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8일(THURS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35주차(96-98문답)

성경은 자주 하나님을 사람처럼 묘사합니다. 하나님의 눈은 선과 악을 살피시고 하나님의 귀는 백성의 기도에 열려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강력한 팔과 발이 큰 물의 파도 위에 있다고도 합니다. 이런 표현은 우리의 이해 능력이 부족하여 하나님을 제대로 이해할 수기 때문에 쓰는 임시방편입니다. 하나님은 육신이 없고 완전한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 형상을 만들거나 그림을 그리면 안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모습을 임의로 만들어 그것 앞에서 기도하지 않도록 경고하십니다. 신명기 4장 15절로 19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2021년 4월 7일(WEDNES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35주차(96-98문답)

하나님을 경외하고 높이는 올바른 태도는, 하나님께서 경배 받기 원하는 방법을 스스로 보이신 것을 존중하는 데 있습니다. 지혜에 한계가 있는 인간으로서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방법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해야 합니다. 따라서 비록 구약시대에는 제사장과 희생제사, 절기를 통해 부르셨지만, 이제는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당신께 나아오도록 하신 것은 유일한 방법입니다. 이제 우리는 함께 모여 말씀을 읽고 설교를 듣고 성례에 참여합니다. 더 나은 예배라며 마음 내키는 대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서는 안되고 하나님께서 이미 말씀하신 대로 해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4장 13절, 로마서 10장 14절, 고린도전서 11장 23절로 26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2021년 4월 6일(TUES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35주차(96-98문답)

제2계명은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명령하신 그대로 경배하도록 요구하십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성화에 못 이겨 송아지를 만들 때, 아론은 실제로 송아지 형상이 하나님을 대신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단지 예배에 도움이 되도록 이용할 의도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송아지를 다 만든 후 아론은 이튿날을 여호와의 절일이라고 선포했습니다. 이스라엘사람들은 송아지를 만든 것을 이용해 특별한 날을 제정코자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과 정반대되는 것이었고 하나님의 미워하는 것이었습니다. 출애굽기 32장 1절로 10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2021년 4월 5일(MON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35주차(96-98문답)

사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미 마음에 십계명을 갖고 있었습니다.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우상을 만들거나 새긴 우상에게 경배하지 말라”는 내용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십계명을 받기 전에 있었던 일을 회상해봅시다. 산에 우뢰와 번개와 있었고 큰 나팔소리가 있어 백성들은 겁에 질렸었습니다. 십계명을 받은 후 모세가 하나님을 뵈러 산에 올라간 후 오랜 동안 돌아오지 않자, 백성들은 아론에게 자신들을 위한 신을 만들어달라고 졸라댔습니다. 이스라엘사람들은 좀 더 ‘편안한’ 하나님을 원했을지도 모릅니다. 보이는 하나님, 자기들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하나님을 원했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강력한 힘을 상징하는 금송아지 같은 것에 별 신경을 쓰지 않을 걸로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비교될만한 것은 이 세상엔 없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께서는 어떤 우상도 섬기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이사야 40장 18절로 25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2021년 4월 4일(SUN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35주차(96-98문답)

[제96문답 제2계명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대답] 어떤 형태로든 하나님을 형상으로 표현하지 않는 것이고(신 4:15-18; 사 40:18-19, 25; 행 17:29; 롬 1:23-25), 하나님이 그의 말씀에서 명하지 아니한 다른 방식으로 예배하지 않는 것입니다(레 10:1-2; 신 12:30-32; 삼상 15:22-23; 마 15:9). 

첫 번째 계명은 우리가 누구를 예배할 것인가를 말해주었습니다. 우리의 예배 대상은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뿐입니다. 두 번째 계명은 참 하나님을 어떻게 예배할 것인지, 다르게 말하자면 하나님을 예배함에 있어서의 우리의 의무를 말해 줍니다. 따라서 이 두 개의 계명에서 두 개의 도덕적인 의무가 제시됩니다. 그런데 로마 가톨릭 교회나 루터교가 하는 것처럼 이 두 계명을 하나로 묶는 것은 아주 심각한 실수입니다.

