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22일 (MO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14문답 묵상2018년

하나님의 율법은 완벽하여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제대로 가르쳐주는 유일한 척도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율법은 어느 시대에서든지 항상 절대적 진리입니다. 요즈음 시대적 성향을 앞세워 이 절대적 진리를 변개시키는 경향이 있는 것은 지극히 잘못된 풍토입니다. 가령, 아담 부부가 죄를 지은 후 이렇게 저렇게 핑계를 댔지만, 죄는 죄입니다. 요한일서 3장 4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명명백백하게 선포된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죄 짓는 행위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을 하거나, 하라고 말씀하신 것을 하지 않은 것 모두 죄라 하는 말입니다. 이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2018년 10월 21일 (SU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14문답 묵상2018년

[질문] 죄가 무엇입니까? [대답] 죄는 하나님의 율법을 조금이라도 부족하게 지키거나 그 법을 어기는 것입니다(레 5:17; 갈 5:19-21; 약 4:17; 요일 3:4).

웨스트민스터 소신앙고백문답 제14문은 ‘죄가 무엇인가’를 단도직입적으로 묻습니다.  죄가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아는 일은 너무나도 중요한 일이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죄의 결과가 초래할 무시무시한 형벌에 대해서는 별로 감각이 없습니다. 죄란 무엇입니까? 신앙고백문답에 따르면, “죄는 하나님의 율법을 조금이라도 부족하게 지키거나 그 법을 어기는 것”입니다. 여기서 죄를 규정 짓는 원리로써 하나님의 율법이 제시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키는 것임에 다름이 아닙니다. 이 하나님의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성문법의 형태로 주어졌지만, 사실은 모든 인류에게 주어졌다고 보아야 정확합니다. 이것을 자연법이라고 하는데, 이해하기 쉬운 말로 양심법이라고도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율법으로서의 자연법은 성문법이 되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율법보다 시간상으로 월등히 앞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본디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의도는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삶의 질을 풍성하게 가꾸어 갈 수 있게 해주시려는 데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법을 대할 때 갖는 우리의 감정은 상당히 긍정적인 것이어야 하지만, 우리는 아담의 타락 안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무능력에 사로잡히게 되었으므로, 반대로 하나님의 율법에 대해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생각을 갖게 됩니다.

여기에 더하여 하나님의 율법이 언약의 형태로 주어진 데서 오는 변화도 생각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이 타락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방도로써 율법을 베푸셨습니다.  이 율법이 하는 일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인간의 무능력과 죄성을 드러내는 것이고, 둘째는, 그러므로 자신의 구원을 자기 자신이 아닌 바깥에서 구하게끔 해주는 것입니다. 전자를 율법의 정죄하는 권세라고 본다면, 후자는 율법의 몽학선생으로서의 기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율법이 언약의 형태로 주어졌다는 것은, 율법을 받는 대상, 즉 언약 백성은 기본적으로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전제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향후 율법의 정죄하는 기능은 의미가 상당히 약화되어버렸고, 반대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여금 참된 선을 지향할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두드러지게 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언약 백성에게는 더 이상 정죄와 심판이 주어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이라는 개념 자체가 하나님의 정죄와 심판으로부터 벗어나는 데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개혁된 교회는 율법의 이 세 번째 기능에 주목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 생활상의 준칙으로 삼습니다. 즉 언약 백성에게서의 율법이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삶을 살 수 있게 해주는 필요적절한 길잡이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것을 ‘새 계명’이라는 이름으로 의미 있게 표현하습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소신앙고백 문답의 대답이 그러하듯이, 죄를 죄로 규정 짓는 율법의 역할과 더불어 생각해 볼 수 있는 개념입니다. 가령, 네 이웃에게 거짓 증거하지 말라고 한 말씀이 있다고 봅시다. 성도가 여기에 걸리게 되면, 이는 명백히 죄가 됩니다. 율법을 지키지 못한 것이고, 나아가 확실하게 어긴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으로서 끝이 아닙니다. 성도는 이 단계에서 회개하게 되고, 그로 말미암아 향후 그러한 죄를 멀리하게 됩니다. 물론 또 반복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처음에 비하여 강도나 횟수가 현저히 줄어들기 마련입니다. 성도의 심령은 기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에 의해 활성화되기 마련이므로, 성신의 인도를 받는 삶이 충만해지면 충만해지는만큼, 그러한 죄를 멀리하게 되고, 도리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한 생활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리하겠습니다. 율법은 죄를 죄로 규정 짓습니다. 무엇이 죄인가를 명확하게 밝혀 줍니다. 심지어 성도가 마음에 품는 죄까지도 정확하게 죄라고 지적해줍니다. 그러나 언약 백성이기 때문에, 다시 말해서 성도이기 때문에 정죄되지는 않습니다. 정죄는 구원 받지 못한 세상 사람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물론 성도도 사실은 앞서 정죄를 받았습니다. 이때 예수 그리스도께 대신 물어진 정죄입니다. 그러므로 향후 성도에게서의 율법은, 죄가 죄인 것을 깨달아 이를 과감히 벗어버리게 해주는 동시에 상대적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행이 무엇인가를 알아, 이에 열심을 내게 해주는 길잡이가 되어 줍니다.

