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26일(MON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12주차(31-32문답)

우리에게는 보통 성과 이름이라는 두 가지 이름이 있으며 사람에 따라서 한 개 이상의 중간 이름까지 갖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예수님을 ‘예수 그리스도’라고 부를 때 그것은 그분의 성과 이름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가 그분의 이름입니다. ‘사장’ 또는 ‘왕’ 등과 같이 누군가의 이름 앞에 붙여 직함을 나타내는 것처럼 사용된 것이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라는 직함은 ‘기름 부음을 받은 자’ 라는 의미입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특정한 임무를 수행할 사람들이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임명되었음을 나타내는 방법으로 그들의 머리 위에 약간의 기름을 붓는 의식 같은 것이 거행되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제물이 당신께 드려지는 일을 수행할 제사장이라는 존재에 대해 모세에게 처음 설명하시면서, 초대 대제사장은 그의 형이었던 아론이 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아론의 아들 역시 그의 뒤를 이어 제사장이 될 것이었으며, 따라서 그들을 제사장으로 임명하는 의식이 있을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사무엘로 하여금 사울을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다음으로는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 곧 다윗을 왕으로 임명하라고 명하셨습니다. 또 다른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가 사명 수행에 심히 지쳤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수고 종료를 허락하시면서, 엘리사를 후계자로 세우라 명하셨습니다. 이런 식으로 선출된 제사장과 왕 그리고 선지자 등은 다른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서 특별히 매우 중요한 소임을 수행해야 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선택받았음을 보여주기 위하여 특별히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제사장과 왕 그리고 선지자 이 세가지 직분은 앞으로 오실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실 것인가를 보여주는 정확한 상징이었습니다. 당신의 아드님을 기름부음 받은 자 되게 하시는 것은 애초부터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기름부음 받은 자, 곧 그리스도가 되실 것이었습니다. 누가복음 4장 16절로 21절을 읽어보십시오.

2020년 10월 25일(SUN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12주차(31-32문답)

[제31문] 왜 그분을 그리스도, 곧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고 부릅니까? [대답] 왜냐하면 그분은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임명을 받고 성신으로 기름 부음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시 45:7; 사 61:1; 눅 3:21-22; 4:18; 행 10:38; 히 1:9). 그분은 우리의 큰 선지자와 선생으로서 우리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감추인 경륜과 뜻을 온전히 계시하시고(신 18:15; 사 55:4; 마 11:27; 요 1:18; 15:15; 행 3:22; 엡 1:9-10; 골 1:26-27), 우리의 유일한 대제사장으로서 그의 몸을 단번에 제물로 드려 우리를 구속하셨고(시 110:4; 히 7:21; 9:12, 14, 28; 10:12, 14), 성부 앞에서 우리를 위해 항상 간구하시며(롬 8:34; 히 7:25; 9:24; 요일 2:1), 또한 우리의 영원한 왕으로서 그의 말씀과 성신으로 우리를 다스리시고, 우리를 위해 획득하신 구원을 누리도록 우리를 보호하고 보존하십니다(시 2:6; 슥 9:9; 마 21:5; 28:18; 눅 1:33; 요 10:28; 계 12:10-11). 

신앙고백문답 제31문답과 32문답은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설명하고 적용합니다. 이 이름은 구주라는 뜻이지만, 예수님의 부모님이 지어준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직분으로, 구세주로서의 예수님의 직무와 의무를 나타냅니다.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뜻을 지닌 그리스어 ‘Christos(크리스토스)’에서 왔습니다. 구약에서 이 직분은 히브리어로 ‘메시아’입니다. ‘메시아(히브리어)’와 ‘그리스도(그리스어)’ 둘 다는 동일하게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의미입니다.

