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 10일 (SU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30문답

[질문]: 그리스도께서 값 주고 사신 구속을 성신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하십니까? [대답]: 성신께서는 우리를 효력 있는 부르심으로 부르셔서 우리 안에 믿음을 일으켜 주시고(막 16:15; 롬 10:17; 고전 2:12-16; 엡 2:8; 빌 1:29; 벧전 1:23)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하심으로(요 15:5; 고전 1:9; 엡 3:17; 4:15-16; 벧전 2:4-5) 그리스도의 값 주고 사신 구속을 우리에게 적용하여 주십니다.

소신앙고백문답은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구속자가 되시는 신학적 원리를 선포했는데 이제부터는 그러한 구속이 우리에게 어떻게 구체적으로 적용되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게됩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성신의 역사로 말미암습니다. 이것을 ‘성신의 효력 있는 부르심’이라고 합니다. 여기 ‘효력 있는’이라고 한 부분을 눈 여겨 보아야 합니다. 물론 이 말은 성신의 능력이 인간에게서 제한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로서가 아니라, 성신께서 효과를 베풀어 주셔야만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실로 하나님은 복음 전파를 통하여 죄인들에게 구원을 가져다주시기를 작정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에 기뻐하셨도다”라고 감격스러게 선포했습니다(고전 1:21).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교회로 하여금 세상에 나아가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사명을 주신 이유입니다(마 28:19-20 등등). 갓난아이 때 죽은 유아를 제외하고, 그리고 말의 의미를 이해할 능력이 없는 정신 박약자를 제외하고는, 인가는 단지 ‘전도의 미련한 방법’을 통하여 구원을 얻어야 합니다. 그래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롬 10:17)라고 했고 또한 “그리스도의 복음은 …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 1:16)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중대한 질문이 하나 제기됩니다. 그것은 왜 복음을 들었을 때 어떤 사람들은 받아들이고, 어떤 사람들은 받아들이지 않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왜 복음이 어떤 이는 회개에 이르게 하고 어떤 이는 강팍하게 합니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하여 우리는 먼저 그 이유가 복음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받아들이는 자에게든, 그렇지 않는 자에게든 복음은 동일하게 전파됩니다. 복음은 예외 없이 모든 죄인들에게 선포됩니다. 이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롬 10:13)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어느 누구라도 구원을 얻도록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기회에서 애초부터 박탈되어 있는 경우는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들 간에 복음 수용에 차이가 있는 이유는 인간 자신들 속에서 원인이 있기 때문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은 복음을 받아들이고, 어떤 사람은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우리는 한 사람은 다른 한 사람보다 더 나은 본성을 지녔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입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본성상 허물과 죄로 죽었다고 선포합니다(엡 2:1). 자기 자신의 본성적인 의지와 욕망 또는 남들보다 탁월하기 때문에 복음을 받아들이는 경우란 없습니다. 오히려 모든 사람이 공통적으로 복음을 배척합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고전 2:14). 그래서 간단히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그들 자신의 힘과 본성적이며, 육적인 소욕대로 버려 주신다면 이 땅위에 어느 누구도 복음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한편, 확실히 보듯이 다른 어떤 이들은 복음을 받아들이고 있지 않습니까? 여기서 다시 “왜 어떤 사람들은 복음을 받아들이는가?”라고 질문이 제기됩니다. 대답은 그들은 효력 있는 부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전파된 참된 복음을 들었지만, 성신께서 그것을 쓰셔서 중생시키시기 때문에, 그들은 복음에 반응하는 바 효력 있는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이 과정을 다음과 같이 개요적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 복음은 한 그룹의 사람들에게 전파됩니다. 그 복음을 듣는 모든 사람은 죄 아래서 죽은 자입니다. 그들은 복음의 미련한 것으로, 어리석은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그것을 믿을 수 없습니다. 둘째, 어떤 사람의 경우에는 성령님께서 권능의 역사를 수행하십니다. 그것을 일컬어 ‘소생시킴’(엡 2:6), ‘창조’(엡 2:10), ‘중생’(요 3:4, 7), ‘죽음에서 일어남’(엡 2:6) 등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땅 위에서 전도하실 동안에 눈먼 자, 귀머거리 절름발이 등에게 육체적 소생을 주시는 베푸심과 마찬가지로, 사람을 소생시키시는 하나의 영적이 기적입니다.  셋째, 그럴 경우에 성령님이 중생시키는 사역의 결과는 이러하니, 곧 복음은 권능 있는 효력을 가집니다. 전에는 어리석게 보이던 것이 이제는 심령을 찌르고(행 2:37), 이전에 단지 사람의 말로 보이던 것이 이제는 믿는 자 속에서 효력 있게 역사하는 ‘하나님의 말씀(진리)’로 받아집니다(살전 2:13).

