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22일 (FRI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35문답

비록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거룩을 이루시지만, 이는 우리가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성신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면서 순종을 원하십니다. 그에 따라 성도는 죄된 습관을 깨트리고 거부하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 거룩에서 자라가게끔 주신 다양한 수단에 집중해야 합니다. 가령, 성경 읽기, 기도, 설교 듣기, 선행 기타 등등입니다. 빌립보서 2:12-13을 읽어봅시다. 지금 당신 안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습니까? 그렇게 해주시니 참 감사한 마음입니다. 그런데 혹 그것이 스스로의 종교 감정인지 아닌지는 어떻게 분별할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2019년 3월 21일 (THUR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35문답

칭의와 양자(입양)처럼 거룩도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입니다. 이 세 가지는 영 단번에 일어난 일이로되, 세 번째 요소는 우리의 삶 속에서 지속적으로 효력을 발휘하면서 앞의 두 요소를 활성화시켜 줍니다. 이것은 성도의 생명력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구현해 내게 되는 것을 가리킵니다. 갈라디아서 5:22-23을 읽어보십시다. 여기에 나오는 아홉 가지 덕목들은 사실은 다른 종교들이나 여타 도덕 단체들도 비슷하게 추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그렇게 하는 동기와 목적 및 수단과 방법  등에서 확실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성신의 열매'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이 차이를 잘 이해하지 못하면 도덕주의와 혼동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성신에 의해 이루어지는 거룩과 순전히 인간이 스스로 추구하는 선행과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차이가 있습니까?

2019년 3월 20일 (WEDNE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35문답

비록 거듭난 우리이지만 죄성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이따금식 죄를 짓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로 향하려는 마음 역시 계속 약동합니다. 즉 하나님의 아들로서 부단히 거룩해지려는 모습입니다. 에베소서 4:22-24을 읽어봅시다. 옛 사람과 새 사람의 두드러진 특징이 잘 구별되십니까? 그러면 새 사람을 입는 모습에 대해 구체적으로 묘사한 25-32절을 읽어봅시다. 이러한 모습을 벗어날 경우에 성신께서 근심하신다고 했는데(30절), 이것은 좀 더 구체적으로 무슨 의미입니까?

2019년 3월 19일 (TUE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35문답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형상과 모양에 따라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많은 경우 사람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인간은 아담의 죄된 형상으로 태어납니다. 거룩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형상으로 다시 만드시는 일입니다. 죄는 전적으로 우리의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싶어하는 자아를 가졌습니다. 새로운 자아는 점점 강해지고, 죄된 자아는 점점 약해집니다. 이것이 거룩입니다. 때때로 이것은 결코 그리스도처럼 될 수 없을 것처럼 보입니다. 죄된 습관을 버리기가 어렵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거룩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시작하셨으니 마치실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23-24을 읽어보십시다. 그러니 우리로서는 더더욱 굳은 결심과 의지로써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고 힘써야하지 않겠습니까?

2019년 3월 18일 (MO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35문답

먼저 고린도전서 6:11을 읽어봅시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그러나 우리를 위해서 행하시는 것들 중 하나는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일입니다. 이것의 의미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특별한 것을 위하여 따로 구별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의 피를 지불하셨는데, 그에 따라 당신의 거룩하심과 같이 우리도 거룩하게 하셨는데 이 일은 우리가 구원 받을 때 단 번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다음으로, 우리의 인격이 점차적으로 변한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인격의 변화란, 우리가 삶의 방향을 바꾸어 하나님을 위해서 살기 시작한다는 의미입니다. 그에 따라 죄성은 점점 줄어들고 거룩한 삶은 점점 증거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결코 중단되지 않고 계속되다가 최종적인 완성에 이르게 됩니다. 지금 당신의 삶은 하나님께로 향한, 그리고 하나님을 위한 삶에 있어서 확실하게 발전하고 있습니까?

2019년 3월 17일 (SU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35문답

[질문] 거룩하게 하심이 무엇입니까? [대답] 거룩하게 하심은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은혜의 행위이고(겔 36:27; 빌 2:13; 살후 2:13),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좇아 온전히 새사람이 되고(고후 5:17; 엡 4:23-24; 살전 5:23), 점점 더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됩니다(겔 36:25-27; 롬 6:4, 6, 12-14).

