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14일(THUR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69문답

하나님 나라 백성의 세계에서는 형제를 미워하는 것은 명백히 죄요, 심지어 살인죄이기까지 합니다. 이런 차원에서 볼 때 예수님께서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 5:22)라고 하신 말씀은 당연하다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에서의 살인죄 규정은 세상 나라의 방식과는 현저히 다르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문제를 구원론적으로 다루고 있는 앞서 보았던 요한일서 3:15을 다시 한 번 읽어봅시다. 지금 혹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2019년 11월 13일(WEDNE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69문답

제6계명은 사람을 죽이는 죄를 명백히 금하고 있지만, 실제로 살인에 이를 수 있는 동기는 그야말로 허다하게 많습니다. 그러므로 이 계명은 살인이라고 하는 외적인 행동으로 이끄는 내적인 마음의 상태부터 금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15은 명백히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라고 선포합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께 접붙여진 부활 생명으로서 사는 자인 것이요, 따라서 역시 그렇게 되어 있는 다른 지체들을 미워한다는 것은 결코 허락될 수 없습니다. 혹여 그렇다면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더욱이 사실이 그렇다는 데 대해서는 성도라면 능히 알기 마련이라고 했습니다. 당신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2019년 11월 12일(TUE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69문답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자살하는 것을 허락치 않으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성도가 자살할 경우 무조건 구원을 받지 못하고 지옥 간다고 단정 짓는 것은 무리입니다. 이는 기독교인의 자살을 방조하려는 의도로 하는 말이 아니고, 자살자가 그처럼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까지 겪었던 내외적인 고통에 대해 제삼자로서는 결코 제대로 헤아릴 수 없는 법이라는 차원에서입니다. 혹 성도가 그렇게 자살하였을 경우, 정작 문제는 함께 연합되어 있던 지체들은 도대체 그간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하는 데 있습니다. 혹여 교회의 한 지체가 자살할 경우 전체 성도는 부끄러움에 낯을 들 수 없을 정도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2019년 11월 11일(MO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69문답

제6계명에 대한 신앙고백문답은 자기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빼앗는 자살도 명백히 금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살의 경우 우울증과 같은 질병에서 일어나기도 하지만, 자기 자신이 인생을 잘못 경영해 나온 데 대한 궁극적인 선택인 경우가 대체적입니다. 그럴지라도 사회 자체가 그러한 삶으로 내모는 흉기 노릇을 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습니다. 가령, 어떤 사람이 정부 정책을 믿고 경제 계획을 세웠는데, 어느 날 정부가 정책을 하루 아침에 바꾸어버림으로, 그로 말미암아 치명타를 입으면서 이어지는 후유증을 견디다 못해 끝내는 자살을 택하는 경우도 적지는 않습니다. 학생들의 입시 정책이 요동치는 것도 실례입니다. 기타 어떤 구체적인 경우들이 있겠습니까?

2019년 11월 10일(SU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69문답

[질문] 제6계명이 금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대답] 제6계명이 금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생명이나(행 16:28) 이웃의 생명을(창 9:6) 불의하게 빼앗거나 죽음으로 이끄는 모든 것입니다(잠 24:11-12; 마 5:22; 갈 5:14-15; 요일 3:15).

제6계명에 대한 정의(67문답), 긍정 명령(67문답)에 이어, 이제 제69문답에서는 부정 명령을 다루게 됩니다. 말 그대로 “살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앞에서 두 차례에 걸쳐서 직접적인 살인 행위의 죄스러움에 대해서 충분히 살펴보았습니다.  살인죄란 얼마나 극악무도한 죄인가에 대해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생명에 대한 주권은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조차도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 ‘자신의 생명이나’라고도 했음을 눈 여겨 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살하는 것은 명백히 죄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생명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도로서는 여하 간에 타인의 목숨을 해쳐서는 안 되고,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저버려서도 안 됩니다.

하지만 오늘날 이 살인죄가 얼마나 만연해 있습니까?  타인에 의해 살해되는 경우이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살의 경우이든 간에, 살인행위가 널러 만연해 있음에 대해서는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경우 자살률이 놀랍게도 세계 1위라고 합니다. 낙태와 같이 좀 더 은밀하게 이루어지고, 아예 통계에 잡히지 않는 경우를 제외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습니다. 그런데 이 자살률 급증의 변곡점은 경제 위기와 맥을 같이 한다고 합니다. 또한 살인률은 세계 6위라고 합니다. 살인의 동기에 대해서는 워낙 다양하므로 다루기가 쉽지 않습니다. 여하튼 성도는 어떠한 경우에도 다른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됩니다. 물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살도 마찬가지로 엄격히 금합니다. 가끔 목사의 살인 또는 목사의 자살 같은 자극적인 주제가 신문지상에 오르내리지만, 이는 매우 극단적인 실례이므로 보편적 주제로 다룰 수는 없겠지만, 살인이었다는 사실만큼은 변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직접적인 살인 행위라는 것은 이미 살인하고자 하는 동기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고려하면, 성경이 왜 ‘마음의 살인’ 행위에 대해 그렇게도 예민한가에 대해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세상의 법은 겉으로 드러난 행위에 대해서는 간여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품는 마음의 태도에 대해서부터 간여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리 하에서 사도 요한은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요일 3:15)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 5:21-22)라고 하신 말씀을 반영한 것입니다.

