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 20일(MO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44문답

금주의 소신앙고백문답은 십계명의 머리말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가를 묻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존함(尊銜)을 언급하는데,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시라고 했습니다. 먼저 '여호와'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뜻으로서 오직 하나님에게만 사용되는 고유명사입니다. 출애굽기 3:14을 봅시다. 이 이름은 하나님의 스스로 계시는 자존성과 피조물을 초월해 계시는 거룩성 및 영원한 불변성을 강조하는데 주로 이스라엘 백성과 맺어주신 '언약의 주체자'를 강조할 때 사용됩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은 가장 보편적인 이름으로 '전능한 분'이시라는 뜻입니다. 즉 이 세상 만물의 창조주되심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결국 '전능한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원히 변치 않는 구원의 언약을 베푸신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하는 의미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러한 분이시라는 데서 우리가 얻는 위로들에 대해 이야기해 봅시다.

2019년 5월 19일(SU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44문답

[질문] 십계명의 머리말이 가르치는 것은 무엇입니까?  [대답] Ÿ 십계명의 머리말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하나님은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 되는 분이시고, 구속자이시므로, 우리가 마땅히 여호와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호 11:1-2; 눅 1:74-75; 롬 8:1-4; 고전 5:7-8; 벧전 1:14-19).

제44문답은 십계명의 머리말이 왜 선포되었는가에 대해 묻습니다. 여기서 잠깐 머리말을 보면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라고 하신 내용입니다(출 20:2; 신 5:6). 한 눈에 척 떠오르는 인상이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구원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십계명은 하나님의 백성은 구원 받았다는 사실의 전제 하에 베풀어진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면, 이제 다시 “너희가 구원 받았으니까, 즉 은혜를 빚졌으니까, 이제부터 십계명을 잘 지켜서 하나님께 보답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하는 의미이겠습니까? 그런 의미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에 빚진 자로서 여하튼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는 삶을 사는 것이 마땅한데, 그렇게 할 때에 하나님께 이런 것 저런 것을 바친다 하는 차원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계명에 순종하는 것이 최우선적으로 필요합니다.

