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1월 25일(SATUR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79문답

지금 전국적으로 관심을 쏟고 있는 오늘날의 혼란은 일찌기 박정희가 516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사건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박정희의 권력욕와 그에 빌붙었던 정치인들이 오늘까지 자신들이 탐심으로 쌓아올린 기득권을 이어가려는 데서 지금과 같은 혼란이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교회마저 이러한 시류를 따라가기에 문제가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닙니다. 무서운 속도로 염병처럼 번지고 있는 교회 세습의 열풍을 어떻게 해야 한단 말입니까? 진정 하나님께서 '자기의 상실한 마음대로 버려두시는 형벌'은 참으로 무섭기 그지 없습니다. 교회 세습의 배후에 탐심이 있다는 데 대해 어느 누가 변명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에서 욕심과 탐심은 동의어임을 주목하면서 야고보서 1:15을 읽어봅시다. '교회의 탐심'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어봅시다. 

2020년 01월 24일(FRI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79문답

탐심은 가장 옛 사람적인 특성입니다. 옛 사람의 특징은 철두철미 자기 자신의 부귀영화를 꾀합니다. 부귀영화를 위해서라면 신앙까지도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러면서도 제마음대로 휘젓습니다. 그렇게 해서 옷입는 대표적인 현상이 바로 기복주의입니다. 이러한 까닭에 골로새서 3:5에서 탐심을 우상숭배라고 규정한 것은 실로 절묘한 해석이자 원초적 해석일 것입니다. 자신의 신앙에 기복적 요소가 깔려 있다면 기도의 모습에서 드러날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혹 신앙의 호흡인 기도에서 탐심이 작용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2020년 01월 23일(THUR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79문답

몇 년 전에 국내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 홍 아무개 목사가 공개적으로 대통령에게 '하야 하라'는 편지를 썼다고 합니다. 이는 지극히 잘못된 행동으로, 첫째, 목사의 위치에서 정치에 공개적으로 개입한 것이고, 둘째, 굳이 필요했다면 개인적으로 보내면 될 일을 세상 앞에 보란 듯이 공개한 것입니다. 이는 결국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 으스대고 싶은 마음에 의한 것이었겠는데, 결국 탐심에서 되어진 행동이라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와 비슷한 실례를 들어 봅시다.   

2020년 01월 22일(WEDNE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79문답

새해가 흘러 벌서 한 달을 채워갑니다. 새해 첫 날 하루를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날로서 시작하게 되는 것은 흔히 있는 기회는 분명 아닙니다. 그런데 몇 년 전의 이 좋은 날에 안양 지역의 어느 대형교회는 참으로 패역한 죄악을 자행했습니다. 아들이 없었던지라 기어코 사위에게까지 교회를 세습하는 결의를 했기 때문입니다. 공동의회의 결의라고 강변하겠지만, 한국적인 상황에서, 특히 세습 문제라면 이미 다 짜여진 각본대로 움직이기 마련이라는 것은 상식이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강변해도 세습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의 없음이자 탐심의 발로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골로새서 3:5을 읽어보고, 탐심을 가리켜 우상숭배라고 한 이유에 대해 서로 생각해봅시다. 

2020년 01월 21일(TUE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79문답

탐심은 겉으로 드러날 때에 두 가지 옷을 입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불의해 보이는 경우입니다. 제10계명에 구체적으로 제시된 행동을 하게 되면 이는 명백히 죄를 범하는 것인데, 이 죄의 동기란 다름 아닌 탐심, 즉 욕심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누가 보더라도 의로워 보이지만 사실상 당사자에게는 명백히 탐심인 경우가 있습니다. 가령, 어떤 사람이 자선 사업을 한다고 할 때, 사람들의 눈에는 선하게 보이지만, 바로 그러한 호의적인 평가와 명예를 얻으려는 의도로 그러한 일을 할 경우 명백히 탐심에 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실례들을 들어봅시다. 

2020년 01월 20일(MO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79문답

제10계명의 핵심 단어는 '탐심'입니다. 이 단어는 의도적으로 두 번 반복되었습니다. 제10계명에서 금하고 있는 일곱 가지는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병행구절인 신명기 5:21에서는 무엇이 하나 더 추가되어 있습니까?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고 한 계명에 이어 제시된 구체적인 목록은, 이스라엘 백성은 공유 공동체였기 때문에, 지금 현재 '나' 자신도 동일한 것을 소유하고 있다는 전제하에 주어진 말씀입니다. 하지만 만족하고 감사하지 못할 때에 이웃의 것을 넘보게 되는데, 인간이 욕심을 앞세워 자기의 것이 아닌 남의 것까지도 넘보는 데서 탐심이 정체를 드러내게 됩니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실례를 들어봅시다. 

2020년 01월 19일(SU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79문답

[본문] 제10계명이 무엇입니까? [대답] 제10계명은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 하신 것입니다(출 20:17; 신 5:21).

제79문답부터는 십계명 중의 ‘열 번째 계명’을 다룹니다. 주제의 핵심은 한 마디로 말해서 ‘탐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탐내는 마음에 대해서 신약성경은 단도직입적으로 ‘우상숭배’라고 선언하는 것을 주목하면서 이 부분을 다룰 필요가 있습니다. 즉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골 3:5)라고 한 것입니다. 탐심이란 욕심에 대한 또 다른 표현임에 다름이 아닙니다. 이것은 자기의 분수에 넘치게 남의 것을 소유하거나 누리고자 하는 마음을 가리킵니다.

