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 11일(THUR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38문답

요한계시록 20:12-15에 있는 생명책과 다른 책들에 관한 내용을 기억하십니까? 그 책에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초지일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생명책이 아닌 다른 책에 기록된 자들은 불못에 던져진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과는 달리 어떠한 오류도 없는 분이시므로 우리들 각인을 정확하게 기록하십니다. 단테라는 사람이 쓴 신곡이나 존 번연이 쓴 천로역정 등은 사후 세계를 묘사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아, 아! 지옥의 모습이란 상상만으로도 우리를 얼마나 소름끼치게 합니까?  반면 천국의 모습은 얼마나 행복하고 즐겁습니까? 하지만 문제는 이것입니다. 지금 현재의 삶이, 그 날의 두 극단을 결정짓는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 때, 그곳에 가서가 아니라, 지금 바로 여기서 말입니다. 이 문제 앞에서 혹 지금 당신에게 드는 생각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2019년 4월 10일(WEDNE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38문답

고린도전서 15:35-38을 읽어봅시다. 신학자들은 장차 일어나게 될 부활의 세계가 구체적으로 어떠한가를 설명하려고 온갖 수고를 다하고 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성경에 대한 깨달음이 좀 더 명료해지는 데 대해 신학자들에게 감사합니다. 하지만 사실 우리로서는 부활이 예비되어 있다는 약속을 받은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약속하신 분은 하나님이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에 대한 증거가 되셔서 부활의 첫열매가 되어 주셨고, 성신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확신으로 이끌어주십니다. 밭에 뿌려진 씨앗은 썩어 없어지지만, 놀랍게도 그렇게 되는 것을 통해서 새싹을 내어놓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비유로써 우리의 육체 부활의 확실성을 선포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5:51-58을 읽어봅시다. 당신의 경우 이 부분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구절을 하나만 들어본다면 어떤 구절입니까? 왜 그렇습니까?

2019년 4월 09일(TUE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38문답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이 죄된 세상은 마지막 종말에 처해지게 되면서 죽은 자들을 내어놓을 수밖에 없게 되고, 그 몸들이 영혼들과 다시 연합됨에 따라 대대적인 부활이 일어납니다. 그 때까지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됩니까? 데살로니가전서 4:16-17과 고린도전서 15:51-52도 읽어 봅시다. 죽음을 겪지 아니한 사람들이 부활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려면 그들은 이와 같은 변화를 겪어야 합니다. 물론 변화된 후에 그들이 영원한 생명을 시작할런지, 영원한 형벌을 시작할런지는,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자녀로서 살고 있었느냐에 달린 문제입니다. 여하튼 성도의 죽음이란 새로운 부활체로서 살기 위해서 겪어야 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어떻습니까? 이 극적인 반전을 맞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혹 신앙 때문에 받는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넉넉히 연단을 이루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2019년 4월 08일(MO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38문답

성경은 하나님께서는 이 죄로 가득찬 세상을 어느날 갑자기 끝내실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하나님의 적들은 다 파괴될 것입니다. 재림하신 승리자께서 새로운 세계에 대한 통치를 시작하실 때에 이전에 죽었던 생명들이 대대적으로 부활할 것입니다. 이는 신자들에게 참으로 행복하고 영광스러운 순간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선물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영광스러운 재창조의 몸을 덧입는 것입니다. 우리로서는 이 부활한 몸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결코 병들지 않고, 늙지 않고, 쇠하지 않으리라는 것만큼은 확실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갖는 이와 같은 확신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6:38-40을 읽어봅시다.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아들에게 무슨 사명을 주어 이 땅에 보내셨다고 두 번씩이나 말씀하셨습니까? 당신은 아들께서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해주시리라는 것을 진실로 믿습니까?

