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8월 06일(THUR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107문답

주기도문의 마지막 간구에서 '영광'이라고 한 단어는 어떻게 해석하든 간에 오직 하나님께만 적용될 수 있는 것이고, 또한 하나님께 적용될 때에만 본연의 가치가 나타나게 되는 매우 독점적인 용어입니다. 물론 그럴지라도 이 영광은 인간 편에서도 경험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야만 '이것을' 인간 편에서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행위도 비로소 가능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이것을 참으로 오직 하나님께만 적용시켜야 하고,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는가에 있게 됩니다. 그야말로 티끌만큼이라도, 인간에게도 적용되거나 인간이 차지하게 된다면, 이 영광을 아버지께 온전히 돌려드리는 일은 실패하고야 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영광을 오직 하나님께만, 그리고 모두 돌려드립니까? 

2020년 08월 05일(WEDNE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107문답

주기도문의 마지막 간구에서 '권세'라고 한 단어의 의미는 이중적입니다. 먼저는 영적 권능을 가리키는 것으로, 하나님 나라에는 죄가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자신의 지체를 더 이상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아니하고, 오직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립니다. 죄의 왕노릇하는 권세보다도 은혜의 왕노릇하는 권세가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 이후로 하나님 나라는 교회의 모습으로서 시간 세계 구석구석에서 흑암의 권세에 사로잡혀 있는 뭇 택하심을 입은 자들을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구원해 내고 있습니다(골 1:13-14). 다음으로 하나님 나라는 궁극적으로 현존하는 모든 죄와 악의 세력을 심판하는 데서 권세의 극치를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이 나라의 현재적 확장과 궁극적 완성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드높여드리는 기도야말로 기도의 최고봉이 아니겠습니까?    

2020년 08월 04일(TUE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107문답

주기도문의 마지막 간구에서 '나라'라고 한 것은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세계를 가리킵니다. 이것은 아버지께 속한 나라, 즉 하나님께서 절대적 선한 군주로서 통치하시는 나라인 것이고, 어떠한 경우에도 중단되거나 단절되지 않으면, 어떠한 세력도 그리고 어떠한 식으로든 훼방을 놓을 수 없습니다. 성도는 의당히 이러한 나라의 충만한 출현과 영원한 발전을 위하여 기도하여야 하는데, 왜냐하면 성도는 모름지기 이 나라의 백성으로, 이 나라가 소유한 모든 축복을 영원무궁토록 향유하게끔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기도는 사실상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라고 하신 바와 맥을 같이 합니다. 이렇게 기도하십니까?

2020년 08월 03일(MO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107문답

주기도문은 올바르고 정당한 기도의 정신과 내용을 가르치는 최고봉이라는 데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우리가 이렇게 확신을 가지고 담대히 기도할 수 있는 근거는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입니다. 물론 우리의 기도 행위는 결코 미신이나 우상숭배 같은 것이 아니고, 기도를 들어주시는 분께서 직접 우리가 기도할 때에 응답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전능자이시자 인격자이시라는 데 대한 확신에 기반한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이 약속이나 확신에 대한 보증까지도 주셨는데, 과연 무엇입니까? 

2020년 08월 02일(SU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107문답

[질문] 주님께서 가르치신 기도에서의 마감 말씀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칩니까? [대답]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이라는 주님께서 가르치신 기도의 마감 말씀은 기도자로 하여금 기도할 담력을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얻고(단 9:4, 7-9, 16-19; 눅 18:1, 7-8),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하나님께 돌림으로써 기도할 때에 하나님을 찬송할 것을 가르칩니다(대상 29:10-13; 딤전 1:17; 계 5:11-13).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리라는 소원과 확신의 표시로 우리는 "아멘"이라고 합니다(고전 14:16; 고후 1:20; 계 22:20).

웨스트민스터 소신앙고백 제107문답은 주기도문의 마지막 부분을 다루면서 지금까지 달려 나온 대장정을 끝맺습니다. 이제 마지막 부분을 다루기에 앞서, 이렇게 주기도문과 같은 내용으로써 기도할 수 있게끔,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 데 대해 다시 한 번 감사의 고백을 드리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 무거운 죗값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었고, 나아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양자 입양되기까지 한 가운데, 지금과도 같이 주기도문의 정신으로써 기도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는 바울이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 4:6-7)라고 한 바대로입니다.