여기서 미워하고 증오하는 대상에 대해 ‘형제’라고 한 바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날로 보자면 한 교회에 속해 있는 지체를 지칭하는 것이겠습니다. 함께 같은 교회를 이루고 있는 형제와 자매는 더 이상 세상적인 차원과도 같이 ’남남’이 아니고, 그럴지라도 세상적인 차원에서와 같은 ’형제자매’도 아닙니다. 세상에서 회자되는 표현으로 ‘물로보다 진한 것이 피이다’ 하는 말이 있습니다. 한 집 안에서의 가족관계로 말미암는 친화력은 세상 사람들 간에 맺게 되는 친화력보다는 월등히 끈끈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성도는 신앙을 공적으로 고백함에 따라 공식적으로 교회원이 되게 되는데, 그에 따라 이미 교회원으로서 성립되어 있는 사람들과 연합되게 되고, 그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한 몸에 참여하게 되는 지체로서 자리매김을 하게 됩니다. 이때의 친화력은 ’물보다 피가 진하다!’ 하는 차원을 넘어 ’피보다 진한 것은 지체들 간의 연합이다’ 하고 말할 정도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마치 자기 몸의 어느 한 지체가 다른 지체를 결코 미워하는 관계가 성립될 수 없는 것처럼, 성도들 간에는 어느 누구도 다른 지체를 미워하거나 질시하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는 것이고, 엄격히 말해서 일어날 수도 없다고 보아야 합니다.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생명에 수직적으로 연합되어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이라면, 함께 수평적으로 연합되어 있는 다른 성도를 마치 제 몸처럼 섬기는 것을 통하여 증명해 낼 수 있어야 한다는 원리를 염두에 둔다면, 한 교회 안에서 성도가 성도를 미워하고 비판하고 질시하는 일이란 결코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실로 성경은 살인 행위에 대해 거의 불신자와도 같은 차원에서 다룹니다.  실제로 불신자가 자행하는 여러 가지 악행들 가운데 단연 살인죄는 그 죄악의 심각성과 관련하여 단연 선두에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둘째 사망의 불못에 들어갈 자들의 목록에 ‘살인한 자’를 포함시킵니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계 21:8)라고 하신 바대로입니다. 혹여 성도의 신분으로서 살인죄를 범한다면, 이는 그가 애초부터 구원 받지 못한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만일 구원을 받는다면,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겠지만, 당사자로서는 무척이나 부끄러운 구원이 될 것입니다.

2019년 11월 09일(SATUR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68문답

오늘날 "살인하지 말라!"고 하신 계명을 들어 국가를 상대로 '사형 제도' 폐지 운동을 벌이는 기독교 단체들의 경우를 종종 봅니다. 먼저 로마서 13:1-2을 읽어봅시다. 국가는 명백히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력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부패한 인간들의 타락을 제어하심에 있어서 국가의 권력을 사용하십니다. 그러므로 특정 국가가 사형제도를 제정하여 운영하고 있다면 이는 불법이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 그리스도인으로서 사형 제도가 폐지되기를 원한다면,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2019년 11월 08일(FRI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68문답

교회의 성도들은 각기 자신이 살아가는 현장에서 장차 들어가게 될 영원한 생명의 소망을 붙잡고 살아가는 사람답게 밝고 역동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보기에, 자신의 생각을 바꿀 수 있을만큼의 매력을 풍겨 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무슨 비법이 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성도가 자신의 신분을 확실하게 자각하는 가운데 그에 걸맞은 삶을 살아가면, 이미 그 자체로서 인생살이에 지치고 쓰러지기 직전인 사람에게까지도 마음을 돌이키게 할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이자 비법이 될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2:15-17을 읽어봅시다. 성도란 모름지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으로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러니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를 내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2019년 11월 07일(THUR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68문답

지구촌 구석구석에서 갑자기 일어난 폭탄 테러로 엉뚱한 사람들이 죽는 일이 비일비재한가 하면, 스스로 자살을 택하여 생명을 끊는 경우도 점차 늘어가는 추세입니다. 사람의 생명을 함부로 죽이는 세상이란 사실상 지옥일 수밖에 없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참으로 역설적인 것은 생활 전반은 풍성해지고 있는데, 그래서 가난해서 굶어 죽은 사람은 없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자살률은 높아만 간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사람의 존엄성에 대한 격차가 심해지면서 생명을 경시하는 성향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때일수록 교회가 세상 속에서 희망과 행복이 되어줄 수 있어야겠습니다. 어떤 방법들이 있겠습니까?

2019년 11월 06일(WEDNE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68문답

서울 보신각 앞에서 500여명의 여성들이 모여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는 시위를 했다고 합니다(10월 14일). 보건복지부가 낙태가 가능한 경우를 좀 더 엄격하게 규정하면서 이를 어길 경우 처벌을 강화하는 법률안을 제정했는데(9월 22일), 이를 반대하는 시위라고 합니다. 그런데 더 기가 막히는 것은, 시위에 앞서 대한산부인과의사회라는 데서 먼저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고 합니다(9월 28일). (자기네 돈벌이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낙태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것입니다. 참고로 한국에서는 매년 최소, 최소로 17만 건의 낙태 수술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이것이 더더욱 무서운 죄인 것은 성생활의 자유분방한 타락상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타락한 생활방식은 이렇게 제6계명에 대해서도 매우 심각할 정도의 저항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깊이 고민해 보십시다.

2019년 11월 05일(TUE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68문답

오늘날 스스로가 자신의 생명을 천시하고, 그런만큼 타인의 생명도 상대적으로 천시하는 풍토가 날로 확대되어가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세계 1위입니다. 물론 사람을 반드시 죽여만 살인인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인격을 멸시하고 천대하는 것도 사실상의 살인행위임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나의 생명이 천하다고 다른 사람의 생명도 천한 것은 아니고, 나의 생명이 귀한만큼 상대방의 생명도 귀한 것입니다. 어느 것인들 그렇지 않겠습니까 만은, 생명의 문제만큼은 더더욱 직접적인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일견 보기에는 혼인을 통해서 아기가 태어나는 형식이 되어 있지만, 아기의 영혼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살인을 해서는 안 되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서도 안 됩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