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8월 10일(MON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01주차(1~2문답)

당신은 한 번이라도 “만약에 ...?”라고 상상해본 적이 있습니까? 만일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크게 잘못된다면? 만약 나의 건강이 심각한 수준으로 좋지 않을 뿐 아니라 더 나아질 가망성마저 없다면? 만약 나의 가정에 또는 부모님께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긴다면? 기타 등등이 있겠죠.

죄로 말미암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는 온갖 종류의 나쁜 일들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안 좋은 일이란 것들이 겹치고 또 겹쳐서 최악의 상황이 찾아왔을 때조차도, 우리가 충분히 위로 받을 수 있을만한 무언가가 있기는 한 걸까요?    

시편 46편에서 저자는 “만약에 ...?”라는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지진으로 땅이 뒤틀리고, 산이 흔들리면서 심지어 바다 한 가운데 빠진다면, 그러한 난리(?) 속에서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그러한 극도의 상황이라 할지라도 여전히 하나님께서 자신의 안전한 피난처가 되어주실 것이라는 사실을 상기함으로써 위로 받을 수 있었습니다. 여전히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의 힘이 되실 것이요, 최악의 고통 중에서도 만날 수 있는 도움이 되십니다.

현재의 어떤 어렵고 힘든 고난이나 미래의 삶에 대한 염려마저도 초월하여, 여전히 우리를 위로해줄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알기 전까지는, 인간은 아무런 염려 없이 세상을 대면할 수 있다거나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을 온전히 즐기기란 정말 불가능합니다. 시편 46편 1절로 3절을 읽어보십시오.

2020년 08월 9일(SUN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01주차(1~2문답)

제1문답: 살든지 죽든지 간에 당신의 유일한 위로는 무엇입니까?

● 나는 나 자신의 것이 아니요(고전 6:19-20), 살아서나 죽어서나(롬 14:7-9) 몸과 영혼이 나의 신실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 속했습니다(고전 3:23; 딛 2:14). 그리스도께서는 나의 모든 죄를 위하여 자신의 보혈을 충분히 치르셨고(벧전 1:18-19; 요일 1:7-9; 2:2) 나를 마귀의 권세에서 해방시키셨습니다(요 8:34-36; 히 2:14-15; 요일 3:1-11). 또한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의 뜻이 없이는 머리털 하나도 나의 머리에서 떨어지지 않도록(마 10:29-31; 눅 21:16-18) 그러한 방식으로 나를 보호하심으로써(요 6:39; 10:27-30; 살후 3:3; 벧전 1:5), 참으로 모든 것이 나의 구원을 위하여 합력하게 하십니다(롬 8:28). 나는 그리스도께 속해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는 성신으로써 나에게 영생을 확신시켜 주시고(롬 8:15-16; 고후 1:21-22; 5:5; 엡 1:13-14), 이제부터는 나로 하여금 전심으로 기꺼이 그리고 신속히 당신을 위하여 살게 하십니다(롬 8:1-17).

제2문답: 이 위로의 기쁨 중에서 살고 죽기 위해서 당신은 무엇을 알아야만 합니까?

세 가지인데, 첫째, 나의 죄와 비참함이 얼마나 큰가(롬 3:9-10; 요일 1:10), 둘째, 나는 나의 모든 죄와 비참함으로부터 어떻게 자유케 되는가(요 17:3; 행 4:12; 10:43), 셋째, 나는 그러한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께 어떻게 감사해야 하는가 등입니다(마 5:16; 롬 6:13; 엡 5:8-10; 딤후 2:15; 벧전 2:9-10).

 

해설: 

기독교인의 위로는 특정된 것들을 아는 분량에 따라 달라집니다. 기독교인이 되기 위해 많은 것을 알아야 할 필요는 없지만, 그러나 더 많은 지식에 대한 추구는 그리스도인의 발전과 행복에 커다란 영향을 줍니다. 기독교인임에도 불구하고 성경을 거의 배우지 않는다면 성도로서의 생활은 연약해지고, 영적 삶에 있어서 마치 ‘아기’와 같은 수준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그리고 유용한 기독교인으로 성장해 나가면서 참된 위로를 가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신앙고백문답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배워야만 하고, 우리 자신의 삶 속에서 성경을 배우고 적용하는 일을 증진시켜 줄 삼중적 지식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첫째, 기독교인이 되기 위하여는 배워야만 하고, 둘째, 성경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야 하고, 마지막으로, 아는 지식을 우리의 삶 속에 적용하여야 합니다.

