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30일(FRI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12주차(31-32문답)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위하여 또한 왕들을 임명하셨습니다. 구약시대의 하나님 백성에게는 여러 왕들이 있었습니다. 일부 성군을 제외하고는 많은 이들이 사악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최고의 성군은 다윗 왕이었습니다. 그는 놀라울 정도로 하나님을 사랑했던 왕이었습니다. 물론 다윗도 완벽하지는 못했죠. 여전히 죄인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는 하나님을 사랑했으며 그분을 영화롭게 하기를 매우 갈망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깨달았을 때 극도의 슬픔에 빠져들었습니다. 자신의 죄가 하나님을 비통해하시게 했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다윗과 한 가지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왕국을 세우실 것이며 다윗의 후손 중 한 명으로 하여금 그 왕국의 영원한 왕이 되게 하시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그 완전하신 왕께서는 절대적인 공의로 그 백성과 나라를 다스리실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고 계셨던 그 왕은 바로 기름 부음 받은 자, 예수 그리스도이셨습니다. 이사야 9장 6절로 7절을 읽어보십시오.

2020년 10월 29일(THURS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12주차(31-32문답)

제사장은 중재인들입니다. 그들은 죄인인 인간과 죄를 혐오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아예 근본이 다른 두 존재 사이에 있었습니다. 제사장들은 사람의 죄에 대한 용서를 구하며 하나님께 매일같이 제물을 바쳤습니다.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기도했고 중재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예수님은 우리를 위한 완전한 제사장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돌아가심으로써, 당신의 몸을 제물로 드리는 완벽한 희생을 단 번에 하나님께 드리셨을 뿐만 아니라, 지금은 하늘에서 성부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당신의 자녀들을 위하여 간구하시며 중재해주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늘 당신의 자녀 한 사람 한 사람에 관하여 “제가 그의 모든 죄값을 이미 치렀었습니다. 제가 그를 위해 온전한 의의 상급을 획득해주었습니다”라고 말씀해주시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께서 ‘성부 앞에서 우리를 위해 항상 간구하신다’라고 한 제31번 고백문답이 의미하는 바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대제사장이십니다. 희생제물로써 드려지는 그분의 임무는 단 번에 이루어졌고 그것으로 모든 것이 완성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위해 중재하고 간구하시는 그분의 일은 오늘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9장 24절과 로마서 8장 33절로 34절을 읽어보십시오.

2020년 10월 28일(WEDNES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12주차(31-32문답)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위하여 제사장들도 임명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하나님과 대면이나마 할 수 있으려면 먼저 그들의 죄값이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치러져야만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려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처음에는 ‘장막의 제사’를, 다음으로는 ‘성전 예배’를 제정하셨습니다. 매 번 짐승이 죽어야 했고 쏟아져 내리는 피와 함께 그 몸은 제단에서 완전히 불태워져야 했습니다. 죄의 형벌은 죽음이며 그러므로 죄값도 오직 죽음으로만 치러질 수 있음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나마도 짐승의 죽음까지만 요구하신 것은 하나님의 자비하심 덕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대표하여 이러한 제물들을 당신께 바칠 사람으로 기름부음 받은 제사장들을 선택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모든 것들은 임시적인 것에 불과했죠. 언제까지나 그런 방식으로만 지속될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러한 제사 규례들은 우리의 죄값을 치르시기 위하여서 죄와 무관하신 자신의 몸과 피를 자발적으로 내어주실 분, 즉 완벽한 제사장으로 기름부음 받으신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계시였으며, 곧 하나님의 경륜의 일부였던 것이죠. 히브리서 9장 11절로 14절을 읽어보십시오.

