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소신앙고백 제50문답에 대한 오늘의 묵상 (2016년 6월 24일 • FRIDAY)

요한복음 4:24은 모르는 그리스도인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말씀입니다. 암송해 보십시다. 하지만 제대로 알고 있는가 하는 질문 앞에서는 슬그머니 꼬리를 내릴 사람들이 많을 듯 싶습니다. 성경을 아는 지식에 있어서의 예의 그 수박 겉핧기 수준과 태도가 이 내용과 관련해서라고 예외일 수 없겠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언뜻 보기에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신령의 의미는 무엇이고, 진정(진리)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이 말씀이 당신의 예배 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입니까? 다시 한 번 제사와 예배의 공동점과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제51문답이 "제2계명이 금하는 것은 무엇입니까?"라고 묻는 데 대한 정확한 적용에는 소위 '제사직 예배'는 마땅히 배제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신앙고백 제50문답에 대한 오늘의 묵상 (2016년 6월 23일 • THURSDAY)

레위기 10:1-2을 읽어봅시다. 잘 알려진대로 나답과 아비후가 '여호와의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로써 분향했을 때 여호와께서 즉결 처분하여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보건대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께서 받으심직 한 것이 될 수 있으려면, 반드시 성경에 규정된 내용, 즉 그러한 질서와 규칙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 확실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대체적으로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에 따라 여러가지 시끌법적한 예배들이 난무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게 할 때에 성경에서 자신들의 마음에 맞는 특정한 구절 몇몇개를 내밀면서 '성경적 예배'를 드리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처럼 각자가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면서 이곳 저곳에서 성경 구절들을 제시하게 될 때에, 옥석을 가릴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은 무엇입니까?

웨스트민스터 소신앙고백 제50문답에 대한 오늘의 묵상 (2016년 6월 22일 • WEDNESDAY)

제51문답에 비추어 볼 때, 삼위일 하나님에 대한 형상화, 특별히 그림이나 사진 같은 방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형상화하는 경우 죄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에 로마 카톨릭 교회는 형상숭배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지식이 부족한 사람들을 잘 가르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개혁주의 교회는 여기에 강력히 반대하면서 어떡하든지 '하나님의 말씀의 생생한 선포'만이 신앙을 일으키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가령,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98문답은 대답하기를, "우리는 하나님보다 더 지혜로운 체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이 말 못하는 우상을 통해서가 아니라(렘 10:5, 8; 합 2:18-19) 그의 말씀에 대한 살아 있는 강설을 통해 가르침 받기를 원하십니다(롬 10:14-17; 딤후 3:16-17; 벧후 1:19)라고 했습니다. 이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어제에 비추어 어떻습니까? 계속 같은 생각입니까, 생각이 바뀌었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웨스트민스터 소신앙고백 제50문답에 대한 오늘의 묵상 (2016년 6월 21일 • TUESDAY)

출애굽기 35:2을 읽어봅시다. 이 사건은 무슨 내용입니까? 이 사건을 다시금 상세히 설명하고 있는 신명기 4:15-19을 읽어봅시다. 하나님의 대표적인 본성 두 가지는 첫째, 영적 존재시라는 것이고, 둘째, 삼위일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본성의 이와 같은 두 가지 특성은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을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형상화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하지만 기독교가 아닌 다른 모든 우상숭배자들의 경배 의식은 공통적으로 형상을 숭배하는 모습을 취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어떠한 면에서도 실제로 신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그림이나 사진 같은 방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형상화하는 경우는 어떻습니까? 죄입니까, 아닙니까, 왜 그렇습니까?

웨스트민스터 소신앙고백 제50문답에 대한 오늘의 묵상 (2016년 6월 20일 • MONDAY)

제2계명의 질문과 대답은 눈의 신앙이 아닌 귀의 신앙을 본질로 삼고 있는 기독교의 특이성을 잘 표현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형상숭배를 엄격히 금하기 때문입니다. 선포된 말씀이 성도의 정신 영역에 하나님의 구원 방식에 대한 논리적이고 적극적인 사고력을 일으켜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전폭적으로 순종할 수밖에 없게끔 되어지는 방식이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요 여타의 종교나 일체의 미신과 확실하게 구별되는 특이성입니다. 말씀이 선포되고, 선포된 말씀이 깨달아지고 그로 말미암아 전심으로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데서 성도의 생애는 더더욱 구원 받은 자답게 활성화되게 됩니다. 이런 차원에서 십계명이 일체의 형상숭배를 엄격히 금하는 바를 잘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눈의 신앙이 아닌 귀의 신앙이라고 한 점을 기억하면서, 오늘날 우리의 예배 생활이 '귀 중심'의 신앙에서 벗어나고 있는 양상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웨스트민스터 소신앙고백 제51문답에 대한 오늘의 묵상 (2016년 6월 19일 ● SUNDAY)

[질문] 제2계명이 금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대답] 제2계명이 금하는 것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에 형상을 사용하거나(출 32:5, 8; 신 4:15-19; 롬 1:22-23) 혹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정하여 주시지 않은 다른 방법을 조금이라도 사용하는 것입니다(레 10:1-2; 렘 19:4-5; 요 4:24; 골 2:18-23).

웨스트민스터 소신앙고백 제50문답에 대한 오늘의 묵상 (2016년 6월 18일 • SATURDAY)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 경건한 예배는 제2계명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긍정적인 명령입니다.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현대 교회들 중에 온전한 예배를 드리는 경우는 무척이나 드물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배는 주님의 만찬이 수반될 때에 보다 더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 예배가 되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득이한 일이어서겠지만, 주님의 만찬을 1년에 겨우 한두 번 시행하는 우리네의 모습은 초대교회에 비추어 볼 때 초라하기까지 합니다. 사도행전 2:42을 읽어봅시다. 여기서 '떡을 뗐다는 것'은 오늘날의 주님의 만찬에 비견됩니다. 우리가 주님의 만찬을 겸비한 예배를 자주 드리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시급한 개선책은 무엇입니까?

웨스트민스터 소신앙고백 제50문답에 대한 오늘의 묵상 (2016년 6월 17일 • FRIDAY)

마태복음 28:20을 읽어봅시다. 이 내용은 일반적으로 '전도 대명령'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 동안 한국 교회가 이 내용을 '전도 행위'에만 국한시켰던 것은 또 하나의 오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이라고 하신 말씀은, 예수께서 산상수훈을 통하여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마 5:17)라고 하셨듯이 당연히 하나님의 계명 전체를 가리키는 것임은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계속 이어서 하나님의 계명 전체에 대한 순종을 대표하는 것은 '올바른 예배 행위'에서 최고의 가치가 발휘된다는 사실을 상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당신에게 요구되는 가장 현실적인 개선책은 무엇입니까?

웨스트민스터 소신앙고백 제50문답에 대한 오늘의 묵상 (2016년 6월 16일 • THURSDAY)

신명기 32:46을 읽어봅시다. 모세는 어버이들이 자녀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 것인가를 명령하면서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의당히 율법의 강령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기 마련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입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를 성공적으로 이끌어주는 원리가 하나 있다는 것까지 아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정답은 '온전한 예배 생활'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예배를 드리면 드릴 수록 자신의 생명력이 더더욱 활성화되는 사실 앞에서 놀라지 아니할 수 없게 됩니다. 제50문답을 통한 긍정 명령은 이 사실에서도 놀라운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 번 되짚어 보십시다. 당신의 자녀들을 신앙으로 양육함에 있어서 당신 자신부터가 '예배 생활'을 최고의 가치고 여깁니까?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러한 가르침을 위해서 당신이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