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21일(TUESDAY) ● 웨스트민스터 소신앙고백문답 제007문답 해설과 묵상

창조계가 창조된 목적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드러냄으로써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대저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리라”(합 2:14). 이사야서에도 비슷한 약속이 나옵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사 40:5). 그러면 역시 같은 창조물인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무엇이라고 배웠습니까? 이 최고의 목적을 가능케 해주시려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중생시켜 주셨다는 것을 잊지 마십니다. 오늘 하루 어떤 방식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 보시겠습니까? 

 

2021년 9월 20일(MONDAY) ● 웨스트민스터 소신앙고백문답 제007문답 해설과 묵상

하나님의 창조 목적은 피조물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창조하시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조화로운 세상을 미리 계획하셨는데 이것을 하나님의 작정이라고 합니다. 시편 33편 11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우리는 나름 계획을 세우지만 그것을 수정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가령 소풍을 가기로 계획했지만 비 때문에 수정이 불가피할 때가 있습니다. 비가 올 줄을 미리 알았더라면 피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모든 것을 미리 아시는 전지전능한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영원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미리 작정되었으므로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이 사실은 우리가 받은 구원과 관련하여 어떤 의미를 도출합니까?

 

2021년 9월 19일(SUNDAY) ● 웨스트민스터 소신앙고백문답 제007문답 해설과 묵상

[제007문] 하나님의 작정이란 무엇입니까?  [대답] 하나님의 작정은 자신의 뜻대로 계획하신 영원한 목적입니다. 그 목적에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일어나는 모든 일을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미리 정하셨습니다(시 33:11; 사 14:24; 행 2:23; 롬 9:22-23; 엡 1:4, 11-12).

이곳의 주제는 ‘하나님의 작정’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신다고 선언합니다(엡 1:11). 즉,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어떠한 일들은 결단코 우연이나 우발적이지 않습니다. 신혼 부부에게서 귀여운 새 생명이 태어나거나, 공사장에서 인부가 잘못하여 벽돌을 떨어뜨리게 되는 사건까지 포함하여, 진정 그 어떤 것도 이유 없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모든 일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습니다.

그러한 모든 일의 궁극적 원인은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창세 전부터 품으신 계획입니다. 욥은 “그 날을 정하셨고 그 달 수도 주께 있으므로 그 제한을 정하여 넘어가지 못하게 하셨도다”(욥 14:5)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잠 16:4)라고 한 것입니다. 또 성경 다른 곳에서는 하나님께서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며 …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사 46:10)라고 하셨다고 선포했습니다. 바울은 이 놀라운 진리에 사로잡혀,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롬 11:36)라고 선포했습니다.

기독교인이라면 모름지기 이 진리를 확신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일부 성도들은 이따금씩 이 진리를 망각하곤 합니다. 때로는 확실한 신앙으로 고백하기에 머뭇거리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다시 한 번 이 진리를 확증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미리 계획하심에 대한 실례를 사람의 유사한 경우로 들어봅시다. 여기에 자신의 집을 짓기 위해서 설계를 마친 사람이 있습니다. 주춧돌을 놓기 전부터 세밀하게 계획을 세웠습니다. 실제로 집을 건축하기 시작하면 집을 짓는 사람들은 이 계획을 따라야만 합니다. 건축은 철두철미 이 청사진에 따라 시행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위대하신 계획에는 비할 수 없는 연약한 인간의 실례이긴 하지만, 유사한 보기가 될 것입니다. 사람이 집을 지을 때 모든 것을 미리 계획하는 것과도 같이,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계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일어날 모든 것을 미리 작정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이러한 작정의 원대한 두 가지 특징을 살펴봅시다.

