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 20일 (WEDNE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31문답

께!”라면서 당신을 막무가내로 끌어낸다면 좋으시겠습니까? 물론 아닙니다. 위험하지도 않는데 그렇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죄의 끔찍한 실상을 깨닫지 못하고서는 누구도 구원자를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통상 사람들은 죄를 위험하다고 생각하기는커녕 오히려 즐기는 편입니다. 요한복음 3장 19절을 읽어보십시오.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신께서 "효과적인 부르심"의 역사를 베푸시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구원자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비참한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시는 것임에 다름이 아니기도 합니다. 이렇게 하시는 총체와 관련하여 요한복음 16장 7-8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여기서 죄란 무엇을 가리키는 것입니까? 지난 30주 전에 보았던 제1문답에 따르면, 결국 우리의 인생 전체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삶으로 바뀌지 않는 것 자체가 죄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봅시다.

2019년 2월 19일 (TUE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31문답

저녁상을 다 차린 후 엄마는 뜰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부릅니다. “저녁 다 됐다.”라는 말을 들을 때 어떤 아이는 즉각 들어오지만 어떤 아이는 들은 척 만 척 합니다. 지금 효과적인 부름을 설명하려고 이 예를 들었습니다. “효과적”이라는 말은 의도한 일이 반드시 일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효과적인 부르심이 있으면 반드시 거기에는 응답이 있습니다. 그래서 부르신 목적에 맞는 일을 하게 됩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13-14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여기서 하나님의 구원해 주시는 은혜가 최종적으로 우리에게서 효력을 일으키는 수단에 대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그러면 왜 하필 그런 수단이 필요한 것입니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한 가지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이야기 해봅시다.

2019년 2월 18일 (MO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31문답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을 암송해 보십시오.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어떻게 된다고 말합니까? 왜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보내셨습니까? 어떤 사람들이 영생을 얻습니까? 통상 하나님께서 당신의 독생자 외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셨다는 말을 상투적인 습관처럼 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라면 정말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기독교는 위대한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당신의 아들을 내주실 만큼 큰 사랑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너무도 엄청난 사실이기 때문에 그야말로 하나님께서 믿게 해주시는 일까지도 또한 해주야만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여하튼 지금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그렇다면 그 증거나 경험을 세 가지만 제시해 보고, 서로 어떻게 관련이 있는가를 이야기 해봅시다.

2019년 2월 17일 (SU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31문답

[질문] 효력 있는 부르심이 무엇입니까? [대답] 효력 있는 부르심은 하나님의 성신께서 하시는 일로서(엡 1:17-18; 살후 2:13-14; 딤후 1:9), 우리의 죄와 비참함을 깨닫게 하시고(행 2:37), 우리의 마음을 밝게 하여 그리스도를 알게 하시고(행 26:18; 고전 2:10, 12; 고후 4:6), 우리의 의지를 새롭게 하셔서(신 30:6; 겔 36:26-27; 요 3:5; 딛 3:5), 우리로 하여금 복음 가운데 값없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도록(사 45:22; 마 11:28-30; 계 22:17) 우리를 설복하여 믿게 하시는 것입니다(요 6:44-45; 행 16:14).

제30문답은 그리스도께서 값주고 사신 구속을 성신께서 우리에 적용하시는 방식에 대한 개괄적인 해석이었는 ‘효력 있는 부르심’이라는 데 초점을 두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구속이 성도 개인의 것이 되기 위해서는 다른 모든 것에 앞서 성신께서 효력 있는 부르심으로 역사하사 성도의 생명을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에 연합시켜 주셔야만 합니다. 이 연합 사상이야 말로 그리스도의 구속이 성도에게 적용되고 모든 구속의 효력을 누리게 해주는 핵심 키워드인 것입니다.

이제 제31문답에서는 성신의 주권 역사인 이 효력 있는 부르심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그렇게 할 때에 일반적으로 접하게 되는 핵심적인 논증을 다 포함하는 방식으로 효력 있는 부르심의 성격을 설명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지만, 전체적인 기조는 성도로 하여금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구속을 깨닫고 의지하게 함에 있어서의 성신의 주권과 능력입니다. 한 가지 흥미 있는 사실은 조직신학의 영역에서는 효력 있는 부르심을 소명이라는 용어로써 표현하지만, 소신앙고백문답은 지금처럼 효력 있는 부르심을 선호하여 아예 소명이라는 용어 자체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물론 이것은 두 영역 간에 무슨 큰 차이가 있는 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여하튼 이 주제와 관련하여 반드시 기억해야 할 중요한 진리는, 성신의 효력 있는 부르심이 적용되는 사람에게는 그 이전에 먼저 ‘선택’된 사실을 전제한다는 원리에 대한 것입니다.

본 문답에서 중요하게 제시하는 성경 구절은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요 6:45)라고 한 말씀입니다. 이것은 성신께서 효력 있는 부르심으로써 역사하심에 있어서 일종의 도구를 사용하신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곧 ‘듣고 배운 사람마다’라고 한 데서 보듯이 선포되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칼빈은 성신의 효력 있는 부르심은 다른 한편으로 하나님의 말씀 선포와 다르지 않다고 했습니다. 즉 성신께서 효력 있는 부르심으로 역사하심에 있어서 말씀 선포를 도구로 사용하시는 의미였습니다.  순서를 보자면,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선택하시고(제20문답), 역사 속에서 성신의 효력 있는 부르심을 통하여 성도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에 연합시켜 주시는데(제21문답), 이때 성신께서는 말씀 선포하고 하는 외적인 수단을 사용하십니다(제31문답).

