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19일(FRI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32주차(86-87문답)

또 다른 선행의 목적은 ‘경건한 삶으로써 다른 사람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하기 위함’입니다. 세상은 그리스도의 적이며 거룩함을 싫어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있습니다. 하지만 거룩한 삶에 이끌리기도 합니다. 주위에서 매일 선행을 하며 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을 보면 관심을 쏟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는지 궁금해 합니다. 선행을 봄으로써 그리스도에 대한 관심을 갖습니다. 베드로는 믿지 않는 남편을 둔 아내들에게 편지합니다.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벧전 3:1). 믿지 않는 이웃이 신자라고 하면서 여전히 죄 가운데 있는 것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요? 우리가 신자로서 경건한 삶을 살 때 이웃은 우리 주님에 대해 더 알고 싶어합니다. 마태복음 5장 14절로 16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2021년 3월 18일(THURS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32주차(86-87문답)

요한일서 3장 7절로 10절 말씀을 읽으십시오. 선행의 또 다른 목적은 ‘우리 각 사람이 그 열매로써 자신의 믿음에 확신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어떻게 압니까? 우리 믿음이 ‘구원하는 믿음’인 것을 어떻게 압니까? 구원하는 믿음은 열매를 맺습니다. 여전히 죄 가운데 있으면서 죄를 떠나고 싶지 않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면 마귀의 자녀입니다. 교회 가기를 싫어하고 하나님의 자녀들과 사귀기를 싫어합니까?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비록 여전히 죄를 짓기는 하지만) 항상 죄를 싫어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일을 하고자 노력하고 하나님의 자녀들을 사랑한다면 우리 믿음은 구원하는 믿음입니다.

2021년 3월 17일(WEDNES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32주차(86-87문답)

선행의 다른 목적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찬양 받으시기 위함’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거룩함을 사랑하십니다. 성경에서는 거듭 말합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나님을 닮으려고 한다면 그분을 찬양하고 그분을 기쁘게 해드려야 합니다. 독생자를 아끼지 않으신 것에서부터 시작해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가 측량할 수 없이 커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기쁘게 하는 일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니 우리도 거룩해지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완전히 거룩해질 수 있습니까?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비참할 정도로 실패하고 여전히 죄 가운데 있습니다. 하지만 달라진 점이 있습니다. 비록 죄를 짓지만 죄를 싫어하고 죄지을 때마다 용서를 구하며 더 나은 삶을 살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갓난아이가 첫걸음을 뗄 때 모든 아버지는 기뻐합니다. 아이가 걷기를 다 배울 때까지 훈련을 계속합니다. 하지만 다 자란 아이에게 걸음마를 가르치진 않습니다. 서투른 걸음마를 하며 하나님을 향해 한걸음한걸음 떼는 것을 기뻐합니다. 온전함에서 멀지만 거룩한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것만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립니다. 히브리서 13장 15절과 16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2021년 3월 16일(TUES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32주차(86-87문답)

신앙고백문답은 선행의 네 가지 목적을 말합니다. 우선 ‘모든 삶으로써 하나님의 은덕에 감사함’을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 신앙고백문답 묵상을 통해 하나님께서 어떤 은혜를 주셨고 어떤 희생을 치르셨나 알게 됐습니다. 아무 자격을 갖추지 않은 우리 같은 죄인을 위해서조차 베푸신 은혜에 한없는 위로를 받습니다. 이런 처지에 있는 우리는 당연히 그분이 원하는 것을 하고자 하는 열망을 품게 됩니다. 일생 동안 선행을 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께 감사를 표하는 방법입니다. 골로새서 2장 6절과 7절을 읽으십시오. 어떤 사람이 계속 죄에 머물면서 회개치 않는다면 그 사람의 죄는 용서받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감사함이 없는 이기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 있다면 신자가 아니라는 표시입니다.

2021년 3월 15일(MON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32주차(86-87문답)

구원을 위해 우리가 할 몫은 없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을 완성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여전히 선한 행위를 해야 합니까? 그렇게 할수록 우리에게 이루어진 구원은 풍성해질 것입니다. 신약은 우리가 마땅히 살아야 할 삶에 대해 많은 가르침을 줍니다. 믿기 전에는 죄짓는 것이 우리의 본성이라 가시떨기가 가시를 내듯 죄를 지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단 그리스도께로 오면 성신께서 우리로 하여금 선행을 하게 합니다. 사과 나무가 사과를 맺듯 우리는 선행이라는 열매를 맺게 됩니다. 예수께서 성신을 보내신 목적은 우리를 통째로 바꿔놓는 것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고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일을 행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게 합니다. 마태복음 7장 16절로 18절과 고린도후서 5장 14절과 15절, 17절 말씀을 읽어 보십시오.

