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9일(TUES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31주차(83-85문답)

예수님이 교회에 준 제일의 사명은 복음을 전파하는 일입니다. 천국백성이라면 선포된 복음을 들을 때 그에게 하나님 나라가 열리고, 그리하여 구원과 용서의 약속을 믿게 됩니다. 천국백성은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를 믿지 않습니다. 복음이 선포될 때마다 교회는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심판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2장 14절로 17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2021년 3월 8일(MON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31주차(83-85문답)

신앙고백문답에 나오는 ‘천국의 열쇠’를 이해하려면 예수님이 제자들과 했던 대화를 이해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묻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만이 정답을 말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님은 “이를 알게 한 이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고 하시면서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라 …”라고 덧붙이셨습니다. 교회는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제대로 아는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올바르게 아는 일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만 가능합니다. 예수님을 아는 올바른 지식은 사람들을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며, 이 올바른 지식이야말로 하나님 나라 시민인지 아닌지 가늠하는 유일한 잣대입니다. 마태복음 16장 13절로 19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2021년 3월 7일(SUN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31주차(83-85문답)

[제83문] ‘하늘에 계신’이라는 말이 왜 덧붙여졌습니까? [대답] 하나님의 천상의 위엄을 땅의 것으로 생각지 않고(대하 6:18-19; 렘 23:23-24; 행 17:24-25), 그의 전능하신 능력으로부터 우리의 몸과 영혼에 필요한 모든 것을 기대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롬 8:31-32). 

우리는 믿지 않는 자(교리적인 오류)나 경건치 못한 자(도덕적인 잘못)들에 의하여 신성모독이 되지 않도록 잘 막아내기 위해서 주님의 만찬식을 잘 보호해야 하는 의무가 안수 받은 교회 직분자인 장로들의 사역에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제 제83문답, 84문답, 그리고 85문답을 통해서 이 일과 관련한 ‘교회의 권위’ 혹은 ‘천국의 열쇠’ 주제를 다루게 됩니다.

제83문답은 교회는 천국문(유형교회와 무형교회를 의미; 제54문답 참고.)을 열고 닫는 두 개의 ‘열쇠’를 지녔다고 고백합니다. 이에 대한 설명은 마태복음 16:19과 요한계시록 1:18; 3:7-8 등에 나타난 주님의 가르침으로부터 나옵니다. 여기서 열쇠는 ⑴ 공적인 교회의 설교와 ⑵ 공적인 교회의 훈련(권징)을 가리키는 것인데 모두 장로들의 권한에 속해 있습니다.

이러한 권한은 미물인 인간에게 너무 큰 권한을 준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어떤 개혁자들은 교회의 권위인 ‘열쇠’의 가르침을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다름 아닌 주님의 가르침에 따른 것이므로 조심스럽게 주의를 기울여 해석해야 합니다. 직무로서의 열쇠의 권한을 고려할 때 우선적으로 이해하여야 할 것은 신약성경이 가르치는 교회의 통치권에 관한 것입니다. 오늘날의 교회가 시행하고 있는 교회의 통치권에는 세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첫째, 신분상의 계급 제도가 있습니다. 감독, 주교, 대주교, 교황 등으로 구분하는 신분 계급 제도는 낮은 성직자는 자기보다 위에 있는 더 높은 성직자에게 속합니다. 이러한 정치 제도를 취하는 교회로는 로마 카톨릭 교회와 감리교회와 복음주의 연합 형제교회 등이 있습니다.

둘째, 회중 제도가 있습니다. 이는 지역의 회중이 최종 결정권을 갖는 입장으로 교회원의 입교와 출교 및 다른 교회의 문제들을 다룰 때에 온 회중이 투표로써 결정합니다. 다른 교회로부터 시작하여 지역 회중을 감독하기 위하여 특정한 권위를 행사할 장로나 기타 교회의 직분자를 두지 않습니다. 이 형태는 침례교회, 회중교회, 그리고 기타의 ‘독립 교회들’이 취하고 있습니다. 일부 독립 교회들은 엄한 회중정치가 아니라 장로들의 협의체가 좌지우지하기도 합니다.

