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17일(SUN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24주차(62-64문답)

[제62문] 우리의 선행은 왜 하나님 앞에서 의가 될 수 없으며 의의 한 부분이라도 될 수 없습니까?  [대답]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수 있는 의는 절대적으로 완전해야 하며 모든 면에서 하나님의 율법에 일치해야 합니다(신 27:26; 갈 3:10). 하지만 우리가 이 세상에서 행한 어떤 최고의 행위라도 모두 불완전하며 죄로 오염되어 있습니다(사 64:6). 

지금까지 믿음과 의의 명확한 관계성을 보았습니다. 믿음은 그리스도를 붙잡고 그의 공의를 위한 의를 받는 도구로서의 ‘손’입니다. 이제부터는 제62문답부터 제64문답에서 선행이 의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알아보겠습니다.

제62문답은 행위에는 공로가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내어놓는 믿음조차도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63문답은 선한 행위에는 ‘상’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선행과 우리의 의의 관계에 대하여 검토해 봅시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어떻게, 또는 무엇인가를 함으로써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다거나, 자신의 죄를 갚을 수 있다거나, 죽음 이후에 자신들을 위하여 천국 자리를 마련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인간 세계의 종교는 예외 없이 선한 행위로써 스스로의 구원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오직 참 종교인 기독교만이 선행은 자신의 구원에 도움을 줄 수 없다고 가르칩니다.

선행이 우리를 의롭게 만든다거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납하도록 할 수 없는 이유는, 그러한 선행은 하나님의 요구 앞에서 함량 미달로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선행의 가치란 실상 그런 것입니다. 행위가 완전해지기 위해서는, 우리 마음에 죄가 조금도 없어야 하고, 하나님을 완전하게 사랑해야 하고, 이때 하나님뿐 아니라 사람을 향해서도 그러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신앙고백문답 처음 부분에서 살펴보았듯이(제5문답과 제6문답), 사람의 마음은 아주 악합니다. 그래서 완전하게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하나님의 거룩한 법에 온전히 순종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행위는 제아무리 인간 편에서 보기에 완전해 보여도, 실상은 불완전하며 죄로 오염되어 있습니다.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이신 하나님의 아들만이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행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모든 행위들은 완벽했고 하나님 마음에 무척이나 흡족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그리스도의 완전한 행위의 미덕과 의가 자신을 믿는 우리에게 무상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자신의 선한 행위가 선으로서의 가치가 있다거나 천국행 표를 받음직한 도덕적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치명적인 거짓입니다. 그것들은 인간이 보기에 그럴 뿐이지, 하나님 앞에서는 썩은 행위에 의한 철저하게 부패한 것일 뿐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아무도 없도다”(롬 3:10)라고 했습니다. 물론 지금 우리는 성도로서 의롭습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의 선행으로 불리는 그 어떤 것에 의해서가 아닙니다.

[제63문] 하나님께서 우리의 선행에 대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 상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는데, 그래도 우리의 선행은 아무 공로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까? [대답] 하나님의 상은 공로로 얻는 것이 아니고 은혜로 주시는 선물입니다(눅 17:10; 딤후 4:7-8). 

우리는 아직도 계속해서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과 우리의 행위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앞의 제62문답에서 인간의 선행은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의로움에 어떠한 공적이나 가치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성경이 다음과 같이 세 가지 방향으로 가르친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선을 행한 사람에게 상을 주십니다. 이 명제 앞에서 분명한 대답을 해야만 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는 선하고 순종하는 사람은 보상하고 사악하고 불순종하는 사람은 처벌한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확실히 그랬습니다. 성경에는 100개 이상의 구절에서 상급에 대해 말합니다. 가령 여기에 하나님의 은혜로 선행을 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상을 주신다고 가르치는 구절들이 있습니다. 시 19:11; 마 6:4; 19:29; 고전 3:14; 딤전 4:8; 히 6:10; 계 22:12. 우리는 제시된 이 구절들을 일일이 살펴 보아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상은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지, 공로에 의해서가 아닙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선한 일을 행하는 사람에게 오직 그러한 이유만으로 상을 주신다면, 그것은 그와 같은 선행 안에 정말로 무슨 공로가 있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순종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상급은 항상 공로가 아닌 은혜에 기초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사람에게 빚을 지지 않으십니다. 순종에 대한 공로는 결코 적립되지 않습니다.

