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11일 (TUE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21문답 묵상2018년

예수님의 인생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요? 말구유에서 태어나실 때부터입니까? 마리아에게 잉태된 때부터입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신지라 시작이 없는 분이십니다. 창세 전부터 하나님의 아들은 존재하셨습니다. 이를 예언하고 있는 미가 5장 2절의 예언을 읽어보십시오. 하나님의 다스릴 자에 대한 예언에서 그분의 근본은 언제부터라고 말합니까? 요한복음 1장 1-2절은 예수 그리스도를 '태초'부터 계시던 '말씀'이라고 선포하면서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고 했습니다. 혹여 어떤 불신자가 이 말씀의  의미를 물어온다면 어떻게 설명해주시겠습니까?

2018년 12월 10일 (MO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21문답 묵상2018년

구약시대에는 모든 사람들이 농부였으므로 토지 관리 문제는 아주 중요했습니다. 그런데 원인이 어떻든 간에 혹여 가난 때문에 부득블 땅을 팔았을 경우,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무를 수 있는 제도, 즉 다시 원래의 주인에게로 되돌려 주는 제도를 제정하셨습니다. 먼저, 가장 가까운 친족이 무르는 권리를 행사하여, 그렇게 되찾은 땅을 원래의 소유자에게 돌려줄 수 있었습니다. 만일 그렇지 못할 경우, 매 7년의 안식년이 7회가 지난 다음 해(50년째 해)인 희년에는 토지를 다시 원래의 소유주에게로 회복시켜야 했습니다. 이러한 무르는 자 및 무르기 제도는 장차 참되이 무르는 분(구속자)이신 메시야의 도래를 계시했습니다. 골로새서 1장 13-14절을 읽어보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다시 사셔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회복시켜 주신 참된 구속자, 즉 참되이 무르는 분이시라는 데 대해, 본 주제와 연결시켜 깨닫고 느끼는 바를 고백해 보십시다.

2018년 12월 9일 (SU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21문답 묵상2018년

[질문]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들의 구속자는 누구이십니까? [대답]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들의 구속자는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시 49:7-8; 요 14:6; 행 4:12; 딤전 2:5-6). 그분은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로서(시 2:7; 마 3:17; 17:5; 요 1:18) 사람이 되셨고(사 9:6; 마 1:23; 요 1:14; 갈 4:4), 한 위에 양성을 가지신 하나님이시고 사람이셨으며, 지금도, 그리고 영원토록 그러하십니다(행 1:11; 롬 9:5; 골 2:9; 히 7:24-25).

지금까지 소신앙고백문답을 통하여 직전에 주로 죄론을 다루었다면, 이제부터는 구원자 주제로 넘어갑니다. 제21문답에서는 개괄적인 선포를 하고, 다음 문답부터 구체적인 설명으로 들어갑니다. 먼저 “사람들의 구속자는 오직(다만)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선포했습니다. 실제로 성경이 선포하고 있는 구원론을 간단하게 제시해 본다면, “영생은 유일하신(only)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요 17:3)”이로되, 좀 더 간단하게는 “독생자를 믿는 것(only begotten Son, 요 3:16)”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유일한’, 또는 ‘오직’, ‘다만(only)”이라고 한 단어는 정말 중요합니다. 이것을 사도 바울은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행 4:12)라는 식으로 강조하였습니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들의 유일한 구속자이십니다. 하지만 왜 예수님만이 선택된 자의 유일한 구속자입니까?  이것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주권에 속하는 문제인데, 그럴지라도 하나님께서 가장 지혜롭고 당위의 방법으로써 그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로 세우셨다는 것을 유념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구속자 되심에 대해 이렇게저렇게 설명해 나갈지라도, 원칙적으로 하나님께서 이러한 방법을 제정하시고, 구현하셨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으니, 얼마나 논리적이고 실효적인가에 대해서도 경탄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으로 말미암아 실제가 된 이와 같은 하나님의 구원 방식에 대해 ‘하나님의 의’라고 선포했습니다(롬 3:21).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어느 하나 예외없이 의롭습니다.