셋째, 장로교회나 개혁교회의 제도입니다. 이러한 교회 정치 형태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⑴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로 인정합니다(엡 5:23). ⑵ 다스리는 공적인 장로를 인정합니다. 비록 사람들에 의해서 장로가 선택되지만, 그리스도의 권위로써 다스립니다(행 20:17-28; 고전 12:28; 히 13:17). ⑶ 모든 장로는 권위 면에서 상호 동등하다는 것을 인정하여야 하고, 각 교회에는 목사를 포함하여 최소한 두 명의 장로가 있어야 합니다(행 14:23; 벧전 5:1). ⑷ 총회나 노회로 불려지는 모임에서 다른 회중의 장로들을 만났을 때, 그들은 서로의 권위(대표성)를 인정하여야 합니다(행 15:22; 딛전 4:14). ⑸ 필요한 경우 지역 교회의 법정에서부터 최고의 교회 법정까지의 의제를 상정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행 15장).

교회의 정치제도와 관련하여 상기한 성경적 원리들을 인정하면서 모두 채택하고 있는 교회는 개혁교회와 장로교회뿐입니다. 이 제도야 말로 성경을 가장 적합하게 따르는 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직분자가 취임할 때에는 안수를 받게 되는데, 이러한 상징적 행위를 통하여 그들의 직분이 사람이 아닌 하나님에 의해 세워졌다는 사실이 공적으로 공표된 것이므로, 교회원들이 장로의 직분을 수행하는 자에게 온전한 존경과 순종을 보이는 것은 사활적으로 중요합니다.

[제84문] 거룩한 복음의 설교를 통하여 어떻게 천국이 열리고 닫힙니까? [대답]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공로 때문에 사람들이 참된 믿음으로 복음의 약속을 받아들일 때마다 참으로 그들의 모든 죄를 사하신다는 사실이 신자들 전체나 개개인에게 선포되고 공적으로 증언될 때, 천국이 열립니다. 반대로 그들이 돌이키지 않는 한 하나님의 진노와 영원한 정죄가 그들 위에 머문다는 사실이 모든 믿지 않는 자와 외식하는 자에게 선포되고 공적으로 증언될 때, 천국이 닫힙니다. 이러한 복음의 증언에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와 장차 올 세상에서 심판하실 것입니다(마 16:19; 요 3:34-36; 20:21-23). 

예수님은 베드로를 비롯한 다른 사도들에게 무엇이 되었든지 그들이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는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마 16:19; 18:18). 이것은 교회의 판단에 따라, 회개치 않는 경우 그들의 죄가 그들 위에 머문다는 선포요, 반대로 죄를 회개할 경우 죄인들이 자신들의 죄로부터 풀려난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물론 오직 하나님만이 스스로 용서하시거나 징계하시는 권세를 지니셨습니다. 그러나 교회로서는 누가 용서 받을 수 있고, 누가 용서 받을 수 없는지에 대해, 하나님의 권세를 대신하여 공적으로 공표할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제84문답에서 고백하는 교회의 공적 설교로서의 열쇠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사역자(그리스도에 의해서 교회를 통하여 부르심을 받고 임명된)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에,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무형교회(하나님 나라)의 문이 넓게 열렸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모든 회개하고 믿는 자들은 자신들의 죄가 용서되었고 영생을 받았다는 것이 참 설교자에 의해 확인됩니다. 설교자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롬 10:13)라고 선언해야만 하고, 또한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 1:16)라고 선언해야만 합니다.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의 왕국으로 들어가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만이 홀로 허락할 수 있지만,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목사들로 하여금 이 사실을 회중에게 선포하게 하십니다. 참 설교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에,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그를 통하여 선포하시는 것이고, 동시에 자신에게 굶주려 있고 목마른 자들에게 구원의 문을 열어주십니다. 

하지만 교회의 공식적인 설교의 열쇠는 또한 선포된 말씀을 듣는 많은 자들에게 문을 닫기도 합니다. 신실한 목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 들이기를 거절하는 모든 자들에게 심판을 확실히 선포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영원한 징벌이 개종하지 않는 자로서 오래도록 남아 있는 믿지 않는 자들과 외식하는 자들에게 임할 것입니다. 하늘 문은 그들에게는 꼭 닫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그들에게 어떤 의심도 없이 들려져야만 합니다(요 3:36; 눅 13:3).