2020년 10월 27일(TUES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12주차(31-32문답)

구약시대 때의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었습니다. 그러한 선지자들이 아니었다면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아니면 그분께서 자신들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지도 전혀 몰랐을 것입니다. 첫째로 아브라함, 그 다음으로는 모세가 최초의 선지자로 불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것은 언젠가 오실 더 크고 완전하신 선지자에 관한 일종의 하나님의 계시였습니다. 따라서 모세 역시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말하기를,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형제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를 들을찌니라”(신 18:15)라고 하였습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가져다 주는 사람들이었으므로,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마땅히 그들의 말에 주목해야 했습니다. 이제 우리로서는 참 선지자 예수님의 말씀에 귀 기울어야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하나님께로부터 들은 것들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아는 것을 이야기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자신이시기 때문이죠. 마태복음 7장 28절로 29절을 읽어보십시오. 예수님이라는 선지자께서 전해주시는 메시지는 그 어떤 것보다도 좋은 메시지입니다. 그래서 복음의 소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어떻게 죄로부터 구원되었으며, 어떻게 우리와 하나님간의 관계 회복이 다시금 가능케 되었는지를 알려주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사도행전 3장 19절로 24절을 읽어보십시오.

2020년 10월 26일(MON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12주차(31-32문답)

우리에게는 보통 성과 이름이라는 두 가지 이름이 있으며 사람에 따라서 한 개 이상의 중간 이름까지 갖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예수님을 ‘예수 그리스도’라고 부를 때 그것은 그분의 성과 이름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가 그분의 이름입니다. ‘사장’ 또는 ‘왕’ 등과 같이 누군가의 이름 앞에 붙여 직함을 나타내는 것처럼 사용된 것이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라는 직함은 ‘기름 부음을 받은 자’ 라는 의미입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특정한 임무를 수행할 사람들이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임명되었음을 나타내는 방법으로 그들의 머리 위에 약간의 기름을 붓는 의식 같은 것이 거행되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제물이 당신께 드려지는 일을 수행할 제사장이라는 존재에 대해 모세에게 처음 설명하시면서, 초대 대제사장은 그의 형이었던 아론이 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아론의 아들 역시 그의 뒤를 이어 제사장이 될 것이었으며, 따라서 그들을 제사장으로 임명하는 의식이 있을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사무엘로 하여금 사울을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다음으로는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 곧 다윗을 왕으로 임명하라고 명하셨습니다. 또 다른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가 사명 수행에 심히 지쳤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수고 종료를 허락하시면서, 엘리사를 후계자로 세우라 명하셨습니다. 이런 식으로 선출된 제사장과 왕 그리고 선지자 등은 다른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서 특별히 매우 중요한 소임을 수행해야 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선택받았음을 보여주기 위하여 특별히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제사장과 왕 그리고 선지자 이 세가지 직분은 앞으로 오실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실 것인가를 보여주는 정확한 상징이었습니다. 당신의 아드님을 기름부음 받은 자 되게 하시는 것은 애초부터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기름부음 받은 자, 곧 그리스도가 되실 것이었습니다. 누가복음 4장 16절로 21절을 읽어보십시오.

2020년 10월 25일(SUN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12주차(31-32문답)

[제31문] 왜 그분을 그리스도, 곧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고 부릅니까? [대답] 왜냐하면 그분은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임명을 받고 성신으로 기름 부음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시 45:7; 사 61:1; 눅 3:21-22; 4:18; 행 10:38; 히 1:9). 그분은 우리의 큰 선지자와 선생으로서 우리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감추인 경륜과 뜻을 온전히 계시하시고(신 18:15; 사 55:4; 마 11:27; 요 1:18; 15:15; 행 3:22; 엡 1:9-10; 골 1:26-27), 우리의 유일한 대제사장으로서 그의 몸을 단번에 제물로 드려 우리를 구속하셨고(시 110:4; 히 7:21; 9:12, 14, 28; 10:12, 14), 성부 앞에서 우리를 위해 항상 간구하시며(롬 8:34; 히 7:25; 9:24; 요일 2:1), 또한 우리의 영원한 왕으로서 그의 말씀과 성신으로 우리를 다스리시고, 우리를 위해 획득하신 구원을 누리도록 우리를 보호하고 보존하십니다(시 2:6; 슥 9:9; 마 21:5; 28:18; 눅 1:33; 요 10:28; 계 12:10-11). 

