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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99호. 교회와 성도의 영광과 능력

오직 가능하다면 교회뿐이지만, 지금은 교회라고 한들 이러한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을 봅니다. 철저하게 신본주의 형태를 띠어야 하는 곳이 교회이지만, 현재로서는 사방팔방에 ‘거짓 교회’들이 널려 있어서 사실상 세상이나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겉보기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잔뜩 치장하고 있지만 내적인 동력은 철저하게 인본주의인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세상의 기본적인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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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98호. 성신의 역사 현장으로서의 교회

지금 스가랴는 앞서 이스라엘이 멸망한 것은 결국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신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한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선지자 제도’는 ‘제사 제도’ 및 ‘통치 제도’와 더불어 이스라엘을 구약의 교회로 형성시켜 주는 근본 정치 질서입니다. ‘이전 선지자로 외친 말’이라고 했을 때 특정한 선지자들 몇몇에 대한 지칭이기에 앞서 이러한 제도, 또는 기관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선지자들의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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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97호. 그리스도의 삼중직 수행 현장으로서의 교회

이상 예수 그리스도의 삼중적 직책이 상호 어떻게 협업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가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주지의 사실이듯이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자신의 부활 생명을 공급하시고, 또한 계속해서 교회를 이끌어 나가시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때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에 교직을 제정하신 후 그것이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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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96호. 성도의 선한 삶의 원천으로서의 교회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십계명을 중심으로 한 일련의 도덕률을 대할 때 핵심을 잃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성도는 십계명의 덕목들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하지만 동기나 내용은 세상의 방식과는 전혀 달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도덕률을 가르치는 것은 윤리학을 쓰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것 저것 조항들을 만들어 내거나 집대성하여 도덕 교과서를 쓰는 것은 의미가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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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95호. 사람의 명과 가르침을 좇지말라

바울은 계속해서 “사람의 命과 가르침을 좇느냐”(22절하)라고 일갈합니다. 가슴 뜨끔한 책망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원리상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배척하고 사람의 가르침을 추종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물론 사람의 가르침 그 자체가 나쁘다는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 안에 교역자들을 세워 그들로 하여금 당신의 진리를 가르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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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94호. 머리를 붙드는 신앙생활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생명적으로 연합되는 방식이 아니고서는 어느 누구도 교회원이 될 수 없다는 데 대해서는 누누이 살펴본 대로입니다. 성도가 교회원이 된다는 것은 마치 산악회나 낚시회 같은 동우회에 가입하는 것처럼 그렇게 교회라고 하는 또 하나의 단체, 곧 종교 단체에 가입하는 정도의 의미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 사실은 교회에 가입하려는 자들에게는 필수적으로 신앙고백이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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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93호. 부활생명으로서 사는 삶

성도가 구원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는 것은, 하나부터 열까지 철두철미 하나님의 선물이요, 은혜요, 그래서 어떤 경우나 어떤 식으로든 마치 그것이 자신에게서 난 것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하나님의 선물로서 받는 구원의 내용이 무엇이냐고 할 때, 놀랍게도 예수 그리스도께 접붙여진 것이라 하는 말입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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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92호. 디도의 교회 창설 사명

여하튼 디도는 부족한 면면들을 바로 잡는 것을 통하여 실로 교회를 세워야 했는데, 자기 혼자의 힘으로는 도저히 역부족일 수밖에 없으므로, 장로들을 세워 그들과 동역하는 방식으로 그렇게 해야만 했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부족한 일을 바로 잡으라고 한 말에 바로 이어서 “…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라”라고 한 데서 충분히 알게 됩니다. 즉 바울의 명령이자 지시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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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91호. ‘같은 믿음’에 대한 소고

종교개혁은 다른 차원에서는 신앙고백 작성사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 이는 당시 거짓 교회였던 로마 카톨릭 교회를 상대로 정통 교회 논쟁을 벌여야 했던 상황 속에서 필수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개혁자들로서는 자기네가 하고자 하는 교회개혁 운동의 특성상 “그러면 교회가 무엇이냐?”, 혹은 “교회를 성경적으로 어떻게 설명하는 것이 가장 합당한가?” 하는 문제를 피해갈 수 없었는데,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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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90호.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도록 서로 돌아보자

그런데 본문에서 히브리서 저자는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자”라고 할 때에 특별히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자”(25절상)라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여기서 ‘모인다’고 한 말은 동사가 아니라 명사(ἐπισυναγωγὴν, 에피시나고겐)인고로 ‘모이다’가 아니라, ‘모임(the assembling, KJV)’이라고 읽는 것이 정확합니다. 즉 모이는 행위나 동작을 가리키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