신앙고백문답은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서 ‘선지자’와 ‘제사장’과 ‘왕’의 세 가지의 공적 직분을 수행한다고 가르칩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 때 이 세 가지 주된 직무를 제정하심으로써 이스라엘을 특별한 나라로 삼으셨습니다. 모세, 엘리야 그리고 이사야와 같은 선지자들이 있었고, 아론이나 엘리와 같은 제사장들이 있었으며, 그리고 다윗이나 솔로몬과 같은 왕들이 있었는데, 모두가 하나님께서 기름을 부어 세우시거나 또는 특별히 지명하셨습니다. 기름부음의 의식은 기름을 사람의 머리에 부음으로 거행되었습니다. 이러한 의식은 자신의 직무를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성신에 의한 지혜와 능력이 충만케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에게 선지자, 제사장 그리고 왕, 이 세가지 직분을 수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시던 현장에서 이 세가지 직분을 수행케 하시려고 비둘기처럼 내려오신 성신에 의해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마 3:16).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구약보다 더 위대한 선지자와 제사장과 그리고 왕을 모시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고백문답에서는 이와 같은 세 가지 직분의 분리된 직무를 자세히 가르칩니다.

첫째, 선지자처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진리를 완전히 선포하셨습니다(요 15:15). 둘째, 제사장처럼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희생제물로 바치시고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십니다(히 7:25-27). 셋째, 왕처럼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통치를 베푸십니다.

예수님은 지상에서 ‘그리스도’로서 이 세 가지 직무를 수행하셨지만, 이제 하늘에서도 계속해서 이 직무들을 수행하십니다.

[제32문] 그런데 우리는 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립니까(행 11:26)? [대답] 왜냐하면 우리가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어 그의 기름 부음에 참여하기 때문입니다(사 59:21; 욜 2:28; 행 2:17; 고전 6:15; 12:13; 요일 2:27). 우리는 선지자로서 그의 이름의 증인이 되며(마 10:32-33; 롬 10:10; 히 13:15), 제사장으로서 자신을 감사의 산 제물로 그에게 드리고(출 19:6; 롬 12:1; 벧전 2:5; 계 1:6; 5:8, 10), 또한 왕으로서 이 세상에 사는 동안은 자유롭고 선한 양심으로 죄와 마귀에 대항하여 싸우고(롬 6:12-13; 갈 5:16-17; 엡 6:11; 딤전 1:18-19; 벧전 2:9, 11), 이후로는 영원히 그분과 함께 모든 피조물을 다스릴 것입니다(딤후 2:12; 계 22:5). 

당신은 관직에 앉기를 좋아합니까? 정치인들은 관직에 오르기를 열망합니다. 그리고 종종 그것을 취하기 위하여 아주 열심히 일할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수여 받을 수 있으면서도, 사실상 최고로 명예로운 직책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칭호를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직임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의 문자적인 의미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인데,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직함의 칭호이며 직임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의 직무에 가담한 사람이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직무를 수행하시기 위하여 받으신 기름부음에도 동참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토록 의미 있고 중요한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은 처음에는 대적자들에 의해 비난과 경멸하기 위한 의도로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붙여진 이름이었습니다. 이 말은 신약성경에서 오직 세 번만 발견됩니다(행 11:26; 26:28; 벧전 4:16).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이름을 기쁨으로 여기고 이것을 자랑스럽게 인정합니다.

그리스도의 삼중직책에 따르면(제31문답), 우리도 역시 선지자, 제사장 그리고 왕으로서의 삼중직책을 지니고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의 처음 부모인 아담은 창조될 때에 삼중직책을 부여 받았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범죄로 말미암아 그는 마귀의 거짓을 말하는 선지자가 되고, 마귀의 일에 스스로를 바치는 제사장이 되고, 마귀를 대신하여 세상의 지배권을 행사하는 왕이 됨으로써, 결국 사단을 섬기는 선지자, 제사장 그리고 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삼중직책이 회복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우리는 아담의 원죄를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선지자, 제사장 그리고 왕이 되었습니다.

첫째, 우리는 선자자로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고백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의 진리를 선포합니다(해 2:17; 롬 10:9; 엡 4:25). 둘째, 우리는 제사장으로서 우리 자신을 그리스도께 바치는 산 제물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도록 모든 것에서 성별되었습니다. 여기에는 우리의 재능과 우리의 재물도 포함됩니다(롬 12:1-2; 벧전 2:9). 셋째, 우리는 왕으로서 우리 자신과 가정과 교회 그리고 사회 위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배권을 행사합니다. 우리는 죄와 악을 대상으로 선한 싸움을 싸워 승리하면서 현재 그리고 영원히 그리스도와 함께 통치합니다(창 1:28; 롬 8:37; 계 1:6; 5:10).

