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19호. 성신의 역사로 인한 사랑의 공동체

바울은 이러한 에바브라가 ‘성령 안에서 너희 사랑을 우리에게 고한 자’였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성령 안에서 너희 사랑을 우리에게 고했다(… told us of your love in the Spirit; NIV)’는 말은 정확한 해석이 필요합니다. 언뜻 보면, 사랑을 전한 행위가 ‘성령 안에서’ 되어진 일이라는 듯이 보입니다. 또는 전혀 다른 의미로 ‘성령 안에 있는 너희 사랑’일 수도 있습니다. 전자일 경우 약간의 오해의 소지가 더보기

제018호. 복음의 능력의 열매

하지만 복음을 생각할 때에, 설교꾼들의 재치부리는 말 재주 차원에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또는 복음을 능력 차원에서 보기는 하되, 능력의 성격을 잘못된 관점에서 보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즉 복음을 능력으로 이해할지라도, 어떤 신비한 것을 목도하고, 경험하고, 체험하는 등등의 차원에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복음을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에게서 사이비 종교꾼들이 더보기

제017호.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이중적 특성

인간 영혼의 이러한 능력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창조세계와 하나님의 섭리 역사를 감지할 수 있는 데서 절정에 달합니다. 이처럼 신적인 특성을 감지할 수 있게 해주는 놀라운 은사를 자기 안에 지니고 있으면서도, 이 같은 은사를 주신 창조주를 멸시한다는 것은 참으로 불합리한 처사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권능은 명백한 증거를 통하여 우리의 주의를 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일부러 더보기

제016호.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오작동

사실 오동작하는 인생살이란 우리네 인간들끼리의 관계 속에서도 얼마나 속을 상 하게 합니까? 가령, 자식이 허구한날 부모님 속을 썩이고 있다고 생각해봅시다. 자식 의 도리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부모님을 공경한다거나 일상 언어에 있어서도 존댓말 조차 쓸 줄도 모르고, 마치 저 혼자 잘나서 자연적으로 큰 듯이, 제멋대로 살아가는 자녀가 있다면, 부모의 입장에서 얼마나 속이 썩어 더보기

제015호.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이중적 성격

자, 이제 무엇을 강조하려는 것인가가 명확해졌습니다. 우리가 발휘하는 일종의 ‘믿음의 행위’는, 그렇게 하는 것을 통하여 다음 단계로 구원이라고 하는 열매를 획득하게 된다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 안에 구원이 들어와 자리잡고 있다는 데 대한 일종의 시인, 또는 인정 혹은 고백하는 의미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복음을 따낼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어떠한 수단이나 방법이나 또는 더보기

제014호.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결과

성경에서 사용되고 있는 동사인 ‘안다(know)’ 또는 ‘알다’라는 단어와 ‘지식’(knowledge)이라는 명사는 대부분 동격으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이 둘의 의미가 합쳐질 때가 많은데, 그러한 경우에는 ‘안다’라는 말과 ‘지식’이라는 말은 좀 더 의미가 강화되어 ‘인정한다’, ‘승인한다’, ‘자인한다’(acknowledge)라는 뜻이 됩니다. 가령, 호세아 선지자가 “내 백성이 지식(knowledge)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호 4:6) 더보기

제013호. 복음증거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주권

물론 하나님께서 이처럼 복음 전파에 있어서 일체의 주도권을 행사하신다고 해서 사람 편에서의 계획이나 노력 등이 전혀 필요 없는 것처럼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아까도 말했듯이, 사람은 복음이 확장되어 나감에 있어서 도구 노릇을 하는 것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동적으로 가만히 있기만 해도 된다거나, 매 번 하나님께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시면서 직접적으로 계시하시는 것은 더보기

제012호. 믿음과 소망과 사랑

한 공동체 안에서 단순한 우정을 넘어, 사랑을 베풀며 사는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만의 특징입니다. 이는 하나님은 근본적으로 사랑이시며, 우리는 사랑이신 하나님의 자녀인 데서 오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아버지를 닮기 마련인 것이요, 이런 의미에서 그처럼 자녀라 일컬어지는 법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당신의 온전하심을 닮게 하시기 더보기

제011호.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구원

사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싶어 한다고 해서, 그렇게 알고자 하는 열망만 가지면 우리에게 하나님이 자동적으로 알려지시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알게 해주지 않으시면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대해서 논한다 할지라도,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신을 알려주시는 바대로, 그대로 알아 나간다는 차원이라는 것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