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05일(MON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09주차(26문답)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하여 보여주신 당신에 관한 모든 것을 내가 믿되 진실로 믿는다면, 예수님으로 인하여 하나님은 이제 나의 아버지가 되셨으며 나는 그런 하나님을 철저히 신뢰할 것입니다. 나는 그분 믿기를 어린 아이가 자신을 사랑하는 좋은 아버지를 믿듯이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행하신 일들로 인하여 이제 나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단순한 창조주나 또는 다른 사람들의 아버지만 되시는 것이 아니라, 그분은 나의 아버지이시며 나는 그분을 신뢰할 수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16장 27절과 로마서 8장 14절로 16절을 읽어보십시오.

2020년 08월 22일(SATUR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02주차(3-5문답)

죄는 온갖 종류의 고통을 수반합니다. 인간의 삶 속에서 크고 작은 다양한 형태의 고통이 이어지는 것은 인간이 죄인이라는 데서 옵니다. 그러므로 본래는 하나님의 선하고 거룩하신 성품대로 지음받았던 인간이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죄인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을 때에 정말이지 절망스럽습니다.

우리는 실제로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 대신 아담처럼 죄짓는 쪽을 택하며 살아가는 현실을 볼 때면 너무도 딱하고 한심합니다. 이런 죄의 본성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께서도 비통해 하시면서 우리를 깨우쳐 주시려고 우리 자신과 주변까지도 아프게 한다는 사실은 우리로서는 슬프지만 인정해야만 하겠죠. 게다가 이런 비참함을 해결함에 있어서 우리로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음을 깨닫게 되니 더더욱 그렇습니다. 우리 속에 깊이 뿌리 박혀 있고, 우리의 성품 전체에 물들어 있는 이런 죄성은 우리가 그 무엇을, 어떤 수단을 쓴다고 한들 결코 바뀌지 않습니다. 이사야 59장 9절로 13절을 읽어보십시오.

우리가 처해 있는 이러한 불행과 비참은 하나님의 율법에 의해 비로소 우리에게 보여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로 하여금 이러한 비참함을 알게 하시려고 율법을 주신 것은 하나님의 자비이십니다. 죽어가는 사람이 자신의 처지를 알지 못하고서는 의사를 찾아갈 수 없듯이, 우리도 우리가 처한 이 불행을 모른다면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구원의 선물을 받아들일 리 만무이기 때문입니다.

2020년 08월 21일(FRI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02주차(3-5문답)

교회 육아실에는 딱 두 아이만 있었습니다. 두 아이 모두 기본적인 말 몇 개 밖에 할 줄 모르는 그토록 어린 나이였습니다. 두 아이 모두 참 귀여웠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천진난만해 보이는 어린 아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원칙적으로는 둘 다 죄인이었습니다. 이 말이 마음에 거슬립니까?

이제 그에 대한 증거를 보십시다. 육아실은 매우 큰 편이었고 주방놀이, 미끄럼틀, 자동차와 트럭을 비롯해 그 외에도 수많은 다른 장난감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 시간 반이라는 시간 내내 그 아이들이 반복한 것은, 한 명의 아이가 무언가 가지고 놀기 시작할 때마다, 실컷 다른 것을 하고 있던 나머지 아이가 갑자기 그것에 집착하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남자 아이가 장난감 접시를 집어 들면, 여자 아이는 이미 갖고 놀던 접시들을 팽개치고 오직 남자 아이의 접시를 빼앗으려 들었습니다. 여자 아이가 미끄럼을 타러 올라가기 시작하면, 남자 아이는 반대편에서 딴 놀이를 하고 있다가도 ‘내 차례야!’라고 외치면서 달려들었지요. 작은 벤치 한 쪽에 먼저 앉아있던 여자 아이는 남자아이가 반대편으로 다가와 앉으려고 하자 다리를 쭉 뻗어 앉지 못하게 했습니다.

말도 제대로 못하는 그런 정도로 어린 아이들이었지만, 서로 상대방이 갖고 싶어하는 것을 가지지 못하도록 방해하면서 그렇게 저녁 시간을 다 보냈습니다. 아이들의 이런 행동은, 인간에게는 선천적으로 남을 미워하는 성향이 있다고 고백하고 있는 신앙고백문답의 내용을 참으로 잘 설명해줍니다. 로마서 3장 13절로 17절과 19절을 읽어보십시오.