우리가 크리스천이 되는 참된 의미를 붙잡기 시작할 때, 우리의 삶은 놀랍게 변하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합니다. 우리의 대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아래서 그의 능력을 대행하는 하나님의 직분자가 된다는 것은 얼마나 영광스러우며 감동적입니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부르심 받은 우리의 소명, 곧 선지자와 제사장과 왕으로서의 우리의 거룩한 직분에 반대되는 행동을 결코 하지 맙시다. 그리고 이 위대한 사명을 위하여 우리에게 기름 부어지신 성신의 능력과 지혜를 믿고 굳게 의지해 나갑시다(행 2:38; 요일 2:20, 27).

2020년 10월 24일(SATUR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11주차(29-30문답)

하나님은 구약시대의 이스라엘에게 자신을 계시하실 때에 당신을 섬기면서 동시에 다른 신들을 숭배하는 것은 결코 가능하지 않다고 분명하게 선포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시도를 한 것은 하나님을 무척이나 진노하시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의 땅으로부터 그들을 쫓아내시고 포로로 전락시키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세우는 일과 관련하여, 행여라도 다른 수단을 의존한다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크리스천이라 부르거나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완벽하신 구세주이십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백성을 그들의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필요로 했던 모든 것을 수행하셨습니다. 아버지께 대한 완전한 순종의 삶을 사셨고, 이어서 당신의 백성이 지은 모든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서 그 값을 치러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모든 것을 완수하셨는데, 사실 그 모든 것은 우리를 대신하여 그렇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돌아가시기 직전에 ‘다 마쳤다’고 하셨습니다. 그로써 모든 것이 이루어졌습니다. 모든 죄가 사해졌습니다. 이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다른 어떤 것도 필요치 않게 되었습니다. 히브리서 7장 25절과 9장 11절로 12절, 그리고 26절을 읽어보십시오.

2020년 10월 23일(FRI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11주차(29-30문답)

사람들이 자신을 구원해줄 수 있을 존재로 믿는 것은 비단 성자들뿐만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믿습니다. 그들은 스스로의 힘으로도 얼마든지 하나님 앞에서 의로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데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본래 사람이란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스스로를 돌볼 능력이 충분하다고 생각하기를 좋아합니다. 남의 도움 같은 것은 필요치 않다고 말이죠. 특히나 선하게 사는 것에 있어서 적어도 우리 스스로가 남들보다 못하지는 않다고 생각하며 그래서 당연히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받아주실 것이라 확신합니다. 사람들은 자기에게 구세주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기 싫어합니다.

사람들이 자기자신을 믿는 또 다른 이유는 그렇게 하는 것이 상식적으로 맞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좋은 것을 받고자 한다면 우리도 하나님께 좋은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사람들은 원래 세상의 이치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세 번째 이유는 선을 행하는 것으로 천국행을 획득하거나 보장받을 수 있다고 많은 거짓 선생들이 잘못 가르쳐왔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구약시대 때의 율법을 인용하며 선을 행하는 것으로는 그 누구라도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없음에 대하여 명확히 하였습니다(롬 3:19-20). 자신과 연합함이 없고서는 그 누구라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열매 맺을 자가 없다고 예수님께서도 분명히 하셨습니다(요 15:5). 이사야 선지자는 우리를 어둠 속을 걷는 자들에 비유합니다. 그는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을 믿고 빛을 얻기를 청합니다. 아니면, 스스로 빛을 만들어보려는 시도를 하는 방법이 있다고 이사야 선지자는 기록합니다. 하지만 그 길의 끝에는 결국 고통만 있을 뿐이라는 경고를 덧붙였습니다. 이사야서 50장 10절로 11절을 읽어보십시오.