제35문답의 주제는 거룩함, 즉 제34문답에서처럼 양자로 입양된 하나님의 백성인 까닭에 마땅히 힘써야 할 성화에 관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어주신 것은 우리 의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 되시려함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고귀한 죽음으로 우리는 모든 죄로부터 용서되었고 더불어 깨끗케도 되었습니다. 첫째, 우리의 죄로 인한 유죄로부터 정결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칭의입니다. 둘째, 우리는 우리 죄의 권세로부터도 정결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성화입니다.  하지만 이 두 요소는 논리적으로는 구분되어도, 경험적으로는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을 유념해야 합니다. 이 사실에 주목하지 않게 되면, 항간에 특별히 구원파의 경우에서 명백히 보듯이 신앙주의라는 데로 빠져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사실은 이러한 모습이 제도권 안에서도 적지 않게 나타나므로 각별히 주의해야겠습니다.

우리 구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늘로 숭천하신 후, 우리의 심령에 죄의 권세를 깨부수는 성신을 선물로 보내셨다는 사실을 정말 놀라운 진리입니다. 이것에 대해 ‘온전히 새 사람이 되게 하신다’고 했는데, ‘새 사람’이라는 표현은 반대편에 있는 ‘옛 사람’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안에 있는 아담으로부터 이어받은 죄의 권세에 지배되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 ‘옛 사람’은 거듭나기 전의 우리를 지배하고 주장하는 죄의 권세로서, 곧 죄의 실체였습니다. 개혁교회는 인간의 상태에 대한 ‘전적부패론’을 절대적으로 인정하고 고백합니다. 옛적에 동양 철학계에서 맹자에 의해 성선설이 가르쳤고, 조금 지나서 순자가 그에 반대하여 성악설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성경적 입장에서 보자면 단연 성악설이 옳습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부패에 지배되는 존재여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을 결단코 행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 그리고 장사로 말미암은 성신께서 우리의 심령에 좌정하시게 되자, 그토록 기고만장하던 죄의 권세는 이제 죽은 상태가 되고 말았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었고(롬 6:6; 갈 2:20), 그리고 함께 장사되었고(롬 6:4), 그리고 그와 함께 부활했다고 선포합니다(골 3:1).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되시고 그리고 부활되셨을 때, 우리도 그리스도와 함께 동일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즉 그리스도의 성신께서 우리 안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게 됨에 따라, 우리의 삶에서의 죄의 권세와 능력이 벗겨졌고, 반대로 부활 생명으로 표현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 순종하신 능력이 샘솟기 시작했습니다.

제35문답은 로마서 6:1-14을 기반으로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므로 진정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인격 전체를 사로잡고 있는 죄스러운 정욕과 욕구까지도 제압해주셨다는 깨닫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합니다. 성도가 성신에 의해 중생될 때에, 그는 이후로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순종이 충만한 삶을 살 수 있게 되고, 어찌하든지 자신을 그리스도께 드리려는 소망과 능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앞에서 전제했듯이 칭의와 성화의 불가분리성을 잘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논리적으로는 각 개념을 분리할 수 있겠지만, 경험적으로는 결코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는 동전의 양면을 가를 수 있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즉 성화라는 용어는 편의상 사용하는 것이지, 우리가 실제로 거룩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유념해야 합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받음으로써 의롭게 되고, 동시에 거룩하게 될 수 있는 것이지, 칭의의 문제이든 성화의 문제이든 간에, 실제로 우리의 수고와 노력에 의해서가 아닌 것이고, 실제로 그렇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칭의와 성화는 영단번에 이루어지는 일인 것이고, 이때 성화는 칭의의 토대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성화는 자신에게 칭의가 일어났다는 데 대한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혹여 자신의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삶의 어떤 높은 정도나 고상한 특성을 들어 자신에게 칭의가 일어난 증거로는 삼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그럴 경우 영락없이 ‘이행칭으’라고 하는 괴물을 끌어앉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시금석은 이것입니다. 구원의 진리를 제대로 깨달은 성도로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의 성화 혹은 거룩함을 내세우거나 자랑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어떠한 대단한 업적(성화)를 이룬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것’으로 돌리고, 그리스도께 영광을 드리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 문제 앞에서 의외로 말과 행동이 다른 경향이 교계에 팽배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진리를 말로는 수궁하지만, 실제적인 삶의 모습 속에서는 온갖 교묘한 방법으로 ‘자기’를 내세우고 높이는 것입니다. 이제 이렇게 물어봄으로써 마치게 될 때에 이 문제는 더더욱 선명해질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성화의 선물(거룩해지려는 데 대한 소망)과 칭의의 선물(죄의 용서와 지옥으로부터의 구출에 대한 감사) 이 양면에 대하여 얼마나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렇게 하고 있는 증거로는 어떤 것을 제시할 수 있습니까?