셋째, 모든 선행은 사실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행해진 것입니다. 자신이 행해야 하는 것보다 선을 더 행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눅 17:10). 각 사람은 자신의 자연스러운 의무처럼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해야 할 빚을 졌습니다. 더구나, 우리가 행하는 모든 선행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힘으로 다하기에도 결코 충분하지 않습니다(빌 2:13).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상급을 내리실 빚을 졌다는 식으로는 결코 항의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우리가 보듯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상을 주십니다. 그러니 상은 은혜로만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받을만하지 못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십니다. 우리의 구원은 행위로서가 아니라 온전히 은혜로서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상급도 포함합니다.

[제64문] 이러한 가르침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무관심하고 사악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대답] 아닙니다. 참된 믿음으로 그리스도에게 접붙여진 사람들이 감사의 열매를 맺지 않는 것은 불가능합니다(시 92:12-15; 마 7:18; 눅 6:43-45; 요 15:5). 

오직 은혜로만 구원을 받고 그리고 오직 믿음으로만 그리스도의 의를 받음에 관한 모든 것을 말한 후에 우리는 실제로 우리의 행위와 행실은 구원의 수단으로는 정말 중요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선행은 정말 필요합니까?

첫째,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것은 필연적입니다. 신앙고백문답은 이 문제에 대한 성경의 진리에 대한 조화를 제공해 줍니다.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우리의 순종은 우리에게 구원의 조건으로 작용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우리의 순종은 우리 안에 심겨진 ‘새로운 생명의 특성상’ 필연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선행으로 의로워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의로워졌기에 선을 행합니다. 이 말은 의로워진 자들에게는 선을 행하고자 하는 열망과 능력이 생긴다는 의미입니다.

둘째, 우리가 구원 받은 목적은 거룩해지고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전에,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살고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에 따라 하나님을 섬길 수 있기 위하여,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셨다고 한 바를 보았습니다(제1문답과 제43문답을 다시 읽어봅시다.). 그리스도인이 그들의 구세주 앞에서 거룩하고 순종하고 감사하며 사는 것은, 단순히 바람직한 정도인 것이 아니라, 절대적이고 필수적인 것입니다. 성도가 감사의 열매는 맺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가장 큰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거룩하게 닮는 것이고(롬 8:29), 그리고 선한 일에 열매 맺도록 하기 위함입니다(엡 2:10).

셋째, 선을 행하시는 능력은 성신으로부터 옵니다. 믿는 자들은 새롭고 감사의 삶을 살기 위한 내적 능력을 어떻게 받습니까? 그것은 우리는 성신으로 인하여 새롭게 태어났으며(요 3:6-8; 요일 3:9), 그리하여 하나님의 태생이라는 사실 자체에 수반되어 있습니다. 중생시에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받았습니다.

넷째, 칭의는 순종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로마서 8:18, 22은 성도는 하나님의 종이 되었고, 그러할 때에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며 거룩하게 사는 능력이 주어졌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의 믿음에 의한 우리의 의의 열매로서의 칭의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살고자 하는 욕망을 성신께서 주셨습니까? 우리 각 사람은 종종 이 질문 앞에서 스스로 대답해보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제59문답에서 제64문답까지를 통해서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을 가르치는 위대한 성경적 교리 공부를 마무리했습니다. 다음부터는 신앙고백문답 가르침의 다음 단계인 거룩한 성례(제65-82문답)를 살펴볼 것입니다.

2021년 1월 16일(SATUR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23주차(59-61문답)

'오직'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습니다. ‘오직’이라는 말을 강조하는 것은 달리는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의 믿음조차도 하나님께서 심어주시지 않는다면 생기지 않습니다. 우리 믿음의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의 인격과 사역만이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만듭니다. 그리스도를 경배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의를 입을 것이며, 그것은 완벽한 의이므로, 자신은 그리스도가 하신 일에 달리 아무 것도 더할 것이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30절과 31절, 갈라디아서 2장 16절을 읽어보십시오.

