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 11일 (FRI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25문답

예수님께서 희생제물이 되신 것으로 제사장으로의 역할이 끝났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도 천상에서 자신의 백성을 위한 제사장 역할을 하고 계십니다. 제사장은 희생제물을 바치는 외에도 백성을 위해 중보 기도를 드렸는데, 예수님은 지금 천상의 하나님 우편에서 교회를 위해 간구해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제사장이 자주 바뀌었던 것과는 달리, 예수님은 영원한 제사장이시므로, 재림하실 때까지 기도의 사역을 계속하실 것입니다. 히브리서 7장 23-25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이 말씀은 우리가 기도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마치는 근거가 됩니다. 하지만 우리의 기도는 실제로 이 사실을 반영하고 있습니까? 혹시 기도를 마치는 순서 정도로만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까? 그러한 일종의 형식으로 전락시키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2019년 1월 10일 (THUR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25문답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생각하면 슬퍼집니다.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므로 모든 죄를 벌한다고 선포합니다. 죄를 벌하지 않고 넘어간다면 하나님은 거룩하지도 공의롭지도 않은 분이 되고 마십니다. 자기를 대신하여 죄값을 치를 수 있는 수단이 있다면 모두가 어떻게 하든지 그렇게 하려 할 것입니다. 하지만 오직 예수님의 희생만이 하나님의 공의를 충족시킬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십자가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목케 하시사 우리를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로 되돌려 놓으셨습니다. 로마서 5장 1절과 8-10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가져다 주신 구원을 위한 이중적 공로는 무엇입니까?

2019년 1월 9일 (WEDNE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25문답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께 죄를 지은 것은 자신을 선하게 지으신 하나님께 염치없는 모반입니다. 이 모반은 스스로의 가치를 상실했으므로, 이후로는 자신의 죽음으로써도 보상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오직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만이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고 그렇게도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잘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아들은 본래 하나님 자신이시므로 죽으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으로 오셔서 죽으셔야 했던 것입니다. 자신을 희생제물로 드림으로써 인류의 죄에 대한 몸값을 치르신 것입니다. 완벽한 제사장인 예수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과 피로써 단 한 번으로 완벽한 제사를 드렸습니다. 히브리서 9장 11-14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렸다"고 한 말씀은 무슨 의미입니까?

2019년 1월 8일 (TUE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25문답

제사장은 끊임없이 향을 피우고 제사를 지냈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백성들은 그들과 하나님 사이에 죄가 가로막고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물론 구약의 제사장은 우리와 성정이 같은 죄인이었으므로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진정한 중재자는 될 수 없었고, 단지 오실 참 중재자의 예표일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을 위해서도 제사를 드려야만 했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와 똑 같은 인간이셨지만 죄가 없으시므로 완벽한 제사장이십니다. 히브리서 7장 26-28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여기서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케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고 한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2019년 1월 7일 (MO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25문답

히브리서 5장 1-4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은 후,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와 그 비참한 결과로부터 구원해줄 누군가에 대해 약속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구속의 도리를 배워야했습니다. 그래서 양, 염소, 황소 등을 성막으로 가져와 희생제사를 드리도록 했는데, 이는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가르침이었습니다. 동물의 머리에 손을 얹음으로써 '죄의 전가' 사상을 가르치셨고, 제사장이 동물을 죽이는 것을 통해서는 '대속' 사상을 가르치셨습니다. 이때 제사장이 제사를 드렸는데, 이것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재자'가 필요하다는 가르침이었습니다. 하지만 동물은 진정한 대속물이 될 수 없었고, 인간 제사장도 역시 죄인이었던지라, 실제로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라야 할 것'이라고 한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2019년 1월 6일 (SU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25문답

[질문]: 그리스도께서 제사장의 직분을 어떻게 행하십니까? [대답]: 그리스도께서는 제사장으로서 단번에 자신을 제물로 드려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 시키시고(사 53:1-12; 행 8:32-35; 롬 3:25; 히 9:26-28; 10:12; 요일 2:2; 4:10)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으며(롬 5:10-11; 고후 5:18; 골 1:21-22) 또한 우리를 위하여 항상 간구하십니다(롬 8:34; 히 7:25; 9:24).