2020년 10월 22일(THURS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11주차(29-30문답)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하나뿐이신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참으로 확실하고도 놀라운 구원과 안전을 제공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주 사람들은 그들의 구원과 안전을 다른 곳에서 찾고자 합니다. 아니면 부분적으로는 예수님을 믿되 동시에 자기 자신이나 또는 다른 무언가도 신뢰하고 싶어합니다. 이 교리문답이 쓰여졌을 당시에는 몇 세기 동안이나 이어져온 잘못된 가르침들이 성행했습니다. 그런 가르침의 일부는 구원에 관한 도움을 받으려고 성자들을 의지하는 것 또한 포함되어있었습니다. 성자들은 나름 의로운 삶을 살다가 죽은 사람들이긴 합니다. 하지만 거짓교리에서는 그러한 성자들을 필요 이상으로 의로운 삶을 살았다고 과장합니다. 그때는 사람들이 특정한 성자를 기리기 위해 관련 교회를 순례하곤 하였는데, 그러한 의식을 행하면 생전에 그 성자가 행했던 의의 여분이 자신들의 몫으로 여겨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어리석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 그 누구도 하나님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할 만큼 의로울 수 없다고 성경이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그 의로운 정도가 예사롭지 않아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도 남아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의를 나누어 줄 수 있을만한 사람은 더더욱 있을 수도 없습니다. 로마서 3장 9절로 12절을 읽어보십시오. 오직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즉 예수님의 의만이 우리의 의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만일 예수님의 완전한 의로움으로 인하여 우리가 의롭게 여겨질 수 있는 것이라면 우리는 다른 누구의 의로움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또한 그러한 성자들에게 소원을 빌기도 했는데, 특히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에게 그랬습니다. 사람들은, 성자들이야말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인 까닭에 우리의 필요를 이해하고 그것을 하나님께 구함에 있어서도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들은 성자들이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중재해 줄 수 있거나, 아니면 도리어 사이를 갈라놓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참으로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되셨다고 가르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완벽히 이해하시는 까닭은, 자신이 인간으로서 그러한 필요들을 우리와 똑같이 경험해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유일한 중재인이시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오직 그분 한 분 뿐입니다. 히브리서 2장 17절로 18절과 디모데전서 2장 5절을 읽어보십시오. 성자들의 도움을 보태는 태도로 예수님을 믿으려 하는 것은 예수님을 진실로 신뢰하는 것이 아닙니다.

2020년 10월 21일(WEDNES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11주차(29-30문답)

대부분의 사람들이 세상의 모든 종교가 사실은 이름만 달리한 하나의 신을 섬긴다고 믿습니다. 서로 다른 종교라도 저마다 천국에 도달할 수 있는 고유의 방도를 가지고 있으며 어떤 특정한 방식이 다른 방식보다 그 효력 면에서 더 낫거나 못한 것은 아니라고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의 내용이 아니며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시는 바도 아닙니다. 하나님과 화목해지고 천국의 확신을 갖게 되는 길은 오직 한가지뿐으로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제공하신 구세주를 믿는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마치시고 제자들에게 명하시기를, 땅끝까지 가서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당신과 당신의 가르침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세상에 그것 말고는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드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나셨을 때부터 ‘예수’라는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아드님께서만 유일한 구세주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4장 11절로 12절과 17장 30절로 31절을 읽어보십시오.

2020년 10월 20일(TUES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11주차(29-30문답)

구약시대 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택하여 구원하심으로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당신을 드러내 보이시고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곧 이스라엘은 하나님만 섬기고 하나님만 믿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을 둘러싼 주변 국가들은 예외 없이 자신들이 스스로 만든 많은 종류의 신들을 섬겼습니다. 이를 본받은 이스라엘은 이웃나라의 우상도 숭배하면서 동시에 여전히 하나님도 섬겨보려는 시도를 반복적으로 자행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 도처에서 오직 당신만이 유일한 하나님이시며 그 외에 다른 신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우상은 전부 나무나 금속으로 된 것으로 그 어떤 것도 행할 능력이 없다고 주장하셨습니다. 그러한 것들이 사람을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이 말이나 됩니까!