2021년 1월 15일(FRI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23주차(59-61문답)

일생 동안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를 지은 나를 위해, 당신의 독생자를 보내셔서 의의 삶을 살게 하시고 죽게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놀랍게도 단지 선물일 뿐입니다. 선물은 내가 일한 대가로 받는 것이 아닙니다. 자격이 없지만 ‘순전한 은혜’로 주신 것입니다. 내겐 아무 공로가 없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의 의를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내가 할 일은 단지 믿음으로 그 선물을 받는 것뿐입니다. 믿는 것이 선물을 받는 것이고 그것은 나를 영원히 변화시킬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로 19절, 20장 30절과 31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2021년 1월 14일(THURS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23주차(59-61문답)

비록 양심이 나를 고발하고, 실제로 나는 여전히 모든 악으로 기울어져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을 내게 적용시키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대신하여 그리스도로 하여금 완벽한 거룩함과 의의 삶을 살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로서는 하나님께 드릴 의로운 행위가 없지만, 그리스도께서 얻으신 순종을 덧입혀 주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러면, 단 한번도 죄를 저지른 적이 없는 것처럼, 그리스도처럼 완전한 순종을 드린 것으로 나를 인정해 주십니다. 양심은 여전히 나를 고발할지라도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로마서 4장 3절, 22절로 25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2021년 1월 13일(WEDNES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23주차(59-61문답)

성경은 사탄을 그리스도인의 ‘참소자’라고 부르는데(계 12:10), 그는 밤낮으로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참소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먼저 우리의 양심이 우리를 참소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만큼 하나님의 계명을 단 하나조차도 지킬 수 없고 항상 거스를 뿐이라고 양심이 상기시켜 줍니다. 우리는 여전히 모든 악으로 기울어져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죄를 용서받았고 풍성한 은혜를 받았지만 우리의 죄된 경향은 그대로입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불평하고 화내고 원한을 품고 살아갑니다. 내 자신에게 있는 공로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로마서 3장 19절과 20절, 로마서 7장 21절로 24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2021년 1월 12일(TUES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23주차(59-61문답)

사도 바울이 되기 전 사울은 마르틴 루터와 똑같은 상태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려고 율법을 지키는데 혼신을 다하던 바리새인이었습니다. 하지만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그 동안 처절하게 노력했던 율법주의가 쓸데 없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의로워지는 길은 오직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베푸시는 의를 받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3장 4절로 9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만 하나님 앞에 의롭다 여김을 받고 영생을 받는 것이지 우리의 노력으로 절대로 의로워질 수는 없는 것입니다.

2021년 1월 11일(MON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23주차(59-61문답)

성도라면 기본적으로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갖고 있습니다. 이에 근거하여 ‘이 모든 것을 믿는 것이 그리스도인에게 무슨 유익이 됩니까?’라는 질문에는 대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 기독교의 진리를 믿는 것은 과학책이나 역사책에 나오는 지식을 믿는 것과는 다릅니다. ‘이 모든 것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분께 연합된 상태에서 의롭다 여김을 받으며 영생의 상속자가 되는 것입니다. 처음에 마르틴 루터는 하나님을 믿었지만 항상 비참했습니다. 거룩한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거룩함에 도저히 이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죄에 대해 화내시는 하나님의 모습만 떠올랐습니다. 어느 날 로마서를 읽다가 하나님께는 거룩함과 분노를 스스로 해결해주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자, 비로소 루터의 삶은 완전히 변화됐습니다. 로마서 1장 16절과 17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2021년 1월 10일(SUN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23주차(59-61문답)

[제59문] 이 모든 것을 믿는 것이 우리에게 지금 어떤 유익을 줍니까? [대답]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되며 영원한 생명의 상속자가 됩니다(합 2:4; 요 3:36; 롬 1:17).

이 문답은, 사도신경에서 배운 위대한 복음의 진리(구원의 메시지)와 그리고 신앙고백문답 제59번에서 64번까지를 통해서 가르치는 믿음에 의한 칭의로서 위대한 복음의 유익 사이의 다리 혹은 디딤돌을 제공합니다.

제21문답에서 참 믿음의 특성을 가르친 것과 그리고 제22문답에서 우리가 무엇을 믿을 것인가를 말해주는 사도신경을 소개했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그 후에 제23문답에서부터 제58문답까지를 조심스럽게 설명했는데, 이제 우리는 “이 모든 것(신조에 나와 있는 모든 진리)을 믿는 것이 우리에게 지금 어떤 유익을 줍니까”라는 질문과 접하게 됩니다. 대답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 진리 안에서의 믿음을 통해서 - 오직 은혜로 인한 의와 칭의 위대한 유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신앙고백문답의 순서는 매우 분명하며 논리적입니다.

