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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9호. 신앙이냐, 위선이냐

사도 바울도 한 때는 이러한 종교적 확신범이었지 않습니까? 그는 유대교의 가르침과 전통에 철저히 물들어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옳고 정당하다고 확신하는 가운데 그리스도인들을 ‘신흥 종교’라고 보아 대대적으로 핍박하며 나섰던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내내 바울은 자신의 신앙이 잘못되었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아예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수호하고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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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8호. 깨끗한 믿음으로 나아가자

바울이 “집들을 온통 엎드러치는도다!”라고 한 탄식은 오늘날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 교회부터라도 더더욱 ‘깨끗한 믿음’을 보다 더 ‘깨끗한 믿음’이 되도록 다방면으로 주의를 기울여 나가야겠습니다. 지금 우리라고 한 것은, 우리 교회만이 청정하다는 의미가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고 그야말로 보배로운 믿음으로 받들어 나가는 이 시대의 모든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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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7호. 온전한 믿음으로 나아가자

기독교 복음은 그야말로 진리의 세계, 진리의 덩어리 그 자체이므로, 이러한 복음의 진리됨에서 나오는 ‘건전한 정신’이라는 것이 있고, 복음의 특성에서 나오는 ‘통일된 방향’이라는 것이 있고, 복음의 내용에서 나오는 ‘건전한 상식’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지극히 상식적이고 지극히 건전하고 지극히 도덕적이다 하는 말입니다. 이것은 복음을 믿지 않는 구원을 받지 못한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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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6호. 저희를 엄히 꾸짖으라

그런 다음에 “… 네가 저희를 엄히 꾸짖으라 …”라고 했습니다. 사실 여기서 ‘배만 위한다’고 한 표현은 얼마나 비참합니까? 하루 온 종일 먹을 것만 찾아서 어슬렁거리는 영락 없는 짐승의 모습을 상기시킵니다. 짐승의 삶이란 것은 이성이 없으므로 본능대로만 살 수밖에 없는 것이어서, 먹고 나면 자고, 자고 나면 먹고, 그렇게 하는 것이 다입니다. 그런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존재가 이렇게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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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5호. 마땅치 않은 가르침의 입을 막으라

여기에 분명히 ‘제자를 삼아라’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의 핵심은 어떠한 각도에서 보든지 간에, 결국 ‘전체 교회의 설립과 확장’이라고 하는 큰 틀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례를 주라’라고 하신 말씀이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세례를 준 다음에 그들에게 제자를 삼는 특별 교육을 실시하라 하는 의미가 아닙니다. 제자를 삼기 위해서 세례를 주라는 것이고, 그에 뒤이어 지속적인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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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4호. 교회 안의 마땅치 아니한 가르침들

성경을 전체적으로 이해하지 못하여 주연된 사고방식을 갖추지 못하면, 이렇게 할례당의 모습에서 보듯이 자기 딴에는 성경을 철저하게 신봉하는 것이라고 주장할지라도, 엄밀히 말하자면 사실상 성경의 가르침을 위반하기만 하는 그런 모순이 불가불 자행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모순을 여기 할례당에게서도 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할례당들의 경우는 불순한 의도로 일부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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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3호. 교회에서의 더러운 이익에 대한 소고

몇 번이고 반복하는 인용이지만, “자체적으로 부요해지고 광대해진 사실 때문에 사실로는 망한 것이 있다면 기독교가 유일하다”(의역)고 한 키에르 케고르(Kierkegaard, 1813-1855)의 질타는 이 시대의 교회에 큰 경종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실 우리네 기독교 신앙생활도 이 세상이라는 곳에서 영위되는 까닭에, 교회가 돈 그 자체로부터 아예 담을 쌓고 살수는 없겠지만, 여하튼 돈을 더 많이 소유하고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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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호. 교회의 직분에 대한 소고 ②

치리 장로는 목사에 버금가도록 성경에 정통해야 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이러한 능력을 갖춘 장로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직분을 무슨 벼슬이나 명예로만 생각하지, 거기에 부속되어 있는 의무와 책임에는 무관심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렇게 된 데에는 그 장로가 속한 교회의 목사의 책임 문제가 절대적입니다. 일반적으로 목사들은 “장로가 성경 지식이나 교회의 경영 원리를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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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호. 교회의 직분에 대한 소고 ①

지금은 옛날 중국의 춘추전국 시대는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이 좁은 땅덩어리에 무슨 교파다, 무슨 교단이다, 무슨 측이다 하면서 장로교만 하더라도 일백 개는 훨씬 넘는 교단들이 난무하고 있는데, 상대적으로 그네들이 경쟁하듯이 쏟아내는 목사들이 스스로 소위 목이 좋은 곳을 선점하고는 ‘무슨무슨 교회’라고 하는 간판을 내걸고 교회를 시작하는 그런 현상이 지배적이기 때문입니다.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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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92호. 디도의 교회 창설 사명

여하튼 디도는 부족한 면면들을 바로 잡는 것을 통하여 실로 교회를 세워야 했는데, 자기 혼자의 힘으로는 도저히 역부족일 수밖에 없으므로, 장로들을 세워 그들과 동역하는 방식으로 그렇게 해야만 했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부족한 일을 바로 잡으라고 한 말에 바로 이어서 “…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라”라고 한 데서 충분히 알게 됩니다. 즉 바울의 명령이자 지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