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21일 (WEDNE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18문답 묵상2018년

하나님께서 인간을 최상의 존재로 만드셨지만 아담의 죄 안에서 전적으로 부패해져 결국 몸도 망가져 늙어 죽게 되었습니다.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은 악한 생각에 사로잡혀 사악한 계획에 몰두할 뿐더러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할 수도 없고 실천할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고린도전서 2장 14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죄로 인해 우리가 마땅히 사랑해야 하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미워해야 할 것들을 사랑하고, 게다가 하나님게서 금하신 것들을 즐겨 합니다. 요한복음 3장 19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인간은 창조 때 부여 받은 다른 피조물과 구별되는 선악을 분별하는 능력을 잃어버렸고 악을 행하기만을 즐겨합니다. 요한복음 5장 39-40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이러한 성향이 자신에게서 어떤 식으로 나타나는지 고백해봅시다.

2018년 11월 20일 (TUE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18문답 묵상2018년

죄인으로 태어난 데다 죄 짓는 일을 계속 하는 우리는 분명 하나님 앞에서 죄인입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한 아담 때문에 그의 후손인 인간은 예외없이 죄의 몸으로 태어나고 더불어 창조 때 부여 받았던 의는 고갈된 상태입니다. 원래의 의를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을테지만, 우리로서는 죄를 짓는 일 밖에 아무 것도 못합니다. 이렇게 ‘원죄’라는 것은 우리가 천래적으로 지닌 죄인데, 그 위에 우리가 의를 행할 수 없는 무능력까지 더한 것입니다. 시편 14편 2-3절과 이사야 64장 6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인간의 전적부패 교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왜 그렇습니까?

2018년 11월 19일 (MO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18문답 묵상2018년

모든 인간은 죄인입니다. 속 마음도, 보이는행동도, 모든 것이 다 죄로 가득합니다. 본래 죄인이지만 그 위에 매일 죄를 더 짓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태생이 선하지만 다른 사람들 때문에 죄를 짓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이는 선한 상태로 태어나는데 가난하거나 나쁜 부모를 만나기 때문에 나빠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아담의 타락 때문에 모든 사람은 예외 없이 죄인으로 태어난다고 말합니다. 시편 58편 3절과 마태복음 15장 18-19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혹 최근에 지은 죄가 있다면 고백해 보시겠습니까? 왜 그런 죄를 짓는다고 생각하십니까?

2018년 11월 18일 (SU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18문답 묵상2018년

[질문] 사람이 그 타락한 처지에서 죄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대답] 사람이 그 타락한 처지에서 죄 되는 것은 아담의 첫 범죄의 죄책과(롬 5:12) 원시의가 없는 것과(롬 3:10; 골 3:10; 엡 4:24) 온 성품이 부패한 것인데(시 51:5; 렘 13:23; 렘 17:9-10; 요 3:6; 롬 3:18; 8:7-8; 엡 2:3), 이것이 보통 원죄라 하는 것이고, 아울러 이 죄로 말미암아 나오는 모든 자범죄입니다(창 6:5; 시 53:1-3; 마 15:19; 롬 3:10-18, 23; 갈 5:19-21; 약 1:14-15).

웨스트민스터 소신앙고백문답 제18문답은 아담에게서 원죄를 물려 받았다는 사실을 규정하는 내용입니다. 사실 아담이 지은 원죄와 그로 말미암아 모든 인류가 빠져들게 된 자범죄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귀가 따거울 정도로 자주 듣습니다. 너무 자주 듣게 되면, 상대적으로 중요성이 무뎌지는 부작용도 낳을 수 있겠지만,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감수하면서까지라도 이 이야기는 거듭거듭 신앙의 주제가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고 했듯이(롬 5:20), 죄에 대한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는 사람이어야 상대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에게 얼마나 귀하고 귀한 분이신가에 대해서도 더더욱 절감하게 될 것입니다.