먼저, ‘기도자로 하여금 기도할 담력을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얻는다’고 했습니다. 주기도문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한 말로써 시작한 끝에 이제 최종적으로 바로 그 ‘우리 아버지’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드높이는 것으로서 끝마칩니다. 그러할 때에 처음부터 ’나라이 임하옵시며’라고 했듯이 마지막도 ’나라와 … 아버지께 … 있사옵나이다’라고 한 말로서 마칩니다. 그렇게 주기도문의 중심인 ‘우리 아버지의 나라’에 머무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전히 ‘우리’ 및 ‘아버지’가 강조된 것을 잊어서는 안 되는데, 이는 결국 하나님의 모든 것은 결과적으로 자녀인 우리의 모든 것이 되기 마련이라는 데 비추어 볼 때, 실로 우리로 하여금 기도할 담력을 얻게 해주는 것이라 아니할 수 없게 됩니다. 

기도에 관한 이론이 아무리 출중하다 할지라도 정작 기도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은 자명합니다. 기도는 통상 신앙의 호흡이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신앙생활의 활성화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사실상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닙니다. 믿음은 오직 기도하는 데서 그 모습을 보다 더 분명하게 드러내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로서 혹 어떠한 침체에 빠져 있다 할지라도 능히 벗어나 기도할 수 있기 위해서는, 필히 뒤를 돌아보는 동시에 앞을 내다볼 수 있어야 합니다.

뒤를 돌아본다는 것은, 지난 날 죄의 왕노릇하는 데 사로잡혀 비참한 삶을 살던 데서 벗어나, 은혜의 왕노릇하는 데 순종할 수 있게 된 것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자신의 도덕성이 어떠한 수준이냐를 묻는 것이기에 앞서, 지금 현재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어 있는 사실, 현실, 실제를 주목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않은 사람으로서는, 지금 현재 교회의 지체로서 자리매김을 하고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오직 택함을 입은 자인 것을 확인하는 가운데, 세례를 베풀어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로 받아들이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천국 열쇠의 권세를  행사하는 유일한 기관입니다. 교회는 구도자의 신앙상태를 주도면밀히 살핀 끝에, 그에게 세례를 베풀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 연합시킴으로써, 그가 하나님의 자녀인 사실을 공적으로 선포하게 됩니다. 교회가 그렇게 결정하는 때에, 하늘에서도 재가가 이루어집니다. 성도는 모름지기 과거에 죄를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였던 데 따라, 교회 앞에서 세례를 받아 지금처럼 하나님의 자녀인 신분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상기하는 데서, 자신의 상태가 아무리 극도로 침체되었다 할지라도, 능히 기도로써 하나님 앞에 나아가리 만큼의 담력을 얻게 될 것입니다.   

다음으로, 앞을 내다본다는 것은,  마치 포도나무와도 같은 모태 교회의 품으로부터 생명력을 공급받음으로써 신앙적 열매를 풍성히 맺어 나가는 것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신앙적 열매란 무슨 업적이나 공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마음 품기를 지속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즉 자신의 마음 자리에서 세상이 차지하는 비중 대신, 예수 그리스도께 더 자리를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란, 죽은 후에야 들어가는 세계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생명력을 이 지상에 교회의 모습으로 구현하시는 데 따른 것인데, 성도로서는 그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성립시키는 데 최선을 다하는 만큼, 구원의 확신도 증가되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할 때에 언필칭 위로부터 베푸시는 능력을 공급받기 위하여 기도에 들어가기 마련인 것은, 육신의 힘으로는 늘 한계에 부딪히는 것을 절감하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통해서, 자기가 속한 교회가, 하나님 나라로서의 면모를 드러내게 된다는 사실 앞에서, 바로 그 놀라운 영광을 위하여 자신의 몫에 최선을 다하려는 때에,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라고 한 기도와 고백에 성립되게 되는 것이요, 동시에 하나님을 찬송하는 행위 그 자체도 되는 법입니다. 