웨스트민스터 소신앙고백문답 제25문답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에 대해 다룹니다. 그리스도는 참된 제사장이십니다.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의 본질은 이 직책 안에서 그 의미가 한층 더 밝게 드러나게 됩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라고 말한 것이 바로 이런 의미에서였습니다. 그리스도는 죄에 대한 모든 것을 해결하신 진정한 제사장이셨습니다. 이 사역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하나님을 향한 화목이 성취되었는데, 이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영원한 제물로 드리신 결과로써 얻으신 선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수행하신 제사장으로서의 직책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기 위해서는 구약 성경의 사상으로부터 충분히 도움을 받아야만 합니다.  구약 시대에는 각종 의식법들이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을 인도하고 있었습니다. 그것들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예표하였습니다(골 2:16-17; 히 9:10).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제는 더 이상 구약적 전통을 답습하는 것은 존재하지 아니합니다. 가령, 건물로서의 성전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직 믿는 자들의 몸 그 자체가 성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설교자가 서는 강단은 제단이 아니요, 그래서 성물이기는 고사하고 단지 말씀 선포의 편리를 위해서 등장하는 기구일 뿐입니다. 성전 휘장이 찢어진 것은 바로 이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제 실체가 오셨기 때문에 더 이상 건물로서의 성전의 존재가 필요하지 않은 것입니다(마 27:51). 만일 구약적 의식이 더 필요한 듯이 가르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사역의 본질을 가리우는 무서운 죄를 범하는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의 온전함은 그분의 인성과 신성의 신비적 결합 안에서 더욱 입증되며, 이것은 제사장인 동시에 죄를 위한 제물이었던 사실 안에서 대단히 독특합니다. 그분의 제사장으로서의 인격과 제물로서의 사역이 연합된 가운데 우리의 구원의 영원한 근원이 되십니다(히  2:17). 신성과 인성의 결합으로 말미암는 가치는 참으로 절대적입니다. 그분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신 분이십니다(히 4:1). 그분은 동시에 희생제물이었습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셨습니다(요 1:29). 실로 유월절 양이셨습니다(고전  5:7).  이런 식의 사역 - 인격적으로 제사장이시며 동시에 그 사역에 있어서 자기를 제물로 드리셨던 것 - 을 이루셨던 사실로 말미암아 그분은 우리의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히  5:7-10).  예수 그리스도의 헌제사역에 대한 보도는 히브리서에서 아주 뛰어나게 거의 독점적으로 나타났습니다. 뮬론 다른 신약 성경의 기자들도 한결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러한 헌제사역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롬 3:24-25 5:6-8; 고전 5:7; 엡 5:2; 요일  4:10; 벧전 2:24; 3:18).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감당하셨던 제사장직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게 하시는 것으로서의 화해(reconciliation)에 있습니다. 제사장은 백성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직무이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순결한 제사장(Priesthood)직의 중보에 의한 자기의 성결로써 우리와 하나님을 화해시키셨습니다. 율법이 가르친 바에 따라(레 16:2-3)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죽음을 제물로 삼아 우리의 죄과를 말소하시고, 우리의 죄값을 치르신 유일한 제사장이 되였습니다(히 7-10장, 9:7, 22). 이것은 하나님께서 ‘변치 아니하실’, ‘엄숙한 맹세’로써 계시하실 정도로 중요한 일이었습니다(시 110:4; 히 5:6; 7:15).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에서 오는 효험과 혜택을 얻으려고 한다면, 그의 죽음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이로 인하여 기도에 대한 신뢰를 얻고, 양심의 평화를 누리며, 아버지 같으신 하나님의 자비를 안심하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감당하셨던 제사장직의 중요한 또 다른 중요한 목적은 중보(intercession)에 있습니다. 앞서의 화해가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그리스도께서 감당하신 이 중보 사역에 근거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중보자로서 성부 앞에 나타나시는 중에 성부의 눈길을 그분의 의에 돌리게 하십니다(히  7:25;  9:11-15;  롬 8:34). 화해의 사역은 단 번에 이루어졌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러나 대제사장으로서의 중보의 기능은 영원토록 계속적입니다. 참으로 제사장과 제물을 겸하신 그리스도의 제사장으로서의 행동은 우리를 이 위대한 직책에 동참자로 받아들이시는 것까지 포함하는 것입니다(계 1:6).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제사장이 되어, 그를 의지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갑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요 17:19)라고 하신 뜻이요, 다니엘이 말하듯이, 성소 - 지극히 거룩한 곳 - 에 기름을 부은 이유입니다(단 9:24).