2019년 4월 07일(SU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38문답

[질문] 신자가 부활할 때에 그리스도에게서 무슨 유익을 받습니까? [대답] 신자가 부활할 때에 영광 중에 일으킴을 받고(고전 15:42-43), 심판 날에 공적으로 인정되고 죄없다 함을 얻으며(마 10:32; 25:33-34, 46; 딤후 4:8), 영원토록(시 16:11; 살전 4:17) 하나님을 충만하게 즐거워하면서 완전한 복을 누릴 것입니다(마 25:23; 롬 8:29; 고전 13:12; 요일 3:2).
  • 소신앙고백 제38문답은 한 마디로 말해서 기독교 신앙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죽은 자가 부활된다는 데 대한 경이로운 선포이기 때문입니다. 실로 우리의 신앙은 죽어 흙 속에 묻힘에 따라 완전히 썩어버린 몸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때가 되면 부활하게 된다는 것입다. 세상 사람들은 이러한 우리의 신앙을 조롱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자기네도 부활하게 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단, 우리의 부활과 그네들의 부활 간에는 질적인 차이가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몸의 부활을 확실하게 믿습니다(고전 15:13-14, 19). 우리로 하여금 육체의 부활을 믿을 수 있도록 성경이 주는 도움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유사성과 하나님의 전능하심’입니다.
  • 첫째, 부활이라는 주제를 생각할 때마다 우리의 구원자의 경우를 생각해야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부활의 영생을 얻으셨고, 이것을 거울 삼아 우리로 하여금 장차 올 부활을 보증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부활하신 사실에 어떠한 의심도 개입하지 못하도록 필요한 조치들을 취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당시 원수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사실을 막으려고 이런저런 시도를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알리는 하늘 천사의 선포를 울리셨습니다(마 28:6; 눅 24:6). 그리고 이후로도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이곳 저곳에 나타나셔서 자신의 부활을 증거하셨고(눅 24:38, 40; 요 20:27; 행 1:3, 9; 고전 15:6; 행 9:4, 7:55), 그런 다음 이미 충분히 가르치셨던 바대로 다시 오시기 위하여 하늘로 승천하셨다.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요 16:7).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되신 사건은, 장차 이 사실을 굳게 믿는 우리에게 이루어질 영광스러운 부활을 보증하며 앙망케 합니다.
  • 둘째,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우리의 육체 부활하리라는 데 대한 훌륭한 근거가 됩니다. 바울은 이 점을 확신 있게 가르쳤습니다.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빌 3:21). 그런데 엄밀히 말하자면 사실 자연계에서까지도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고전 15:36). 성경 도처에서 제시된 숱한 기적들을 보십시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으로 말미암은 기적들입니다. 이렇게 부활을 확신하는 우리 앞에 그에 대한 보증으로 제시된 것은 우리의 지각을 압도하는 하나님의 위대한 기적들인 것입니다.
  • 이상 두 가지 사실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총체로 여기는 성도들이라면, 장차 부활의 승리가 죽음을 삼켜버릴 것이라고 한 성경의 예언의 성취가 이루어지는 그 벅착 날의 행복을 소망해야 합니다. 성도의 신앙은 궁극적으로 부활이 목표여야 합니다. 비록 우리 자체의 한계 때문에, 물질적인 언어로 대강 묘사된 그날의 영광을 우리로서는 충분히 깨닫지 못한다 할지라도, 하지만 최고의 선과 행복의 모든 요소는 하나님 자신께 있으시다는 진리에 닻을 내려야 합니다.
  • 한편, 부활 문제와 관련하여 아무리 해봐도 유익이 없는 무가치한 질문이나, 위험한 사변에 빠지게 만드는 유해한 질문들 앞에서는 다소곧이 절제할 필요가 있습니다. 복음의 진리를 다룰 때, 무익한 문제들을 공연히 연구하지 않는 것이 좋고, 또한 그런 문제에 대답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경박한 행동을 조장하지 않도록 경계하는 것이 좋습니다. 실제로 어떻게 하면 하늘로 갈 것인가를 알고자 하는 사람은 천만 명 중에서 조금도 되지 않으나, 하늘에서 어떤 일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모든 사람이 알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거의 모든 사람이 태만한 까닭에 미래의 세계를 상상하는 데는 열심이지만, 정작 그것을 얻기 위해서 이 세상과 싸워야 한다는 요구 앞에서는 걸음아 날 살려라 하면서 도망가기 바쁜 모습이 실상입니다.
  • 그날에 성도들 각자가 들어가게 될 영광의 정도는 동일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차이(?)가 이 지상에서처럼 상대방을 향한 멸시거리나 또는 그로 인한 열등감으로 작용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활의 생명 세계야말로 이 지상에서의 교회 공동체가 추구하는 ‘섬김의 삶’과 ‘공유하는 삶’의 완벽한 실체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 정리하겠습니다. 실로 의의 태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복음을 통하여 죽음을 정복하시고 우리에게 생명의 빛을 비추어주셨습니다(말 4:2; 딤후 1:10). 우리는 이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제 생명을 얻어 하나님의 권속으로서 하늘에 앉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어려운 가운데서도 이 소망을 굳게 잡아야겠습니다. 참으로 우리의 구원의 궁극을 ’육체의 부활’로서 이해했다면, 우리로서는 한시도 중단없이 마음을 높이 하늘로 끌어올려야 할 것입니다. 어떠한 태산 같은 불행이 우리를 압도하고, 세속 인간들이 우리를 조롱하며, 상하 전후에 무서운 유혹이 우리를 둘러싼다 할지라도 끝까지 그렇게 해야 합니다.