신앙고백문답 제31문답과 32문답은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설명하고 적용합니다. 이 이름은 구주라는 뜻이지만, 예수님의 부모님이 지어준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직분으로, 구세주로서의 예수님의 직무와 의무를 나타냅니다.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뜻을 지닌 그리스어 ‘Christos(크리스토스)’에서 왔습니다. 구약에서 이 직분은 히브리어로 ‘메시아’입니다. ‘메시아(히브리어)’와 ‘그리스도(그리스어)’ 둘 다는 동일하게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의미입니다.

신앙고백문답은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서 ‘선지자’와 ‘제사장’과 ‘왕’의 세 가지의 공적 직분을 수행한다고 가르칩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 때 이 세 가지 주된 직무를 제정하심으로써 이스라엘을 특별한 나라로 삼으셨습니다. 모세, 엘리야 그리고 이사야와 같은 선지자들이 있었고, 아론이나 엘리와 같은 제사장들이 있었으며, 그리고 다윗이나 솔로몬과 같은 왕들이 있었는데, 모두가 하나님께서 기름을 부어 세우시거나 또는 특별히 지명하셨습니다. 기름부음의 의식은 기름을 사람의 머리에 부음으로 거행되었습니다. 이러한 의식은 자신의 직무를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성신에 의한 지혜와 능력이 충만케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에게 선지자, 제사장 그리고 왕, 이 세가지 직분을 수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시던 현장에서 이 세가지 직분을 수행케 하시려고 비둘기처럼 내려오신 성신에 의해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마 3:16).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구약보다 더 위대한 선지자와 제사장과 그리고 왕을 모시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고백문답에서는 이와 같은 세 가지 직분의 분리된 직무를 자세히 가르칩니다.

첫째, 선지자처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진리를 완전히 선포하셨습니다(요 15:15). 둘째, 제사장처럼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희생제물로 바치시고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십니다(히 7:25-27). 셋째, 왕처럼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통치를 베푸십니다.

예수님은 지상에서 ‘그리스도’로서 이 세 가지 직무를 수행하셨지만, 이제 하늘에서도 계속해서 이 직무들을 수행하십니다.

[제32문] 그런데 우리는 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립니까(행 11:26)? [대답] 왜냐하면 우리가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어 그의 기름 부음에 참여하기 때문입니다(사 59:21; 욜 2:28; 행 2:17; 고전 6:15; 12:13; 요일 2:27). 우리는 선지자로서 그의 이름의 증인이 되며(마 10:32-33; 롬 10:10; 히 13:15), 제사장으로서 자신을 감사의 산 제물로 그에게 드리고(출 19:6; 롬 12:1; 벧전 2:5; 계 1:6; 5:8, 10), 또한 왕으로서 이 세상에 사는 동안은 자유롭고 선한 양심으로 죄와 마귀에 대항하여 싸우고(롬 6:12-13; 갈 5:16-17; 엡 6:11; 딤전 1:18-19; 벧전 2:9, 11), 이후로는 영원히 그분과 함께 모든 피조물을 다스릴 것입니다(딤후 2:12; 계 22:5). 

당신은 관직에 앉기를 좋아합니까? 정치인들은 관직에 오르기를 열망합니다. 그리고 종종 그것을 취하기 위하여 아주 열심히 일할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수여 받을 수 있으면서도, 사실상 최고로 명예로운 직책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칭호를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직임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의 문자적인 의미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인데,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직함의 칭호이며 직임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의 직무에 가담한 사람이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직무를 수행하시기 위하여 받으신 기름부음에도 동참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토록 의미 있고 중요한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은 처음에는 대적자들에 의해 비난과 경멸하기 위한 의도로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붙여진 이름이었습니다. 이 말은 신약성경에서 오직 세 번만 발견됩니다(행 11:26; 26:28; 벧전 4:16).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이름을 기쁨으로 여기고 이것을 자랑스럽게 인정합니다.

