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1일 (SATUR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19문답 묵상2018년

죽음은 그 자체만으로도 두렵지만, 더 두려운 것은 이후 즉각 들어가게 될 심판 때문입니다. 돈이라는 무기로 무찔러 보거나 혹은 망각이라는 방패로 막아보겠습니까? 결코 지푸라기 창조차 못될 것이고, 거미줄 방패 노릇조차도 못할 것입니다. 범죄한 인간을 형별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친히 마련하신 죽음이요 지옥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지옥은 영원히 지속되는 고통스러운 형벌로 인해 비참만이 있는 곳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1장 8-9절 말씀을 보십시다. 지금 혹 평안하고 안락하여 아무 걱정 없으십니까? 장담컨대 조만간 그 큰 코가 납작해질 것입니다. 반드시 죽을 것이고, 그 후에는 영원한 형벌의 장소로 갑니다. 그러니 얼마나 비참하겠습니까! 하지만, 성도들만큼은 예외입니다. 우리를 이토록 처참한 비참으로부터 구해주신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감사를 어떤 식으로 표현하며 살고 계십니까?

2018년 11월 30일 (FRI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19문답 묵상2018년

시편 49편 10절과 103편 15-16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인간에게 가장 비참한 것은 자신이 언젠가는 죽는다는 데 있지만, 지금은 쾌락에 깊이 물들어 이 당연한 인생의 결말조차 망각하고 사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소비가 미덕으로 여겨지고, 따라서 자본이 삶의 최고 가치로 둔갑하면서 생긴 불행한 변화입니다. 설교자들도 이미 오래 전부터 죽음이라는 단어를 포기한 듯하고, 그토록 강조하는 사랑조차도 거의 쾌락으로 전도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도 결국 죽게 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것도 부지불식 간에 찾아옵니다. 그 뒤에는 심판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각자 자신의 생각을 말해봅시다.

2018년 11월 29일 (THUR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19문답 묵상2018년

전도서 2장 22-23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죄 때문에 많은 문제가 생기고, 더불어 슬픔과 고통도 생겼습니다. 타락 후 하나님은 아담에게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종신토록 수고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 3:17) . 타락 전에는 슬픔이나 고통이 없었고, 식물도 가시가 없어서 인간의 노동은 즐거웠고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슬픈 일들이 만연하고 몸도 마음도 상처를 받습니다. 질병이 우리의 몸과 마음을 공격합니다. 이 모든 슬픔, 고통, 역경은 저주의 일부입니다. 타락 때문에 생긴 비참한 상태인 것입니다. 죄가 초래시킨 비극들 중에서 극치는 무엇입니까?

2018년 11월 28일 (WEDNE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19문답 묵상2018년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었고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므로 비참한 상태에 있습니다. 산을 녹일 수 있고 세상을 파괴시킬 수 있는 하나님의 강렬한 진노가 죄인인 우리를 향해 있습니다. 성경이 모든 것의 주인이시고 전능하신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히 10:31)라고 선언하듯이, 화내고 계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은 정말 두렵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세상 마지막 날에 있을 심판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날에 그리스도를 믿지 않아 죄로부터 구원 받지 못한 사람들은 공포에 떨 것입니다. 계시록 6장 15-17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지금 당신은 이 심판을 벗어난 자로서 살아갑니까? 그 증거는 무엇입니까?

2018년 11월 27일 (TUE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19문답 묵상2018년

우리는 죄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겼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사랑이 가득한 선한 하나님만 인정하고 화내시는 하나님에 관해서는 말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죄에 대해 하나님이 진노하신다고 말합니다. 물론 이것은 거룩한 분노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죄를 벌하십니다. 나훔 1장 2-3절과 6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은 죄만 미워하시지 정작 사람은 미워하시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옳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분명 죄를 지은 사람들에게도 진노하십니다. 우리 인간은 모두가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입니다. 이 두 가지 문제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해결되었습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당신 자신의 실례에 비추어 설명해 봅시다.

2018년 11월 26일 (MO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19문답 묵상2018년

아담의 타락 때문에 인간은 죄책을 지고 있으며 실제로 죄성(죄권)으로 충만합니다. 이것은 인간이 처해 있는 비참함입니다. 이 비참의 궁극은 하나님과 분리된 데 있습니다. 앞서 신앙고백 제1문답에서 배운 것을 기억하십니까? '인간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죄 때문에 인간은 이러한 능력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싫어하시니, 죄에서 벗어나기 전까지 인간은 하나님과 상관이 없습니다. 이사야 59장 2절과 에베소서 2장 12절을 읽어보십시오. 그리스도인은 죄에서 벗어난 사람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두 가지에 대해 설명해 봅시다.

2018년 11월 25일 (SU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19문답 묵상2018년

오늘날 이 세상에는 참으로 많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TV 뉴스와 신문은 연일 이런저런 사건들을 쏟아냅니다. 크게 보아 좋은 일과 나쁜 일입니다. 좋은 일들이야 당연히 행복한 것이로되, 나쁜 일들은 우리를 불행하게 만듭니다. 비율로 따져보자면 이렇게 불행하고 나쁜 소식들이 더 많습니다. 그런 식으로 여러 가지 불행한 일들이 일어나는 데에는 다양한 직접적이고도 간접적인 원인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궁극적인 원인은 무엇이겠습니까? 웨스트민스터 소신앙고백문답 제19문답은 이 문제와 관련됩니다.