원죄는 우리에게 두 가지 요소로 임해 있습니다. 죄책과 부패인데, 죄책은 우리에게 전가(impute)된 것이고, 부패는 인간의 생육 관계를 통해서 전달(convey)됩니다. 이 둘의 관계는 동전의 양면의 관계와도 같아서 분리되지 않습니다. 그럴지라도 우리가 원죄를 인식하게 되는 것은 그것이 산물인 자범죄를 통해서입니다. 즉 누군가가 그렇게도 애를 쓰고 또 애를 씀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죄에 빠지곤 하는 것은 그가 근본적으로 원죄를 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경험의 영역에서 원죄와 자범죄의 동일성 관계는 마치 칭의와 성화의 동일성의 관계와도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성도가 자신에게 이루어진 칭의를 인식하게 되는 것은 결코 독립적으로는 될 수 없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칭의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에로의 신비적 연합을 전제하는 것이므로, 그렇게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에게는 그때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약동하기 마련인데, 바로 이 새 생명을 따라 사는 데서 통상 일컬어지는 성화가 전개되는 것입니다. 즉 성도가 성화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은 그에게 동시에 칭의가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칭의와 성화 역시 동전의 양면의 관계처럼 결코 독립적으로 분리해서는 다룰 수 없는 주제입니다. 그처럼 원죄와 자범죄도 같은 관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원죄는 향후 인간에게 자행되는 모든 자범죄들의 근원이요 뿌리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분명하게 전제해 두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처음에 아담을 창조하실 때에 아주 선하게 지으셨다고 하는 점입니다. 어느 누구라도 자신의 죄성을 들어 하나님을 원망해서는 안 됩니다. 죄를 짓는 인간은 자신의 죄에 대해, 자기 자신이 창조자임을 깨닫고 스스로를 비난해야 합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그렇게 하지 않고 구질구질한 변명을 늘어놓기 마련인데, 바로 이 사실 역시 인간이 죄인이라는 데 대한 반증입니다. 아담이 죄를 지었을 때 그가 했던 변명을 기억하십니까? 아담은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창 3:12)라고 했습니다. 이는 아담이 자신이 지은 죄의 책임을 하나님께 돌린 것이로되, 직접 그렇게는 할 수 없으니까, 하와를 걸고 넘어진 것입니다. 사람은 죄를 지은 후로도 항상 자신을 옹호하고 변명하는데 급급할 뿐이고 자기 자신을 비난하지는 않습니다.

아담이 하나님께 범죄했을 때, 그로 말미암은 부패성은 아담만 채우는 것으로 그치지 아니하고 향후 그를 통해서 태어나는 모든 인류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기 위하여 모태에 잉태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이미 부패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 51:5)라고 고백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5:12-21에서 아담의 한 가지 죄를 통하여 우리 모두가 죄인이 되었고, 반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단번의 의를 통하여 우리 모두가 의인이 되었다는 그 유명한 대표자 논증을 전개했습니다.

그런데 아담의 원죄로 말미암은 자범죄 문제와 관련하여 한 가지 유념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 사실은 모든 믿지 않는 사람들은 전적으로 악한 행동만 한다는 것을 가리키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믿지 않는 사람들 중에서도 사람이 보기에 선한 것같은 일들을 하기도 합니다. 가령, 의사로서 무료 봉사도 나가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돈을 기부하기도 하고, 더불어 사는 공익 사회를 위한 시민 운동을 하고 기타 등등을 행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칼빈이 정확하게 지적하듯이 그러한 사람들의 소위 ‘선한 일들’은 여전히 ‘악한 마음’에서 나온 것들이고, 그래서 하나님의 거룩한 눈 앞에서는 결코 선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자연인이 행하는 ‘선행’과 ‘친절’은 결코 하나님을 향하지 않는다는 데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결국 그들은 사람들로부터 돌아오는 칭찬과 선망을 위해 소위 자기들 방식대로의 의로운 일을 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덧붙여 알아 두어야 할 것은 그들은 대체적으로 기타 여러 가지 숨은 상태의 은밀한 죄들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이상 살펴보았듯이, 인간은 예외 없이 아담의 원죄를 지고 있고, 그로 말미암아 부패한 상태로서 살아가고, 그래서 오만가지 범죄의 공장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2018년 11월 17일 (SATUR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17문답 묵상2018년

창세기 1장과 2장은 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영광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3장부터는 아담의 죄와 그 결과에 대한 추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대적이 되었고 서로에게도 적대감을 품었습니다. 형제를 죽이는 이야기도 있고 원죄를 타고 태어난 탓에 비참하게 살아가다가 결국에는 죽는 그런 이야기들입니다. 결국 모든 사람이 예외 없이 악하게 되기에 이르렀고,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홍수로 쓸어버리십니다. 하지만 노아와 그 가족을 보호하십니다. 그에 앞서 사탄을 저주하시는 가운데 한 여자의 후손이 사탄을 파멸시키고 모든 일을 회복시킬 것이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약속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나오다가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서 성취되었습니다. 여기서 인격과 사역은 각기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2018년 11월 16일 (FRI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17문답 묵상2018년