2019년 4월 6일 (SATUR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37문답

죽음에 관한 생각이 자신을 불안하게 만듭니까? 죽는 것이 두렵습니까? 실제로 죽음은 사람을 가장 두렵게 만드는 무서운 원수입니다. 하지만 성도라면 결코 죽음을 두려워해서는 안 되고, 두려할 필요도 없고, 두려워할 수도 없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1:17-18을 읽어봅시다. 지금 예수 그리스도님은 교회의 주로서 우리의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시사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쥐고 계신 분으로 나타나셨습니다. 로마서 8:37-39에서 '사망'을 포함한 그 어떤 것도 하나님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베푸신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한 말씀을 보십니까? 진정 그렇다면 더 이상 죽음에 대해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반대로 더더욱 순종하는 방식으로 예수 그리스도께 꼭 붙어 있기만 할 일이겠습니다. 이 붙어 있음에 대한 증거의 일환으로, 즐겁고 행복한 마음으로 내일도 역시 주일의 공예배 자리에 달려가 하나님의 어전에 부북하시겠습니까?

2019년 4월 5일 (FRI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37문답

우리는 모두 필연적으로 죽음을 겪겠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려주셔서 영원히 살게 해주신다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 놀랍고 기분이 좋고 행복합니다. 하지만 과연 누구에게 그러한 약속이 주어진 것인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오직 참된 신자들만이 얻을 수 있는 유익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누가 참된 신자입니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당신의 아들(인격)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자기들이 받아야 할 처벌을 대신 받았다(사역)고 하신 말씀을 믿고 신뢰하고 의지하는 사람들이 신자들입니다. 요한복음 3:36을 읽어봅시다. 여기서 믿음의 반대 편에 순종치 아니하는 자가 놓여 있고, 영생의 반대편에 하나님의 진노(영벌)가 놓여 있는 것이 보이십니까? 동시에 믿음과 순종이 동격으로 사용된 것도 보이십니까? 왜 이러한 관계가 성립된다고 생각하십니까?

2019년 4월 4일 (THUR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37문답

고린도전서 15:42-44을 읽어봅시다. 죽음은 육체로부터 영혼이 떠나고, 육체는땅에 묻히거나 화장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육체와 영혼을 합하여 한 사람의 인간을 만드셨으므로 육체도 다시금 부활의 몸을 입게 될 것이라고 약속해주셨습니다. 이 까무칠만큼 놀라운 장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대대적으로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모습에 대해 '썩지 아니할 몸', '영광스러운 몸', '강한 몸', '신령한 몸'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놀랍고도 영광스러운 미래를 지금 현재 이미 소유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더더욱 하나님의 자녀답게 거룩한 자 자로서 살아감이 당연하겠습니다. 지금 혹시라도 자신을 스스로 더럽히고 있는 그런 것은 없습니까? 그것이 무엇이든 과감하게 떨쳐 버리지 않으시겠습니까? 기도로써 하나님의 힘을 공급받아 보시지 않겠습니까?

2019년 4월 3일 (WEDNE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37문답

오늘날 과학은 놀랍게 발달하지만 문화 수준은 오히려 퇴보하는 이유 무엇입니까? 문명의 발달이 죄악을 가리고 합리화시키는 묘한 기술을 수반하기 때문이겠습니다. 실제로 겪는 경험을 토대로 생각해 보십시다. 삶의 윤택함을 누리는만큼이나 예수님께 대한 의존도도 늘어갑니까? 오히려 뒤쳐지는 것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교회의 예배 형태가 음악이나 영상 및 편의 시설 기타 온갖 문명의 이기들을 동원하여 다분히 기술 지향적이 되고 있지만, 실제 신앙심도 그런 정도로 성숙해 간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까? 잊지 마십시다. 우리가 예수님께 연합된 자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자신에게 기필코 임하고야 말 죽음에 대한 끊임없는 경성, 그리고 그에 대한 대비책으로서 받은 '은혜를 보존하고, 누리고, 펼쳐나가는 삶'을 한시도 놓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요한일서 3:2을 읽고 지금 현재 자신의 모습을 냉철히 성찰해 봅시다.

2019년 4월 2일 (TUE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37문답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살아 있던 사람을 제외한 모든 사람은 죽음을 겪는다고 선포합니다. 사람이 죽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먼저 인간은 두 부분으로 구성된 존재임을 상기합시다. 이것은 인간의 보이는 부분(육체)과 보이지 않는 부분(영혼)을 가리킵니다. 만지고 듣고 보고 촉감되는 특성과, 생각하고 사랑하고 감정으로 느끼는 특성으로의 구분도 가능하겠습니다. 성도의 영혼은 죽을 때 즉각 영광에 들어갑니다. 이것의 의미를 정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을 뵙고 함께 교제하게 된다고 합니다. 즉 좀 더 뒤에 육체를 덧입을 것을 기다리면서 영원한 생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1:21-23을 읽어봅시다. 바울이 왜 자신은 죽은 것도 유익하다고 말합니까(21절)? 그는 자신의 진정한 욕망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23절)? 당신의 경우는 어떻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