이사야 45장 21절로 25절을 읽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공표하시기를 세상의 모든 사람 곧 ‘땅의 모든 끝’이 당신께로 돌이켜 구원을 받으라 하셨습니다. 현시대 사람들은, 세상에 다양한 문화가 존재하는 만큼 각기 다른 신도 존재할 수 있으며 자신들이 섬기는 신만이 다른 이들의 신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은 틀린 것이라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성경은, 세상에 진정한 하나님은 오직 한 분만 계시다고 가르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하여서 인간에게 자신을 충분히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 세상 모든 곳의 모든 사람에게 명하시기를 구원을 받고자 한다면 당신께로 돌이키라고 하십니다. 하나님 당신 외에 다른 곳에서는 구원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지요.

2020년 10월 19일(MON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11주차(29-30문답)

마태복음 1장 21절을 읽어보십시오. 예수라는 이름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구원하신다’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라는 이름은 그분이 누구시며 왜 이 땅에 오셨는지를 확실히 말해줍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그저 좋은 선생 정도로만 여기기를 원합니다. 사실 예수님은 가르침을 행하신 것은 사실이며 그런 예수님을 사람들이 실제로 선생이라 부르기도 했지만,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예수’라는 이름의 의미는 분명 ‘구세주’를 뜻하였습니다. 현시대를 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그저 우리네 삶을 더 풍요롭게 하시고, 우리가 원하는 바를 얻거나 이룰 수 있게 도와주심으로써 우리를 더 행복하게 해주려고 오신 분 정도로 여겨지는 듯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따른다는 것이 삶을 편하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힘들고 고달프게 하는 것이라고 당시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들은 제쳐두고, 쉽지 않은 것들을 선택해야만 합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시대에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사람이 자기가 못박혀 죽을 십자가를 직접 짊어 멘다는 뜻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삶이 얼마나 힘들 수 있는지를 이토록 생생하게 보여주는 비유도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께서 왜 이 땅에 오셨는지에 관해 정확히 아셨습니다. 죄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함이었고 그래서 우리를 위해 대신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성취하신 속죄에 근거하여 죄를 회개하고 당신을 믿으라고 사람들에게 명령하십니다. 우리네가 안고 사는 모든 삶의 문제가 바로 이와 직결된 것으로,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는 것만으로도 그 모든 문제들에 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9장 10절, 마가복음 10장 45절 그리고 누가복음 5장 32절을 읽어보십시오.

2020년 10월 18일(SUN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11주차(29-30문답)

[제29문] 왜 하나님의 아들을 예수, 곧 구주라 부릅니까? [대답] 우리를 우리의 죄에서 구원하시기 분이시기 때문이고(마 1:21; 히 7:25), 또 아드님 외에는 어디에서도 구원을 찾아서도 안 되며 발견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사 43:11; 행 4:11-12; 딤전 2:5; 요일 5:11-12). 

신앙고백문답 제29문답부터 52문답에서는 사도신경의 두 번째 문단부터 일곱 번째 문단까지를 설명합니다. 이 문단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 우리의 구주가 되신 하나님에 대하여 논합니다. 신앙고백문답은 이 주제를 세 부분으로 나눕니다.

  1. 그리스도의 이름과 직분 제29-34문답
  2. 그리스도의 다섯 단계의 굴욕 제35-44문답
  3.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설명 네 단계 제45-52문답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라는 이름의 의미에 관해서부터 공부를 시작합니다. 성경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에게 많은 이름을 부여합니다. 일부는 천상의 별들로부터 취했습니다. 즉 ‘광명한 새벽 별’, ‘의로운 해’(계 22:16; 말 4:2) 등등인 것입니다. 일부는 화초의 왕국으로부터 취했습니다. ‘샤론의 수선화’, ‘골짜기의 백합화’(아 2:1) 기타 등등입니다. 일부는 동물의 왕국으로부터 취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어린 양’, ‘유대 지파의 사자’(요 1:29; 계 5:5) 기타 등등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성경은 더 많은 이름을 제공해 줍니다. 우리 구주를 위한 이 모든 이름들은 부요하고 광대한 그분의 인격과 사역에 대한 의미심장한 표현들입니다.

