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1일 (THUR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15문답 묵상2018년

최초의 인간 아담의 상태에 대한 바른 이해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그는 어떤 의미에서는 완전한 인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또 어떤 의미에서는 그에게 아직 무엇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것은 행위 언약을 통하여 어떤 언약 조건(言約條件, conditions of covenant)이 주어졌었다는 사실을 통하여서도 충분히 고려되어야 하는 사항입니다. 둠브렐(W. J. Dumbrell) 교수가 적절히 지적했듯이 아담은 생명의 형체를 소유하긴 했지만 그러한 생명의 최고의 형체로서의 생명, 즉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였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금지된 일정기간을 지난 후에, 그리하여 시험을 통과한 후에 비로소 완전에로 올라서게 되었었습니다. 당신은 아담을 통해 초래된 원죄 사상을 믿습니까?

2018년 10월 31일 (WEDNE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15문답 묵상2018년

에덴 동산의 나무들의 중요성은 그것이 하나님의 명령과 관련되어 있다는 데 있습니다. 즉 이 나무는 단순히 나무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열매의 나무'였던 것입니다. 하와는 적극적인 자기 의지로써, 즉 자신의 영혼의 기능으로 지정의적으로 범죄하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비록 사탄의 유혹에 의한 것이었다 할지라도 실제적 범죄의 책임은 그녀 자신에게 있는 것입니다. 하와는 소극적으로 어쩔 수 없이 죄를 범했던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죄를 범하였습니다. 그리고 같은 방식으로 아담 역시 죄를 범하였습니다. 동시에 그들의 죄는 인간을 향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것입니다. 우리의 죄는 항상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부터 먼저 설정됩니다. 지금 당신의 삶은 아무 문제 없습니까?

2018년 10월 30일 (TUE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15문답 묵상2018년

최초의 사람 아담은 생명나무를 먹었습니까? 그는 먹지 않았고, 먹지 못하였습니다. 이 나무의 보다 깊이 있는 가치는 하나님의 시험과 관련될 때에 비로소 의미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 시험과 아무런 관계도 없이, 단지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기만 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아담 부부에게 있어서 이 나무의 열매는 시험을 통과하는 순종을 통하여서만 얻어질 것이었으며, 이후 성례의 수단으로 적절히 쓰일 것이었습니다. 이 생명나무의 열매는 오직 ‘이기는 자’만의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7을 읽어봅시다. 여기서 이기는 자는 사단의 유혹을 뿌리치고 시험을 통과한 자를 가리킵니다. 우리는 승리자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으므로, 아담이 추방된 에덴 동산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에 대한 당신의 감정은 어떻습니까?

2018년 10월 29일 (MO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15문답 묵상2018년

창세기 1:31을 읽어봅시다. 에덴의 처음 모습은 완전하고 행복한 나라였습니다. 다스리시는 하나님은 너무나 좋으신 분이셨고 사람은 영적 생명이 충일하였습니다. 이 나라는 참과 선이 지고의 수준을 갖추고 있었으며 그 아름다움이란 하나님께서 만족하실 만큼이나 훌륭한 것이었습니다. 악어와 사자 같은 맹수들이 토끼와 함께 사이좋게 놀았으며 사람은 호랑이와 같은 야수들을 쓰다듬으며 하나님의 창조를 즐겼습니다. 하나님의 계시가 그들의 삶의 행동 원리였습니다. 동산 중앙의 금지된 나무를 보면서 마음 속에 하나님을 간직하고 살다가 그 평화와 기쁨은 안식일에 이르러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당신은 이러한 나라가 장차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에게 임할 것임을 믿습니까?

2018년 10월 28일 (SU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15문답 묵상2018년

[질문]: 우리 시조가 창조받은 지위에서 타락하게 된 죄는 무엇입니까? [대답]: 우리 시조가 창조받은 지위에서 타락하게 된 죄는 금하신 열매를 먹은 것입니다(창 3:6, 12).

웨스트민스터 소신앙고백문답 제14문답에 대한 학습은 “사람은 자기를 알아야 한다고 옛적 격언(proverb)이 역설한 것은 조금도 틀린 말이 아니다(1.1.1)”라고 한 칼빈의 말을 인용함으로써 시작하겠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가, 또는 어떤 존재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인생사에서 자기를 모르기 때문에 필요한 일을 결정할 때 비참한 자기 기만에 빠지고 심지어는 눈 뜬 소경이 된다는 것은 더욱 혐오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교훈은 바르게 이해되어야 합니다. 어떤 철학자들은 자기 자신의 가치와 우월성을 아는 것이 인간의 목표라고 잘못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에 대한 지식에 이르는 데에는 두 단계가 있습니다. 첫째, 창조시에 우리가 무엇을 받았으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관대한 호의를 계속하시는가를 생각하는데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으므로(창 1:27), 여타 동물과 구별되는 거룩하고 정직한 생활로써 복된 영생을 향하여 매진하게끔 된 존재들입니다. 둘째, 하지만 아담의 타락 이후에 불행하게 된 우리의 처지를 반드시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로 이러한 생각이 근원이 되어, 먼저 우리 자신에 대한 증오감과 불쾌감과 겸손이 생기게 되고,  그에 따라 잃어버린 선을 회복하기 위하여 하나님을 찾겠다는 열성의 불길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름하여 타락에서 구원으로의 대 전환입니다. 태초의 인간 아담이 타락함에 따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게 됨에 따라 이와 같은 구속사의 구도가 형성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아담이 타락한 상황을 좀 더 자세히 보겠습니다. 창조 당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순종 여부를 드러내는 리트머스 시험지처럼 에덴 동산에 서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시 인간에게 4대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첫째, ‘음식을 먹는 즐거움’을 주셨습니다(창 1:29). 인간에게 먹는 즐거움을 주신 하나님께서는 이를 위하여 에덴 동산에 온갖 종류의 먹을 것들을 두셨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생명나무 열매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시험도 바로 이 먹고 사는 법칙과 연관되어서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먹고 사는 이 일은, 창세 때부터 있는 것으로 종말에 이르기까지 변하지 않는 영원불변의 법칙입니다.

