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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9호. 교회의 삼중 권세

그러므로 교회의 참된 권세는, 교회가 얼마만큼이나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느냐와 비례합니다. 다시 말하여, 교회는 교리를 작성할 때에 성경에 근거해야 하고, 모든 반론들에 대해서 성경으로써 물리쳐야 합니다. 교회가 진리를 권위 있게 가르치는 유일한 방법은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의 규정과 표준에 따르는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교회는 매사를 잘 짜인 헌장에 따름으로 질서를 유지케 할 교회법,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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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8호. 교회의 질서로서의 직분

여기서 분명히 해두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결집하실 때 오직 말씀만을 사용하시지, 결코 어떠한 강제력이나 보조 수단도 사용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한 것입니다. 강제력이나 보조 수단 불사용 원칙을 생각한다면, 교회는 사람을 억지로, 또는 미끼로써 소집하려는 일체의 유혹에 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중세기에 사람들을 무력으로 동원한 것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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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7호. 어머니로서의 참된 교회

교회는 근사한 치장으로써 세상에게서 인정을 받는 곳이 아닙니다. 세상의 사랑과 인정을 받으려고 온갖 세속의 것들을 끌어안는 교회란 실상은 얼마나 비참한지 모릅니다. 교회는 오직 우리를 비우고 우리의 죄와 죄책을 인정하면서, 그러한 자들을 구원하시는 그리스도를 붙잡는 데 모든 역량을 쏟는 곳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그리스도를 붙잡을 수 있는 것은 이미 선택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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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6호.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그러나 유독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최종 종말 또는 하나님의 나라의 최종 완성의 시기에 대해서는 줄곧 당신 자신의 마음에만 간직하시고, 우리에게는 침묵으로 일관하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 편의 필요에 따른 것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사람 편의 연약성을 고려한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늘 생각이 짧고 부족한 우리의 입장인지라, 언뜻 생각하기에 “하나님께서 종말의 시기나 때를 정확하게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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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5호. 사람의 최고의 목적과 성경과 교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를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저주와 사망이 더 이상 왕노릇 하지 못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하시는 능력이 죄의 왕노릇 하는 권세보다 더 강한 권세로써 작동하기 때문입니다(롬 5:12-21). 더 강한 권세자께서 자신을 대속물로 내어주시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고, 그에 따라 우리는 구원을 받아 새 생명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롬 6:2-5).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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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4호. 내세를 소망하는 삶

애착(愛着)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전적으로 정의하자면, 몹시 사랑하거나 마음이 끌려서 떨어지지 아니하는 그러한 마음이나 행동을 가리킵니다. 이런 인상을 조금 더 강하게 나타내는 단어로는 집착(執着)이 있습니다. 보통 애착이 지나치면 집착이 된다고 말하는가 봅니다. 그런데 애착이든지 집착이든지 우리 인간은 본능적으로 현세에 대해서 이렇게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러한 우리가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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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호. 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는 신앙

그리스도인이 져야 하는 십자가에는 특별한 의미가 들어 있는 것도 있습니다. 그것은 ‘의를 위해 받는 박해’의 경우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이 이런 유의 십자가를 질 경우, 이는 자신이 아주 뛰어난 특권을 소유했음을 보여주는 것이 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이 ‘자신의 군대’라고 하는 특별한 표시를 내려주시는 것과 같은 것이므로, 그리고 항상 승리하게 해주실 것이므로, 결국 하나님께서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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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2호. 기꺼이 자기 십자가를 지는 신앙

하지만 우리가 복음을 위하여, 즉 자기 부정의 삶을 사느라고 십자가를 질 때, 그것은 사실상 ‘그리스도와의 교제’에 동참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우리가 사실상 ‘그의 부활의 권능’을 붙잡는 것이기도 합니다. 즉 우리가 그의 죽으심에 참예하는 때에 그것은 ‘그의 영광스러운 부활’에 참예하는 결과도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원리를 확실하게 선포합니다.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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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1호. 하나님과의 관계에서의 자기부정

태초의 인간에게서는 얼마나 잘 먹고, 얼마나 많이 소유하느냐 하는 기타 등등은 본질에 속하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을 쫓아 살게 하시려고 인간을 창조하신 것이고, 따라서 인간이 그렇게 살 경우, 하나님께서 그러한 인생들이 생존을 위해 필요로 하는 의식주 문제는 기본적으로 베풀어 주셨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약적인 표현으로 보자면,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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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0호. 이웃과의 관계에서의 자기부정

사람은 매사에 자신을 높이는 습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사실 사람마다 이런저런 장점들을 갖고 있기 마련인데, 원칙적으로 그러한 모든 장점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신자들에게는 물론이지만 불신자들에게까지도 자신이 자랑할 만한 어떤 것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바가 아니고서는 어느 누구도 스스로의 힘으로는 소유치 못합니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