사리 판단이나 분별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에 따라 그야말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것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게 되는데, 그에 따라 범법 행위까지 서슴지 않게 됩니다. 통상 탐심이나 욕심이 실정법에 연루되는 까닭이 이 때문입니다. 오늘날 사회가 복잡하게 얽혀져 가는 경향 속에서, 사람들은 재산, 명성, 권력, 고소득의 직장, 떼 돈 버는 장사 등등에 가히 집착하다시피 하는데, 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러한 것들이 성공의 척도이고 안전한 미래를 보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대문입니다. 이것은 자신이 이미 부자이든, 혹 자신이 가난할지라도 자신의 나라가 복지 정책을 잘 시행하는 부유한 나라이든 간에, 상관없이 여하튼 오로지 돈벌이와 출세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겨 타인의 것을 훔치거나 하여 손해를 끼치지 않는 한, 탐심이나 욕심을 품은 것 그 자체는 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십계명의 열 번째 계명이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라고 했을 때, 이 역시 본래 사람에게 있는 ‘부패한 성향’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의 두 부분을 구체적으로 살펴봅시다. 먼저,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주택 소유 문제는 가히 자신이 살아가는 이유 그 자체가 된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주택 소유에 대한 욕구가 강렬합니다. 이것은 어느 정도 이해해줄 수 있다 할지라도, 이미 자신이 다리를 쭉 뻗고 살만한 집을 장만한 사람들조차도 계속해서 이것을 갈망합니다. 이우는 집 장만이 가장 손쉬운 돈벌이가 되고 있는, 한국의 경제적 상황과도 맞물려 있기도 합니다. 쉽게 말해서 집 장만은 곧장 그 차액으로 인한 돈벌이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다소 뜸한 말이 되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강남에 ’복 부인’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였던 것입니다.

본디 세계의 각 국가마다 취하고 있는 ‘공화주의’가 제대로 자리잡게 될 경우, 첫째, 모든 국민의 주택 문제 해결, 둘째, 모든 국민의 교육의 수혜, 셋째, 모든 국민의 의료 혜택 등이 실현되는 데서 절정에 달할 것이지만, 이제까지의 역사 속에서 이런 국가는 아직 단 한 번도 출현한 적이 없습니다. 이러한 나라는 오직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함으로써만 가능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도래하기까지, 하나님의 백성들은 오로지 근면하고 성실한 삶을 살아감으로써 자신의 생명을 잘 유지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한 중에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은 ‘탐심’이나 ‘욕심’을 품어, 타인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자신을 영화롭게 해서는 결코 안 된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다음에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고 한 데서 명확합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영역에서 남의 것을 넘보는 태도를 가리킴이 자명합니다.  실로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 전체가 ‘사랑’과 ‘헌신’의 정신으로서 살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로서는 이와 반대되는 어떠한 탐욕이나 욕심도 갖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이 계명은 제8계명을 통해서 “도적질하지 말지니라!”라고 내용과도 연결되는 것으로서, 이웃의 것에 대한 탐심과 욕심은 결국 도적질이나 사기 및 기만으로 발전하고야 말 것입니다. 성도로서는 어떠한 것이 되었든지, 이웃의 손실을 초래할 만한 탐욕이나 생각을 품지 말아야 합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라고 한 말씀은 항상 우리의 귓전을 울려야 할 것입니다.

그와는 반대로 우리의 생각과 행동은 가급적 이웃의 행복과 유익에 연결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찌니라”(행 20:35)라고 했습니다. 탐심이나 탐욕을 이기는 좋은 방법 중의 하나는, 항상 이웃의 필요를 살피는 가운데 가급적 비록 지극히 작은 부분이라 할지라도 항상 그에게 도움이 되어 주려는 마음을 갖는 것이겠습니다. 실로 의지적인 행동이 없이, 탐심 그 자체에 머무는 경우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자체를 금하시는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러한 신앙이 자세는 다음 제80문답에서 이어집니다.

2020년 01월 18일(SATUR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78문답

사탄이 처음에 하와를 꼬드긴 수법이야 말로 거짓 증거에 대한 전형이라는 사실을 제9계명을 마무리 지으면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역사는 구속사의 현장인 교회 속에서 여전히 계속된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거짓 증거는 현상은 놀랍게도, 공적인 설교 시간에 목사에 의해서 공공연히 자행됩니다. 성경을 미처 잘못 해석한다거나 깊은 뜻을 몰라서 실수하는 경우가 아니라, 아예 노골적으로 왜곡되이 선포하기 때문입니다. 가령, 기복주의 설교의 경우 확실한 성경에 대한 거짓 증거입니다. 기타 어떤 경우들을 구체적으로 들 수 있겠습니까?

2020년 01월 17일(FRI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78문답

잠언 6:16-19을 읽어봅시다.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 곧 그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육, 칠 가지니 곧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과,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과,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과, 및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혀로서 짓는 죄가 여타의 죄들과 어울려 있는 것이 잘 보입니다. 계속해서 잠언 19:9에서는 "거짓 증인은 벌을 면치 못할 것이요 거짓말을 내는 자는 망할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거짓말하는 죄가 크고 무서운 것은 그것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고, 사람의 인격에 해를 끼친다는 데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2020년 01월 16일(THUR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78문답

예수님은 나다나엘을 보시면서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요 1:47)라고 하셨습니다. 간사한 것이 없으면 거짓말도 하지 않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타락한 심성은 본능적으로 타인을 깎아내리는가 하면, 근거 없는 거짓말까지도 일삼고, 심지어는 쾌락을 위해서 모함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이웃의 명예를 훼손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것은 결코 작은 죄라고 볼 수 없습니다. 시편 15:3은 여호와의 성산에 거할 자의 자격으로 "그 혀로 참소치 아니하고 그 벗에게 행악지 아니하며 그 이웃을 훼방치 아니하며"라고 했습니다. 계속해서 시편 34:13을 읽어봅시다. 혀와 입술을 각기 어떻게 금하라고 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