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 31일 (THUR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28문답

예수님의 세 번째 높아지심은 하늘에서 성부 우편에 앉으심입니다. 이는 영광의 자리에서 여전히 지상의 백성들을 돌보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선지자로서 백성을 가르치시되 성령을 보내셔서 믿는 자들 안에서 효력을 일으키십니다. 사도행전 2장 32-33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또 우리를 위해 아버지께 중보하는 부지런한 제사장이십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얻어주신 모든 것을 우리가 향유하도록 아버지께 간구하는 분이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7장 24-25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뿐만 아니라 왕으로서 우리, 즉 교회를 다스리십니다. 우리를 보호하시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십니다. 골로새서 1장 13-14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이와 같이 높아지심에 근거한 구속적 통치권이 왕성하게 나타날 때, 그렇게 머리의 다스림을 받는 교회의 모습은 어떤 형식 또는 질서를 취하게 되는 것이습니까?

2019년 1월 30일 (WEDNE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28문답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자신을 증거하신 예수님은 하늘로 오르셨습니다. 이것이 부활에 이은 두 번째 높아지심입니다. 인간이 되기 전 영화의 자리에 계셨던 그곳으로 오르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7장 5절을 읽어보십시오. 그리고, 그러한 영화와는 극단적으로 대조되는 히브리서 2장 9절을 읽어보십시오. 처음의 영화와 두 번째 높아지심으로 말미암은 영화 간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왜 그와 같은 첫 번째 영화와 두 번째 영화라고 하는 간격이 있었습니까?

2019년 1월 29일 (TUE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28문답

요한복음 2장 19-22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예수님은 죽었다 살아난 유일한 분입니다. 성경에는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게 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자신의 능력으로 스스로 죽음을 정복하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왕적 권능은 스스로 버리신 자신의 죽음을 통하여 사실은 죽음까지도 정복하셨다는 데서 극치에 달합니다. 요한복음 10:17-18절을 읽어보십시오. 그러한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은 우리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 일을 위하여 예수님은 네 단계의 높아지심을 거치게 되시는 부활은 첫 번째로 높아지신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22-24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나사렛 예수를 증거하셨다는 말은 무슨 의미이고, 그렇게 하신 수단은 무엇이며, 그것의 최고 절정은 무엇입니까?

2019년 1월 28일 (MO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28문답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구하려시고 낮아지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들어올리셨습니다. 사악한 자들이 예수님을 죽이고 무덤 속에 두었지만, 아버지께서는 온전한 순종을 드린 영광의 아들을 사흗날에 부활시키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많은 사람들이 목도한 바대로인데, 이들에 대해서는 고린도전서 15:5-6절 말씀을 읽어 보십시오. 만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고 의지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믿음은 헛되고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게 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17을 읽어보십시오. 여기서 믿음과 죄가 동격으로 결부되어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2019년 1월 27일 (SU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28문답

[질문]: 그리스도의 높아지심이 무엇입니까? [대답]: 그리스도의 높아지심은 그분이 사흗날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셨고(눅 24:44-46; 고전 15:4; 엡 1:20; 계 1:8), 하늘에 오르셨고(시 68:18; 행 1:11; 엡 4:8), 성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며(시 110:1; 행 2:33-34; 히 1:3), 마지막 날에 세상을 심판하러 오시는 것입니다(잠 7:13-14; 마 16:27; 행 17; 31).

제28문답의 핵심 주제는 그리스도의 높아지심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셨고, 그 후에 하늘로 승천하신 것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그렇게 승천하신 곳에서도 구원자로서의 사역을 계속하시는데 이는 당신의 몸된 교회를 보양하시는 것을 가리킵니다. ‘성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고 한 말의 의미가 이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때가 되면 지상에 재림하셔서 지금까지 진행해 나오신 구속사를 최종적으로 마무리 하시게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그리스도께서 높아지셨다는 데 대한 고백은 그 전 단계로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사실을 전제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높아지신데 대한 중요성은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의 경우 제45문답부터 52문답까지의 긴 논증으로써 전개한 데서 잘 나타납니다. 특별히 ‘그리스도의 승천이 주는 유익은 무엇입니까?’라고 한 제49문답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첫째, 우리의 대언자로서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서 우리를 위해 그의 아버지 앞에서 간구하십니다(롬 8:34; 요일 2:1). 둘째, 우리의 몸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있게 되었는데(엡 2:6), 이것은 머리 되신 그리스도께서 그의 지체인 우리를 그에게로 이끌어 올리실 것에 대한 확실한 보증입니다(요 14:2-3; 17:24; 엡 2:4-6). 셋째, 그리스도께서는 그에 대한 보증으로 그의 성신을 우리에게 보내시며(요 14:16; 16:7; 행 2:33; 고후 1:22; 5:5), 우리는 성신의 능력에 의해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는 곳인 위의 것을 구하고 땅의 것을 구하지 않습니다(빌 3:20; 골 3:1-4). ”