하지만 십계명의 머리말을 대할 때 더 중요한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는 능력에 성립되었다는 데 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한다는 것이 아무라도 마음만 먹으면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그러한 능력이 없고, 그렇게 할만한 생각조차도 못하는 존재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지닌 부패성은 부분적이지 않고 전적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칼빈주의 5대 교리’에서 첫 번째인 ‘전적 부패(Total Depravity)’ 주제로서 고백하는 바대로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에 대해 올바르게 생각한다거나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거기에 순종할 수 있으려면,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야 합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요 6:63)라고 하신 말씀이 공연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에 연합되어 구원을 받게 되면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이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첫째, 죄책이 사라집니다. 이것의 의미에 대해서는 이신칭의 교리를 통해서 잘 알려진 바대로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사실 때문에 성도에게는 결코 정죄가 뒤따르지 않는데, 바로 여기에서 그 유명한 ‘그리스도인의 자유’ 문제가 나오게 됩니다. 칼빈은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해 ‘칭의론의 부록’과도 같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책을 사해주신 것이고, 이것은 영단번에 이루어진 결코 변치 않는, 아니 변할 수 없는 하나님의 구원 방식이므로, 향후 그 어떠한 죄도 성도를 정죄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구원이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에 연합된 데 따른 것이요, 그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법정에서 의롭다 함을 선고 받은 것이므로, 향후 만에 하나 제아무리 극악한 죄악에 빠진다 할지라도 여전히 의인으로서의 신분은 취소됨이 없이 온전히 끝까지 유지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에 연합되어 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서 살아가게 되는 놀라운 신비를 발휘하게 됩니다. 오늘날 ‘이신칭의 교리’가 ‘간단 신앙주의’로 변질되어 있는 성향이 강한 한국적인 상황에서 신실한 성도로서는 이 사실을 잘 깨달아야 합니다. 성도는 단지 의롭다 함만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동시에 의롭게 살 수 있는 능력도 받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도다”(고전 1:30)라고 했던 것입니다. 여기에 보십시다. 분명히 ‘의로움’이 되었다고 할 때에 ‘거룩함’도 되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 거룩함이란 것은 신앙신학(信仰神學, Faith Theology) 또는 고백신학(告白神學, Confessional Theology)의 용어로는 성화를 가리키는 것인데, 바울은 이 성화에 대해서도 완성적이라는 의미로 칭의와 동일하게 배치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실상 성도는 ‘더 이상 죄 가운데서 살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는 차원과 연결시켜 구원 받았다고 보는 것이 정답입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성도는 더 이상 죄 가운데서 살려고 해도 살 수 없는 그런 신비한 존재인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그의 속에서 약동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예수님께서 그러셨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깨닫게 되고, 예수님께서 그러셨듯이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기를 마치 일용할 양식을 취하는 것처럼 하게 되는 것입니다(요 4:34). 백이면 백 모두가 예수님처럼 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물론 그렇게 되는 때도 있습니다. 그것은 이 땅의 모든 것과 결별하여 새로운 부활체로서 다시 살아가게 되는 영화의 때입니다. 그렇게 되기 전까지는 이 땅에서 살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력으로서 사는 훈련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까닭에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것이 실로 송이꿀보다 더 단 것을 체험하게 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때에 실로 사람답게 사는 보람을 느끼면서 가슴 뿌듯함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십계명에서의 머리말은 이스라엘 백성이 구원 받았다는 사실을 선언하는 것으로, 이는 하나님의 백성은 그로 말미암아 능히 십계명과 같은 복음의 계명에 온전히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 하는 만큼, 상대적으로 자신이 받은 구원의 확신도 증대되게 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2019년 5월 18일(SATUR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43문답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만을 사랑하는 분이십니다. 이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계속해서 성신께서 내주하시면서 인도해주십니다. 이러한 사실은 성도란 모름지기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들이니, 하나님이 거룩하신 것처럼 자신들도 거룩해야 함이 마땅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거룩함은 세상과 구별된 삶 살기를 가리킨다는 것을 잘 기억하실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6:16-18을 읽어봅시다. 거룩한 삶의 적극적인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에 신명나게 순종하는 것이라고 한 것도 잘 기억하시지요? 그러면 어떻습니까? 마침 내일은 주일이니, 하나님의 말씀이 총체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교회의 영광스러운 공예배'에 일착으로 달려가지 않으시겠습니까?

2019년 5월 17일(FRI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43문답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라고 시작되는 십계명의 머리말이 이제 신약적으로 표현된다면 어떻게 묘사되는 것이 가장 적절하겠습니까?  골로새서 1:13-14에서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삼을 얻었도다"라고 한 말씀은 어떻겠습니까? 또는 요한복음 3:16처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라고 한 말씀은 어떻겠습니까? 이제 당신의 경우 어떤 말씀을 제시하고 싶습니까?

2019년 5월 16일(THUR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43문답

신명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직전에, 그리고 모세가 죽기 직전에 선포한 설교입니다. 여기서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행하신 모든 것을 상기시켜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신명기 4:5-6을 선포했습니다. 이 말씀의 핵심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율법을 잘 지키면 열국들로부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라고 하는 위대한 명성을 얻게 된다는 데 있습니다. 시편 19:7-10을 읽어봅시다. 내친 김에 잠언 1:7로도 가 봅시다. 그러면 지금 당신의 인생을 인도하는 지혜와 지식은 무엇입니까? TV나 인터넷 같은 것을 통해서 날마다 새롭게 얻어내는 갖가지 새로운 정보들입니까?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 동의한다면, 한 단계 더 들어가 왜 그래야만 하는지에 대해서도 대답해 봅시다.