두 번째 계명과 네 번째 계명은 십계명 중에 가장 긴 계명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아주 중대한 말씀을 하셨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질투하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명예와 영광과 관련하여 질투하십니다. 죄인들은 결코 하나님에 대해 정확하게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죄 있는 인간들로서 스스로의 생각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일체의 시도는 하나님께 대한 모독으로 귀착하고야 맙니다. 형상 사용이나 다른 고안들에 의해 하나님을 예배하고 싶어하는 것은, 사람의 보기에 도움이 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참된 영광을 빼앗는 것이므로, 하나님께서는 이런 종류의 예배를 싫어하십니다. 요한복음 4:24에서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이 계명은 하나님께서 승인하지 않으신다거나, 당신의 말씀을 통하여 명백히 규정하지 아니한 모든 예배를 정죄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중요한 계명이 사람들에 의해 어떻게 파괴되었는지 다음과 같이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두 사람이 하나님을 예배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들은 각자 제물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벨의 제물만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습니다(창 4:3-4). 가인은 자신의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하나님께 제사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결과는 전혀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또한 나답과 아비후는 제사의 잘못된 형태인 ‘다른 불’을 주님께 드렸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죽이셨습니다(민 3:4). 사울 왕은 하나님으로부터 배척당했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께 적절치 않은 제사를 드렸기 때문입니다(삼상 13:9, 13). 아론과 여로보암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잘못된 제사를 드리도록 ‘도움’으로써 금송아지를 만들어 제2계명을 어기게 하였습니다(출 32:1-5; 왕상 12:25-33). 또한 여로보암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다른 방법들을 제정했습니다. 가령, 그는 레위인이 아닌 사람들 중에서 제사장을 뽑아 자신이 직접 임명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집인 산당도 만들었습니다. 그는 절기 날짜도 자신이 제 마음대로 바꾸었습니다.  

오늘날, 마치 유행처럼 되어버린 잘못된 예배의 관점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금지되지 않은 것은 무엇이든지 예배에 포함시킬 수 있다는 발상에 의한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로마 가톨릭 교회, 루터교, 그리고 심지어 다른 개신교들에서조차, ‘제단, 초, 성일, 금요일의 금식, 십자가, 묵주, 십자가 표시, 성수, 성직자를 위한 특별한 옷, 성탄절 나무, 영화’ 기타 등등을 예배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 참된 예배의 원리는,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하여 무엇을 명령하시는가를 정확하게 알아 순종하는 데 있고, 동시에 무엇을 명령하지 않는가를 알아 철저하게 배척하는 데 있습니다. 이것을 떠난 기타 다른 원리들은 예배의 순수함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제97문답] 그렇다면 어떤 형상도 만들면 안 됩니까? [대답] 하나님은 어떤 형태로든 형상으로 표현될 수 없고 또한 표현해서도 안 됩니다. 피조물은 형상으로 표현할 수 있으나, 그것에 경배하기 위해 또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데 사용하기 위해 형상을 만들거나 소유하는 일을 금하셨습니다(출 34:13-14, 17; 신 12:3-4; 16:22; 왕하 18:4; 사 40:25).  

제97문답은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지 못할 뿐 아니라, 하나님께 예배 드리기 위해 사용할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 것에 대해 가르칩니다.

형상은 어떤 사람이나 피조물을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표시하는 것입니다. 그림과 동상 그리고 사진은 모두 형상입니다. 이 문답은 예술이 타당한 활동이 아니라는 의미를 진술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가진 예술적 재능은 하나님의 선물이고, 특별히 기독교인들에 의해서도 보다 더 멋있게 개발되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 형태는 하나님께 대한 예배에 대한 고안물이나 도움처럼 사용될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예배는 항상 하나님께 직접 향하는 것이어야 하고, 그러할 때에 하나님은 본질상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육체가 없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형상화 되거나 또는 표현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으십니다(딤전 6:16). 그리고 하나님은 어디든지 계십니다(렘 23:24; 왕상 8:27). 그러므로 하나님을 그려내는 모든 시도는, 사실상 하나님께 모욕이 되는 것이고, 저급한 허위이고, 그리고 거짓된 상상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거짓 형상들에 의해 예배 받지 않으실 것입니다.