첫째, 하나님의 계획은 영원합니다. 즉, 이 계획은 하나님이 이미 계획하셨을 뿐만 아니라 영원토록 지속하십니다. 이 점이 인간의 계획과 다른 점입니다. 인간은 처음부터 완성된 계획을 갖고 있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호와의 도모는 영영히 서고 그 심사는 대대에 이르리로다”(시 33:11). 또한 하나님은 인간처럼 날마다 그때 그때의 필요에 따라 그렇게 계획하지 않으시고, 동시에 그렇게 계획하신 것을 중간에 변경시키시는 경우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작정, 곧 계획은 항상 그 마음에 있으며, 결코 변한 적이 없으며, 추호라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작정은 자신의 뜻대로 계획하신 영원한 목적입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더욱이 하나님께서는 누구의 조언도 필요로 하지 않으시고, 이미 모든 것을 다 아시는 능력으로써 충분히 그렇게 하십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은 계획하시는 것과 성취하시는 것이 같도록 스스로 협의하십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롬 11:33-34).

둘째, 하나님의 계획은 절대적입니다. 즉 일단 하나님이 계획하시지 않았다면 어떤 일도 결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인간은 집을 설계할 때 나름의 필요한 척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계획대로 되지는 않습니다. 집의 건축에 사용될 정확한 목재나 벽돌의 숫자 같은 세세한 항목까지 정확하게 맞추지는 못합니다. 건축하는 데 걸리는 정확한 날짜도 계획한 대로 맞추지 못합니다. 게다가 전혀 계획하지도 않은 일이 일어나고, 그것이 전체 계획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모든 것이 완전하게 결정됩니다.

결론적으로, 그러면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의도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신앙고백문답은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라고 고백합니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께서는 이전에는 덜 그러하시기 때문에 이제는 보다 더 영화롭게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과거와 미래가 없이 항상 동일한 차원에서 한결 같이 영광스러우시기 때문입니다. 참 뜻은 이렇습니다. 이제 우리의 입장에서는 하나님께서 계획을 세우시고 완성하시는 것으로서의 구속사의 오묘한 경륜을 신비롭게 깨닫게 됨에 따라, 하나님께서 선하신 기쁨과 존귀와 찬양을 받으시도록 하나님을 길이 길이 드높여야 한다는 의미인 것입니다(계 4:11).

 

 

2021년 9월 18일(SATURDAY) ● 웨스트민스터 소신앙고백문답 제006문답 해설과 묵상

구속의 경륜을 통해서 성자 예수님의 사역은 보다 특별한 특성을 드러내게 되었습니다. 친히 인간이 되셨고, 인간의 모든 것을 체휼하셨고, 급기야 십자가에서 형벌까지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구원을 받고, 구원 받은 자로서 살고, 마침내 영원한 생명 세계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음에 있어서, 모든 영광과 권세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고, 따라서 성자께서는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 마태복음 1장 23절과 시편 2편 10-12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성신님도 하나님이시므로 마찬가지로 그렇습니다. 고후 3:17-18을 보십시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는 자기 피로써 교회를 사신 데 따른 것입니다(행 20:28). 이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2021년 9월 17일(FRIDAY) ● 웨스트민스터 소신앙고백문답 제006문답 해설과 묵상

삼위는 ‘본질이 동일’하다고 말합니다. 무슨 뜻일까요? 여호와의 증인은 성부만 하나님이시고 예수는 비록 특별한 분이긴 하지만 성부와 같은 하나님은 아니라고 우깁니다. 그러나 동일한 본질을 가졌다는 말은 성자, 성신도 성부와 똑같이 완전한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성자, 성신의 권능과 영광은 성부와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성부, 성자, 성신을 한 하나님으로 알고 예배합니다. 에베소서 4장 6절과 요한복음 4장 23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그러고 보니, 삼위일체께서 성부, 성자, 성신으로 계시되신 것은 순전히 인간에게 구속을 베푸시기 위한 경륜이었을 뿐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것의 의미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까?