2019년 5월 15일(WEDNE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43문답

십계명은 하나님의 백성 모두에게 대대로 주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확실하게 이해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므로 신명기 5:1-6을 읽어봅시다. 여기서 모세는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주신 것은 광야 40년 기간 동안에 새롭게 태어난 자손들과도 세우신 것이라고 힘주어 설파했습니다. 여기에서도 하나님의 언약의 독특한 특성인 계대성(繼代性)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계대적 원리, 또는 항상 한 집단의 머리와 언약을 세우시는 방식은 아담을 필두로 최종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세우신 언약에까지 계속 이어져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자신이 이 언약의 수혜자들인 것을 스스로 확증할 수 있는 증거를 주셨는데, 다름 아닌 십계명을 성취할 수 있는 능력이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을 봄으로써입니다. 이 원리를 고려하면서 다시 한 번 로마서 6:12-14을 읽어 봅시다. 무엇을 깨닫습니까?

2019년 5월 14일(TUE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43문답

출애굽기 15:1-2을 읽어봅시다. 애굽 군대의 홍해 바다에서의 몰살 광경을 생생히 목도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높이며 찬양한 노래의 서두입니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이 받은 구원은 더 이상의 위협이 없게 됨에 따라 온전히 완성되었습니다. 그와 같이 이후 가나안 땅도 정복되게끔 되어 있었지만, 훗날 보듯이 이스라엘 백성은 믿음을 저버리고 인간적인 판단으로 돌아섬에 따라 결국 40년의 긴 세월을 허비하고서야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신약시대의 영역에서 보자면, 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생명이 된 까닭에, 능히 죄를 이기고 승리할 수 있게끔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성공의 첫 걸음은 십계명 지키기부터입니다. 잊지 마십시다. 십계명은 세상 사람들이 아닌, 오직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로마서 6:12-14을 읽고, 오늘 이 말씀을 어떻게 적용해야 좋을지 구체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2019년 5월 13일(MO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43문답

십계명을 생각할 때에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누구에게 주시는가 하는 점입니다. 물론 십계명은 인류 보편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십계명으로써 불신 세계로 하여금 결코 죄성을 핑계할 수 없게 하실 것이로되, 당신의 택한 백성에게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주시는 동시에 삶을 윤택하게 하고 부요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십계명이 선포되기에 앞서 전제 조건으로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라고 하신 데서 이 사실을 직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십계명은 구원 받은 사람을 대상으로 합니다. 왜냐하면 구원 받은 성도라면 능히 십계명을 즐거이 성취해 나가기 마련인 때문입니다. 로마서 6:12-14을 읽고, 은혜 아래 있는 사람은 어떤 원리 때문에 십계명의 성취의 한 방편이듯이 자신을 의의 병기로 드릴 수 있는가를 생각해 봅시다.