 

 

2018년 10월 20일 (SATUR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13문답 묵상2018년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만드신 후 다른 피조물들을 선히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특권이자 책임입니까! 그러나 타락 이후로 인간은 피조물을 악한 방법으로 다스리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 그렇게 합니다. 이기적인 탐욕으로 이용하고 남용하면서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죽이는 것도 서슴지 않습니다. 인간은 스스로를 통제할 능력도 잃었습니다. 야고보서 4장 1-3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이제 인간은 하나님도 모르고 하나님의 진리도 모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보다 자신의 쾌락만을 추구하고, 이를 위해 하나님을 대적하고 악을 선택하기 일쑤입니다. 죄 때문에 끝없이 추락한 우리를 건져내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면 구원 받은 우리에게서 일어나는 가장 대표적인 변화는 무엇입니까?

2018년 10월 19일 (FRI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13문답 묵상2018년

하나님은 인간을 지식과 의와 거룩함으로 창조하셨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타락 이후 더 이상 하나님을 지각할 수 없게 되었고 영적인 진리들도 이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고린도전서 2장 14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처음에 의로 지음 받았으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는 능력도 있었지만, 타락 이후로는 최상의 선한 행동조차도 하나님의 눈에는 악할 뿐입니다. 이사야 64장 6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거룩함으로 지음 받은 것도 상실하고 범사에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세상에 더욱 달라붙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1장 21-23절과 25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그려면 최초의 아담에게 있었던 지식과 의와 거룩은 각기 무엇을 가리킵니까?

2018년 10월 18일 (THUR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13문답 묵상2018년

인간의 최초의 죄를 “타락(fall)”이라고 부릅니다. 완전하고 선한 상태에서 죄의 상태로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타락 이전 인간에게 창조할 능력을 주셨지만 그 능력을 이용해 사악한 일과 다른 사람을 해칠 생각을 지어냅니다. 타락 이전 인간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타락 이후에는 자기만을 사랑하고 악을 선택하고 그 악을 행할 방법을 마음에 품습니다. 인간만이 하나님을 알고 경배할 수 있었으나 이제는 다른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이 없다고 말합니다. 시편 14편 1-3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한 눈에 받은 느낌은 무엇입니까?

2018년 10월 17일 (WEDNE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13문답 묵상2018년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방식으로 결국에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말았습니다. 모든 죄는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이요 하나님께 대한 적대 행위입니다. 자기 자신이 원하는 것이라는 명분을 앞세우는 바로 그 순간 실상은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게 되는 것이고, 그런 식으로 하나님께 죄를 짓게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지만, 인간은 불행하게도 애초부터 그러한 성향으로서 태어납니다. 시편 51장 3-5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그러므로 성신께서 우리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주셔야 합니다. 이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2018년 10월 16일 (TUE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13문답 묵상2018년

하나님은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으면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원칙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한 말씀 한 말씀이 진리요 법입니다. 이때 사탄이 나타나 선악과를 먹어도 결코 죽지 않을 것이고, 도리어 하나님처럼 될 것이라면서 아담을 꼬드겼습니다. 꼬드기는 대화가 계속됨에 따라 결국 혹 하는 마음이 아담에게 들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탄의 말을 더 신뢰하게 되었고 그리하여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바로 그 사탄이 이번에는 둘째 아담으로 나타나신 예수님을 유혹하며 덤벼들었습니다. 하지만, 아담과는 달리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의지하셨고 결국에는 사탄을 물리쳤습니다. 마태복음 4장 4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이 놀라운 말씀의 배경은 하나님께서 광야 이스라엘 백성을 40년 동안 살리신 데 근거한 것입니다(신 8:3). 이 둘의 신앙의 공통성을 논의해 봅시다.

2018년 10월 15일 (MO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13문답 묵상2018년

세상이 처음 창조될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는 인간뿐이었다니 얼마나 큰 영광입니까! 지금 인간은 이를 너무 당연한 듯이 여기고 있지만, 사실은 굉장한 영광을 얻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오직 사람만이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만이 생각하고, 기억하고 앞 일을 계획할 수 있었습니다. 본능으로 살아가는 다른 피조물들과 달리 선택할 능력도 주셨습니다. 그런 특권을 누리는 만큼 책임도 뒤따랐습니다. 자신의 자유로은 선택을 통하여 하나님께 순종하기로 결정할 수도 있었다는 것은 결코 가벼운 선물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신명기 10장 12-13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왜 그러한 요구를 하십니까?

2018년 10월 14일 (SU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13문답 묵상2018년

[질문[: 우리의 시조는 창조받은 지위에 그대로 있었습니까? [대답]: 우리의 시조는 의지의 자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범죄함으로써 창조받은 지위에서 타락하였습니다(창 3:6-8, 13; 고후 11:3).