결론적으로, 어느 한 사람의 구원이 진정 성신의 효력 있는 부르심에 의한 것이었다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품에 안겨서 필요적절한 양육을 받기에 게으르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신의 효력 있는 부르심은 죄인의 생명을 예수 그리스도께 연합시키시는 데서 볼질을 찾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 성신의 효력 있는 부르심은 이중의 연합, 즉 예수 그리스도께로의 연합과 그렇게 연합된 자들과의 연합까지 포함하게 됩니다.

 

2019년 2월 9일 (SATUR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29문답

선택된 사람이라면 아무리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시지 않는다는 마음이 들더라도 항상 회개하는 삶을 살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사람들은 모두 구원받을 수 밖에 없게끔 성신께서 그의 속에서 부단히 견인의 역사를 베푸시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6장 37-39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최근에 아차 하면서 깨닫고 다시금 신앙의옷깃을 매문 기억이 혹 있습니까? 여하튼 그러한 경험에 대해서 이야기 해봅시다. 그러한 경험의 배후에 성신께서 역사하셨다고 믿음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2019년 2월 8일 (FRI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29문답

요한복음 3장 3-6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다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성신께서는 사람들의 마음에 예수님을 믿을 수 있도록 능력을 베푸심으로써 그리스도의 구속이 그에게서 효력 있게 해주십니다. 죄로 인해 인간의 자연스러운 마음은 하나님을 대적하기만 합니다. 자연인은 자신이 원하는 것만 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하지도 않고, 할 수도 없습니다. 오직 성신께서만이 이러한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켜 죄를 회개하고 믿음을 갖게 해주십니다. 지금 당신의 마음은 성신의 인도를 받고 있습니까? 성신께서 그러한 인도를 베푸실 때에 사용하시는 수단은 무엇입니까? 왜 그렇습니까?

2019년 2월 7일 (THUR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29문답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성부, 성자, 성신, 세 위의 하나님은 항상 동일하십니다. 늘 듣는 이야기라 그저 그렇게 느껴지십니까? 하지만 이 세 위격의 고유한 사역을 통해서 우리에게 구원이 이루졌다는 데 대해 경이로움이 있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각기 우리 구원을 위해서 담당하신 일이 있습니다. 성부께서는 사람들을 선택하시고 구원을 계획하셨습니다. 성자는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우리 대신 완벽한 의의 삶을 사시고 죄값을 치르려고 죽으셨습니다. 성신께서는 이러한 구속의 모든 공효가 우리 안에서 능력으로 역사하게 해주십니다. 이러한 일이 막 시작되던 때에 하나님께서 삼위일체 전체로서 자신을 드러내보이신 사건에 대해 마태복음 3:16-17절을 읽어보십시오. 당신이 이해하는 삼위일체 하나님께 대한 가장 중요한 핵심 사실은 무엇입니까? 왜 그렇습니까?

2019년 2월 6일 (WEDNE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29문답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의 죄값을 위해 대신 죽게 하셨으니 이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사실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믿을 능력이 없습니다. 성신께서 먼저 사람을 중생시켜 믿을 수 있게 해주셔야 합니다. 그로 인해서 자신이 죄인이고, 구원이 필요하다는 절실한 각성이 생깁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해주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9장 15-18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가장 마음 깊이 깨달아지는 내용은 무엇입니까? 왜그렇습니까?