나아가 하나님에 대한 ‘정신적 상상’조차도 역시 이 계명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말해져야만 합니다. 비록 성경이 하나님을 묘사할 때 인간의 용어를 사용하였다 할지라도, 우리로서는 하나님이 어떻게 생겼는지 상상하고 싶어하는 유혹을 참아야만 합니다. 하나님을 사람과 비슷하게 묘사하는 용법에 대해 ‘신인동형론’이라고 하는데, 예를 들면, 하나님에 대해 눈, 귀, 입, 그리고 손 등등이 있으신 것처럼 적용하는 경우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할 때에 형상을 사용할 경우 이토록 명백히 잘못된 것인데, 그렇다면 왜 구약 제사에서는 그림과 형상 사용을 허락했는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가령, 속죄소 안의 법궤 위에 금으로 만든 두 천사가 서 있었고(출 25:18-20), 성막 덥게 위에는 천사들이 수 놓아져 있었고(출 26:1, 31), 그리고 장대 위에 놋뱀을 매단 일 등과 같이 구약에는 하나님의 명령에 의한 형상들이 많이 있습니다(민 21:8-9).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당시 그러한 형상과 그림은 하나님께서 친히 명령하신 것이었기 때문에 아주 적합한 것이었습니다. 무엇이 되었든지 하나님의 명령은 옳기 때문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자신을 묘사하는 형상을 만드는 문제와 관련해서는 결코 명령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원칙을 붙잡아야 합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예배를 위하여 사용할 것으로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은 무엇이든 간에 적합할 뿐만 아니라 필요한 것입니다. 둘째, 우리는 아버지, 아들 혹은 성령이신 하나님을 어떤 식으로든 직접 묘사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계명을 위반하는 자들에 대한 처벌은 위반자 자신뿐만 아니라, 심지어 3대와 4대에 걸쳐 아이들까지 포함된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아이들이란 그들의 부모가 걸어간 동일한 길로 인도되는 것이 보편적이라는 의미입니다. 신앙에 있어서 부모의 모범과 책임이 막중한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제98문] 그렇다면 교회에서는 ‘평신도를 위한 책’ 차원에서도 형상들을 허용해서도 안 됩니까? [대답]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보다 더 지혜로운 척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이 말 못하는 우상을 통해서가 아니라(렘 10:5, 8; 합 2:18-19) 그의 말씀에 대한 살아 있는 강설을 통해 가르침 받기를 원하십니다(롬 10:14-17; 딤후 3:16-17; 벧후 1:19). 

두 번째 계명의 마지막 질문은 왜 하나님께 대한 예배에서 형상을 사용할 수 없는가를 배웁니다. 이 문답이 신앙고백문답에 필히 들어와야 했던 이유는, 신앙고백문답이 작성되고 현재에 이르기까지도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는 여러 가지 그림들을 끔찍하게 예배에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초대 교황 중에 한 명인 그레고리우스는 각종 그림들은 ‘배우지 못한 자들을 위한 책’이라고 주장하면서 각종 그림들을 적극 사용했습니다. 교황은 예수님을 그린 그림은 성경을 읽지 못하거나 라틴 교회의 예배를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한 사람에게 많은 것을 가르치는 훌륭한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에 따라 로마 가톨릭 교회는 교회원들을 가르침에 있어서 성경보다는 그림, 동상, 유물 같은 것들을 오랫동안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개혁자들은 성경을 통해 이 모든 것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정확하게 깨달았습니다.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를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방법은, 성경으로써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설교하는 것과 그들이 스스로 성경을 읽도록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가르치기 위해 그림에 의존하는 사람들은 하나님보다 더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복음은 화가들이 그리는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설교자들에 의해 설교되어야 한다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림은 침묵의 우상입니다. 설교자들은 오직 언어와 음성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합니다. 하지만 다음의 두 가지 사항을 고려해봅시다.

첫째, 종교적인 그림의 경우입니다. 만일 뚜렷한 목적이 있다면, 사람들을 위해 허용되어야 하는 그런 종교적인 그림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성경의 진리를 가르치는 설명적인 삽화를 위하여는 있을 듯합니다. 꼭 알아야만 하는 것은, 예를 들어, 팔레스타인 지역의 지리입니다. 우리는 성경의 세세한 것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문화와 관습을 꼭 알아야 합니다. 가령, 만약에 에스키모가 양의 그림을 보지 않았다면, 양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그림과 삽화들을 이용하여 이러한 것들을 가르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예술의 재능을 바르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의 경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은 다른 문제입니다. 비록 대부분 개신교 신자들과 심지어는 일부 개혁주의 사람들이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보기도 하지만, 사실 그것은 언제나 사악한 행동입니다. 어느 개신교 선전물 앞면에 ‘예수’의 그림을 특종으로 정하고, “당신이 가는 곳마다 이것을 당신의 수표책이나 지갑에 넣고 다니십시오, 당신이 하루를 위하여 당신의 임무를 수행하고 그것 위에서 당신의 눈은 휴식을 취할 것입니다”라고 조언한 경우를 보았습니다. 이것은 확실히 명백한 우상숭배이며, 로마 가톨릭 교회처럼 잘못된 형상 예배의 일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그림으로 그려서 안 되는 이유는, 주님은 하나님 자신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식으로든 형상화할 수 없습니다. 비록 그리스도께서 진정한 사람이셨다 할지라도 그것은 그리스도의 신성으로부터 분리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인성이라고 불리는 모든 현존하는 그림들은 예술가의 상상의 허구일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두 성품을 분리하는 결과를 낳으며, 따라서 결과적으로 명백히 우상인 거짓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그림이라고 불리는 것들은 두 번째 계명을 위반하는 것이므로 확실히 우리의 교회나 집에서 그런 것들이 발견되어서는 결코 안됩니다.