그리스도의 복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목사에 의해 공적으로 선포되는 때라면 언제든지 ‘풀고’ 또한 ‘매는’ 일이 일어나는데, 그래서 구원의 문이 열리거나 닫힙니다. 듣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들이 어느 편의 문에 서 있는지 확실하게 통보 받게 됩니다. 말씀의 참된 설교는 중생했고, 용서받은 영혼인 경건의 표와 그리고 여전히 죄를 사랑하는 외식하는 자들은 징계 아래 있다는 표를 양면으로 선명하게 보여주어야만 합니다. 당신은 하나님께 대한 경건으로서 확신과 능력으로 율법과 복음을 설교하여 성도로서는 위로를 얻게 하지만 죄인으로서는 하나님의 주권 앞에서 떨게 하는 당신의 교회의 설교자를 위하여 얼마나 자주 기도합니까?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기 때문에 믿지 않는 자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구원받은 자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게 하는 냄새입니다(고후 2:16).

[제85문] 교회의 권징을 통해서 어떻게 천국이 닫히고 열립니까? [대답]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라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그리스도인답지 않을 경우, 먼저 형제로서 거듭 권고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신의 오류나 악행에서 돌이키지 않으면, 성례에 참여함을 금하여 성도의 사귐 밖에 두어야 하며, 하나님께서도 친히 그들을 그리스도의 나라에서 제외시키실 것입니다(마 18:15-18; 고전 5:3-5, 11; 살후 3:14-15; 딤전 5:20; 요이 10-11). 그러나 그들이 참으로 돌이키기를 약속하고 증명한다면, 그들을 그리스도의 지체와 교회의 회원으로 다시 받아들입니다(눅 15:20-24; 고후 2:6-8).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교회에 세우신 직분자들에게 두 개의 열쇠를 주셨는데, 설교의 열쇠와 교회 권징의 열쇠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두 번째 열쇠는 대부분의 교회들 속에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경시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적 개혁교회라면 신앙고백문답 제85문답에서 고백하는 바대로 교회적 권징을 열쇠로서 적절히 사용할 것입니다.

교회 권징의 열쇠 사용은 말씀 설교를 필히 따릅니다. 설교의 열쇠에 의하여 각 개인들이 예수 그리스도께로 회심하였고, 그리하여 천국에로 들여졌으므로, 그에 따라 그들은 두 번째 열쇠의 사용에 의하여 지역 회중인 유형교회에 소속되어야 합니다. 이때 장로들의 모임은 그를 교회원으로 받아들일 것인지 아닐 것인지를 그의 신앙고백과 삶의 실질을 살펴봄으로써 정확하게 점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다음 어떤 결정을 하든지 간에 항상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권위로서 시행되어야 합니다. 이때 교회로 받아들여진 사람의 경우 장로들이 행하는 권징의 열쇠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결코 분리되지 않고 함께 사용되어야 하는 이 두 개의 열쇠를 위해서 하나님 말씀에 의해 주어진 사중의 목적이 있습니다.

첫째, 그것은 밖에 속해 있지만 안에 속해 있었던 사람들을, 믿음을 통한 은혜에 의해, 교회 안으로 데려오는 데 사용할 수 있습니다. 둘째, 그것은 안에 속해 있지만 사실은 밖에 속해 있는 사람을 쫓아내는데 사용할 수 있는데 이유는 그들의 불순종과 불신앙 때문입니다. 셋째, 그것은 밖에 속한 사람을 밖에 있게 하는데 사용되어야 하는데 이유는 그들의 반란 때문입니다. 넷째, 그것은 안에 속한 사람을 밖으로 나가자고 유혹하는 자들로부터 안을 지키는데 사용되어야 하는데 이유는 그들은 중생되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제멋대로 하면서 교회의 권징을 반대하는 경향을 보여줍니다. 통상적으로 교회원이 경건하지 않은 행동을 할지라도 아무 것도 행해져서는 안 된다면서 다음과 같은 이유가 제기되곤 합니다.

