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18일(SU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57문답

[질문] 제4계명이 무엇입니까? [대답] 제4계명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칠 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날을 거룩하게 하였sm니라” 하신 것입니다(출 20:8-11; 신 5:12-15).

소신앙고백 제57문답부터 주제가 제4계명, 즉 안식을 준수 명령으로 전환됩니다.  지금까지 제1계명부터 제3계명까지는 명령의 형태가 “무엇을 하지 말라!”는 식의 부정문이었지만 여기서는 “무엇을 하라!”는 식이 되어 긍정문 형식으로 바뀌게 됩니다. 이러한 형식은 제5계명에서도 한 번 더 반복되었다가, 제6계명부터 마지막 제10계명까지는 다시 부정문 형식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제4계명의 목적은 명확합니다. 우리로서는 우리 자신의 기호나 일에 대해서는 죽고, 하나님 나라에 대해 명상하라는 것이로되, 그러면서도 오직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법으로만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육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신 후 그 다음 일곱 째 날에는 이를 거룩히 구별하심으로 쉬셨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그 동안의 노동을 통해 창조하신 만물을 ‘즐기는 시간’을 가지신 것입니다. 그러한 자신의 모범에 근거하여 이제 우리도 ‘쉬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단순히 아무 것도 안하고 쉰다는 차원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을 드높이고 영화롭게 해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바로 이것이 인간에는 진정한 쉼이요 행복 그 자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특별히 이 ‘안식일 준수’ 계명에 대해서는 엄격한 복종을 강조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생활하던 때에 어떤 사람이 안식일임에도 불구하고 땔감을 모으는 일을 했는데, 여호와께서는 그를 죽이라고 하셨고, 그에 따라 진 밖으로 끌어내 돌로 쳐서 죽이는 엄중한 심판이 집행되었습니다(민 15:32-36). 이는 여호와께서는 십계명을 선포하시는 형식을 통해서만 안식일 준수를 명령하셨던 것이 아니라, 이후 모세를 불러 십계명 두 돌판을 주실 때에 ‘안식일 준수’를 마치 십계명을 대표하듯이 강조하셨던 것이기 때문입니다(출 31:13-14, 16-17). 그러므로 모세가 첫 번째 돌판을 깨트려 버렸던 사건 이후 다시 두 번째 돌판을 받아 내려왔을 때에, 그 역시도 그처럼 십계명에 대한 대표처럼 안식일의 엄중한 준수를 명령하였던 것입니다(출 35:2).

이스라엘 백성의 입장에서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자신들의 신앙을 가장 대표적이면서도 가장 실효적으로 드러내 보이는 수단 또는 방법이 바로 안식일을 준수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원리는 오늘날 교회 시대에도 마찬가지로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성도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신앙하며 충성하는 데 대한 표현 방식은 여러 가지로 다양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러한 중에 가장 대표적이면서도 실효적인 것으로는 단연 예배이듯이 말입니다. 만일 예배를 소홀히 여긴다면 기타 다른 측면으로 하나님께 진실할 수 있는 없다는 것을 유념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원리를 제4계명으로서 선포하신 안식일 준수 명령을 통하여 이미 오래 전부터 계시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에 의하면, 혹시라도 안식일에 대한 경의가 없어지면 하나님께 대한 공경 전체가 없는 것이라는 듯이 말씀하신 경우들이 많이 나타납니다. 가령, 여호와께서는 에스겔서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멸망 받은 이유로 안식일을 더럽힌 때문이라고 질타하셨습니다(겔 20:12-13; 22:8; 23:38).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멸망 직전 상태로 떨어져버렸을 때부터, 이미 이들을 회개시키시려고 선지자들을 통하여 부단히 일깨우셨는데, 그렇게 하실 때에 그들의 죄에 대해 안식일을 저버린 것으로서 대표적으로 지적하셨던 것입니다(렘 17:21-22, 27).  이스라엘 백성은 포로에서 귀환한 후 다시는 심판을 받지 않을 것을 다짐하면서 율법에 열심을 내었는데, 이때 다른 무엇보다도 안식일에 대한 계시를 특별히 존중했습니다. 실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게끔 해드리는 것으로, 곧 언약의 외면적인 표징에 참여하는 것이 됩니다. 여호와의 구원에 참여하는 사람은 안식일 잘 지키는 사람입니다(사 56:2).