2021년 3월 14일(SUN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32주차(86-87문답)

[제86문] 우리의 공로가 조금도 없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오직 은혜로 우리의 죄와 비참함으로부터 구원을 받았는데, 우리는 왜 또한 선행을 해야 합니까? [대답]  그리스도께서 그의 보혈로 우리를 구속하셨을 뿐 아니라 그의 성신으로 우리를 새롭게 하여 그의 형상을 닮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모든 삶으로써 하나님의 은덕에 감사하고(롬 6:13; 12:1-2; 엡 2:10; 벧전 2:5, 9)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찬양 받으시기 위함이며(마 5:16; 고전 6:19-20; 벧전 2:12), 또한 우리 각 사람이 그 열매로써 자신의 믿음에 확신을 얻고(마 7:17-18; 갈 5:6, 22-23; 벧후 1:10), 경건한 삶으로써 다른 사람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하기 위함입니다(마 5:16; 롬 14:18-19; 벧전 3:1-2). 

앞 부분에서는 신앙고백문답의 가장 긴 부분인 우리의 구속에 관한 내용을 두 번째로 끝마쳤습니다(제12-85문답). 이제부터는 신앙고백문답의 3번째와 마지막 부분인 감사와 예배에 대한 학습을 시작합니다.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신 주님께 사실 우리는 얼마나 큰 빚을 진 것이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로서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참된 종답게 현재 이 순간에도 항상 우리 자신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감사의 태도를 드러내 보일 수 있어야겠습니다. 언젠가 예수님께서는 용서함을 많이 받은 사람은 사랑도 많이 나타낼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7:47). 자신이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님으로 인하여 죄와 지옥으로부터 사함을 받았다고 확신한다면, 의당히 개심한 자답게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을 통하여 감사한 마음을 드러내 보일 것입니다. 참으로 기도에 열심을 내고,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 같이 읽고, 기타 등등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 안에서 성장하기를 추구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중생과 회심을 진정으로 경험하였다면, 기독교인으로서의 거룩함(경건한 삶을 살기)을 이루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아는 것도 또한 중요합니다. 현대주의자들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처럼 오직 그리스도를 위한 삶을 가능하게 해주는 기독교의 진리인 구원은 정작 부인합니다. 믿음이 없는 그러한 현대주의자들은 참된 기독교인의 삶을 살 수 없습니다.

문답 86번에서 91번까지, 우리는 선한 일(good works)에 대한 성경적 교리를 배웁니다. 다음과 같이 윤곽을 잡아볼 수 있습니다. 첫째, 선한 일의 목적(제86문답), 둘째, 선한 일의 필요성(제87문답), 셋째, 선한 일의 원천(제88-90문답), 넷째, 선한 일의 본질(제91문답) 등입니다.

선한 일은 우리의 중생한 마음으로부터 생산되는 열매와 행동인데 우리의 육체에 의해,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맞게끔 실행되는 데서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것들은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사랑하고 좋아하는 행동이고,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그것을 실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법이고, 그렇게 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왜 우리는 선을 행해야 합니까? 대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는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혈(죽음)에 의해 구원되었고, 또한 그의 성신에 의해 갱신(중생)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의 의미는 우리는 선한 일을 수행할 수 있기 위하여 구원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 혹은 우리 자신을 새롭게 하려는 의도로 선을 행하지는 않습니다. 기독교인들이 행해야 하는 이러한 선행에는 몇 가지 목적이 있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감사를 보여야 합니다. 이때 하나님께 순종으로 선을 행하는 것 외에 어떻게 우리의 감사함을 드러내 보일 수 있겠습니까?

둘째,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영광 받으십니다. 우리 같은 피조물들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수행할 때 하나님의 성호는 영광을 받습니다. 하지만 무신론자들은 그들의 악한 행위로 하나님의 성호를 멸시합니다. 우리는 과거에는 이러한 자들이었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셋째, 우리는 믿음 안에서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는 사실을 확신합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과의 대화를 단절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주님의 소유라는 확신은 가질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요일 2:3). 순종하는 생활과 믿음의 확신은 서로로부터 분리될 수 없습니다.

넷째,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그리스도께 마음을 쏟을 수 있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통해 참 기독교가 무엇인가를 보여줌으로써 효과적인 증인이 될 수 있고 또한 그로써 다른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되는데 흥미를 갖게 할 수 있습니다. 지금 당신이 사는 방식을 통해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말씀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그러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우리 모두 이 네 가지의 목적이 우리의 생활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선한 일에 열심 내는 사람’(딛 2:14)이 됩시다.

[제87문] 감사치도 않고 회개하지 않는 삶을 계속 살면서 하나님께로 돌이키지 않는 사람들도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대답] 결코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성경은 음란한 자, 우상숭배하는 자, 간음하는 자, 도둑질하는 자, 탐욕을 부리는 자, 술 취하는 자, 욕하는 자, 강도질 하는 자 기타 그와 같은 죄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고전 6:9-10; 갈 5:19-21; 엡 5:5-6; 요일 3:14-15). 