  1. 참 믿음의 특성: 확실한 지식과 마음으로부터의 신뢰(제21문답).
  2. 참 믿음의 내용: 신조에 설명된 대로의 복음(제22-59문답).
  3. 침 믿음의 유익: 오직 믿음을 통해서 은혜에 의한 칭의(제60-64문답).

여기서는 칭의의 유익을 우선 간단히 언급하고, 이어지는 다섯 문답에서 보다 자세히 설명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사람’입니다. 이 말은 우리는 하나님의 보시기에 절대적으로 완벽한 의(하나님의 율법에 순종)를 소유하였다는 의미입니다. 이 의는 그리스도의 은혜로 인하여 우리에게 주어졌고 그리고 오직 믿음으로만 받은 것입니다. 이 완벽한 의를 받음으로 말미암아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권리와도 같은 결코 거두어가지 않을 영생을 상속받았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귀속된 우리의 구속주 그리스도의 의를 통해 모든 죄로부터 하나님에 의해 정당하게 됩니다.

[제60문]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됩니까? [대답]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참된 믿음으로만 됩니다(롬 3:21-26; 5:1-2; 갈 2:16; 엡 2:8-9 빌 3:9). 비록 우리가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크게 어겼고 단 하나도 지키지 않았으며(롬 3:9-12; 약 2:10-11) 여전히 모든 악으로 향하는 성향이 있다고(롬 7:23) 우리의 양심이 고소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공로가 전혀 없이 순전히 은혜로(신 9:6; 겔 36:22; 롬 3:24; 엡 2:8; 딛 3:5) 그리스도의 온전히 만족하게 하심과 의로움과 거룩함을 선물로 주십니다(롬 4:24-25; 고후 5:21; 요일 2:1-2). 하나님께서는 마치 나에게 죄가 전혀 없고 또한 우리가 죄를 짓지 않은 것처럼, 실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신 모든 순종을 우리가 직접 이룬 것처럼 여겨 주십니다(롬 4:4-8; 고후 5:19). 오직 믿는 마음으로만 우리는 이 선물을 받습니다(요 3:18; 롬 3:22). 

어떤 의미에서 이 문답은 신앙고백문답의 중심을 묘사하는 듯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어떻게 의롭게 되는가를 보여주는 이 놀랍고도 은혜로운 진리는 향후 기독교 신앙의 모든 것을 주도합니다. 구원에 뒤따르는 모든 것들은 이 놀라운 사실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거룩하신 하나님의 목전에서 의롭게 되었습니다. 이 대답은 대단히 많은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항들을 살펴보겠습니다.

  • 우리가 거룩하신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려면, 우리는 완벽하게 의로워지는 것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인정을 받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의 완벽한 사랑의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그처럼 율법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선포하셨습니다.
  • 우리가 우리 자신의 개별 공로를 기반으로 하나님 앞에서 정당하고 의로울 수 있다고 선언하는 것은 확실히 불가능합니다. 우리 중에는 누구라도 결코 하나님의 어떤 명령이라도 완벽하게 지키기 못했다는 데 대해 각인의 양심이 스스로를 고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 살아 가는 동안은 결코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 우리의 개인적 불순종과 죄에도 불구하고, 그것과는 상관없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법을 온전히 지키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 받았습니다. 이는 믿음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우리가 믿음 안에서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 받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고 선언해 주십니다.
  • 오직 믿는 자만이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 받습니다. 우리는 각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오직 우리의 구원을 의미하는 주님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전적으로 신뢰, 확신, 그리고 소망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주님으로 믿을 때에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의롭다고 선포하십니다. 이때 그리스도께 대한 이러한 믿음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어졌다고 확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로마 카톨릭 교회 안에서 여전히 죄의 짐을 지고 있었던 자들을 향한 종교 개혁자들의 엄청난 진리의 선포입니다. 당신도 이 진리를 알고 있습니까? 그리고 이 축복도 알고 있습니까?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데 실패한 자들은 자신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 아래 남겨질 것입니다.