정리하자면, 이상 살펴본 바대로의 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의 중보를 우리가 힘입어 나가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보다도 그가 머리가 되셔서 친히 보양하시는 몸된 교회에 굳게 결속되어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제사장직분에서 나오는 모든 구속의 효력을 왕성하게 덧입게 해주는 유일한 곳입니다.

 

2019년 1월 5일 (SATUR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24문답

히브리서 1장 1-2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의 모든 계시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으로써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사도들을 선택하시사 자신의 인격과 사역으로써 드러내신 하나님의 구속의 도리를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신약성경이 기록된 내력이로되 사도들의 죽음과 함께 하나님의 '계시 전달 방식' 및 '계시의 내용'도 최종적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오늘날 완전한 선지자이신 예수님은 오직 자신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만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죄로 부패한 인간은 자연 상태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 없는 법이므로, 천상의 예수님은 성신을 보내셔서 성경의 메시지를 제대로 깨닫고 확신할 수 있게 해주십니다. 요한복음 14장 16-17절을 읽어 보십시오. 그리고 고린도전서 2장 12절 말씀을 로마서 8장 15절에 비추어 본 후,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확신할 수 있게 해주시는 성신의 사역은 사실상 우리를 중생시키시는 사역을 전제한다는 데 대한 당위에 대해서 토론해 봅시다.

2019년 1월 4일 (FRI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24문답

예수님은 천상에 계시지만 여전히 선지자의 직무를 수행하십니다. 이것은 일련의 과정을 통해 준비되었고, 일련의 규칙에 따라 진행됩니다. 먼저 예수님은 승천하실 때에 사도들에게 그 동안 보고 들은 것을 가르치라고 하셨습니다. 이 영광스러운 임무의 완벽한 수행을 위해, 행여 잘못 말한다거나 중요한 것을 빼먹지 않도록, 성신님을 보내사 도우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성신님은 하나님이시니 전혀 실수가 없으셨고, 나아가 핵심 진리들이 오류 없이 생각나게 해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과 16장 13-14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그러한 가운데 영원불변의 진리이자 구원의 도리인 신약성경을 기록케 하셨습니다. 이러한 토대 위에 성신께서는 성경을 읽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확신케 해주십니다.  이와 같은 예수님의 선지자 직분 수행에 의한 성신의 능력과 더불어 제공되는 말씀을 통한 구속의 효과는 예배시에 극대화됩니다. 무슨 의미이며, 왜 그렇습니까?

2019년 1월 3일 (THUR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24문답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모든 뜻을 보여주셨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선지자로 보내시사 구원받기로 작정된 자들에게 구원이 적용되는 원리에 대해서부터 가르치셨던 것입니다. 이는 다른 선지자로서도 할 수 있었던 일이었겠지만, 신분상으로는 그들은 결코 구원자가 아니었으므로, 하나님의 뜻을 가르칠 수만 있었지, 자신들에게 적용할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뜻의 총합은 선지자 예수님이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이시라는 데로 모아졌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자신을 그리스도로 영접하면 죄를 용서받을 것이고 영생을 선물로 받는다고 선포하시는 식의 선지자의 직무를 수행하셨습니다. 이것을 하나님 일이라고 가르치시는 요한복음 6장 28-29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에 대한 보다 확장되고 구체적인 의미는 무엇입니까?

2019년 1월 2일 (WEDNE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24문답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런데 가르침만이 아니라 삶을 통해서도 하나님을 나타내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지상의 삶은 하나님의 뜻의 본보기이기도 하였습니다. 결국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 자신이기도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장 14-18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예수님은 인간으로 오셔서 우리와 함께 사심으로써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보여주시되, 우리가 어떤 모습을 지녀야 하는지 보여주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죄를 짓지 않으심으로써, 하나님께서 죄를 싫어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병자를 고쳐주시면서는 하나님의 긍휼의 충만하심을 보여주셨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죄인들을 용서하시고 보살펴주심으로써 사랑과 은혜로 충만하신 구속의 하나님을 보여주셨습니다. 이와 같은 예수님의 자기 계시의 절정은 무엇입니까? 왜 그렇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