 

2021년 9월 16일(THURSDAY) ● 웨스트민스터 소신앙고백문답 제006문답 해설과 묵상

제3위 하나님은 성신이십니다. 성신은 성부와 성자가 보내신 영이십니다. 물론 성신은 창조에 참여하셨고 성경을 기록하도록 영감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성신께서도 능동적으로 참여하십니다. 사람들을 중생케 함으로써 예수님을 믿도록 유도합니다. 요한복음 3장 3-5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성신은 하나님 백성 안에 살면서 더더욱 예수님을 닮아가도록 이끄십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당신은 성신의 인도를 받는 삶을 산다는 것의 의미를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2021년 9월 15일(WEDNESDAY) ● 웨스트민스터 소신앙고백문답 제006문답 해설과 묵상

성자 예수님은 하나님의 제2위이십니다. 순서가 아니라 구속 경륜상 그렇습니다. 태초부터 계셨던 하나님이신 성자께서 말구유에서 태어나실 때 인간의 본성을 타고나셨습니다. 그리고 가르침과 사역을 통해서 하나님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주십니다. 그에 따라 이제 그와 같은 구속 경륜을 계시해주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골로새서 1장 15-16절 말씀을 통해 성자 예수님께서 무슨 일을 하셨는지 확인해봅시다. 성부 하나님은 아드님 예수를 통해 선택하신 자들에게 사죄를 베푸시고 또한 화목하신 것입니다. 골로새서 1장 19-20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지금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께 연합되어 있습니까? 그 증거는 무엇입니까?

 

2021년 9월 14일(TUESDAY) ● 웨스트민스터 소신앙고백문답 제006문답 해설과 묵상

삼위 하나님의 제1위는 성부입니다. 성자이신 예수님의 아버지시며 당신의 백성에게 성신을 보내시는 분입니다. 고린도전서 8장 6절을 읽어보십시오. 하나님은 만물을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위해 창조하셨습니다. 하지만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타락의 길을 택함에 따라 하나님의 영광은 훼손의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지혜가 나타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구원자로 보내 죽임을 당하게 하심으로써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속주로서의 경륜이 시작되는 것이었습니다. 요한일서 4장 14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그런데 하나님의 구속 경륜은 하나님의 선택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합니다.  이것을 좀 더 쉬운 말로 표현해 보시겠습니까? 

 

2021년 9월 13일(MONDAY) ● 웨스트민스터 소신앙고백문답 제006문답 해설과 묵상

일반적으로 하나님은 한 분이시라고 알고 있지만, 성경은 성부 하나님, 예수 하나님 , 성신 하나님에 대해 말하므로, 언뜻 세 분 하나님을 연상합니다. 신앙고백은 오직 한 분 하나님의 신격에 세 위가 있다고 합니다. 인간과는 달리 하나님은 삼위로 계시는 한 분이십니다.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본래부터 인간은 유한에 갇혀 있으므로 무한이신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욥기 11장 7-8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성경은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시라고 거듭 말합니다. 또한 성부, 성자, 성신 삼위가 모두 하나님이라고 거듭 말합니다. 잘 이해할 수 없는 이 진리를 이해할 수 있으려면 반드시 구속사(경륜적 삼위일체)를 전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한 번 설명해 보시겠습니까?

 

2021년 9월 12일(SUNDAY) ● 웨스트민스터 소신앙고백문답 제006문답 해설과 묵상

[제006문] 하나님의 신격에는 몇 위가 계십니까? [대답] 하나님의 신격에는 성부, 성자, 성신, 삼위가 계십니다(마 3:16-17; 28:19; 고후 13:13; 벧전 1:2). 이 삼위는 한 하나님이시며, 본질이 동일하시고 권능과 영광이 동등하십니다(시 45:6; 사 63:10; 요 1:1; 10:30; 14:16; 17:5; 행 5:3-4; 롬 8:9; 9:5; 골 2:9; 유 24-25).