신앙고백문답이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속자로 제시할 때에 먼저 선포하는 것은 예수님만이 지니신 이성 일인격의 특수성에 대해서입니다.  즉 “한 위에 양성을 지니신 분이십니다”라고 한 것입니다.  이 말은 오직 예수만이 영원한 신성과 참되신 인성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그러므로 우리의 구속자가 될 자격과 능력을 가지고 계시다 하는 의미이기도 한 것입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삼위일체 중의 한 위격이십니다. 즉,  그분의 존재와 지혜와 능력과 거룩과 의와 선하심과 진실하심이, 무한하시며 영원하시며 불변하십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라고 불려졌고(사 9:6; 요 20:28), 하나님의 속성을 지니신 분이셨고(요 1:1 2:24-25), 하나님의 전능하신 사역을 하실 수 있으셨고(요 5:21; 골 1:16), 하나님만이 받으시는 예배를 받으셨습니다(요 20:28; 계 5:12-14).

둘째,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인간이십니다. 완전한 하나님이신 분이 이제 때가 이르매 완전한 인성을 취하심으로 인간이 되신 것입니다. 이에 대해 사도 요한은 “말씀이 육신이 되셨고 우리 중에 거하셨다”(요 1:14)고 표현했습니다. 하지만 성자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심에 있어서, 그럴지라도 하나님이심을 중단함이 없이 인간이 되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은 달리 말해서, 하나님으로서의 신성은 변하지 않았고, 다른 것과 혼합되지도 않았고, 또한 혼동됨이 없이 그렇게 독립적으로 인성에 연합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양성 문제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그 두 본성의 하나 혹은 둘 모두가 변한 데 따른 필연적인 결과라고 생각하거나, 인간이 되심으로 성부와 성령과 동일한 본체가 삭감되었다고 생각하거나, 인성이 신성에 연합됨으로 우리 인간들과는 다른 위대한 존재로 높여졌다고 생각하는 것 등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신성도 인성도 아닌 이 둘의 중간 상태인 새로운 본성으로 혼합되었다고 생각하거나, 두 본성이 변화되지도 혼합되지도 않았으므로 각기 서로 다른 분리된 인격체로 존재한다고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이제 요약하자면,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칭호는 다음 사실을 가리킵니다.  첫째, ‘주’라는 표현은 사실상 구약의 여호와와 똑같습니다. 그것은 자존하시며 지존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라고 하신 위대한 선포와 분리되지 않습니다. 둘째, ‘예수’라는 말은 ‘여호수아라’라는 구약의 용어와 동일합니다. 물론 이 이름은 다른 많은 의미들도 가지고 있지만, 결국 우리 주님의 인성의 실재를 가리키는 데 핵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그리스도’라는 말은 ‘기름 부음 받은 자’를 가리키는데, 구약에서 줄기차게 예언된 ‘메시야’를 가리킵니다.

결론적으로 신앙고백문답은 이 세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통하여, 우리의 구원자는 유일하신 구속자로서의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주), 두 가지 구별된 본성을 가지신 하나님과 사람이시며(주와 예수), 영원토록 한 분(그리스도)이시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2018년 12월 8일 (SATUR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20문답 묵상2018년

로마서 8장 28-30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이 구절은 예정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미리 자신의 백성을 선택하셨다고 합니다. 미리 아신 자들을 예정하셨다고 하는데 이것은 앞일을 미리 내다보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들이 앞으로 어떤 일을 할 것인지 내다보고 한 결정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믿을 줄 미리 알고 선택하셨다는 뜻이 아니고, 선택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 부분을 "먼저 예정하셨기 때문에 미리 아신 자들을 (구원으로) 예정하셨다"고 이해하면 쉽습니다. 흔히 예정론과 운명론을 같은 것으로 착각하곤 합니다. 이 둘의 차이점으론 몇 가지를 들 수 있는데 정확하게 알고 있는 한 가지를 이야기해봅시다.

2018년 12월 7일 (FRI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20문답 묵상2018년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시는 사람으로 택하신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똑똑한 사람일까요? 행동하는 사람일까요? 하지만 단지 하나님께서 원하는 사람을 선택하셨습니다. 따라서 자기가 선택 받았다고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성경에는 야곱과 에서 쌍둥이 형제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님은 동생 야곱을 선택해 하나님을 알도록 해주시고 그 자손에게서 메시아가 나오도록 하셨습니다. 그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어머니 리브가에게 야곱을 택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 아무 일도 하기 전에 하나님이 선택하신 것입니다. 단지 그분의 뜻에 따라 그렇게 한 것입니다. 로마서 9장 10-17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이 사실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가장 먼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2018년 12월 6일 (THUR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20문답 묵상2018년

은혜 언약에서는 성신 하나님께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십니다. 인간은 죄 때문에 스스로는 복음을 이해할 수 없게 되었는데, 이 무능력을  해소시켜 주셔서 능히 그리고 제대로 깨닫게 해주시고, 그에 따라 죄를 미워하게 하시고,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온 마음으로 사랑하게 해주십니다. 즉 성자께서 성취해 주신 구원에 잇따르는 능력을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에게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적용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신님의 능력과 그것의 특성에 대해 얼마만큼이나 제대로 이해하고 있습니까! 에베소서 1장 13-14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다'는 말의 핵심적인 의미는 무엇이고, 그로부터 초래되는 다양한 결과들은 과연 무엇입니까?