시조(始祖)란 한 겨레나 가계의 맨 처음이 되는 조상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당연히 아담은 우리네 인류의 시조입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인류를 창조하실 때에 오직 아담과 하와만을 만드셨고, 그들을 통하여 인류가 생육적으로 번성케 될 것을 계획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에게서 최초의 자녀들이 태어나고, 그렇게 태어난 자녀들 간에 혼인하여 다시금 자녀들을 낳아가는 식으로 이 세상에 인류가 충만케 하려 하신 것입니다. 지금의 시점에서 그러한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해설(?)을 시도하는 것은 분명 옳지 않을 것입니다.  당시의 하나님의 계획은 가장 지혜롭고 최선의 것이었음이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아담의 위치는 결코 자기 개인만으로 독립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후대에 태어나는 모든 인류를 대표하는 신분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신앙고백문답은 ‘창조받은 지위’라고 표현했는데, 이는 앞의 제12문답에서 살펴보았듯이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에 대면해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이 특별한 섭리란, 은혜 언약 또는 생명 언약이었습니다.  즉 아담은 하나님과의 언약 상태에 있었던 것입니다.

혹여 아담이 생명의 언약을 잘 지켰다면, 그에 따른 행복하고 아름다운 결과가 그의 후손들 모두에게 미쳤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죄라고 하는 부패가 들어올 수 없었고, 그로 말미암은 온갖 고통 및 죽음과 형벌은 결코 없었을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서 영원무궁토록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은 언약을 파괴하고 말았고, 따라서 언약 규정에 따라 그의 후손들 모두는 지금까지 쓰라린 결과를 겪고 있습니다. 반복하거니와 이는 당시 아담은 홀로였던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태어나는 후손 모두를 대표하는 언약의 머리였기 때문입니다.

간혹, “사탄이 우리의 첫 조상을 유혹하도록 어떻게 허용되어졌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되곤 합니다. 이에 대한 대답은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과 모든 행위를 보존하시며 섭리하신다고 한 앞의 제11문답에서 찾아질 수 있습니다. 즉 아담이 유혹을 받는 것 역시도 하나님의 위대하신 계획의 한 부분이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지금의 우리로서는 들여다 볼 수 없는 하나님의 깊으신 심중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이 문제와 관련하여 확실하게 두 가지를 가르치는데, 첫째, 하나님은 피조물과 그의 모든 행위를 통제하시고, 둘째, 그럴지라도 하나님은 죄의 조성자가 아니시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죄의 조성자가 아니시면서도 어떻게 해서 모든 것을 통치하실 수 있는가, 즉 어떻게 해서 사탄이 아담에게 다가가 유혹할 수 있었는가 하는 데 대해서는 비밀로 넘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우리는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서 이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여하튼 하나님은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주장하는 분이시고(엡 1:11), 그러면서도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는 분이십니다(약 1:13). 시편 기자는 이 사실 때문에 “여호와께서는 그 모든 행위에 의로우시며 그 모든 행사에 은혜로우시도다”(시 145:17)라면서 탄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신앙고백문답은 아담의 역사적 실재성을 가르칩니다. 다시 말하자면 창세기 1-3장의 기록은 특별한 시간과 장소의 지구상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기록입니다. 현대에 들어 인간 이성만을 의지하는 일부 신학자들은 아담을 단지 상징적 인물로만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부 사람에게는 이와 같은 현대 신학의 주장이 매우 매력 있게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아담의 이야기를 믿는다고 말할 때에 조심해서 새겨 들어야 합니다. 아담의 이야기가 품고 있는 어떤 가치관을 믿는다는 의미로 그렇게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실제로 역사 속에서 일어났던 사건에 대한 기록으로는 믿지 않습니다. 그들은 ’아담’이라는 이름은 단지 ‘범죄하고 타락하려는 인간의 성향’을 뜻할 뿐이라는 얼토당토 않는 논리를 펼칩니다.

이제 개혁된 교회의 신앙고백에서는 이 점을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아담의 역사적 실제성을 부정하게 되면 기독교 교리체계 전체가 무너지고야 맙니다. 성경은 확실하게 “한 사람이 순종치 않음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된 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롬 5:19)고 선포합니다. 따라서 아담이 실재 인간이었음을 부인하는 것은 성경이 말하는 그리스도의 실재를 부인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즉, 성경이 말하는 아담의 실재성과 그가 행위 언약 하에서 행한 바를 믿지 않는다면, 성경이 말하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은혜 언약 하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바에 관해서도 사실상 믿지 못하게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원은 어떻게 되는 것이겠습니까?

 

2018년 10월 13일 (SATUR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12문답 묵상2018년

어떤 사람이든지 자신이 행한 데 대한 삯을 받습니다. 로마서 6장 23절에서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과의 간격이 멀어지는 것은 영적인 죽음의 과정인데, 아담 안에서 영적인 죽음에 빠져 있는 인간인지라 죄를 싫어하시는 하나님과 계속 원수된 상태를 굳혀 갑니다. 에베소서 2장 1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나가 있는 한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면할 수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 8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순종은 생명을, 불순종은 죽음을 가져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모든 능력을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에 접붙여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무슨 의미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