정리하자면, 앞서 잠깐 언급했듯이, 성도가 일주일 중에서 하루를 구별하여 예배자로서 지내는 것은 가히 ’구원론적인 근거’로서의 가치를 지닌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성도가 주일을 준수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의를 믿고 신뢰하는 데 대한 자신의 믿음과 의지를 가장 대표적이고도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주일을 지키는 것이 없다면 하나님께 대한 신앙도 없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주일을 거룩히 지킨다고 할 때의 진정한 의미는 주일 그 자체를 하나님께 따로 떼어 놓았다 하는 전제 하에, 그러한 토대 위에서 예배자로서의 의무를 다하고 권리를 누리는 데서 성립됩니다. 이 날에 성도는 자신의 의지를 죽이는 것을 통하여 자신을 거룩하게 함으로써 언약의 내면적인 실상에 성립되어야 합니다. 실로 세상 일과 단절하여 전적으로 쉬면서 자기 속에서 솟구치는 모든 육적인 욕망을 벗어버림으로써 하나님께서 자기 속에서 일하시게 해야 하는데(히 13:21),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으로서는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으로 말미암는 안식을 실제로 누리는 것이기도 해야 합니다(히 4:9).

주일예배순서 2019년 8월 18일 (10:00)
. (09:30 준비) 사도신경송-시편찬송-십계명송
. 송영
. 신앙고백 (다같이)
. 언약선포 (십계명 교독)
. 시편찬송 137편
. 목회기도 (설교자)
. 시편찬송 138편
. 말씀선포 막 1:12-13
. 말씀설교 예수 그리스도의 수시 3
. 시편찬송 139편
. 주님의 만찬 (매 분기말마다)
. 주기도문 (다같이)
. (예배 이후) 애찬 및 성도의 교제
. (13:00부터) 평강의 예배 (성경학습)
주언교회 - 역사 속에서 개혁된 교회를 계승하는 ...

  1. 주언교회는 하나님께서 개혁교회의 창시자 존 칼빈과 그의 사상을 계승한 개혁자들을 통해서 세계 최초로 프랑스 개혁교회(1559)와 스코틀랜드 장로교회(1560)를 출범시키심으로써 교회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주신 섭리에 감사드리며 이를 소중히 받듭니다.
  2. 주언교회는 교회개혁이란 동전의 양면의 관계와도 같이 분리될 수 없는 두 가지 사실에 성립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는데 첫째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라고 한 신앙고백이 보다 더 정확하고 섬세한 '제반 신앙고백들'로 확정되었고 둘째는 '모든 것을 품위있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고전 14:40)고 하신 바대로 신앙고백을 성경적으로 구현하는 교회질서(정치)가 제정된 것이었습니다.
  3. 주언교회는 이 두 가지 중요한 원리를 대하면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적 임재방식'이라는 신앙고백의 핵심에 깨달았고 동시에 이와 같은 신앙고백은 개혁된 교회의 전통에 따른 성경적 교회질서에 성립될 때에 비로소 '교회의 삼대 표지'를 제대로 구현할 수 있게 된다는 각성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4. 주언교회는 더더욱 겸손히 고개숙여 역사 속에서 개혁된 교회신앙학(신학과 신앙)을 계속 깊이 배우고 계승하면서 '거룩한 공회를 믿사오며 ...'라고 고백하는 바대로 보편의 교회와 함께 정통 신앙고백교회질서에 성립되는 것을 통하여 교회로서의 온전한 품위를 구현하는 사명을 위하여 한 길로 줄곧 나아갑니다.

성경해석의 원천: 기독교강요

주지의 사실이듯이 칼빈을 빼놓고서는 '참된 교회'에 대한 논의는 그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빈을 따른다고 외치지만 오히려 칼빈이 그렇게도 배척한 신앙 형태를 자행하는 어처구니 없는 모순도 벌어지고 있다. 진정으로 개혁사상을 계승하려 한다면 칼빈의 신학과 신앙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는 기독교강요를 필수적으로 학습해야 하고, 그럴 경우 성경 해석과 선포를 보다 풍성하게 해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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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신앙의 모범: 칼빈의 개혁목회

칼빈의 위대성은 그의 독창성에서보다는 기독교 메시지를 일관성 있게 이해하면서 교회라고 하는 신앙의 현장에서 줄기차게 개혁을 실현해 나갔다는 데서 찾아야 한다. 칼빈의 신학은 책상 머리에서 이책저책 뒤적거려 짜낸 이론들로 그럴듯하게 뜯어 맞춘, 그래서 늘 말은 거창하게 하지만 정작 삶으로는 자신의 이론을 뒷받침하지 못하는 이론만의 종교주의자가 아니었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임을 아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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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현장의 용사: 교회학 박사

제네바 교회를 섬기면서 칼빈은 목사회 모임을 이끌었고, 거기서 배출된 목사들이 프랑스에서 세계 최초의 개혁교회를 세웠다. 또한 칼빈에게서 개인적으로 배운 존 녹스 역시 스코틀랜드에서 세계 최초의 장로교회를 세웠다. 이것은 오늘날 사방에 그렇게도 많은 신학교들이 널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목사다운 목사가 배출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 앞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와 도전이 참으로 크고도 크다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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