2021년 4월 3일(SATUR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34주차(92-95문답)

십계명은 두 부분으로 돼있습니다. 처음 네 계명,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예배의 형상을 만들지 말라,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라, 하나님의 날을 거룩히 지키라”는 계명은 우리가 하나님께 행해야 하는 의무입니다. 제5계명은 연결다리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신 계명은 하나님께서 부모의 권위를 우리 위에 부여하신 것입니다. 부모를 부모라고 하는 자리에 두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처럼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그래서 제5계명을 보면 제 6계명에서 제10계명까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어야 하는지 보입니다. 예수님은 계명 전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두 계명으로 요약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22장 34절로 40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마태복음 22장 34절로 40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2021년 4월 2일(FRI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34주차(92-95문답)

십계명은 시공간을 초월해 모든 사람에게 해당됩니다. 하나님의 도덕법인 십계명을 지키지 않아도 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구약의 율법은 예수님이 구원자로 오실 때 어떤 분으로 어떤 사역을 할지 미리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희생제사는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해 치러야 할 죽음을 나타냅니다. 이런 희생제사는 더 이상 효력이 없습니다. 하지만 도덕법은 다릅니다. 하나님은 이 도덕법을 기준으로 삼아 사람들을 심판하시며 모든 사람이 그 도덕법에 순종할 것을 요구합니다. 로마서 2장 14절로 16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구속주이신 예수님께서 오셨지만 우리는 여전히 십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기독교인은 안에 성신을 모시고 삽니다. 성신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계명을 지킴으로써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려는 열망을 일으키며 순종할 힘도 주십니다. 갈라디아서 5장 13절과 14절, 22절로 24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2021년 4월 1일(THURS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34주차(92-95문답)

신앙고백문답은 십계명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도록 도와줍니다. 하나님께서 원하는 것은 우리를 자신의 백성 삼아 하나님이 선을 행하는 것처럼 선을 행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한 젊은이가 예수께 와서 영생을 얻기 위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하느냐고 묻습니다. 그 청년은 자신이 항상 십계명을 잘 지켜온 줄로 착각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청년에게 모든 소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예수님을 따라오라고 하셨습니다. 그 청년은 예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이 청년이 범한 계명 3가지는 우상(돈)을 섬긴 것이고 소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을 구하지 않아 누군가 생명을 잃었을지도 모르니 살인한 것이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은 것을 소유하고 있으니 남의 것을 탐낸 것입니다. 마태복음 19장 16절로 22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2021년 3월 31일(WEDNES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34주차(92-95문답)

십계명을 들을 때 처음엔 쉬워 보입니다. 남을 죽인 적도 없고 남의 물건을 훔친 적도 없습니다. 괴상한 우상에게 기도하지도 않습니다. 십계명을 잘 지키고 있다고 여겼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닙니다. 10개의 계명 중 8개는 하지 말라는 계명입니다. 금지하는 것만을 안 하면 그만이라고 가볍게 여겼는데 ‘하지 말라’는 계명은 반대의 것을 하라는 계명인 것을 깨닫습니다. 예를 들어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은 남에게 어떤 해도 끼치지 말라는 계명입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라는 계명은 그들을 돕기 위해 가능한 모든 일을 하라는 명령입니다. 십계명에 순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로마서 13장 8절로 10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2021년 3월 30일(TUES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34주차(92-95문답)

10재앙 끝에 바로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놔줬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기뻐서 펄쩍펄쩍 뛰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후 바로는 마음을 바꿔 군대를 보내 이스라엘 사람들을 뒤쫓았습니다. 거의 붙잡힐 의기의 찰나에 하나님께서는 홍해를 갈라 이스라엘 사람들로 하여금 무사히 강을 건너게 하셨습니다. 그런 다음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 한 가지 확실히 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마련하신 더 좋은 길을 주시고자 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민족을 선택해 거룩한 백성으로 부르시고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 호렙으로 불러 그들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려오셔서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신명기 4장 5절로 14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