칼빈이 볼 때에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사실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로 정리하는 것이었습니다. 첫째, 주께서 승천하심으로 아담 때문에 닫혔던 천국 길을 여셨습니다(요 14:3). 동시에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이미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늘에 앉게 되었습니다(엡 2:6). 즉 소망으로 단지 기다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늘을 차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그리스도께서는 항상 우리의 중보자로서 참 성소의 아버지 앞에 나타나십니다(히 7:25, 9:11-12; 롬 8:34). 아버지께서 우리의 죄를 보시지 않고 자기의 의를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우리와 화해하게 하셔서, 자기의 중재로 우리가 아버지의 보좌에 가까이 가는 길을 준비하십니다. 참으로, 가련한 죄인들에게 무서움이 가득한 그 보좌를 은혜와 사랑으로 가득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셋째, 원수들의 것을 빼앗아 우리에게 주시며, 매일 영적 보화를 아낌없이 부어주십니다(엡 4:8; 시 68:18). 이것은 성신으로써 우리를 성결케 하시고 각종 은사로 교회를 장식하시는 것을 가리킵니다. 교회를 보호하셔서 날뛰는 원수들을 그의 강한 손으로 억제하십니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그의 원수이자 우리의 원수인 자들을 굴복시키시고, 교회 건설을 완수하십니다(고전 15:25; 시 110:1).

이상과 같이 하늘로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계속해서 우리의 구원자로서의 책무를 다하시는데, 그러다가 최종적으로 이 땅으로 다시 내려오셔서 구속을 완성하실 것입니다. 성도는 이 사실을 생각하는 가운데 현세에서 겪는 여러가지 어려움들을 능히 극복해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사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를 따르는 자들에게 현존하는 권능에 대한 의심할 수 없는 증거들을 주십니다. 그러나 세상에서의 그의 나라는 세속적 상황에서의 비천함으로 숨겨지는 방식을 취했으므로, 우리의 믿음은 그리스도께 마지막 날에 나타내실 보이는 임재를 확실하게 붙들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신성의 무한한 권능으로 수호 천사들과 함께, 승천하시던 때와 같이 눈에 보이는 형태로 하늘에서 내려오실 것입니다(행 1:11; 마 24:30). 그렇게 오신 후 즉각 양과 염소, 즉 선택된 자와 버림받은 자를 분리하실 것입니다(마 25:31-33). 이 심판대 앞에는, 아직 살아 있는 자들은 물론이고 이미 죽은 자들까지 다 소집될 것이고(살전 4:16-17), 아직 육신으로 살아 있던 사람들의 경우, 자연적인 죽음은 겪지 않겠지만 죽음과 같은 변화는 겪을 것입니다(히 9:27; 고전 15:51-52; 살전 4:16-17; 행 10:42; 딤후 4:1).

신약성경은 예수님의 재림에 대하여 많이 말하고 있는데, 애석하게도 매우 소수의 사람들만이 그에 대한 소망을 갖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탄절을 축하하고 즐기지만, 정작 소수의 사람들만이 실제적인 기대감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재림과 연결시킵니다. 이 단계에서 “심판 통과를 실패하고 저주를 받을 기독교인들이 있을 것인가?” 하는 질문이 일어나는데, 무서운 대답이긴 하지만 결국 거짓 신자의 경우 바로 그 결정적인 날에 실패할 것은 자명합니다. 이 날에 평소에 거듭난 자답게 사는 데 무관심했던 자칭 성도들은 그 동안의 모든 거짓들이 폭로될 것입니다. 그들은 보이는 교회와 상관없이 살았던 사람들과 함께 지옥으로 떨어질 것입니다. 이것은 가장 중요한 문제이므로, 우리는 심판을 심각하게 받아 들여야 하고, 그것에 알맞게 살아야 합니다. 평소에 자기 스스로를 속이다가 끝내는 지옥으로 떨어지고야 만다면 얼마나 무서운 일이겠습니까!