창세기 5장 1-3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 아담은 누구의 형상이었다고 했습니까? 아담의 아들 셋이 태어났을 때는 누구의 형상이었겠습니까? 아담이 하나님께 순종했다면 그의 후손 모두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태어났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을 조금은 가지고 있지만 아담의 불순종 안에서 손상된 상태입니다. 즉 죄에게 지배되어 하나님으로부터 숨으려 하고 남의 탓을 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슬프게도 아담 가족의 고통과 죽음, 이기심, 분노, 증오가 우리의 것이 되었습니다. 행복한 가족으로서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며 살 수도 있었는데 죄로 가득한 괴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스스로 모든 추악을 좋아하고 추악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형상이란 과연 무엇입니까? 깨닫는 바를 이야기 해봅시다.

2018년 11월 15일 (THUR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17문답 묵상2018년

창세기 4장 1-10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성경은 아이들은 하나님의 선물이고, 따라서 아이가 많은 가정은 행복한 가정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아이들을 주셨지만 죄 때문에 그들의 가족은 행복한 가족 관계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아담의 장남 가인은 동생 아벨을 질투심 때문에 죽이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관계로 지음 받았지만, 아담의 죄 때문에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서로가 서로에게 해를 끼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함으로써 자신보다도 남을 더 사랑하는 마음을 회복시켜줄 구원자가 필요합니다. 혹 최근에 누군가를 미워한 적이 있다면 진솔하게 고백해 보십시다.

2018년 11월 14일 (WEDNE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17문답 묵상2018년

창세기 3장 16-19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죄는 항상 피할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아담과 하와의 죄의 결과는 고통이었습니다. 심한 고통을 당해본 적이 있습니까? 우리 육신은 질병이나 사고로 고통을 당하기도 하지만 남이 고의로 고통을 줄 때도 있습니다. 특히 마음의 고통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타격은 더 심합니다. 아담이 죄를 짓지 않았더라면 그런 고통은 없었을 것입니다. 아담의 죄의 또 다른 결과는 수고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땅이 가시덤불과 엉퀴를 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지진, 홍수, 다른 자연재해 등도 생겼습니다. 하지만 죄의 결과에서 가장 치명적인 것은 죽음입니다. 사람들은 죽음을 가장 두려워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으면 극도의 슬픔을 느낍니다. 아담이 순종했더라면 죽음도 없고 죽음으로 인한 걱정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제 창조의 원래 목적을 되찾아줄 구원자가 필요합니다. 죽음보다 더 강하고 슬픔과 고통을 없애주며 영생을 줄 구원자입니다. 누구십니까? 왜 그렇습니까?

2018년 11월 13일 (TUE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17문답 묵상2018년

창세기 3장 8-13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아담과 하와는 죄책감도 들고 실제로 하나님이 두렵기도 해서 하나님을 피하려고 노력하지만 숨을 곳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아담이 자신의 일을 직시하고 회개하기를 원하셔서 선악과를 먹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먹었다고 인정하면서도 다른 사람 탓을 했습니다. 그렇게 말한 것은 “그건 하와의 잘못입니다”라는 것과 “하나님이 그 여자를 주셨기 때문입니다”라는 핑계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와라고 하는 놀라운 선물을 주신 것인데, 그는 오히려 불평을 털어놓은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선물을 행복해하고, 그것을 주신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 인간이 창조된 목적입니다. 그러한 원리에 따라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재창조되었습니다. 지금 재창조된 자답게 하나님의 선물들에 대해서 감사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2018년 11월 12일 (MO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17문답 묵상2018년

하나님은 아담에게 불순종하면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선악과를 먹음으로 불순종한 까닭에 먼저 영적인 죽음부터 왔고, 계속해서 육신도 서서히 죽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아담에게 미친 벌이 그의 후손에게도 미쳤습니다. 그러한 죄와 비참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한 데서부터 온 것입니다. 창세기 3장 1-10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죄를 짓게 되자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이 오시는 것을 볼 때에 두려워 숨었습니다. 하나님께 거리낌 없이 나아갔던 이전의 모습과는 천양지판이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죄를 도말해주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시켜줄 구원자가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이유입니다. 이 두 가지 사실은 좀 더 정확하게 무슨 의미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