2020년 08월 20일(THURS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02주차(3-5문답)

만일 우리가 항상 마음과 목숨과 힘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언제나 내 자신을 사랑하듯이 우리의 이웃도 사랑할 수 있다면, 우리로서는 하나님의 율법을 완벽하게 지키는 것이 될 것입니다. 즉, 굳이 구원자를 필요로 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아담 안에서 결코 그렇지 못합니다. 본래 의로운 상태로 지음받은 아담이었으나 그는 스스로 죄를 선택하였습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악한 상태가 된 이래로 줄곧 그의 죄된 본성은 후손들에게 대대로 전달되게 됩니다.

이러한 죄의 가장 주된 특징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이 땅에서 최고의 칭송과 사랑을 받으셔야 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죄성에 사로잡혀 있는 까닭에, 선천적으로 하나님을 싫어하곤 하는 것입니다. 싫어하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데 있어서는 여전히 빵점입니다. 하나님을 상대로 그렇다면 하물며 이웃을 향해서는 어떻겠습니까?

마음 속으로는 그러지 않아야겠다고 수없이 다짐했지만, 결국 그와는 반대의 행동을 했던 숱한 순간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가령, 그다지 기도를 드리지 않았다거나, 성경 읽기에 게을렀다거나, 설교 시간에 헛된 공상에 정신을 빼앗겨 건성으로 말씀을 들었던 많은 날들이 생각나지 않습니까? 이러한 모든 것들이 하나님보다는 내 자신을 더 사랑하고 있는 우리의 죄된 본성에 대한 증거입니다. 우리로서는 할 수만 있다면 항상 하나님보다는 자기 자신의 기쁨을 늘 먼저 앞세우곤 하는 것이죠. 로마서 3장 10절로 12절과 18절로 19절을 읽어보십시오.

2020년 08월 9일(SUN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01주차(1~2문답)

제1문답: 살든지 죽든지 간에 당신의 유일한 위로는 무엇입니까?

● 나는 나 자신의 것이 아니요(고전 6:19-20), 살아서나 죽어서나(롬 14:7-9) 몸과 영혼이 나의 신실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 속했습니다(고전 3:23; 딛 2:14). 그리스도께서는 나의 모든 죄를 위하여 자신의 보혈을 충분히 치르셨고(벧전 1:18-19; 요일 1:7-9; 2:2) 나를 마귀의 권세에서 해방시키셨습니다(요 8:34-36; 히 2:14-15; 요일 3:1-11). 또한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의 뜻이 없이는 머리털 하나도 나의 머리에서 떨어지지 않도록(마 10:29-31; 눅 21:16-18) 그러한 방식으로 나를 보호하심으로써(요 6:39; 10:27-30; 살후 3:3; 벧전 1:5), 참으로 모든 것이 나의 구원을 위하여 합력하게 하십니다(롬 8:28). 나는 그리스도께 속해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는 성신으로써 나에게 영생을 확신시켜 주시고(롬 8:15-16; 고후 1:21-22; 5:5; 엡 1:13-14), 이제부터는 나로 하여금 전심으로 기꺼이 그리고 신속히 당신을 위하여 살게 하십니다(롬 8:1-17).

제2문답: 이 위로의 기쁨 중에서 살고 죽기 위해서 당신은 무엇을 알아야만 합니까?

세 가지인데, 첫째, 나의 죄와 비참함이 얼마나 큰가(롬 3:9-10; 요일 1:10), 둘째, 나는 나의 모든 죄와 비참함으로부터 어떻게 자유케 되는가(요 17:3; 행 4:12; 10:43), 셋째, 나는 그러한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께 어떻게 감사해야 하는가 등입니다(마 5:16; 롬 6:13; 엡 5:8-10; 딤후 2:15; 벧전 2:9-10).

 

해설: 

기독교인의 위로는 특정된 것들을 아는 분량에 따라 달라집니다. 기독교인이 되기 위해 많은 것을 알아야 할 필요는 없지만, 그러나 더 많은 지식에 대한 추구는 그리스도인의 발전과 행복에 커다란 영향을 줍니다. 기독교인임에도 불구하고 성경을 거의 배우지 않는다면 성도로서의 생활은 연약해지고, 영적 삶에 있어서 마치 ‘아기’와 같은 수준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그리고 유용한 기독교인으로 성장해 나가면서 참된 위로를 가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신앙고백문답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배워야만 하고, 우리 자신의 삶 속에서 성경을 배우고 적용하는 일을 증진시켜 줄 삼중적 지식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첫째, 기독교인이 되기 위하여는 배워야만 하고, 둘째, 성경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야 하고, 마지막으로, 아는 지식을 우리의 삶 속에 적용하여야 합니다.