첫째, 우리는 죄의 본성과 비참을 알아야만 합니다. 죄에 대한 경험은 결코 즐거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죽을 수 밖에 없는 병 혹은 치료제를 결코 찾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우리의 죄에 대하여 반드시 배워야 합니다. 죄는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죄인으로 만들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징계를 유발하도록 합니다. 

둘째, 우리는 죄로부터 어떻게 벗어나야 하는지를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구원 받았다는 데 대한 확신은,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일하신다는 것을 아는 지식과 비례합니다.

셋째,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우리는 반드시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만약 당신이 화재가 난 건물 안에서 누군가에 의해 구조를 받았다면, 당신은 그 사람에게 분명히 감사를 표현할 것입니다. 그렇듯이 죄로부터 우리를 살려주시려고 자신 생명까지 내어주신 주님께 우리는 진실로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한 번만 배우고 잊어버려야 하는 정도로 마지막 문제인양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지구상에서의 우리의 구원 받은 인생으로서의 의미란, 우리의 죄스러운 성품, 구속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하여 더 배우는 일에 헌신하는 데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성경을 읽어야 하고, 정기적으로 설교를 들어야 하며, 그리고 우리를 성숙시키는 세 가지 방면의 지식과 위로가 우리 마음에 심어지기를 위해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1. 나의 죄성(죄권): 문답 3-11
  2. 나의 구속(구원): 문답 12-85
  3. 나의 감사(봉사): 문답 86-129

2020년 08월 08일(SATUR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107문답

'아멘'은 지금까지 기도한 내용을 하나님께서 들어주시리라는 소원과 확신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에서의 정의는 좀 더 깊습니다. "아멘은 '참되고 확실하다'는 의미로, 내가 위하여 기도하는 것을 참으로 갈망하는 것보다도 더 확실하게 하나님께서는 나의 기도를 들으십니다"라고 했습니다(129문답).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터인데, 이는 주기도문은 칼빈이 터툴리안을 인용하여 정의했듯이 '합법적인 기도(lawful prayer)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간절함을 앞세워 마구 쏟아내는 것이어서는 안 되고, 주기도문의 정신과 내용에 일치시키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아멘.

2020년 08월 07일(FRI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107문답

예로부터 방언 또는 소위 방언 기도의 진위성 문제를 놓고 갑론을박이 계속되어 왔습니다. 기도란 마치 신앙의 호흡과도 같다고 볼 때, 이 문제를 정확하게 규명하고 확정 짓는 일의 사활적 중요성에 대해서는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만일 주기도문의 정신와 사상으로써 기도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설혹 방언과 같은 신비한 태도로서 기도하는 것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또는 반대로 주기도문의 정신과 사상으로써 기도하는 사람으로서 과연 방언 기도의 필요성을 느끼기나 하겠습니까? 실제로 역사적 개혁주의 교회의 신앙고백들 중에는 방언 기도를 인정하는 것은 단 한 구절도 없습니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의 무게를 실감하십니까? 

2020년 08월 06일(THUR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107문답

주기도문의 마지막 간구에서 '영광'이라고 한 단어는 어떻게 해석하든 간에 오직 하나님께만 적용될 수 있는 것이고, 또한 하나님께 적용될 때에만 본연의 가치가 나타나게 되는 매우 독점적인 용어입니다. 물론 그럴지라도 이 영광은 인간 편에서도 경험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야만 '이것을' 인간 편에서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행위도 비로소 가능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이것을 참으로 오직 하나님께만 적용시켜야 하고,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는가에 있게 됩니다. 그야말로 티끌만큼이라도, 인간에게도 적용되거나 인간이 차지하게 된다면, 이 영광을 아버지께 온전히 돌려드리는 일은 실패하고야 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영광을 오직 하나님께만, 그리고 모두 돌려드립니까? 