첫째, 권징은 사람을 화나게 하므로 무시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훈계가 시행되게 되면, 부득불 죄를 범하고 있는 형제의 기분을 상하게 할 뿐만 아니라, 회중 안에 있는 그의 친구들 역시 불쾌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반감에 대한 대처법은 그리스도께 죄를 범하는 것보다 사람에게 죄를 범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인식하는 데 있습니다. 권징의 열쇠가 엄하고 사랑이 없어 보이고 불쾌를 촉발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러한 죄들을 담당하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진리는 만약 기독교적 권징이 무시된다면 죄인의 영혼은 무시되게 될 것이고 그는 고집대로 남겨질 것이고 그리고 아마도 그의 완고함과 죄로 인하여 죽게 될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고린도 교회 안에서 권징의 열쇠를 사용한 결과는 죄를 지은 교회원을 회개하도록 만들었습니다(고전 5:13; 고후 2:6-8). 따라서 이러한 권징의 결과는 죄를 짓는 사람이 없게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둘째, 권징은 사람의 마음을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에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신앙심 좋게 들리는 이 반박에 대한 대답은 이것 역시 완전히 거짓이라는 것입니다. 교회 권징은 결코 사람의 마음에 대한 심판을 겨냥하지 않습니다. 그것보다는 그 사람의 신앙고백과 삶에 대한 징계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장로들에게 권징의 열쇠를 사용하라고 말씀하셨으므로, 그들은 마땅히 주님께 순종해야 하고, 그리고 그들의 보호 아래서 교회원들의 믿음과 행위는 검사되고 판단되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7:16-20 말씀은 마태복음 7:1에서 “비판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라고 한 바를 반박하지 않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5:7; 데살로니가전서 5:14; 데살로니가후서 3:6, 14-15; 디모데전서 5:20 그리고 디도서 3:10을 기록했을 때, 그는 주의 말씀을 욕되게 하는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장로들이 교회 안에 있는 회원들을 권징하고 심판하는 것이 잘못이라면, 최초에 그들을 판단하여 교회 구성원으로 인정하는 것까지도 역시 잘못된 것입니다. 물론 사람의 마음의 깊은 동기는 오직 하나님께만 알려질 수 있지만, 그의 고백과 삶은 교회에 알려져야만 하고 또한 그들이 성경의 표준에 따르는지의 여부도 판단되어야만 합니다.

셋째, 교회는 회원들의 사생활에 관심을 갖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대답은 이렇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장로들에게 모든 교회원의 영혼을 돌보는 책임을 맡기셨습니다(히 13:17). 성경은 교회원들의 사생활과 공중생활 간에 이런저런 차이를 만들지 않습니다. 물론 장로들은 단순히 ‘참견 잘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되기에 원칙적으로 교회원들의 사적인 일에 쓸데없이 참견해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장로들은 그리스도의 모든 양들을 대상으로 영적인 건강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이 일은 아마도 개인적인 접촉을 필요로 하고 때로는 특별한 질문 역시 필요로 할 것입니다. 정기적인 심방은 이러한 접촉을 유지하기 위한 성경적 방법입니다(행 20:20). 개인에 대한 권징 문제가 개인적인 차원에서 성공하지 못할 때에는 교회의 문제로 옮겨지게 됩니다(마 18:17).

제85문답에서 우리는 교회 권징을 위한 순서를 배웁니다. 이러한 지침은 마태복음 18:16-18에 의한 그리스도의 지도에 근거합니다. 이 성경적 진행을 잘 기억하십시다. 대부분은 따르지 못하는 경향이지만, 사실상 이것은 무척이나 중요합니다.

첫째, 각 교회원들은 잘못을 범한 동료 교회원의 회복을 추구할 의무가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죄를 지은 형제를 알게 되었다면, 개인적으로 그를 찾아가서 죄에 대하여 물어야 합니다.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갈 6:1). 혹은 반대로 만약 당신이 고의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죄를 범하였다면 그에게 가서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둘째, 만약 죄를 지은 형제가 회개치 않는다면, 그러면 당신은 양편의 논쟁을 들을 두 명의 증인을 데리고 가야 합니다.

셋째, 만약 죄를 지은 형제가 여전히 자신의 죄에 대한 고백을 거절한다면, 그렇다면 교회 장로들에게 요청하여 이러한 상황에 대해 판단하게 해야 합니다.

넷째, 장로들은 죄인이 회개하도록 먼저 설득해야 합니다. 만약 그가 회개치 않는다면, 장로들은 그를 주님의 만찬이나 성도의 교제 같은 교회적 특권으로부터 그를 금지시켜야 합니다. 만약 그래도 그가 죄를 회개치 않는다면, 마지막 방책으로 그를 제명하여 전적으로 교회에서 쫓아내 ‘이교도(불신자)’로 여겨야 합니다.

교회 권징의 목적은 성도를 교회로부터 제거시키는 것이 아니라 죄 짓는 데서 분리시키는데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권징의 열쇠가 저항을 받는다면, 그러면 전체 몸이 부패되거나 그리스도의 진노가 전체 회중에게 내리지 않게 하기 위하여 죄인은 반드시 숙청되어야 합니다(고전 5:6-7).

