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xxxxx-1[1]

제109호. 자기부정의 기본원리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자녀된 신분으로 이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닮아가는 일이야 말로 아주 중요한 신앙의 핵심이라고 살펴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닮아갈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새 생명을 심어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 생명을 심어주신 목적은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더보기

xxxxxx-1[1]

제108호. 그리스도인의 의에 대한 바른 이해

보통 기독교계에서 ‘선행’이나, ‘의’, 또는 ‘도덕’ 등에 대해 말하는 것을 보노라면, 상당히 잘못된 이해를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됩니다. 가령, 성경에 있는 이런 저런 좋은 말씀들을 인용해서 도덕적인 교훈들을 쭉 나열하면서 하나씩 둘씩 구체적으로 실천해 나갈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들을 듣고 있노라면, 더보기

xxxxxx-1[1]

제107호.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리

중생한 사람은 성령으로써 거듭난 사람입니다. 이 성령의 능력에 의하여 성도의 옛 사람은 완전히 폐기되어 버리고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창조되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이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성도는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일이 먼 미래에 이루어진다는 것이 아닙니다. 더보기

xxxxxx-1[1]

제106호.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어다

하지만 ‘더불어 사는 삶’의 원천으로서의 ‘토지의 사유권 금지’라고 하는 이 자연법 정신은 현실적으로는 철저하게 무시되어왔고, 그에 따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나라를 새롭게 시작하실 때에 내신 성문법(성경)을 통해서 다시 명백히 규정하셨던 것입니다. 여하튼 오늘날 자본주의의 폐해에 대한 반대 체제로서 사회주의가 다시 부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조선후기에  더보기

xxxxxx-1[1]

제105호.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찌어다

하나님의 법이 지닌 계시적 성격, 특히 이것이 미래를 지향하는 요소를 중요하게 지니고 있다는 특성상, 그것의 궁극적인 목표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되는데, 개혁된 교회의 신학자들은 이것이 바로 기독론(基督論)을 중심으로 한다는 데 일치를 보았던 것입니다. 기독론이란, 신론과도 같이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to be and to work)을 중심 주제로 다루는 학문입니다. 개혁된 교회는  더보기

xxxxxx-1[1]

제104호. 하나님의 은혜와 언약적 징계

현실이 이러하기 때문에 이제 우리로서는 더더욱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고, 우리의 모습을 냉철하게 평가하고 개선함에 있어서 인색하지 말아야겠습니다. 그래야 고칠 수 있는 법이기도 하지만, 또 제아무리 지금 현재의 상태가 최상이라 할지라도 여전히 좀 더 깊은 의미의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다시금 개혁할 거리를 찾아서 개혁해 나가는 데서 우리의 신앙도 안전하겠고,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더보기

xxxxxx-1[1]

제103호. 하나님의 은혜를 각성하자

지금 당시의 복잡한 역사적 배경을 굳이 이야기하는 이유는, 이사야가 선지자로서 적극 활동하게 된 것은 바로 이러한 상황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사야 선지자는 이 시기에 아주 중요한 인물이 되어 하나님 나라를 섬겼습니다. 선지자로서 갖추어야 할 신앙적 절개와 기개도 만만치 않았으므로, 왕들의 권세 앞에서도, 거짓 선지자들의 위협 앞에서도, 흔들림 없이 자신의 더보기

xxxxxx-1[1]

제102호.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신뢰하는 신앙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그와 같은 방식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는가라고 할 때, 또는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정체성이다라고 하는 것은 태초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그러한 존재로 창조하셨기 때문이라고 하는 원점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렇게 창조된 상태에서 떠나버렸다, 아니, 창조된 상태에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벗어나 타락해버렸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엄중한 문책을 더보기

xxxxxx-1[1]

제101호. 교회의 직분에 대한 소고 ②

치리 장로는 목사에 버금가도록 성경에 정통해야 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이러한 능력을 갖춘 장로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직분을 무슨 벼슬이나 명예로만 생각하지, 거기에 부속되어 있는 의무와 책임에는 무관심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렇게 된 데에는 그 장로가 속한 교회의 목사의 책임 문제가 절대적입니다. 일반적으로 목사들은 “장로가 성경 지식이나 교회의 경영 원리를 더보기

xxxxxx-1[1]

제100호. 교회의 직분에 대한 소고 ①

지금은 옛날 중국의 춘추전국 시대는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이 좁은 땅덩어리에 무슨 교파다, 무슨 교단이다, 무슨 측이다 하면서 장로교만 하더라도 일백 개는 훨씬 넘는 교단들이 난무하고 있는데, 상대적으로 그네들이 경쟁하듯이 쏟아내는 목사들이 스스로 소위 목이 좋은 곳을 선점하고는 ‘무슨무슨 교회’라고 하는 간판을 내걸고 교회를 시작하는 그런 현상이 지배적이기 때문입니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