그리스도의 삼중직책에 따르면(제31문답), 우리도 역시 선지자, 제사장 그리고 왕으로서의 삼중직책을 지니고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의 처음 부모인 아담은 창조될 때에 삼중직책을 부여 받았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범죄로 말미암아 그는 마귀의 거짓을 말하는 선지자가 되고, 마귀의 일에 스스로를 바치는 제사장이 되고, 마귀를 대신하여 세상의 지배권을 행사하는 왕이 됨으로써, 결국 사단을 섬기는 선지자, 제사장 그리고 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삼중직책이 회복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우리는 아담의 원죄를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선지자, 제사장 그리고 왕이 되었습니다.

첫째, 우리는 선자자로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고백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의 진리를 선포합니다(해 2:17; 롬 10:9; 엡 4:25). 둘째, 우리는 제사장으로서 우리 자신을 그리스도께 바치는 산 제물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도록 모든 것에서 성별되었습니다. 여기에는 우리의 재능과 우리의 재물도 포함됩니다(롬 12:1-2; 벧전 2:9). 셋째, 우리는 왕으로서 우리 자신과 가정과 교회 그리고 사회 위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배권을 행사합니다. 우리는 죄와 악을 대상으로 선한 싸움을 싸워 승리하면서 현재 그리고 영원히 그리스도와 함께 통치합니다(창 1:28; 롬 8:37; 계 1:6; 5:10).

우리가 크리스천이 되는 참된 의미를 붙잡기 시작할 때, 우리의 삶은 놀랍게 변하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합니다. 우리의 대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아래서 그의 능력을 대행하는 하나님의 직분자가 된다는 것은 얼마나 영광스러우며 감동적입니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부르심 받은 우리의 소명, 곧 선지자와 제사장과 왕으로서의 우리의 거룩한 직분에 반대되는 행동을 결코 하지 맙시다. 그리고 이 위대한 사명을 위하여 우리에게 기름 부어지신 성신의 능력과 지혜를 믿고 굳게 의지해 나갑시다(행 2:38; 요일 2:20, 27).

2020년 10월 24일(SATUR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11주차(29-30문답)

하나님은 구약시대의 이스라엘에게 자신을 계시하실 때에 당신을 섬기면서 동시에 다른 신들을 숭배하는 것은 결코 가능하지 않다고 분명하게 선포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시도를 한 것은 하나님을 무척이나 진노하시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의 땅으로부터 그들을 쫓아내시고 포로로 전락시키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세우는 일과 관련하여, 행여라도 다른 수단을 의존한다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크리스천이라 부르거나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완벽하신 구세주이십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백성을 그들의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필요로 했던 모든 것을 수행하셨습니다. 아버지께 대한 완전한 순종의 삶을 사셨고, 이어서 당신의 백성이 지은 모든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서 그 값을 치러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모든 것을 완수하셨는데, 사실 그 모든 것은 우리를 대신하여 그렇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돌아가시기 직전에 ‘다 마쳤다’고 하셨습니다. 그로써 모든 것이 이루어졌습니다. 모든 죄가 사해졌습니다. 이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다른 어떤 것도 필요치 않게 되었습니다. 히브리서 7장 25절과 9장 11절로 12절, 그리고 26절을 읽어보십시오.

2020년 10월 23일(FRI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11주차(29-30문답)

사람들이 자신을 구원해줄 수 있을 존재로 믿는 것은 비단 성자들뿐만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믿습니다. 그들은 스스로의 힘으로도 얼마든지 하나님 앞에서 의로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데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본래 사람이란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스스로를 돌볼 능력이 충분하다고 생각하기를 좋아합니다. 남의 도움 같은 것은 필요치 않다고 말이죠. 특히나 선하게 사는 것에 있어서 적어도 우리 스스로가 남들보다 못하지는 않다고 생각하며 그래서 당연히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받아주실 것이라 확신합니다. 사람들은 자기에게 구세주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기 싫어합니다.

