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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65호. 사울의 개종과 복음의 유대 확장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세상 각처의 죄인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제공하시기 위하여 준비하신 또 하나의 도구는 사울(Saul)이라는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비록 뒤늦게 알게 되었지만, 이 일을 위한 자신의 선택이 이미 창세 전에 이루어 졌다는 사실을 충분히 깨달은 사람이었습니다(엡 1:3-6). 그는 본래 유대교를 열렬하게 추종하는 자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변화시켜 당신의 도구로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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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64호. 사마리아 전도

여기서 주의 깊게 보고자 하는 것은, 네 곳의 경우 모두 성령을 강림케 하는 어떤 짜여진 형식이란 것이 동원된 적이 없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흔히 현실의 부흥회 현장에서 곧잘 사용되고 하는 바, 성령께서 임하시는 것을 가능케 하는 어떤 특별한 양식이나 형식이 의도적으로 사용된 일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는 이들 사건들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 역사로 베풀어진 것이었음을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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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63호. 스데반의 설교와 순교

성전의 모체인 성막은 모세가 하나님이 보이신 식양과 모양대로 만들었습니다. 당시 하나님께서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좇아 지으라”(히 8:5 출 25:40)고 하신 말씀은, 한편으로 “삼가 보이지 아니한 것은 짓지 말라”고 하는 말씀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이 성막에서 섬기던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였고, 이것을 그대로 드러내야 했기 때문입니다.  더보기

2016년 8월 31일 (WEDNESDAY) ● 웨스트민스터 소신앙고백 제61문답에 대한 오늘의 묵상

제4계명은 '주일을 게으르게 지키는 것'에 대해서도 경고합니다. 이것은 아마도 자신의 마음은 그렇지 않지만 마지 못해서 또는 억지로 주일을 지킬 수밖에 없는 그런 경우를 가리키겠습니다. 자녀가 부모의 성화에 못이겨 억지로 지킨다거나 미션 스쿨의 교과과정에 억지로 참석하는 경우도 해당되겠고, 또는 사랑하는 연인에게 잘 보이려고 그가 이끄는 대로 억지로 예배에 참석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군대와 같은 계급 사회에서도 믿는 상관에게 잘 보이려 하는 데서 이런 일은 일어날 것입니다. 하지만, 비록 본인에게 주일을 성수하겠다는 의지가 있다 할지라도 결국 적극적으로 열심을 내지 않는 경우는 더 경고를 받아 마땅할 것입니다. 기타 어떤 경우들이 있겠습니까?

2016년 8월 30일 (TEUSEDAY) ● 웨스트민스터 소신앙고백 제61문답에 대한 오늘의 묵상

제4계명은 "부주의 하게 이행하는 것'에 대해서도 엄중히 금합니다. 이러한 모습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주일의 공예배에 습관적으로 지각하는 모습도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대체적으로 주일 예배 참석에 듬성드뭇하는 사람들이 시간을 지키는 데에도 그러함을 봅니다. 세상에서도 높은 분을 모시고 일종의 예식을 진행한다거나 또는 회의가 열린다거나 할 때에 혹 지각하게 된다면 참으로 모습이 민망할진대 하물며 하나님께 대해서는 어떻겠습니까? 규모가 좀 작은 교회에서는 지각하는 성도가 거의 없지만 대형교회에서는 제법 빈번한 것을 보는데 무슨 이유이겠습니까?

2016년 8월 29일 (MONDAY) ● 웨스트민스터 소신앙고백 제61문답에 대한 오늘의 묵상

제4계명은 "명하신 의무를 이행하지 않거나 ..."라고 함으로써 계명 그 자체를 지키지 않는 것을 엄중히 금합니다. 혹시라도 어제 주일을 범하지는 않으셨겠지요? 마치 기도가 신앙의 호흡이듯이 성도로서 주일은 지키는 것은 신앙의 생명 그 자체와도 같습니다. 기도하는 중에 신앙이 보이듯이 주일을 지킴으로써 자신에게 신앙이 있음을 입증할 수 있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탄은 온갖 거리들을 통하여 우리로 하여금 주일을 등한시 하게끔 미혹합니다. 하지만 정말 부득이한 일이 아니고서는 성도라면 반드시 주일을 지키면서 공예배를 드려야 하고, 함께 구원을 받은 성도들과 말씀을 높이며 교제해야 합니다. 홀로 있는 그리스도인이란 있을 수 없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정말 부득이 한 일에는 어떤 경우들이 해당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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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62호. 하나님의 비밀과 교회의 사역

반복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선다’, 또는 그렇게 되도록 가르친다 하는 것은, 개인의 도덕성이 그리스도를 닮은 품성을 구현한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몸 전체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가도록 활발하게 상호 간에 연락하고 상합하는 데 기여하는 방식으로 그리스도인다운 품성 발휘에서 찾아지는 것입니다. 바로 이 일을 위하여 성신께서는 교회의 교사들 속에서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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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61호. 하나님의 비밀의 출현으로서의 교회

현대 교회는 참으로 옆으로 비껴가도 한참 비껴갔구나 하는 생각을 금할 수 없습니다. 소위 큰 교회가 작은 교회를 얕잡아 본다거나, 심지어 자기네가 개척에 관계했다고 해서 마치 산하의 지점 대하듯이 하는 경우가 거지반 이상입니다. 대형 교회의 담임 목사가 마치 재벌 회장과도 같이 행동하고, 목사와 장로 간에, 그리고 장로와 집사 간에, 그리고 집사와 성도들 간에 사실상 계급 구조를 형성하고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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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60호. 하나님의 교회의 일꾼

사도 바울의 사역은 오늘날 일반적으로 한 지역 교회를 섬기고 봉사하는 그런 차원의 보편적인 직무가 아니었습니다. 바울을 비롯하여 사도들은 그들이 보여주었던 사역의 성격상 명실상부한 교회의 창설자들이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에베소서에 보면,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엡 2:20)고 한 말이 나옵니다. 그래서 교회의 정통성을 논할 때에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