제6문답은 정확하게 하나님의 ‘삼위일체 되심’에 대한 고백입니다. 성경은 삼위일체론을 선포하면서, 각 위격의 구별을 확실하게 선포하지만, 동시에 각 위격의 권능과 영광이 동등하시다는 데 대해서도 확실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역사를 보면, 어거스틴에 의해서 보다 확고부동한 삼위일체 교리가 확립되기까지, 이 교리의 신비를 해설하는 과정에서 주로 두 가지 측면에서 중대한 실수가 있어온 것을 보게 됩니다.

첫째로, ‘양태론’으로 빠져버렸습니다. 이 주장에 따르면, 배우가 연극에서 자신의 역할을 두 가지로 할 때도 있듯이, 일위로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필요에 따라 ‘다른 역할을 하신다’라는 식으로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아버지의 역할을 하시는 동안에는, 사실상 아들과 성령은 계시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은 성경의 선포에 명백히 위배되는 것으로, 하나님의 삼위께서 동시에 나타난 경우 즉각 그 허구성이 드러나 버리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마 3:16-17)라고 한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 서 계실 때, 동시에 하늘로부터 성신이 임하셨고, 또한 아버지께서는 하늘에서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하나님께서 1인 3역의 역할극을 하셨다는 주장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확실하게 보여줍니다.

둘째로, ‘군주론’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이것의 기본 사상은 삼위를 인정하되, 오직 일위만이 최고로 높은 군주가 될 수 있다는 이론입니다. 즉 아버지 하나님을 가장 높게 보아, 아들이나 성령은 더 낮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은 언뜻 보기에 성경과 일치되는 듯도 합니다. 가령 예수님께서 “아버지는 나보다 크시다”(요 14:28)라고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빌립보 2:6과 같은 본문을 읽으면, 이런 사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그리스도께 대해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셨다”(빌 2:6)라고 확실하게 선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2위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무궁하신 신적 본질에 있어서 아버지와 동등하십니다. 단지 경륜적 구속사를 이루시기 이한 인성의 입장에서, 그렇게 낮아지심 스스로 취하셨기 때문에 “아버지는 나보다 크시다”라고 하셨을 뿐인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성경의 증거에 따라 한 분 하나님이시지만 삼위로 존재하시기에 각각 구별되시고, 하지만 위격상 삼위가 완전하게 동등하신 분으로서의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승천하시기 앞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신의 이름에로 세례를 주라”(마 28:19)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기서 복수를 사용하여 ‘이름들’이라고 하지도 않으셨지만, 동시에 한 분만을 언급하시지도 않은 것은, 삼위일체의 존재를 전제하지 않으면 성립될 수 없는 참으로 절묘한 표현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만약 이곳의 이름들이 ‘내가’, ‘나에게’, ‘나 자신’ 등과 같이 실제적 동의어였다면 “아버지의, 아들의, 성령의 이름에로 …”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진실로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각 위격이 각각의 주체성이나 고유의 인격을 가진 바대로 “아버지의, 아들의, 성신의 이름으로 …”라고 확실하게 구분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명백히 하나님의 삼위일체되심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참으로 삼위일체 교리는 성경 전체를 통해서 확실하게 나타나는 명백한 진리입니다. 게다가 계시의 시초부터 삼위일체 교리에 포용된 동전의 양면 관계 같은 근본적 두 진리가 항상 동등하게 강조되고 있음은 흥미롭습니다. 하나님은 단일한 분, 곧 한 분 하나님이시라는 사실과 더불어 하나님의 복수성, 즉 삼위일체시라는 사실이 동등하게 강조되었습니다. 이는 성경의 처음 시작하는 부분서부터, 즉 “그리고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가 우리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자 ... 하나님이 자기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고 …”(창 1:26-27)라고 한 데서부터 선포된 진리입니다. 이렇게 근본적으로 삼위일체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의 ‘존재론적 특성’은, 구속사 속에서 풍성하게 계시된 ‘경륜적 삼위일체’라고 하는 특성을 통하여 오늘날과 같은 위대한 구원의 시대가 열리는 기반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