사람들이 자기자신을 믿는 또 다른 이유는 그렇게 하는 것이 상식적으로 맞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좋은 것을 받고자 한다면 우리도 하나님께 좋은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사람들은 원래 세상의 이치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세 번째 이유는 선을 행하는 것으로 천국행을 획득하거나 보장받을 수 있다고 많은 거짓 선생들이 잘못 가르쳐왔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구약시대 때의 율법을 인용하며 선을 행하는 것으로는 그 누구라도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없음에 대하여 명확히 하였습니다(롬 3:19-20). 자신과 연합함이 없고서는 그 누구라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열매 맺을 자가 없다고 예수님께서도 분명히 하셨습니다(요 15:5). 이사야 선지자는 우리를 어둠 속을 걷는 자들에 비유합니다. 그는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을 믿고 빛을 얻기를 청합니다. 아니면, 스스로 빛을 만들어보려는 시도를 하는 방법이 있다고 이사야 선지자는 기록합니다. 하지만 그 길의 끝에는 결국 고통만 있을 뿐이라는 경고를 덧붙였습니다. 이사야서 50장 10절로 11절을 읽어보십시오.

2020년 10월 22일(THURS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11주차(29-30문답)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하나뿐이신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참으로 확실하고도 놀라운 구원과 안전을 제공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주 사람들은 그들의 구원과 안전을 다른 곳에서 찾고자 합니다. 아니면 부분적으로는 예수님을 믿되 동시에 자기 자신이나 또는 다른 무언가도 신뢰하고 싶어합니다. 이 교리문답이 쓰여졌을 당시에는 몇 세기 동안이나 이어져온 잘못된 가르침들이 성행했습니다. 그런 가르침의 일부는 구원에 관한 도움을 받으려고 성자들을 의지하는 것 또한 포함되어있었습니다. 성자들은 나름 의로운 삶을 살다가 죽은 사람들이긴 합니다. 하지만 거짓교리에서는 그러한 성자들을 필요 이상으로 의로운 삶을 살았다고 과장합니다. 그때는 사람들이 특정한 성자를 기리기 위해 관련 교회를 순례하곤 하였는데, 그러한 의식을 행하면 생전에 그 성자가 행했던 의의 여분이 자신들의 몫으로 여겨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어리석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 그 누구도 하나님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할 만큼 의로울 수 없다고 성경이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그 의로운 정도가 예사롭지 않아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도 남아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의를 나누어 줄 수 있을만한 사람은 더더욱 있을 수도 없습니다. 로마서 3장 9절로 12절을 읽어보십시오. 오직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즉 예수님의 의만이 우리의 의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만일 예수님의 완전한 의로움으로 인하여 우리가 의롭게 여겨질 수 있는 것이라면 우리는 다른 누구의 의로움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또한 그러한 성자들에게 소원을 빌기도 했는데, 특히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에게 그랬습니다. 사람들은, 성자들이야말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인 까닭에 우리의 필요를 이해하고 그것을 하나님께 구함에 있어서도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들은 성자들이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중재해 줄 수 있거나, 아니면 도리어 사이를 갈라놓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참으로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되셨다고 가르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완벽히 이해하시는 까닭은, 자신이 인간으로서 그러한 필요들을 우리와 똑같이 경험해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유일한 중재인이시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오직 그분 한 분 뿐입니다. 히브리서 2장 17절로 18절과 디모데전서 2장 5절을 읽어보십시오. 성자들의 도움을 보태는 태도로 예수님을 믿으려 하는 것은 예수님을 진실로 신뢰하는 것이 아닙니다.

2020년 10월 21일(WEDNES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11주차(29-30문답)

대부분의 사람들이 세상의 모든 종교가 사실은 이름만 달리한 하나의 신을 섬긴다고 믿습니다. 서로 다른 종교라도 저마다 천국에 도달할 수 있는 고유의 방도를 가지고 있으며 어떤 특정한 방식이 다른 방식보다 그 효력 면에서 더 낫거나 못한 것은 아니라고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의 내용이 아니며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시는 바도 아닙니다. 하나님과 화목해지고 천국의 확신을 갖게 되는 길은 오직 한가지뿐으로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제공하신 구세주를 믿는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마치시고 제자들에게 명하시기를, 땅끝까지 가서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당신과 당신의 가르침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세상에 그것 말고는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드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나셨을 때부터 ‘예수’라는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아드님께서만 유일한 구세주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4장 11절로 12절과 17장 30절로 31절을 읽어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