둘째, ‘노동 명령’입니다(창 1:28).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담으로 하여금 에덴 동산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니까 아담은 노동하는 것을 통하여 과실을 먹어야 했습니다. 노동은 인간의 신성한 의무요, 먹는 즐거움을 뒷받침해 줍니다. 인간은 음식을 먹을 때 그냥 공짜로 먹어서는 안 되고, 신성한 노동을 수행한 대가로서 먹어야 하는 것입니다. 노동 없이 먹으려고 하는 것은 창조 원리를 거역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아예 먹지도 말아야 합니다.

셋째, ‘혼인 명령’입니다(창 2:24).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만드신 후, 돕는 배필로 여자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인간은 아이일 때에는 가정에서 부모의 양육을 받으며 자라나게 됩니다. 그러나 성장하게 되면 더 이상 부모 밑에 있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남자는 부모를 떠나 아내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어 새로운 가정을 이루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넷째, 여기에 더하여 ‘안식일 준수 명령’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창 2:1-3). 특별히 이 명령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모범에 입각하여 주신 명령이라고 하는 특징을 갖습니다.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지으신 것을 보실 때에 심히 좋았습니다. 그래서 창조하시던 일을 멈추시고, 일곱째 날에는 쉬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최초의 사람 아담을 생각할 때 두 가지 사실을 주목하여야 합니다. 창조된 아담은 완전한 상태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어 참된 지식과 의와 거룩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는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상태’이었으나, 아예 ‘죄를 지을 수 없는 상태’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은 자였으나 그러나 그것을 잃을 수 있는 상태에 있었습니다. 낙원에 있는 인간에게는 영육간에 모든 것이 풍족하였으나 부족한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영생에의 ‘절대적 확실성’이었습니다.

이러한 아담은 이상과도 같이 하나님께서 선으로 베푸신 4대 명령을 잘 이어가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토록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끔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결과는 비참했으니,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함으로써 타락하고 만 것입니다. 칼빈은 아담의 타락은 하나님께 대한 배신의 의미요, 이것이 최초의 죄인 ‘원죄의 성격’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2018년 10월 27일 (SATUR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14문답 묵상2018년

오직 하나님만이 거룩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형상과 모양을 주신 인간에게도 거룩하게 살 것을 요구하십니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갖종 율법을 주셨으므로, 그렇게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기준에 든든히 서 나갈 경우, 거룩한 상태를 잘 유지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유 여하를 떠나서 죄를 짓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죄'는 '표적을 빗나갔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일체의 것에 제대로 서지 못하면 표적을 빗나간 것이 되어 죄를 짓는 것이고, 결국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살지 못하는 것어 죄를 범하게 됩니다. 로마서 3장 23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거룩한 삶을 살기와 관련하여 당신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생각을 갖고 있습니까?

2018년 10월 26일 (FRI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14문답 묵상2018년

예수님께서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계명이 무엇인지 질문을 받으셨을 때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진실한 마음으로 사랑한다면, 하나님의 법을 어기지 않게 될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나보다 먼저 생각한다면 죄를 짓지 않겠지만, 자신을 먼저 생각한다면 계속해서 죄를 짓게 될 것입니다. 로마서 13장 8-10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최근에 하나님의 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한 경험이 있습니까? 아니면 도리어 죄를 범한 것이 더 앞섭니까?

2018년 10월 25일 (THUR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14문답 묵상2018년

하나님께서 하라고 명령하신 것을 하지 않는 것도 죄입니다. 겉으로 율법을 어기지 않을 때 하나님께 순종하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하라고 명령하신 일을 하지 않으면 사실상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4장 17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하나님의 뜻을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자신은 거룩하고 신앙이 특출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심각한 오류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도 행하지 않는 것은, 아예 모르는 것보다 더 나을 것이 없고, 오히려 더 죄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는 사실 얼마나 무능한 존재입니까?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실례를 하나 들어봅시다!

2018년 10월 24일 (WEDNE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14문답 묵상2018년

율법으로써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을 실제로 행하는 것은 명백히 죄이지만, 보다 엄밀히는 그것을 마음에 품은 것만으로도 죄가 됩니다. 즉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을 좋아하거나 바라기만 해도 죄가 디는 것입니다. 실제로 행동에 옮기지 않고 생각만으로도 죄를 짓는 경우는 부지기수입니다. 마태복음 5장 21-22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왜 마음에 악한 생각을 품는 것 그 자체부터 죄라고 규정하시는 것입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2018년 10월 23일 (TUE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14문답 묵상2018년

죄는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을 하는 것입니다. 개혁교회는 신앙고백을 통하여 하나님의 율법에 불순종하는 것이 죄라고 명백한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단 한 번밖에 어기지 않았다 할지라도 여전히 죄입니다. 그래서 율법의 일부는 지켰지만 단 하나라도 불순종했다면 율법 전체를 어긴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야고보서 2장 10-11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이런 차원에서 볼 때에 우리 인간이란 얼마나 무능한 존재이고, 따라서 범사에 하나님의 긍휼만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절감합니다. 어떻습니까? 최근의 죄에 대해서 한 번 고백해 보시겠습니까? 어떻게 개선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