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11일(THUR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51문답

레위기 10:1-2을 읽어봅시다. 잘 알려진대로 나답과 아비후가 '여호와의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로써 분향했을 때 여호와께서 즉결 처분하여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보건대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께서 받으심직 한 것이 될 수 있으려면, 반드시 성경에 규정된 내용, 즉 그러한 질서와 규칙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 확실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대체적으로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에 따라 여러가지 시끌법적한 예배들이 난무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게 할 때에 성경에서 자신들의 마음에 맞는 특정한 구절 몇몇개를 내밀면서 '성경적 예배'를 드리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처럼 각자가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면서 이곳 저곳에서 성경 구절들을 제시하게 될 때에, 옥석을 가릴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은 무엇입니까?

주일예배순서 2019년 7월 21일 (10:00)
. (09:30 준비) 사도신경송-시편찬송-십계명송
. 송영
. 신앙고백 (다같이)
. 언약선포 (십계명 교독)
. 시편찬송 125편
. 목회기도 (설교자)
. 시편찬송 126편
. 말씀선포 막 1:9-11
. 말씀설교 예수 그리스도의 수세
. 시편찬송 127편
. 주님의 만찬 (매 분기말마다)
. 주기도문 (다같이)
. (예배 이후) 애찬 및 성도의 교제
. (13:00부터) 평강의 예배 (성경학습)
주언교회 - 역사 속에서 개혁된 교회를 계승하는 ...

  1. 주언교회는 하나님께서 개혁교회의 창시자 존 칼빈과 그의 사상을 계승한 개혁자들을 통해서 세계 최초로 프랑스 개혁교회(1559)와 스코틀랜드 장로교회(1560)를 출범시키심으로써 교회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주신 섭리에 감사드리며 이를 소중히 받듭니다.
  2. 주언교회는 교회개혁이란 동전의 양면의 관계와도 같이 분리될 수 없는 두 가지 사실에 성립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는데 첫째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라고 한 신앙고백이 보다 더 정확하고 섬세한 '제반 신앙고백들'로 확정되었고 둘째는 '모든 것을 품위있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고전 14:40)고 하신 바대로 신앙고백을 성경적으로 구현하는 교회질서(정치)가 제정된 것이었습니다.
  3. 주언교회는 이 두 가지 중요한 원리를 대하면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적 임재방식'이라는 신앙고백의 핵심에 깨달았고 동시에 이와 같은 신앙고백은 개혁된 교회의 전통에 따른 성경적 교회질서에 성립될 때에 비로소 '교회의 삼대 표지'를 제대로 구현할 수 있게 된다는 각성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4. 주언교회는 더더욱 겸손히 고개숙여 역사 속에서 개혁된 교회신앙학(신학과 신앙)을 계속 깊이 배우고 계승하면서 '거룩한 공회를 믿사오며 ...'라고 고백하는 바대로 보편의 교회와 함께 정통 신앙고백교회질서에 성립되는 것을 통하여 교회로서의 온전한 품위를 구현하는 사명을 위하여 한 길로 줄곧 나아갑니다.

성경해석의 원천: 기독교강요

주지의 사실이듯이 칼빈을 빼놓고서는 '참된 교회'에 대한 논의는 그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빈을 따른다고 외치지만 오히려 칼빈이 그렇게도 배척한 신앙 형태를 자행하는 어처구니 없는 모순도 벌어지고 있다. 진정으로 개혁사상을 계승하려 한다면 칼빈의 신학과 신앙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는 기독교강요를 필수적으로 학습해야 하고, 그럴 경우 성경 해석과 선포를 보다 풍성하게 해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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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신앙의 모범: 칼빈의 개혁목회

칼빈의 위대성은 그의 독창성에서보다는 기독교 메시지를 일관성 있게 이해하면서 교회라고 하는 신앙의 현장에서 줄기차게 개혁을 실현해 나갔다는 데서 찾아야 한다. 칼빈의 신학은 책상 머리에서 이책저책 뒤적거려 짜낸 이론들로 그럴듯하게 뜯어 맞춘, 그래서 늘 말은 거창하게 하지만 정작 삶으로는 자신의 이론을 뒷받침하지 못하는 이론만의 종교주의자가 아니었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임을 아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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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현장의 용사: 교회학 박사

제네바 교회를 섬기면서 칼빈은 목사회 모임을 이끌었고, 거기서 배출된 목사들이 프랑스에서 세계 최초의 개혁교회를 세웠다. 또한 칼빈에게서 개인적으로 배운 존 녹스 역시 스코틀랜드에서 세계 최초의 장로교회를 세웠다. 이것은 오늘날 사방에 그렇게도 많은 신학교들이 널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목사다운 목사가 배출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 앞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와 도전이 참으로 크고도 크다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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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옛날 중국의 춘추전국 시대는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이 좁은 땅덩어리에 무슨 교파다, 무슨 교단이다, 무슨 측이다 하면서 장로교만 하더라도 일백 개는 훨씬 넘는 교단들이 난무하고 있는데, 상대적으로 그네들이 경쟁하듯이 쏟아내는 목사들이 스스로 소위 목이 좋은 곳을 선점하고는 ‘무슨무슨 교회’라고 하는 간판을 내걸고 교회를 시작하는 그런 현상이 지배적이기 때문입니다.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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