[제61문] 우리는 왜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고 말합니까? [대답] 우리의 믿음에 어떤 가치가 있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받으실 것은 아니며, 오직 그리스도의 만족하게 하심과 의로움과 거룩함만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의가 됩니다(고전 1:30; 2:2). 오직 믿음으로만 이 의를 받아들여 우리의 것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롬 10:10; 요일 5:10). 

우리는 제60문답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의롭게 되었음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하신 의로움(순종)이 우리에게 전가됨으로 인하여 모든 죄로부터 자유하게도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함께 ‘변화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믿는 자들의 죄를 자신에게로 취해갔습니다(전가). 그리고 그의 온전한 의를 그리스도인들에게 부어 주었습니다(고후 5:21).

이제 제61문답에서 우리는 ‘믿음’과 ‘의’의 ‘관계’를 봅니다. 그것은 사람이 어떻게 그리스도의 의를 받고(방법), 따라서 죄를 용서 받는가(결과) 하는 데 대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진실로 믿는 자만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됩니다. 그리스도에 관하여 들은 모든 사람들이 아니고, 오직 진실로 ‘믿는 자’만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사도는 이런 원리에 서서,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 16:31)고 하였고, 그리고 다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롬 5:1)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오직 믿음’으로 우리가 구원을 얻었다고 말할 때, 우리가 발휘하는 ‘우리의 믿음’ 그 자체가 우리가 얻게 되는 구원의 공로나 혹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받아들일만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오늘날 종종 우리에게는 믿음이 더 필요하다는 말과 그리고 모든 것이 좋아질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듣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 그 자체는 우리를 구원하지 못하고, 오직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구원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스스로 짜내는 믿음’ 안에서는 ‘구원 얻는 믿음’을 가질 수 없고,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구원 얻는 믿음’을 가집니다. 이 문답에서 명백하게 가르치듯이, 사람이 스스로 짜내는 믿음은 아무 가치가 없고, 오직 밖에서 내 안으로 들어온 데서 일어나는 믿음만이 가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자신의 믿음은 왜 필요합니까? 그 믿음은 우리가 그리스도께 도달하고 붙잡는 ‘손’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그리스도를 우리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도구’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과정이 없이는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로는 단지 그리스도의 것일 뿐입니다.

이상의 내용에 대해서는 다음 번 제65문답에서 볼 것인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 믿음은 성신께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여 우리 안에 창조하시는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믿음을 지니고 있습니까? 아니면, 당신 스스로가 짜낸 믿음을 고백합니까?

2021년 1월 9일(SATUR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22주차(57-58문답)

하나님께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는 이유는, 신자로서 우리가 지상에서 지향하고 있는 목표는 똑같습니다. 영원히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는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죄인들을 구원해 주심에 따라, 우리 자신은 하나님의 면류관이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단지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하나님께 대한 찬송이 될 것입니다. 천국에서는 주님께서 베푸신 구원을 훨씬 더 명백하게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죄 없는 상태에서 주님을 온전히 사랑하게 될 것이므로, 그러한 구원을 주신 주님을 완벽한 기쁨으로 찬송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이 땅에서 교회의 예배를 통해서 예비적으로 맛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어떻습니까? 내일 주일 예배가 기다려지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어전에 부복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에 흥분이 일지 않습니까?

2021년 1월 8일(FRI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22주차(57-58문답)

예수님께서 지상을 떠나기 전에, 우리를 위한 처소를 예비하러 간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처소가 준비되면 다시 오셔서 우리를 그곳으로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절로 3절 말씀을 읽으십시오. 우리를 위해 죽기까지 사랑하신 전능하신 분께서, 그렇게 사랑하시는 사람들을 위해서 만드시는 곳은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하겠습니까! 고린도전서 2장 9절과 10절 말씀을 읽으십시오. 물론, 요즈음은 지상에서의 삶의 쾌락에 푹 빠져서, 천국을 그다지 좋게 깨닫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지상은 결코 행복하고 즐거운 곳이 아닙니다. 사방팔방에 난무하는 쾌락과 죄를 직시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들은 반드시 심판을 받아 영원한 형벌에 처해질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닙니다. 결코 아닙니다. 그러니 오늘도 더더욱 그리스도인다운 순결함으로 살아가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