우리가 감사의 열매로서 선행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가 정말로 원한다 할지라도, 실제로는 필요 없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선을 행하는 생활은 기독교인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따라서 설사 기독교인이 되기를 고백하거나, 현재 교회원이라 할지라도, 죄 안에서 살고 계율을 깨뜨리는 사람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그 고백이 가짜이기 때문입니다.

거룩하게 사는 삶에 신경 쓰지 않는 기독교인은 결국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만약 하나님의 영이 우리의 삶을 거룩하게 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리스도께 속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믿음’은 살아 있는 믿음이 아니요 거짓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인에게 선행이 필수라고 할지라도 우리에게서 선행은 결코 구원을 얻거나 공덕을 쌓게 할 수는 없습니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선행이 구원의 공덕을 쌓게 한다고 가르치는데, 이것은 저주받을 교리입니다. 성경은 바대로 우리가 선한 일을 행할 수 있기 위해서, 그러한 능력을 위해서 구원을 받았다고 가르치지(딛 2:14), 우리가 구원을 얻기 위해서 선을 행해야 한다고는 가르치지 않습니다(딛 3:5). 이 두 개의 교리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따라서 계율을 어기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얻지 못한다고 가르칠 때에 신앙고백문답은 성경에 진실합니다. 만약에 하나님의 성신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따라 거룩한 삶을 살고자 하는 갈망을 주지 않는다면, 그런 경우 사실상 우리는 성신을 받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은 이 생에서 완벽에 도달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까? 아닙니다. 이 생에서 온전함을 위하여 기도하며 노력하고 그리고 우리가 넘어졌을 때 우리의 죄를 신실하게 고백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문답에 대한 대답은 고린도전서 6:9-10, 갈라디아서 5:19-21, 에베소서 5:5-6에서 사도 바울이 제시한 죄 목록에 따라 명백하게 두드러진 악한 죄를 근거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죄들이 단순히 비난거리 하나를 가져오는 욕망의 만족에 불과한 것이라고 결론지어서는 안됩니다. 죄의 ‘탐욕’은 마음이든 육체든 죄의 모든 형태를 포함하기 대문입니다. 우리는 죄 용서와 죄의 모든 유혹으로부터 견딜 수 있는 힘을 얻기 위하여 주님께 매일 기도해야 합니다.

지금 그리스도의 성령께서 하나님께 대한 의와 순종 앞에서 당신을 굶주리고 목마르게 만드는 일을 하십니까?

2021년 3월 13일(SATUR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31주차(83-85문답)

교회의 권징은 예수님이 직접 가르치신 것입니다.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 만일 듣지 않거든 한 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 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험케 하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마 18:15-18). 어떻습니까? 귀하가 속해 있는 교회는 이 일에 얼마나 진지하고, 얼마나 열심을 내고 있습니까? 그렇게 하는 모습이 최소한이라도 있기나 합니까?

2021년 3월 12일(FRI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31주차(83-85문답)

복음선포는 천국의 열쇠입니다. 또 다른 열쇠도 있는데 교회의 훈련 또는 권징입니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신자다운 삶을 살지 못하는 자, 또는 거짓 복음에 안주하는 자가 있는지 주시해야 합니다. 잘못을 일깨워도 회개치 않으면 참신자가 아닙니다. 그러한 자들은 성찬에서도 제외시켜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만 거짓복음과 죄된 삶으로부터 교회를 보호하게 됩니다. 그리스도를 제대로 믿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다고 착각하는 일을 막아야 합니다. 그들을 진정한 회개로 인도하여 회복시키고, 그리하여 교회로 다시 받아들이는 것이 권징의 목표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3장 14절과 15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2021년 3월 11일(THURS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31주차(83-85문답)

그리스도인이라고 큰 소리 치는 사람이지만 실상은 그리스도인이 아닌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어긋난 것을 믿고 가르치거나 자신의 죄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그리스도인이라고 스스로 믿는 사람인 것입니다. 신앙고백문답은 이들을 ‘위선자’라고 부릅니다. 복음은 위선자들과 스스로 불신자임을 인정하는 자들에게 심판을 선포합니다. 복음은 회개치 않고 믿지 않으면 천국 문이 닫힐 것이라고 엄중히 경고합니다. 로마서 1장 18절과 로마서 2장 3절로 5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2021년 3월 10일(WEDNES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31주차(83-85문답)

믿는 사람들은 주일마다 모여 예배를 드리고 복음을 듣습니다. 물론 믿지 않는 자들이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기 위해서 복음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믿는 자에게도 복음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 모두 죄를 짓습니다. 그래서 매일 복음의 약속을 바라보며, 죄를 용서해주시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되새겨야 합니다. 교회가 모여 공적으로 선포되는 복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천국이 더 한층 자신의 것이 됩니다.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지라도 복음이 선포될 때 커다란 위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7장 22절로 8장 1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