2019년 2월 5일 (TUE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29문답

하나님께서 영원부터 당신의 선하신 뜻대로 선택하신 바에 따라 우리에게 구원이 베풀어집니다. 에베소서 1장 11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작정하신 대로 모든 일이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은 결코 죄와 비참한 처지에서 죽지 않습니다. 성경은 선택된 사람들은 반드시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는다고 선포합니다. 성신께서 우리가 선택된 사람이라는 것을 확신케 해주시고, 예수님을 끝까지 구주로 믿고 신뢰하게 해주십니다. 성부 하나님은 구원할 사람들을 선택하시고, 성자 하나님은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죽으시고, 성신 하나님은 택한 자들의 마음에 그리스도를 믿도록 확신을 주시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혹시라도 늘 듣던 이야기를 또 듣는다는 식의 상투적인 이야기로 받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예정론이 실제로 당신에게 끼치고 있는 영향력은 무엇입니까?

2019년 2월 4일 (MO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29문답

최악의 왕이 다스리는 나라의 죄수가 당신 자신이라고 상상해 보십시오. 감옥에 가둬놓은 채 매일 같이 악한 일을 강제로 시킨다면 어떻겠습니까? 시간이 지나면 결국에는 스스로 알아서 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 우리가 처한 상태가 이와 같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악한 왕보다도 더 강한 왕이신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를 구해주셨는데, 이때 놀랍고, 그리고 감사하게도 우리가 지불해야 할 죄값이 지불되는 방식이었습니다. 골로새서 1장 13-14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단어 하나를 들라치면 당신의 경우는 무엇입니까? 왜 그렇습니까?

2019년 2월 3일 (SU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29문답

[질문]: 우리는 어떻게 그리스도께서 값 주고 사신 구속에 참여하는 사람이 됩니까? [대답]: 그리스도의 성신께서 그 구속을 우리에게 효력 있게 적용하여 주심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값 주고 사신 구속에 참여하는 사람이 됩니다(슥 4:6; 요 3:5-6; 고전 12:13; 딛 3:4-7).

소신앙고백문답 제29문답은 지금까지 살펴본 예수 그리스도의 삼중적 직책으로 말미암은 구원 사역에 어떻게 우리가 참여하게 되는가에 대해서 다룹니다. 표현상으로는 ‘우리가 참여한다’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이 마저도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입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성신으로써 우리에게 구속이 효력 있게 적용되게끔 그렇게 해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자신이 그리스도를 붙들고 있는 것이긴 해도, 실상은 그리스도께서 먼저 자신을 붙들고 계시는 까닭에 그처럼 그리스도를 붙들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여기서 우리가 보아야 할 중요한 관점은 구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께서 베푸시고 이끌어 주시고 완성시킨신다는 점에 대한 것입니다.

이 사실을 간과하거나 강조하지 않는 것은 결국 구원의 주도권을 사람에게 돌릴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므로 개혁주의 신앙이 아닐 수밖에 없습니다. 종교개혁기 및 이후로도 구원의 모든 것을 사람 자신의 의지에 종속시킴으로써 교회 안에 많은 혼란을 일으킨 가르침이 꾸준히 있어왔습니다. 물론 맹백히 잘못된 이러한 교훈의 뿌리는 어거스틴 시대 때 그와 평생 논쟁하였던 펠라기우스에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오늘날에는 이러한 주장에 대해 ‘알미니안주의’라고 부르는데, 이는 1609년에 죽은 야콥 알미니우스가 이러한 주장을 하여 교회 안에 큰 혼란을 일으켰고, 그 여파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피조물이 탄식할 정도로 우주 전체에 편만한 저주는(롬 8:20-22) 아담의 죄에서 흘러 퍼진 것이며, 그것이 그의 모든 후손에게 연장되었어도 불합리한 것은 없습니다. 이것은 물려받은 부패인데, 교부들에 의하여 원죄(Original Sin)라고 불렸습니다(롬 5:12). 지난 번 제16문답에서도 보았듯이, 하지만 펠라기우스파(the Pelagians, 354-420)와 그의 추종자 셀레스티안파(the Celestians)는 인간의 부패성을 ‘아담으로부터의 번식에서가 아니라 ‘아담에 대한 모방’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반박하여 어거스틴은 우리가 모태로부터 타고난 결함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였던 것입니다.