첫째, 우리는 죄의 본성과 비참을 알아야만 합니다. 죄에 대한 경험은 결코 즐거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죽을 수 밖에 없는 병 혹은 치료제를 결코 찾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우리의 죄에 대하여 반드시 배워야 합니다. 죄는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죄인으로 만들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징계를 유발하도록 합니다. 

둘째, 우리는 죄로부터 어떻게 벗어나야 하는지를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구원 받았다는 데 대한 확신은,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일하신다는 것을 아는 지식과 비례합니다.

셋째,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우리는 반드시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만약 당신이 화재가 난 건물 안에서 누군가에 의해 구조를 받았다면, 당신은 그 사람에게 분명히 감사를 표현할 것입니다. 그렇듯이 죄로부터 우리를 살려주시려고 자신 생명까지 내어주신 주님께 우리는 진실로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한 번만 배우고 잊어버려야 하는 정도로 마지막 문제인양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지구상에서의 우리의 구원 받은 인생으로서의 의미란, 우리의 죄스러운 성품, 구속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하여 더 배우는 일에 헌신하는 데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성경을 읽어야 하고, 정기적으로 설교를 들어야 하며, 그리고 우리를 성숙시키는 세 가지 방면의 지식과 위로가 우리 마음에 심어지기를 위해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1. 나의 죄성(죄권): 문답 3-11
  2. 나의 구속(구원): 문답 12-85
  3. 나의 감사(봉사): 문답 86-129

2019년 12월 13일(FRI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73문답

우리네 일상에는 크든 작든, 또는 어떠한 명분으로 합리화시킬지라도 결국 도둑질일 수밖에 없는 행동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런데 성도로서 혹여 이러한 행동을 하고 있다면, 그는 근본적으로 하나님께 대한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성도라면 모름지기 자신의 앞날에 대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면서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신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믿음을 소유하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께 이해를 정확하게 하는데 있습니다. 인격과 사역 이 두 가지에 대한 확실하고 충분한 이해는 자신의 믿음을 강화시켜 주게 될 것이고, 그에 따라 하나님께서 명하시거나 금하시는 일에 지대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됩니다. 로마서 14:7-8을 읽고, 바울의 그와 같은 신앙의 근간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다.

2019년 8월 13일(TUE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56문답

경외심 없이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면 그 자체로서 '유죄'인 것은 당연합니다. 최근에 신천지 예수교 장막성전이라는 이단의 교주 이만희가 유투부(YouTube)에 자기네를 옹호하는 성경해석 프레젠테이션, 하지만 허접하기 이를데 없는 내용을 집중적으로 게재하면서 제도권을 정면 공격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네들의 성장과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만용과 오판의 단초는 제도권 교회가 제공했습니다. 참된 하나님의 구원 방식(이신칭의)에 근거하여 세례를 받고 성도가 되었다면 결코 신천지 같은 그런 추악하고 잡스러운 집단에 넘어갈 수 없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넘어간 사람들은 애초부터 성도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단들을 탓하기 전에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 참으로 반면교사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사실 그 동안 그들이 사용했던 하나님의 이름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그리고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2019년 6월 8일(SATUR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46문답

금주에는 "제1계명이 우리에게 명하는 것은, 하나님은 유일하고 참되신 하나님이시로되 우리의 하나님이심을 알고 인정하며, 그에 합당하게 하나님을 경배하고 영화롭게 하라는 것입니다"라고 한 말씀에 함축되어 있는 다섯 가지 의미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첫째, 각기 어떤 것들이었습니까?  둘째, 그렇게 살펴본 것들이 '나' 자신에게 끼친 실제적인 변화 또는 영향력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다면 무엇이며, 없다면 왜 그렇습니까?

2019년 6월 7일(FRI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46문답

십계명 중의 제1계명이 내포하고 있는 다양한 의미들 중에서 다섯 번째로 생각해 볼 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관련됩니다. 이 문제는 이미 제1문답에서 선언적으로 살펴본 바를 반복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라고 한 바 있습니다. 다시 한 번,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이며,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들이 있겠는가에 대해 진취적으로 논의해봅시다.

2019년 6월 6일(THUR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46문답

넷째, 우리가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인정한다면 '그에 합당한 경배'를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경배한다'는 표현의 정확한 의미와 방법은 이렇게 저렇게 다양하게 말할 수 있겠지만, 총체적으로는 '예배 행위'에서 가장 실효적이고 충만케 될 것입니다. 물론 그냥 예배가 아니라 '올바른 예배'입니다. 이사야 45:20-22과 요한복음 4:24을 읽어보고, 올바른 예배를 위해서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각자의 의견을 제시하고 토론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