2020년 08월 05일(WEDNE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107문답

주기도문의 마지막 간구에서 '권세'라고 한 단어의 의미는 이중적입니다. 먼저는 영적 권능을 가리키는 것으로, 하나님 나라에는 죄가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자신의 지체를 더 이상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아니하고, 오직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립니다. 죄의 왕노릇하는 권세보다도 은혜의 왕노릇하는 권세가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 이후로 하나님 나라는 교회의 모습으로서 시간 세계 구석구석에서 흑암의 권세에 사로잡혀 있는 뭇 택하심을 입은 자들을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구원해 내고 있습니다(골 1:13-14). 다음으로 하나님 나라는 궁극적으로 현존하는 모든 죄와 악의 세력을 심판하는 데서 권세의 극치를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이 나라의 현재적 확장과 궁극적 완성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드높여드리는 기도야말로 기도의 최고봉이 아니겠습니까?    

2020년 08월 04일(TUE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107문답

주기도문의 마지막 간구에서 '나라'라고 한 것은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세계를 가리킵니다. 이것은 아버지께 속한 나라, 즉 하나님께서 절대적 선한 군주로서 통치하시는 나라인 것이고, 어떠한 경우에도 중단되거나 단절되지 않으면, 어떠한 세력도 그리고 어떠한 식으로든 훼방을 놓을 수 없습니다. 성도는 의당히 이러한 나라의 충만한 출현과 영원한 발전을 위하여 기도하여야 하는데, 왜냐하면 성도는 모름지기 이 나라의 백성으로, 이 나라가 소유한 모든 축복을 영원무궁토록 향유하게끔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기도는 사실상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라고 하신 바와 맥을 같이 합니다. 이렇게 기도하십니까?

2020년 08월 03일(MO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107문답

주기도문은 올바르고 정당한 기도의 정신과 내용을 가르치는 최고봉이라는 데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우리가 이렇게 확신을 가지고 담대히 기도할 수 있는 근거는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입니다. 물론 우리의 기도 행위는 결코 미신이나 우상숭배 같은 것이 아니고, 기도를 들어주시는 분께서 직접 우리가 기도할 때에 응답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전능자이시자 인격자이시라는 데 대한 확신에 기반한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이 약속이나 확신에 대한 보증까지도 주셨는데, 과연 무엇입니까? 

2020년 08월 02일(SU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107문답

[질문] 주님께서 가르치신 기도에서의 마감 말씀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칩니까? [대답]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이라는 주님께서 가르치신 기도의 마감 말씀은 기도자로 하여금 기도할 담력을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얻고(단 9:4, 7-9, 16-19; 눅 18:1, 7-8),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하나님께 돌림으로써 기도할 때에 하나님을 찬송할 것을 가르칩니다(대상 29:10-13; 딤전 1:17; 계 5:11-13).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리라는 소원과 확신의 표시로 우리는 "아멘"이라고 합니다(고전 14:16; 고후 1:20; 계 22:20).

웨스트민스터 소신앙고백 제107문답은 주기도문의 마지막 부분을 다루면서 지금까지 달려 나온 대장정을 끝맺습니다. 이제 마지막 부분을 다루기에 앞서, 이렇게 주기도문과 같은 내용으로써 기도할 수 있게끔,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 데 대해 다시 한 번 감사의 고백을 드리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 무거운 죗값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었고, 나아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양자 입양되기까지 한 가운데, 지금과도 같이 주기도문의 정신으로써 기도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는 바울이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 4:6-7)라고 한 바대로입니다.

먼저, ‘기도자로 하여금 기도할 담력을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얻는다’고 했습니다. 주기도문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한 말로써 시작한 끝에 이제 최종적으로 바로 그 ‘우리 아버지’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드높이는 것으로서 끝마칩니다. 그러할 때에 처음부터 ’나라이 임하옵시며’라고 했듯이 마지막도 ’나라와 … 아버지께 … 있사옵나이다’라고 한 말로서 마칩니다. 그렇게 주기도문의 중심인 ‘우리 아버지의 나라’에 머무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전히 ‘우리’ 및 ‘아버지’가 강조된 것을 잊어서는 안 되는데, 이는 결국 하나님의 모든 것은 결과적으로 자녀인 우리의 모든 것이 되기 마련이라는 데 비추어 볼 때, 실로 우리로 하여금 기도할 담력을 얻게 해주는 것이라 아니할 수 없게 됩니다. 