 

2019년 1월 26일 (SATUR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27문답

예수님은 시작도 끝도 없으신 영원한 분입니다. 죄가 없으시니 죽음이 그분을 해할 수 없지만, 인간의 타락이 자초한 저주를 받으시려고 스스로 인간이 되시는 제한을 취하셨습니다. 최종적으로 십자가에 매어달리심으로써 우리가 받아야 할 저주를 대신하여 받으셨습니다. 시신도 사흘 동안이나 무덤 속에 있었는데, 이는 예수님의 대속적 죽음이 사실임을 천명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고린도후서 8장 9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가난케 되심이 지금 당신이 누리는 부요함의 근거라는 것을 믿으십니까? 당신의 믿음은 혹 '종교적 습관'이라거나 '즉흥적 심리 현상'에 불과한 것은 아닙니까? 그렇지 않다는 데 대한 증거는 무엇입니까?

2019년 1월 25일 (FRI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27문답

예수님께 참으로 어려웠던 일은 백성의 죄를 짊어지고 하나님의 화를 대신 받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십자가에서 말로 다할 수 없는 공포와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성부와 항상 완벽한 관계를 맺고 계셨지만, 십자가상에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실 때에는 성부께서 가하시는 모든 진노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이사야 53장 4-6절, 10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오죽하셨으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극도의 고통 속에서 울부짖으셨겠습니까? 하나님과 상관없이 사는 것은 사실상 하나님께 버림 받은 것임에 다름이 아닙니다. 지금 당신의 삶은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인정하시는 것이라는 데 대한 믿음과 확신이 있습니까?  근거 또는 증거는 무엇입니까?

2019년 1월 24일 (THUR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27문답

타락한 인간은 예외없이 고통과 비참을 겪습니다. 그런데 타락과 상관없으신 예수님께서도 고통과 비참을 겪으셨습니다. 우리처럼 배고픔, 힘듦, 고통, 외로움, 슬픔 기타 등등을 겪으셨습니다. 거기에 더해 우리와는 전혀 다른 괴로움도 겪으셨습니다. 죄 없으신 분이 죄인들과 함께 사신 것 그 자체입니다. 다음의 말씀들을 읽고 예수님이 겪으신 고통의 실제를 확인해 보십시다. 요한복음 7장 1절, 5절; 8장 48절, 59절; 12장 27절.우리는 이러한 예수님의 고통과 고난을 짊어질 수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이것에 대해 골로새서 1장 24절에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라고 했습니다. 구체적으로 무슨 의미인지에 대해,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라고 한 바에 따라, 교회론과 연관지어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설명해 봅시다.

2019년 1월 23일 (WEDNE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27문답

시편 95편을 읽어보십시오. 하나님을 만유의 왕으로 찬송합니다. 만물이 하나님의 소유라고 노래로써 고백합니다. 인간은 이 위대한 왕께 당연히 순종해야 한다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만왕의 왕이신 분이 지극히 낮아지시고 또 낮아지셨습니다. 창세 전에 택하시는 일로서부터 시작하신 구원을 적용하시사 당신의 자녀들로 하여금 이 땅에서부터 누리며 살게 해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낮아지신 모습 중에는 십자가를 지시는 극도의 고통까지 포함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감당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에 근거하여 지금의 '우리'가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에 접붙여져 있는 우리 말입니다. 이 말의 현실적인 의미는 무엇입니까?  즉, 당신이 구원을 받은 데 대한 증거를 '과거의 경험' 또는 '현재적 적용'과 관련하여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2019년 1월 22일 (TUE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27문답

이사야 40장 14-17절에서는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영광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 위대하심과 영광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같은 인간이 되시기 전에 누리던 것이었습니다. 이 성경 말씀에서 열방을 어떻게 묘사합니까? 하나님은 인간과는 아예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훌륭한 분이십니다. 그러한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것은, 마치 인간이 하루살이가 되는 것보다 더 심한 낮아짐입니다. 근본적으로 무한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유한한 피조물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이 세상에 태어나실만큼 낮아지셨습니다. 그와 같은 낮아지심의 방법은 무엇이며, 왜 그와 같은 방법을 필요로 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