이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불행의 배후에는 원칙적으로 인류는 심판에 처해져 있다는 진리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이 사실을 증거합니다.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롬 8:22). 물론 불신자들은 이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현 상태의 이 세계가 어느 정도 행복한 처소가 될 수 있고, 인간은 인간의 힘으로 죽음과 질병, 싸움과 전쟁을 소멸시킬 수 있으리라 자신만만해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죄 많은 인간의 생각과 마음이 얼마나 어둡고 공허해졌는가를 보여 줄 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자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났기 때문입니다(롬 1:18).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이것을 계시하셨으므로, 인간이 이 진리를 피하려면 영락없이 스스로를 속여야만 합니다. 인간이 비참한 처지에 있다는 것은 자명한 진리입니다. 신앙고백문답이 지적한 바와 같이 인간의 비참한 상태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인간은 하나님과 교제가 끊어졌고, 그리고 그의 진노와 저주 아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실 때에 영생하도록, 그리고 영생이 필요하도록 창조하셨습니다(전 3:11). 하지만 타락으로 인해 이 자격은 상실되었고, 이 필요성은 더 이상 충족될 수 없었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항상 불안하고 공허한 상태에 있습니다. 성경은 해 아래서 하나님을 떠난 인간 존재의 공허를 통째로 보여줍니다.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공허하도다”(전 1:2).

둘째로, 공허와 무기력과 함께 어느 누구도 전적으로 피할 수 없는 비참함이 이 생에서 쉴 새 없이 찾아들게 되었습니다. 욥의 친구가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났나니, 불티가 위로 날음 같으니라”(욥 5:7)라고 말한 바와도 같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질병과 기근, 전쟁과 지진 같은 것들이 엄습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인간의 생명을 그림자나, 꿈, 밤의 파수꾼으로 비교합니다. 결국 우리네 생명은 완전히 자라기도 전에 쉬 져버리는 풀이나 꽃과도 같을 때가 많습니다. 물론 때로는 행복이라는 것이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잠깐뿐입니다. 인간이 처해 있는 비참한 처지는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운명과도 같은 것입니다.

셋째로, 그러다가 결국 죽음이라고 하는 인류 공통의 무서운 적에게 사로잡히게 됩니다. 사람은 예외 없이 죽음의 지배 아래 있습니다. 아담의 죄로 인하여 인간이 죽는 것은 당연한 원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히 9:27). 이는 성도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 역시 죽음이라고 하는 원수를 피할 수 없습니다(고전 15:26). 현대주의자들이 죽음을 출생과 같은 자연적인 것으로 취급하지만, 이는 자신들이 얼마나 어리석은 존재인가만을 보여줄 뿐입니다. 이 세상 역사 속에서는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넷째로,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유기된 자들에게는 영원한 형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진리는 특별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충분하고 분명한 방법으로 가르쳐졌습니다. 죽음 이후에 죄인이 들어가게 되는 ‘꺼지지 않는 불’(마 3:12)의 세계가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심판의 불이 영원히 꺼지지 않는데, 그럴지라도 구더기조차도 죽지 않고 계속 고통을 받는다’(마 9:48)고 했습니다. 그래서 ‘불과 유황에서 고난을 받고’(계 14:10), 그에 따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 8:12)고 했습니다.

이 모든 사실이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결국 구원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구원만큼은 받아야 합니다. 이 세상의 하려한 겉모습에 속아서는 안 됩니다.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가령 의술이 제아무리 발달해봤자 그야말로 거기서 거기입니다. 결정적인 죽음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어림도 없습니다. 동시에 한편에서는 어떠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까? 단추 하나를 누름으로써 가공할 살상을 초래할 핵폭탄 이상의 폭탄을 개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 세상은 근본적으로 이중적입니다. 그러면서도 가장 중요한 문제는 놓치고 있습니다.

 

2018년 11월 24일 (SATUR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18문답 묵상2018년

사람들은 죄에 대해 생각하기를 싫어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죄짓는 것에 대해 별 상관 않으신다고 생각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죄를 미워하신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는 죄에 대해 생각하고 싶어하지 않지만 우리가 죄인인 한 하나님은 우리를 용납하지 않으시고 축복하지 않으신다고 말합니다. 우리 죄를 생각하면 우리가 얼마나 간절하게 구원자를 원하는지 알게 됩니다. 요한일서 1장 8-9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지금 당신에게는 어떤 의미 또는 차원에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하십니까?

2018년 11월 23일 (FRI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18문답 묵상2018년

그 동안 우리가 얼마나 심한 죄인인지 살펴봤습니다. 죄인으로 태어나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의를 갖고 있지 않다는 걸 알았습니다. 매일 죄를 짓고 악을 택해 행동하며 하나님께 불순종합니다. 하루에 한 가지씩만 죄짓는 것도 아닙니다. 여러 죄를 지으니 얼마나 많은 죄를 짓겠습니까! 로마서 3장 10-18절 말씀을 읽고, 각자 자신의 죄성에 대해 한 가지씩 고백해 보면서, 어떻게 해결해 나가려는지에 대해 말해봅시다.

2018년 11월 22일 (THUR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18문답 묵상2018년

혹 우리 안에서 선한 마음이 한 순간 일어난다 할지라도 실제 의지는 항상 죄에 지배되기만 합니다. 하나님께 경배 드리기 보다는 죄를 짓는데 신속하고, 하나님께서 생명의 도리로 내신 진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비록 겉으로는 이해했다 할지라도 마음으로 사랑하면서 행동으로 나아가는 데는 실패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파악한다거나 그것을 행할 능력이 아예 없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13장 23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구원자가 꼭 필요한 이유입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절대절망의 일을 대신 해주는 예수님을 구원자로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이 감사의 가장 가치 있는 형식은 무엇이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