종교개혁 당시에도 이러한 오류는 당시 로마 카톨릭 교리에서 아주 분명히 보여졌습니다. 그들의 교리에 의하면, 인간이 하나님의 협력 없이는 자신을 구할 수 없듯이, 하나님은 인간의 협력 없이는 사람을 구별할 수 없다고 가르칩니다. 이 절충안의 결과는 결국 신앙에다 행위를 더하고, 그리스도에다 마리아를 더하는 등등의 ‘더하기 신앙’이란 것을 형성했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개혁된 후로도 다시금 알미니우스에 의해서 되풀이 되었던 것입니다.

소신앙고백문답에서 “그리스도의 성신께서 그의 구속을 우리에게 효력 있게 적용하여 주신다”라고 한 바는 참으로 중요한 진리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구속의 주체는 사람 편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 속한 것입니다. 사람은 전파되는 복음을 듣게 될 때에 ‘복음을 영접하여 그리스도께 가야겠다’ 하는 생각은 혹 할 수 있겠지만, 그는 죄와 허물로 부패해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막상 신앙을 가지려고는 하지 않으며, 실제로 가질 수도 없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오직 성령께서만이 자신의 주권에 따라 죄인의 마음을 중생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중생되었다는 사실을 공적으로 보증하는 절차가 바로 교회에서의 세례식입니다. 하지만, 종교개혁기에 소씨니안파(Socinians)와 재세례파(Anabaptists) 등은 세례가 하나님의 은혜의 인호라는 것을 부정하고, 인간 편에서 단순히 신앙을 고백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먼저 자신의 생명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에 연합시켜 주신 사실이 없이는 누구도 신앙을 고백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사실은 베드로가 예수님에 대해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고백했을 때, 예수님께서 하신 저 유명한 말씀에서부터 확실한 것입니다. 즉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 16:17)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편에서가 아니라, 먼저 성령께서 성도를 중생시키셨다는 사실이 확인될 때, 교회는 공적인 권위로 그에게 물세례를 베풀어 예수 그리스도의 한 지제로 영접해 들이는 절차를 취하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록 표현상으로는 “세례를 받고 구원 받았다”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이미 구원 받은 사실이 있기 때문에 세레 시행을 통하여 교회가 공적으로 공표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우리의 정신이 얼마나 하나님과 하늘의 비밀들에 대해 눈이 멀었는지, 또한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큰 불신앙으로 구원에 저항하는 모든 일에 진력하는지 충분히 숙고해본다면, 지금 우리에게 있는 ‘믿음’이란 것이 그야말로 우리의 모든 본성적 능력을 훨씬 능가한다는 것과 그것이 하나님의 뛰어나고 독특한 선물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내가 ...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빌 3:12)라고, 즉 ’잡힌 바 되었다’라고 했던 것입니다.

 

2019년 2월 2일 (SATUR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28문답

고린도전서 15장 24-28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인들의 회개를 참을성 있게 기다리십니다. 그렇게 기다리시는 동안에도, 마귀, 죽음, 사악한 자들은 멋모르고 예수님을 대적합니다. 하지만, 어느 한 날에 이 모든 대적들은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높아지심의 마지막 단계입니다. 당신은 이러한 날의 도래를 확신합니까? 그러한 확신이 지금 현재 당신의 인생에 끼치고 있는 영향이 있습니까? 혹 있다면 무엇입니까?

2019년 2월 1일 (FRI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28문답

부활과 승천에 더하여 예수님은 재림하심으로써 더 높아지실 것입니다. 그 때에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을 심판하는 권세를 발휘하게 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반역하는 삶을 살면서 회개하지 않은 사람들은 영원한 형벌을 받기 위하여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는 삶을 산 사람들은 새롭게 펼쳐지는 신천신지에서 영원히 살기 위하여 부활할 것입니다. 사도행전 17장 31절과 요한복음 5장 22-23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이 모든 것을 가리켜 예수님의 네 번째 높아지심의 단계라고 합니다. 당신은 이와 같은 일을 완성하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것을 믿습니까? 그러한 믿음이 혹 당신에게 요구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