 가정과 교회 그리고 사회 위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배권을 행사합니다. 우리는 죄와 악을 대상으로 선한 싸움을 싸워 승리하면서 현재 그리고 영원히 그리스도와 함께 통치합니다(창 1:28; 롬 8:37; 계 1:6; 5:10).

우리가 크리스천이 되는 참된 의미를 붙잡기 시작할 때, 우리의 삶은 놀랍게 변하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합니다. 우리의 대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아래서 그의 능력을 대행하는 하나님의 직분자가 된다는 것은 얼마나 영광스러우며 감동적입니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부르심 받은 우리의 소명, 곧 선지자와 제사장과 왕으로서의 우리의 거룩한 직분에 반대되는 행동을 결코 하지 맙시다. 그리고 이 위대한 사명을 위하여 우리에게 기름 부어지신 성신의 능력과 지혜를 믿고 굳게 의지해 나갑시다(행 2:38; 요일 2:20, 27).

예배순서 2020년 10월 25일 (10:00)
. (09:30 준비) 사도신경송-시편찬송-십계명송
. 송영
. 신앙고백 (다같이)
. 언약선포 (십계명 교독)
. 시편찬송 127편
. 목회기도 (설교자)
. 시편찬송 128편
. 말씀선포 막 10:17-31
. 말씀설교 하나님 나라와 재물
. 찬송 129편
. 주님의 만찬 (매 분기말마다)
. 주기도문 (다같이)
. (예배 이후) 애찬 및 성도의 교제
. (13:00부터) 평강의 예배 (성경학습)
주언교회 - 역사 속에서 개혁된 교회를 계승하는 ...

  1. 주언교회는 하나님께서 개혁교회의 창시자 존 칼빈과 그의 사상을 계승한 개혁자들을 통해서 세계 최초로 프랑스 개혁교회(1559)와 스코틀랜드 장로교회(1560)를 출범시키심으로써 교회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주신 섭리에 감사드리며 이를 소중히 받듭니다.
  2. 주언교회는 교회개혁이란 동전의 양면의 관계와도 같이 분리될 수 없는 두 가지 사실에 성립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는데 첫째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라고 한 신앙고백이 보다 더 정확하고 섬세한 '제반 신앙고백들'로 확정되었고 둘째는 '모든 것을 품위있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고전 14:40)고 하신 바대로 신앙고백을 성경적으로 구현하는 교회질서(정치)가 제정된 것이었습니다.
  3. 주언교회는 이 두 가지 중요한 원리를 대하면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적 임재방식'이라는 신앙고백의 핵심에 깨달았고 동시에 이와 같은 신앙고백은 개혁된 교회의 전통에 따른 성경적 교회질서에 성립될 때에 비로소 '교회의 삼대 표지'를 제대로 구현할 수 있게 된다는 각성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4. 주언교회는 더더욱 겸손히 고개숙여 역사 속에서 개혁된 교회신앙학(신학과 신앙)을 계속 깊이 배우고 계승하면서 '거룩한 공회를 믿사오며 ...'라고 고백하는 바대로 보편의 교회와 함께 정통 신앙고백교회질서에 성립되는 것을 통하여 교회로서의 온전한 품위를 구현하는 사명을 위하여 한 길로 줄곧 나아갑니다.

성경해석의 원천: 기독교강요

주지의 사실이듯이 칼빈을 빼놓고서는 '참된 교회'에 대한 논의는 그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빈을 따른다고 외치지만 오히려 칼빈이 그렇게도 배척한 신앙 형태를 자행하는 어처구니 없는 모순도 벌어지고 있다. 진정으로 개혁사상을 계승하려 한다면 칼빈의 신학과 신앙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는 기독교강요를 필수적으로 학습해야 하고, 그럴 경우 성경 해석과 선포를 보다 풍성하게 해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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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신앙의 모범: 칼빈의 개혁목회

칼빈의 위대성은 그의 독창성에서보다는 기독교 메시지를 일관성 있게 이해하면서 교회라고 하는 신앙의 현장에서 줄기차게 개혁을 실현해 나갔다는 데서 찾아야 한다. 칼빈의 신학은 책상 머리에서 이책저책 뒤적거려 짜낸 이론들로 그럴듯하게 뜯어 맞춘, 그래서 늘 말은 거창하게 하지만 정작 삶으로는 자신의 이론을 뒷받침하지 못하는 이론만의 종교주의자가 아니었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임을 아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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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현장의 용사: 교회학 박사

제네바 교회를 섬기면서 칼빈은 목사회 모임을 이끌었고, 거기서 배출된 목사들이 프랑스에서 세계 최초의 개혁교회를 세웠다. 또한 칼빈에게서 개인적으로 배운 존 녹스 역시 스코틀랜드에서 세계 최초의 장로교회를 세웠다. 이것은 오늘날 사방에 그렇게도 많은 신학교들이 널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목사다운 목사가 배출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 앞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와 도전이 참으로 크고도 크다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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