2019년 5월 12일(SU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43문답

[질문] 십계명의 머리말이 무엇입니까? [대답] 십계명의 머리말은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하신 것입니다(출 20:2; 신 5:6).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에서는 확인만 하고 넘어가는 것과는 달리, 웨스트민스터 소신앙고백 제43문답은 십계명의 머리말에 대해 묻고 대답하는 데, 이러한 형식은 상당히 중요하므로 잘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을 시내산에 집결시키셨습니다. 이곳에서 십계명을 베푸셨고, 성막을 만들게 하셨고, 이 성막에서 진행해야 할 일련의 제사제도를 주셨습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언약 행위’였습니다. 이전에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께서는 이제 그로 말미암아 형성된 이스라엘 백성과 계속 언약을 맺으심으로써 아브라함의 후손들 모두를 당신의 백성으로 받아주신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 언약의 일환으로 주신 이 십계명은 향후 모든 선행과 도덕 그리고 인간을 시험하고 심판하기 위한 올바른 기준으로 간주되어 왔습니다. 개혁교회는 예배를 진행하면서 십계명 선포식을 갖는데,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하여 구원 받았다는 사실을 고백하기에 아주 적절한 방식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선 여기서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 제93문답에 대한 노만 존스(Norman L. Jones)의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해설을 참고해 보겠습니다(Study Helps on the Heidelberg Catechism, pp. 224-225.).
  • 첫째, 십계명은 하나님 뜻의 변치 않는 계시입니다. 아담은 창조되었을 때 하나님의 뜻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아담을 따르는 자들도 역시도 하나님의 뜻을 알았습니다(롬 2:14-15). 그런데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영구적이 되게 하시려고 돌판 위에 써 주셨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심판하기까지 사람을 위해 당신의 불변하신 뜻을 돌 판에 영구적으로 새기셨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예수께서 십계명을 폐지하러 오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마 5:17).
  • 둘째, 십계명은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을 위한 하나님의 도덕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의식과 예배에 관한 법들도 주셨는데, 이것들은 오직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만을 위한 한시적인 법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그것들이 의미하고 있던 바를 성취하심에 따라 그것들은 폐지되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십계명은 모든 사람들을 구속하는 도덕에 관한 것입니다. 십계명은 사람들에게 인간으로서 자신이 하나님과 이웃에 대하여 지고 있는 의무가 무엇인가를 가르칩니다. 이 율법은 하나님께서 심판 날에 모든 사람에게 심판을 위해 적용하실 기준입니다(롬 3:19).
  • 셋째, 십계명은 도덕의 근본 원리를 우리에게 제공합니다. 시민법을 포함하여 성경의 모든 도덕적인 가르침은 십계명을 기초로 합니다. 우리가 성경 전체를 더 연구해보면, 십계명 각각에 대하여 더 넓고 깊이 적용되는 의미들을 배우게 됩니다. 그러므로 시편 기자는 말하기를 “주의 계명들은 심히 넓으니이다”(시 119:96)라고 했습니다.
  • 넷째, 십계명은 적용에 있어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양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이렇습니다. 우리에게 ‘하지 말라’라고 할 뿐 아니라, 그 반대의 일을 하라는 의도가 담겨 있다는 것이 신앙고백문답의 핵심 내용입니다. 십계명의 핵심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도록 요구함으로써 우리를 인도하여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게 합니다. 이처럼 사랑만이 우리가 율법을 지키기에 인정받을 만한 방법입니다.
  • 정리하자면, 십계명은 비록 돌비에 새겨진 성문법 형태가 되어 있지만,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의 마음에도 예외 없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것을 양심이라고 합니다. 물론 이 양심은 아담의 타락의 영향을 받아 부분적으로 어두워졌고 본래의 기능도 상실되었고 능력도 감소되었습니다. 모름지기 그리스도인이라면 십계명을 철저히 준수해야 합니다. 물론 준수할 수 있으려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제정된 중요한 원리를 받들어야 합니다. 이 원리를 무시하게 되면 영락없이 몇몇 개의 계명에 치중하는 도덕주의로 삐꾸러지고 마는 것이 필연이기 때문입니다.
  • 성도는 원칙적으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에 접붙여져 있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므로 일반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역학의 생명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성신의 능력과 은혜 안에서 거듭난 데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이 ‘연합되어 있다’고 한 중요한 원리의 전제 하에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롬 6:12-14)라고 했습니다. 성도가 십계명을 비롯한 제반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동기와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은 이렇게 구원 받은 사실을 전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라고 하신 말씀을 해석해 줍니다.

2019년 5월 11일(SATUR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42문답

요한복음 15:12-14을 읽고 시작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12절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위해서 친히 보여주신 사랑은 무엇입니까? 13절은 최고의 사랑에 대해 무엇이라고 합니까? 14절에 의하면 우리가 예수님의 친구인 것을 입증할 수 있으려면 무엇이 필요하다고 하셨습니까? 만일 우리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이는 십계명 형태로 요약된 도덕법부터 잘 지키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들 앞에서 우리의 실제 모습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아, 이제 예배자로서 살아갈 수 있게 된 데 대한 감사함과 자부심으로서 내일 주일의 공예배를 위하여 한 걸음에 예배당으로 달려가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