 

2019년 3월 16일 (SATUR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34문답

성경이 우리를 가르치는 특별한 내용 하나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사랑에 있어서 예수님처럼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스스로를 하나님의 자녀라고 부르는 한 의당히 하나님의 다른 자녀들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거짓말하는 자가 됩니다. 또 하나의 특별한 가르침은, 의로운 삶에 있어서도 예수님처럼 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십니다. 그러므로 혹 죄를 범하게 되면 즉각 회개해야 하고, 다시 그것을 반복하지 않도록 애써야 합니다.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묘사하면서 하나님의 자녀를 마귀의 자녀들과 구별되는 표식으로 선포하고 있는 요한일서 3:10을 읽어보십시오. 지난 한 주간의 삶 속에서 이 두 가르침과 관련하여 마음에 걸리는 것은 없습니까? 혹 있다면 또는 없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2019년 3월 15일 (FRI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34문답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로 입양되는 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맏아들이 되시는 일도 가능해집니다. 로마서 8:29을 읽어보십시다. 이렇게 많은 유익들과 함께 하나님의 양자로 입양되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 사실을 단순히 신학적 표현 정도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길게 설명할 것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고 싶습니다. 당신은 지금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 즉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얼마만큼이나 실감 있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잊지 마십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확실히 입양되었다는 사실과 결코 분리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당신이 이 진리에 성립되어 있다는 사실이, 당신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2019년 3월 14일 (THUR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34문답

선한 부모의 자녀들이 누리는 유익들 중의 하나는 부모가 그들을 위해 필요한 것을 적절히 공급해 주신다는 점에도  있습니다. 선한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를 잘 알고 제 때에 공급해 줍니다. 그처럼 하나님은 아주 선한 아버지이신데, 자신의 그 무한하신 능력으로써 우리를 돌보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성도는 이 약속을 굳게 신뢰하기에, 혹여 세상과 타협함으로써 자신을 더럽히눈 동시에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까지 욕되게 하는 시험들이 닥쳐올 때면 언제라도 굳게 대항하여 기어코 이기고 맙니다. 어떻습니까? 지금 혹 시험 앞에서 갈등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모든 시험을 능히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에 연합되어 있는 자녀답게, 과감하게 극복해 보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자녀짜리로서의 품위를 단호히 발휘해 보십시다. 그렇다면 먼저 어떻게 또는 무엇부터 해야겠습니까?

2019년 3월 13일 (WEDNE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34문답

성도는 더 이상 죄에 대한 처벌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이 말은 우리가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러한 때에 우리를 그냥 버려두신다면, 하나님은 아버지로서의 능력이 없는 분이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보다 더 냉철한 판단과 감정으로 적절한 훈육의 징계로써 당신의 자녀들이 잘못된 길에 계속 서 있지 않도록 바로잡아 주십니다. 혹여 육신의 아버지는 못할지라도 영의 아버지께서는 기꺼이 우리를 바로잡아 주십니다. 그렇게 하셔서 우리가 보다 더 성숙한 그리스도인, 즉 보다 더 하나님의 온전하심을 닮아가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러한 아버지이시니 우리는 잘못될 수가 없고, 구원의 완성이 영원히 보장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5-10을 읽어보십시다. 그런데 지금 만에 하나라도 하나님의 부성적 징계가 임박한 그런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