모든 죄는 하나님의 저주를 초래하므로 회중 안에서 명백해질 때마다 공정하게 다루어져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무시되는 공공의 죄란 결코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권징은 되풀이 되는 그러한 죄를 상대하여 마땅히 사용되어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최악의 범죄자라 할지라도 진심으로 회개하면 용서해주어야 하고 다시 받아 들여야만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회개한 죄인들에게 용서를 약속하시므로, 그들은 그의 몸인 교회가 되어야만 합니다.

기독교의 권징 열쇠 사용을 두려워하는 회중은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닙니다. 혹시 당신들이 그렇지는 않습니까?

2021년 3월 6일(SATUR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30주차(80-82문답)

바울 사도는 여전히 죄의 삶을 살면서 성찬에 참여하는 사람에게 경고합니다.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예치 못하리라”(고전 10:21). 교회 지도자들은 회개하고 신앙이 곤고한 사람들을 위해 성찬상에서 위로를 선포해야 합니다. 하지만 신앙이 없고 계속해 죄를 짓는 사람들에게는 결코 성찬에 참여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하고 교회를 죄로부터 보존하는 길입니다. 적합하지 않은 자의 성찬 참여는 그 사람 자신뿐만 아니라, 공동체 전체도 하나님의 징계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21절과 22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2021년 3월 5일(FRI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30주차(80-82문답)

사람들이 오해하는 일이 있습니다. 예배에 참석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마냥 좋아하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신앙이 어떤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상관없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바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하나님을 통해서만 우리는 의롭다 여김을 받습니다. 그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계시하신 진리를 외면하고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은 환영하지 않으십니다. 죄를 회개치 않은 사람도 환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그 죄를 부끄럽게 여겨 회개하며 더 이상 죄를 짓지 않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청하는 사람은 환영을 받습니다. 그는 스스로는 자신의 죄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구원자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성찬에 참여하면 환영합니다. 시편 50편 14절로 17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2021년 3월 4일(THURS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30주차(80-82문답)

성찬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주신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아들에게 모든 진노를 쏟으며 등을 돌리셨던 하나님이십니다.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성찬은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 당하신 수난을 보면서도 자신의 죄를 회개치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납하기 힘드실 것입니다. 나아가 진실한 회개도 없으면서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품은 것처럼 행동하는 위선자들이 성찬에 참여한다면, 그들은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1장 27절로 30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2021년 3월 3일(WEDNES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30주차(80-82문답)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품고 있는 사람만이 성찬에 참여합니다. 자신의 죄로 슬픔에 싸이지만, 동시에 그 허물이 가려졌음을 아는 사람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신앙이 자라 더 나은 삶을 살기를 소망합니다. 지은 죄를 슬퍼하는 만큼, 상대적으로 죄의 용서를 기뻐하고, 그러므로 다시는 같은 죄를 짓지 않기로 결심합니다. 성찬에 참여할 때마다 주님을 향한 감사가 늘어나고 그분을 위해 할 일이 무엇일까 찾게 됩니다. 죄에 대한 용서가 크게 느껴지면 느껴진 만큼 그분을 위해 사는 것을 더욱 소망하게 됩니다. 에베소서 4장 30절로 5장 2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2021년 3월 2일(TUES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30주차(80-82문답)

성찬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는 진지한 시간입니다.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기쁨의 시간입니다. 그 동안 지은 죄가 얼마나 큰지, 또 앞으로도 죄지을 것도 알지만,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그러한 모든 죄가 사해졌음을 확신합니다. 여전히 짓고 있는 허물이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으로 가려질 거라는 믿음을 품기 때문에, 성찬은 우리 같은 중죄인들에게 커다란 위로를 주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1장 13절로 16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2021년 3월 1일(MON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30주차(80-82문답)

주님의 만찬은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축복과 위로를 줍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이 우연히 성찬에 참여한다 해도 아무런 효력이 없습니다. 성찬은 어떤 정해진 행동을 하거나 주문을 외워 마법을 행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성찬에 참여하는 올바른 태도는 이렇습니다. 자신의 죄로 인해 슬퍼하고, 그리스도의 수난이 자신의 죄 때문임을 깨닫습니다. 여전히 죄를 짓는 자신을 보며 주님의 슬픔을 헤아립니다. 주님께 자신의 마음을 살펴 죄를 보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죄를 통회하니 회개에 이르게 해달라고 주님께 간곡히 부탁하는 그럼 심령의 사람은 성찬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시편 139편 23절과 24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2021년 2월 28일(SUN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30주차(80-82문답)