기도에 관한 이론이 아무리 출중하다 할지라도 정작 기도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은 자명합니다. 기도는 통상 신앙의 호흡이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신앙생활의 활성화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사실상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닙니다. 믿음은 오직 기도하는 데서 그 모습을 보다 더 분명하게 드러내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로서 혹 어떠한 침체에 빠져 있다 할지라도 능히 벗어나 기도할 수 있기 위해서는, 필히 뒤를 돌아보는 동시에 앞을 내다볼 수 있어야 합니다.

뒤를 돌아본다는 것은, 지난 날 죄의 왕노릇하는 데 사로잡혀 비참한 삶을 살던 데서 벗어나, 은혜의 왕노릇하는 데 순종할 수 있게 된 것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자신의 도덕성이 어떠한 수준이냐를 묻는 것이기에 앞서, 지금 현재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어 있는 사실, 현실, 실제를 주목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않은 사람으로서는, 지금 현재 교회의 지체로서 자리매김을 하고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오직 택함을 입은 자인 것을 확인하는 가운데, 세례를 베풀어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로 받아들이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천국 열쇠의 권세를  행사하는 유일한 기관입니다. 교회는 구도자의 신앙상태를 주도면밀히 살핀 끝에, 그에게 세례를 베풀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 연합시킴으로써, 그가 하나님의 자녀인 사실을 공적으로 선포하게 됩니다. 교회가 그렇게 결정하는 때에, 하늘에서도 재가가 이루어집니다. 성도는 모름지기 과거에 죄를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였던 데 따라, 교회 앞에서 세례를 받아 지금처럼 하나님의 자녀인 신분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상기하는 데서, 자신의 상태가 아무리 극도로 침체되었다 할지라도, 능히 기도로써 하나님 앞에 나아가리 만큼의 담력을 얻게 될 것입니다.   

다음으로, 앞을 내다본다는 것은,  마치 포도나무와도 같은 모태 교회의 품으로부터 생명력을 공급받음으로써 신앙적 열매를 풍성히 맺어 나가는 것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신앙적 열매란 무슨 업적이나 공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마음 품기를 지속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즉 자신의 마음 자리에서 세상이 차지하는 비중 대신, 예수 그리스도께 더 자리를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란, 죽은 후에야 들어가는 세계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생명력을 이 지상에 교회의 모습으로 구현하시는 데 따른 것인데, 성도로서는 그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성립시키는 데 최선을 다하는 만큼, 구원의 확신도 증가되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할 때에 언필칭 위로부터 베푸시는 능력을 공급받기 위하여 기도에 들어가기 마련인 것은, 육신의 힘으로는 늘 한계에 부딪히는 것을 절감하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통해서, 자기가 속한 교회가, 하나님 나라로서의 면모를 드러내게 된다는 사실 앞에서, 바로 그 놀라운 영광을 위하여 자신의 몫에 최선을 다하려는 때에,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라고 한 기도와 고백에 성립되게 되는 것이요, 동시에 하나님을 찬송하는 행위 그 자체도 되는 법입니다. 

주기도문은 최종적으로 ‘아멘’이라고 한 말로써 마치게 됩니다. 이것에 대해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리라는 소원과 확신의 표시’라고 했습니다. 실로 성도로서는 아버지께서 약속해주신 말씀에 따라, 그러한 믿음의 확신과 정당한 내용으로서 기도한 것이므로, 의당히 자신의 기도가 응답되리라는 확신도 가질 수 있는 것이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멘’하면서 기도를 마치게 됩니다. 아멘!

2020년 08월 01일(SATUR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106문답

사탄은 할 수만 있으면 택함을 입은 자까지도 타락시키려고 온갖 기회를 다 엿보고 온갖 궤계를 다 사용하는 아주 끈질기도록 간교한 자입니다. 게다가 그는 나름 왕국의 수장이어서 자기의 명령을 즉각 받들어 순종할 충성스러운 졸개들을 휘하에 많이 거느리고 있습니다. 그가 이러한 권세를 어떤 식으로 사용하는지는 알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가 일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우리로서도 충분히 감지할 수 있습니다.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한 기도는 이러한 상황에 관련됩니다. 사탄의 시험에 걸려들지 않도록 예민하게 깨어 있어야 할 것은 당연하되, 혹시라도 악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끊임없이 기도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