구주께 대한 극히 일반적인 이름은 ‘주’, ‘예수’, 그리고 ‘그리스도’ 등입니다. 이곳의 문답에서는 ‘예수’라는 이름을 설명합니다. 예수는 ‘주께서 구원하시다’라는 의미의 구약 이름인 ‘여호수아’로부터 온 신약적 용어인 것입니다. 천사는 마리아가 낳게 될 아이의 이름을 ‘예수’라고 부르라고 요셉에게 말했는데(마 1:21), 이는 ‘그는 자기 백성을 죄로부터 구원하실 것이다’라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예수’라는 이름을 듣거나 읽을 때마다, 우리가 죄로부터 구원 받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에 의해서인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치 구약의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였던 것처럼, 신약의 ‘여호수아’이신 예수님은 우리를 영원한 천상의 가나안으로 인도합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구주이시고, 다른 문답에서 가르치는 것과 같이 완벽한 구주이십니다.

[제30문] 그렇다면 자신의 구원과 복을 소위 성인들에게서, 혹은 자기 자신이나 다른 데서 찾는 사람들도 유일한 구주이신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까? [대답] 아닙니다. 그들은 유일한 구주이신 예수님을 말로는 자랑하지만 행위로는 부인하는 것입니다(고전 1:13, 30:31; 갈 5:4). 예수님이 완전한 구주가 아니든지, 아니면 참된 믿음으로 이 구주를 영접한 자들이 그들의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을 주님에게서만 찾든지, 둘 중의 하나만 사실입니다(사 9:7; 요 1:16; 골 1:19-20; 2:20; 히 12:2; 요일 1:7).

제30문답은 예수라는 이름이 의미하는 바 ‘주께서 구원하신다’라는 설명을 추가적으로 설명해 줍니다. ‘예수께서 구원하신다’라고 말하는 것은 예수만이 오직 구주가 되신다는 의미입니다. 신앙고백문답이 기록될 때처럼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다고 단언하는 사람과는 달리, 오늘날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주이심을 부인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가령, 로마 카톨릭 교회는 예수님에다가 소위 그네들이 주장하는 ‘성자들’을 포함시켰는데, 특별히 동정녀 마리아를 들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하듯이 마리아를 비롯한 성자들에게도 기도를 합니다.

16세기에 네덜란드에서 일어난 이단자 야곱 알미니우스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유일한 구원자이시라는 사실을 부정합니다. 그들은 사람 편에서 자신의 믿음을 발휘하여야 하고, 그에 더하여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예수님을 돕지 않는다면,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실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자신들의 ‘선행’과 교회에 등록하는 것이 자신들을 구원한다고 확신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더불어 율법을 지켜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을 율법주의자라고 합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내는 서신을 통하여 이러한 율법주의를 확실하게 반대하였습니다(갈 2:16-21).

이상의 사람들은 예수만이 오직 구주이시고 완전한 구주이시라는 진리를 참으로 부인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에 맞서서, 오직 예수님 한 분만을 의지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것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입니다. 지금 우리가 고백하고 있는 믿음조차도 예수님께로부터 온 선물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엡 2:8).

2020년 10월 17일(SATUR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10주차(27-28문답)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것은 우리가 미래를 대면하는데 있어 자신감을 주는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죄로 물든 세상을 살아갑니다. 살다 보면 언젠가는 우리에게 어렵고 좋지 않은 일들이 일어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살아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시지 않는 이상, 우리 역시 언젠가 죽게 될 것도 자명한 일입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우리가 끔찍이도 아끼고 함께하기를 즐겼던 많은 사람이 우리보다 먼저 죽음을 맞기도 할 것입니다. 멀지 않은 미래에 이러한 일들이 벌어질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어떻게 만족하며 살 수 있을까요?

우리가 자신감을 갖고 미래를 맞이할 수 있는 것은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무엇이든 간에 모든 것은 철저하게 다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의 일부가 아니라면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결코 일어날 수 없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든, 그것이 우리를 아버지의 사랑으로부터 끊어놓을 수도 없습니다.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는 적에게 쫓기고 있는 상황에서도 두려움 없이 몸을 뉘여 잠을 청할 수 있었다고 기록한 바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섭리를 신뢰했던 그의 믿음에서 비롯된 자신감 덕분이었습니다. 시편 3편 1절로 6절과 히브리서 13장 5절로 6절을 읽어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