[제80문] 주님의 만찬과 로마 교회의 미사는 어떻게 다릅니까? [대답] 주님의 만찬은, 첫째,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십자가 위에서 단번에 이루신 유일의 제사에 의해 우리의 모든 죄가 완전히 사해졌음을 확증합니다(마 26:28; 눅 22:19-20; 요 19:30; 히 7:26-27; 9:12, 25-28; 10:10, 12, 14). 둘째, 성신에 의해 우리는 그리스도에게 연합되었으며(고전 6:17; 10:16-17), 그의 참된 몸은 지금 하늘에 있고 하나님 우편에서(시 110:1; 막 16:19; 골 3:1; 히 1:3; 8:1-2) 우리의 경배를 받으심을 확증합니다(요 4:23-24; 행 7:55-56; 빌 3:20; 살전 1:10). 그러나 미사는, 첫째, 그리스도가 산 자들이나 죽은 자들을 위해서 사제들에 의해 지금도 매일 드려지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고난에 의해서는 그들이 죄 사함을 받지 못한다고 가르칩니다. 둘째, 그리스도는 떡과 포도주의 형체 속에서 몸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그 속에서 경배를 받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미사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단번의 제사와 고난을 부인하는 것이며 저주받을 우상숭배입니다(히 9:26; 10:12, 14).

제69문답에서 주어진 도표에서 살펴보았듯이, 제72문답에서는 세례와 관계되어 부인된 잘못이 정죄 받았음을 보았습니다. 이외에 두 개의 문답(제78문답과 80문답)에서 로마 가톨릭 교회의 주님의 만찬에 대한 잘못을 정죄했습니다. 여기 제80문답은 신앙고백문답의 성례 설명에서 따르는 패턴에 따라 잘못된 곳을 지적합니다.

순서가 이렇게 된 이유는 제80문답이 나중에 로마 가톨릭 미사를 더욱더 정죄하기 위해 선제후 프리드리히 3세(Frederick III)에 의해 삽입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느끼기에 문답 78번이 미사의 악함을 알리기에는 충분히 단호하지 않았습니다.

왜 가톨릭 교회에서는 주님의 만찬을 ‘미사(Mass)’라고 부릅니까? 이 단어는 ‘해산시키다’라는 뜻의 라틴어 ‘미사(missa)’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기독교 초기에 주님의 만찬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는 설교가 끝나고 만찬이 시작되기 전에 떠나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만찬으로부터 회중의 일부를 퇴출하기 위한 용어였는데, 이후 만찬 그 자체만을 위하여 사용하는 용어로 변질되어 버렸습니다. 실제로, 결국 그들은 주님의 만찬을 버렸습니다.

답변에서 첫 번째 부분은 앞의 문답에서 우리가 다양하게 고려해 보았던 주님의 만찬의 성경적 의미를 제공합니다. 두 번째 답변 부분은 로마 카톨릭 교회의 미사에 의해 제정된 두 가지 사악한 오류를 지적합니다. 이 두 번째 답변 부분을 자세히 보겠습니다.

첫째, 미사는 그리스도를 다시 바치도록 요구합니다. 미사는 미사가 행해질 때마다 그리스도의 새로운 희생을 요구합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의 신앙고백서에 “미사는 십자가 위에서 일어났던 희생과 동일하게 그처럼 제물을 받치는 것이다”라고 합니다(발티모어 신앙고백서 #931). 그러므로 로마 가톨릭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과거에) 희생하셨다”가 아니라 계속해서 “(지금 현재도) 자신을 희생시킨다”고 믿습니다. 결국 이것의 의미는 앞선 그리스도의 죽음(희생)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단 번에 모든 사람들의 죄값을 지불하기 위해 치러진 주님의 진짜 죽음이란 것은 없어져 버립니다. 만약 2000년이 지나도록 그리스도의 죽음이 끝나지 않았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리스도께서 확실하게 죽으신 것을 확신할 수 있겠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뿐 아니라, 지금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도 완성된 희생제사에 의해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정반대를 가르칩니다.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도다”(요 19:3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9:26, 28과 10:12은 그리스도께서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 번에 드리셨다고 가르칩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통상 교회, 사제들 그리고 떡(wafer)은 신뢰하지만, 십자가 위에서 그리스도의 단 번에 이루신 유일한 제사는 신뢰하지 않습니다.

