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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15호.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이중적 성격

자, 이제 무엇을 강조하려는 것인가가 명확해졌습니다. 우리가 발휘하는 일종의 ‘믿음의 행위’는, 그렇게 하는 것을 통하여 다음 단계로 구원이라고 하는 열매를 획득하게 된다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 안에 구원이 들어와 자리잡고 있다는 데 대한 일종의 시인, 또는 인정 혹은 고백하는 의미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복음을 따낼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어떠한 수단이나 방법이나 또는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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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14호.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결과

성경에서 사용되고 있는 동사인 ‘안다(know)’ 또는 ‘알다’라는 단어와 ‘지식’(knowledge)이라는 명사는 대부분 동격으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이 둘의 의미가 합쳐질 때가 많은데, 그러한 경우에는 ‘안다’라는 말과 ‘지식’이라는 말은 좀 더 의미가 강화되어 ‘인정한다’, ‘승인한다’, ‘자인한다’(acknowledge)라는 뜻이 됩니다. 가령, 호세아 선지자가 “내 백성이 지식(knowledge)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호 4:6)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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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13호. 복음증거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주권

물론 하나님께서 이처럼 복음 전파에 있어서 일체의 주도권을 행사하신다고 해서 사람 편에서의 계획이나 노력 등이 전혀 필요 없는 것처럼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아까도 말했듯이, 사람은 복음이 확장되어 나감에 있어서 도구 노릇을 하는 것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동적으로 가만히 있기만 해도 된다거나, 매 번 하나님께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시면서 직접적으로 계시하시는 것은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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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12호. 믿음과 소망과 사랑

한 공동체 안에서 단순한 우정을 넘어, 사랑을 베풀며 사는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만의 특징입니다. 이는 하나님은 근본적으로 사랑이시며, 우리는 사랑이신 하나님의 자녀인 데서 오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아버지를 닮기 마련인 것이요, 이런 의미에서 그처럼 자녀라 일컬어지는 법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당신의 온전하심을 닮게 하시기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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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11호.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구원

사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싶어 한다고 해서, 그렇게 알고자 하는 열망만 가지면 우리에게 하나님이 자동적으로 알려지시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알게 해주지 않으시면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대해서 논한다 할지라도,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신을 알려주시는 바대로, 그대로 알아 나간다는 차원이라는 것을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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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10호.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자

오늘날 전도자들 중에는,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하고 외치는 사람들, 주야장천(晝夜長天) 그렇게만 외치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틀렸다는 말이 아닙니다. 누가 감히 그렇지 않다고 하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은 동시에 무자비한 심판자이십니다. 소돔과 고모라 같은 세상적인 삶을 지속하면서 도무지 회개하지 않는 자들, 죄를 고집스럽게 즐기는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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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09호.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

심지어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와 기적과 표적을 체험해도 그렇습니다. 병고침을 받는 기적 체험, 혹은 소위 예수 믿고 축복 받았다고 하는 자기 신앙적 확신, 또는 하나님의 이름을 앞세우고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선동을 통해 그야말로 세계적으로 최고로 큰 교회를 만드는 놀라운 업적을 성취했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거듭나지 못한 한에는 그런 식으로 경험과 체험과 업적 성취로만 치달릴뿐이지, 아무도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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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08호. 은혜와 평강의 구원

이러한 왕들의 권세, 곧 왕노릇하는 권세라는 말을 은혜와 결부시키는 것은 은혜도 그에 상응하는 능력을 발휘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은혜는 하나님의 백성들 위에서 왕노릇합니다. 그러니까, 은혜는 단순히 분위기 그 자체인 것만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구원의 진리에 대한 이해력 그 자체인 것만도 또한 아니다 하는 말입니다. 은혜는 단순히 지적이거나 정적이지만은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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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07호. 신실한 성도로서의 그리스도인

성도란 이렇게 세상으로부터 구별된 사실, 즉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여하튼 하나님을 향하여 적극적으로 구별된 사실을 떠나서는 정의되지 않습니다. 성도는 세상의 법보다는, 여기서 ‘세상의 법’이란 역사 속에서 펼쳐져 나온 ‘다양한 생활 방식들’이란 의미인데, 하나님의 법을 더 크게 받드는 것이요, 하나님의 법이 가르치는 방도 내에서,  세상의 법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