이쯤되면, 말씀 선포의 사실 못지 않게 말씀 선포가 구성하고 있는 내용에 관심을 돌리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말씀 선포란 단순히 소리의 전달을 의미하지 않을 것이 명백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말씀 선포는 내용적으로 기독론을 구성할 것이 자명한데, 첫째, “우리의 죄와 비참함을 깨닫게 되고”, 둘째, 우리의 마음이 밝아져서 그리스도를 알게 되고, 셋째,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도록 의지의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하지만 성신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단계에서 성신께서 효력 있는 부르심을 베푸심에 있어서 말씀 선포를 사용하실 때, 오직 창세 전에 택함을 입은 사람들만이 이에 응답할 수 있는 법이라고 한 좀 전의 논증을 다시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소명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봅니다. 첫째, 하나님은 일반적인 소명으로는, 외면적인 복음 선포를 통하여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자신에게로 부르십니다(마 24:1-9). 둘째, 성도에게만 주시는 소명으로는 그의 영으로써 성도들의 마음을 비추시어 선포하신 말씀이 그들의 마음에 머물게 하십니다(마 22:11-13). 이런 차원이 있으므로, 예수님께서는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마 22:14)고 한 말씀을 뒤이으신 것입니다. 물론 예수께서 베푸신 ‘왕의 천국 잔치 비유’는 (그것이 베풀어진 상황을 볼 때) 성도들에게 적용될 것이 아니고, 믿노라고 하면서 교회에 들어왔으나 그리스도의 성결을 입지 않은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창세 전에 선택된 사람으로서는 성신의 효력 있는 부르심이 그대로 역사되기 마련인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고 의지하게 되면, 상대적으로 성도가 자신의 죄의 비참함을 절감하면서 어찌하든지 예수 그리스도께로 피난하는 실상이 수반되기 마련입니다.  성도는 다른 무엇에 앞서 죄를 미워하는 사람입니다.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초지일관 신뢰하는 사람입니다. 이 두 관계는 분리되지 않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성도에게서는 죄가 감소되고 선행은 증가되는 변화가 뚜렷해지기 시작합니다. 물론 그럴지라도 신자들의 행위는, 하나님의 은혜를 더더욱 뚜렷하게 인식하게 해주는 하나님의 선물이며, 자신들의 선택(their election)을 알게 해주는 부르심의 표징들(signs of calling)인 밖에 다름이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교회 안에서 일어나게 됩니다. 왜냐하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면, 그 사람은 즉각 동시에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019년 2월 16일 (SATUR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30문답

그리스도께 연합되면 그분의 영광 안에 거하는 축복을 얻습니다.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때 우리는 그분의 영광에 참여할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 4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에게 연합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당신이 그리스도께 연합되었던 방법은 무엇입니까? 그러한 연합은 지금 현재 당신의 삶을 어떤 식으로 변화시키고 있습니까? 이 변화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무엇입니까?

2019년 2월 15일 (FRI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30문답

맑은 생수에 검정 잉크 한 방울이 떨어지면 순식간에 전체에 퍼지면서 물을 망쳐버립니다. 그처럼 인간은 아담의 부패를 물려받아 전적으로 타락했으므로, 슬픔, 고통, 죽음, 심판 등으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진노를 겪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와 연합된 삶이 되었으므로, 반대로 하나님의 축복으로 인한, 기쁨, 평안, 영생을 누립니다. 에베소서 2장 8-10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이 세 구절들에서 무엇이 핵심 사상이며, 구체적으로 무슨 의미입니까?

2019년 2월 14일 (THUR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30문답

성도는 장차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할 존재들입니다. 자주 듣는것 같아 실감이 나지 않습니까? 오, 오, 제발 아니길 바랍니다. 혹 그런것이라면 지금 우리의 믿음의 모든 행위는 모순일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21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예수님이 부활하셨으니, 그에 접붙여져 있는 우리도 반드시 부활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2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계속해서 로마서 6장 4-7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당신의 경우 가장 절실하게 느껴지는 단어는 무엇입니까? 사람들에게 자랑하시겠습니까?

2019년 2월 13일 (WEDNE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30문답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십자가상에서의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의 죄값을 위한 대속이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 자신이 죄값을 치른 것으로 여겨주십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5장 1절 말씀처럼 우리는 화평을 누립니다. 그런데 이 화평은 단순히 심리적 효과일 수 없고, 도리어 매우 역동적인 경험으로 증명되는 그런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어떠한 방법으로 이 진리를 확실하게 경험하는 것이겠습니까?

2019년 2월 12일 (TUE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30문답

히브리서 11장 6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려면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로마서 8장 8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죄로 가득한 본성의 지배를 받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없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믿음은 어디에서 옵니까? 에베소서 2장 8-9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것은 성신께서 하나님 백성 안에서 믿음을 일으키시고 예수님을 믿어 그분께 연합되도록 역사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이상의 사실을 염두에 두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믿음의 총체가 된다고 할 경우, 무슨 의미인지 설명해 보십시다.

2019년 2월 11일 (MO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30문답

아담은 온 인류의 조상이므로 그가 하나님께 불순종한 죄는 우리 모두의 불순종으로 여겨집니다. 하지만, 단순히 '여겨지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여겨진 바가 의미하고 있는 '어떤 사실'이 실제로 우리 안에서 효력을 발휘합니다. 곧 '부패성'입니다. 게다가 이것은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실제적인 능력이므로, 권세라고도 합니다. 여기서 벗어날 수 있으려면 예수 그리스도께 연합되어 그의 생명력으로서 살아가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이제 성도를 가리켜 '새로운 피조물(창조물)'이라고 하는 의미가 조금은 더 선명해졌습니까? 다른 사람에게 어떤 식으로 설명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