둘째, 로마 카톨릭 교회는 성체(host, 그리스도의 몸)가 숭배되는 것을 가르칩니다. 로마 교회가 화체설을 주장할 때에, 이는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빵과 포도주에 임재하므로 그러한 빵과 포도주 안에서 그리스도를 마땅히 ‘예배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부가 성체와 컵을 높이 들 때에 그곳에 참여한 사람들은 그것에 경배합니다. 이러한 행위는 사실상의 우상숭배입니다. 그러므로 신앙고백문답은 ‘그리스도의 희생을 부정하고 저주받은 우상숭배’로서의 미사를 정죄하는 일에 확실한 입장을 취합니다. 이 판결은 루터가 ‘거대하고 괴물 같고 혐오스러운 교황의 미사’, 그리고 ‘모든 교황 우상숭배의 극단’(스말칼트 신조, 2-2)이라고 말 한 바와 같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로마 가톨릭 교회가 옳다고 믿는 일부 개신교들이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참으로 그들의 무식은 엄청나고 비통스럽습니다.

[제81문] 누가 주님의 만찬에 참여할 수 있습니까? [대답] 자기의 죄 때문에 자신에 대해 참으로 슬퍼하는 사람, 그러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에 의해 자기의 죄가 사하여지고 남아 있는 연약성도 가려졌음을 믿는 사람, 또한 자신의 믿음이 더욱 강하여지고 돌이킨 삶을 살기를 간절히 소원하는 사람이 참여할 것입니다. 그러나 외식하거나 회개하지 않는 사람이 참여하는 것은 자기가 받을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고전 10:19-22; 11:28-29). 

제81문답과 82문답에서 우리는 누가 주님의 만찬에 참여할 수 있는지를 배웁니다. 이 문답들은 누가 세례의 대상인지를 설명하는 제74문답과 연계됩니다.

주님의 만찬은 실로 ‘거룩한 만찬’이고 여기에의 참여와 축복은 오직 그리스도에 의해 허락 받습니다. 그리스도의 허락 없이 참여하는 자들에게는 심한 견책이 있습니다(고전 11:29). 이 문답은 기독교인인 우리로 하여금 만찬에 참여하기에 어울리는 태도로서의 개인적 자격(personal qualifications)을 취해야 할 것을 가르칩니다. 다음 문답에서는 성례에 참여하는 사람에게 요구되는 교회적 제한(Church qualifications)에 대해서 배우게 될 것입니다.

구약의 유월절에서처럼, 성찬에 참여하는 사람은 반드시 예식의 의미에 대한 자각이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성찬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오랜 동안 배움을 통하여 충분히 이해할 만큼 제대로 배운 사람만이 성찬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성찬에서 우리는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먹어야만 하고 동시에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따라서 아이들은 주님의 만찬에 나오기 전에 먼저 복음으로 교육을 받아야만 합니다. 이것이 당신이 성경과 신앙고백문답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기독교인은 주님의 만찬을 받기 전에, 자신의 상태를 다시 한 번 주의 깊게 점검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고전 11:28). 제81문답에서 설명된 대로 자신에 대한 점검에는 세 부분(three parts)이 있습니다. 참석하기 전에, 신자는 자신의 죄(sins), 자신의 구세주(Savior), 자신의 섬김(service)에 관하여 스스로에게 진지하게 물어야만 합니다(이것은 우리가 신앙고백문답의 요점으로서 알고 있는 바입니다).

  1. 나의 죄. 나는 내가 죄인인 것을 진실로 슬퍼합니까? 나의 부패한 본성과 하나님의 법을 어긴 것 때문에 진정으로 슬퍼합니까?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거나 혹은 마땅히 사랑해야 하는 나의 동료 그리스도인들과 이웃을 사랑하는 않는다는 것을 인정합니까? 나는 이 모든 죄를 참회하는 심령으로 하나님께 고백합니까?
  2. 나의 구세주. 나의 죄가 사함 받기 위해서 오직 그리스도의 죽음만을 신뢰합니까? 나의 모든 죄와 타락에 대한 용서를 위해 그리스도께 고백했습니까? 나는 그리스도께서 나를 구원하시고 나에게 영생을 줄 수 있는 오직 한 분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인정합니까?
  3. 나의 섬김.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좀 더 거룩한 삶을 살기를 진지하게 갈망합니까? 나는 좀 더 강한 믿음과 좀 더 경건하게 행동하기를 원합니까? 나는 하나님의 뜻을 순종함에 있어서 온전함(perfect)을 절실하게 바랍니까(마 5:48)?