주기도문은 최종적으로 ‘아멘’이라고 한 말로써 마치게 됩니다. 이것에 대해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리라는 소원과 확신의 표시’라고 했습니다. 실로 성도로서는 아버지께서 약속해주신 말씀에 따라, 그러한 믿음의 확신과 정당한 내용으로서 기도한 것이므로, 의당히 자신의 기도가 응답되리라는 확신도 가질 수 있는 것이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멘’하면서 기도를 마치게 됩니다. 아멘!

2020년 08월 01일(SATUR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106문답

사탄은 할 수만 있으면 택함을 입은 자까지도 타락시키려고 온갖 기회를 다 엿보고 온갖 궤계를 다 사용하는 아주 끈질기도록 간교한 자입니다. 게다가 그는 나름 왕국의 수장이어서 자기의 명령을 즉각 받들어 순종할 충성스러운 졸개들을 휘하에 많이 거느리고 있습니다. 그가 이러한 권세를 어떤 식으로 사용하는지는 알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가 일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우리로서도 충분히 감지할 수 있습니다.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한 기도는 이러한 상황에 관련됩니다. 사탄의 시험에 걸려들지 않도록 예민하게 깨어 있어야 할 것은 당연하되, 혹시라도 악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끊임없이 기도하십시다. 

2020년 07월 31일(FRI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106문답

주기도문에서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한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여기서 악이란 구원의 반대 개념을 가리킵니다. 물론 성도가 한 번 받은 구원을 도중에 상실한다는 것은 성경 전체의 사상으로 볼 때에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성도라면 모름지기 이 사실을 굳게 믿고 확신하는 사람이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이 기도는 구원의 상실 가능성을 걱정하는 차원에서가 결코 아니고, 이미 받은 구원이요, 보장된 구원의 완성이므로, 종내 궁극적인 완성에 이르기를 소망한다는 고백인 것입니다. 이것은 다섯 번째 간구와 비슷한 경우입니다. 두 간구의 공통점을 확인할 수 있겠습니까? 

2020년 07월 30일(THUR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106문답

주기도문에서의 '시험'이란, 신앙에서 아주 미끄러져버리는 일이 없게 해달라는 것을 가리킵니다. 성도로서는 시험을 아예 전혀 겪지 않고 이 세상을 살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양육하시기 위하여 때로는 시험 당하는 것을 허용하기도 하시는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에 성도가 당하는 시험은 항상 감당할만한 시험입니다. 고린도전서 10:13을 읽어봅시다. 야고보서 1:13-15도 읽어봅시다. 이 두 구절은 각기 어떤 공통점과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2020년 07월 29일(WEDNE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106문답

사탄은 성도를 끊임없이 시험합니다. 마태복음 26:41에서 예수님은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하시면서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라고 덧붙이셨습니다. 성도로서 늘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한데, 이는 그의 속에 계신 성신께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육체의 소욕도 역사합니다. 그래서 '육신이 약하도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물론 육신의 연약함은 하나님을 섬기는 다방면의 영역에서 나타나지만, 특별히 기도를 훼방하는 데에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마치 훈련하듯이 규칙적으로 기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렇게 기도하십니까?  

2020년 07월 28일(TUE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106문답

이따금씩 '시험에 빠진 성도'를 대할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시험의 모습에는 자신이 받은 구원에 대해 의심을 품는다거나, 성도로서 명백히 해서는 안 되는 죄에 빠진다거나, 다른 지체들과의 관계에서 공연히 불협화음을 일으킨다거나 기타 등등의 여러 형태가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 대체적으로 기도생활이 그쳐진 데서 원인이 되기도 하고, 또는 그렇기 때문에 기도생활을 저버리게 되기도 합니다. 결국 시험을 벗어나는 최상의 해결책은 '기도하기' 그 자체입니다. 물론 습관적이거나 형식적인 기도일 경우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은 자명합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시험을 극복한 경험이 있다면 각기 경험담을 이야기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