만약 누구든지 이 세 종류 질문에 제대로 진실하게 대답할 수 없다고 느낀다면, 그는 주님의 만찬에 참여하기에 영적으로 적합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진실되이 회개해야 하며, 그러한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얻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그는 이 질문들에 대하여 만족스러운 대답을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은 먹고 마시지 않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그저 남에게 보이기 위해 성찬에 참여했다가는 그리스도의 화를 불러 일으킬 것입니다. 완고하고(회개치 않고) 가식적인(거짓의) 사람은 자신의 심판을 먹고 마실 뿐입니다. 참으로 조심하십시다!

[제82문] 자신의 고백과 생활에서 믿지 않음과 경건치 않음을 드러내는 자에게도 주님의 만찬이 허용됩니까? [대답] 아닙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언약이 더럽혀져서 하나님의 진노가 모든 회중에게 내릴 것입니다(시 50:16; 사 1:11-15; 66:3; 렘 7:21-23; 고전 11:20, 27-34).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그의 사도들의 명령에 따라, 그리스도의 교회는 천국의 열쇠를 사용하여 그러한 자들이 생활을 돌이킬 때까지 주님의 만찬에서 제외시킬 의무가 있습니다. 

이 문답에서는 성찬에 참여할 때 모든 기독교인들로서는 반드시 따라야 하는 교회적 자격(church qualifications)에 대해 배웁니다. 개혁교회는 교회 안에 있는 경건한 사람만이 성찬에 참여할 수 있다고 늘 주장해 왔습니다. 성찬은 교회 장로들에 의해 보호되어왔고, 그래서 오직 복음을 온전히 고백하고 경건히 생활해온 교회원만이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자격 없는 사람이 주님의 만찬에 참여할 경우 두 가지 악한 결과가 발생됩니다. 첫째, 언약이 더럽혀지고 하나님의 진노가 온 회중에 임하게 됩니다. 둘째, 자격 없는 상태에서 먹을 때에는 자신의 심판을 먹는 것입니다. 문답에는 누가 성찬 참여를 허락 받는지에 대한 세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첫째, 열린 성찬식을 봅시다. 이 견해는 성찬식은 참여하고 싶어하는 사람에게라면 모두에게 열려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무런 규제가 없습니다. 각인은 자신이 마음에 스스로 묻고 판단해야 하는데, 그에 따라 장로들은 참여하는 사람의 믿음 혹은 생활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 예를 든다면, 우리의 확인되지 않은 언약의 자녀들에게는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하면서도, 정작 현대주의자들과 간음한 자들이 진실한 신자들과 먹고 마시는 상황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주님께서 세상에는 성찬을 결코 주시지 않으셨고, 오직 당신의 제자들에게만 주신 데서 보듯이 확실하게 잘못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어 쫓으라”(고전 5:13)라고 했고, 또한 “유전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살후 3:6)라고 했습니다. 성례는 오직 죄를 고백하면서 진실하게 믿는 자들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장로들은 그들만이 성찬에 참여할 수 있도록 엄중한 태도를 취해야 합니다.

둘째, 닫힌 성찬식을 봅니다. 이 견해는 오직 소속된 교회 혹은 교단의 회원들만 참석한다는 것입니다. 이 견해는 다른 모든 교회는 거짓 교회이고 그리고 다른 교회에 소속된 모든 교회원들은 참 신자가 아니라고 여기는 관점입니다. 이것은 확실히 진리는 아닌데, 어떤 식으로든지 무조건 다른 교단의 교회원이라면 아예 성찬식에서 배제하는 것은 잘못일 수 있습니다.

셋째, 한정된 성찬식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붙잡아야 할 올바른 견해인데, 더 자세히 말하면, 장로들은 그들의 교리와 생활 기준으로써 참가여부를 판단하여 참 신자들만 받아들이는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만약, 다른 교회에서 온 신자가 복음의 진리를 확실히 고백하고, 그리고 실제로 성경을 믿는 교회에 속해 있으면서 교회에서의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다는 것이 확인된다면, 그러한 사람들도 얼마든지 참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교회원이 아닌 사람이 성찬식에 참여하기를 요청할 경우, 장로들에 의한 예의와 엄숙함을 갖춘 확실하고도 진지한 점검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하면 진실되이 믿지 않는 자들은 제외될 것이고, 악하거나 믿지 않는 사람이 성찬식을 욕되게 하는 문제로 스스로를 해치는 일이 허용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에 따라 진정 주님의 만찬식은 심판의 상이 아닌 축복의 상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