2018년 12월 5일 (WEDNE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20문답 묵상2018년

창세 전에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선택하시면서 성자에게 그들을 맡겨 구원하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성자 하나님은 은혜 언약에서의 요구 조건을 채우심으로써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모든 유익을 인간에게 얻어 주셨습니다. 이 유익들 중의 최상은 단연 영원한 생명입니다. 이 영생을 얻게 해주시려고, 예수님은 우리를 위한 순종의 공로를 쌓으셨고, 우리를 위한 죄책을 담당하사 대신 죽으셨습니다(요 6:37-40) . 예수 그리스도의 이러한 인격과 사역을 믿고 의지하면, 그분께서 이루신 모든 공로는 우리의 것이 됩니다. 인간이 자초한 하나님의 분노와 심판이 예수님께 대신 물어졌고, 인간이 못 이룬 순종을 예수님이 대신 성취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1장 7-12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라는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2018년 12월 4일 (TUE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20문답 묵상2018년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과 은혜의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호리만큼의 자격도 없는 인간에게 놀라운 구원을 선물과 축복으로 베푸시는 것이 은혜 언약의 내용 입니다. 다음 문답을 기억하시나요? "하나님의 신격에는 몇 위가 계십니까?” “하나님의 신격에는 성부, 성자, 성신 세 위가 계십니다. 이 삼위는 한 하나님이며, 본질이 동일하시고 권능과 영광이 동등하십니다.” 세 위께서 상호 '구속 언약'을 맺으시고, 그에 따라 '은혜 언약'을 함께 진행, 유지, 완성하십니다. 성부 하나님은 인간을 자신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분노를 자초했지만 사랑하기로 정하신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에베소서 1장 3-6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그러면 구속의 언약과 은혜의 언약은 각기 무엇을 가리키는 용어들입니까?

2018년 12월 3일 (MO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20문답 묵상2018년

아담과 하와가 불순종으로 타락한 직후 하나님은 그들을 속인 사탄을 여자의 후손이 상하게 할 것이라는 내용의 구원과 위로의 약속을 주셨습니다. 타락의 결과로, 삶의 고통과 죽음이라는 심판을 내리셨지만, 다른 한편 하나님께서는 사랑에 근거한 구원 계획도 시작하셨습니다. 그에 따라 하나님의 백성은 오랜 동안 약속하신 분을 기다려왔습니다. 즉 메시야께서 오셔서 완벽하게 성취하실 예언을 붙잡은 것입니다. 예언의 핵심은 구원자께서 죄인들의 죄책을 대신 담당하시는 데 대한 것이고, 더불어 죄인들을 위해 완전한 순종의 삶을 살아 주시는 데 대한 것입니다. 이사야 53장 5-6절과 11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인생이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은 죽음의 문제까지 포함될 때만이 진짜이겠습니다. 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주신 분, 그래서 우리에게 진정한 삶을 주신 분을 위해 오늘 하루의 삶을 어떻게 사시겠습니까?

2018년 12월 2일 (SU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20문답 묵상2018년

[질문] 하나님께서 모든 인류를 죄와 비참한 처지에서 멸망하게 버려두셨습니까? [대답] 하나님께서는 영원부터 오직 그분의 선하신 뜻대로 어떤 사람들을 영생에 이르도록 선택하셨고(행 13:48; 엡 1:4-5; 살후 2:13-14; 딤후 1:9), 구속자로 말미암아 그들의 죄와 비참한 처지에서 건져 내어 구원의 지위에 이르게 하시려고 은혜 언약을 세우셨습니다(창 3:15; 17:7; 출 19:5-6; 렘 31:31-34; 마 20:28; 롬 3:20-22; 고전 11:25; 갈 3:21-22; 히 9:15).

웨스트민스터 소신앙고백문답 제20번부터는 죄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자비를 배우게 됩니다. 즉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푸실 자를 어떻게 미리 선택하시고, 그렇게 선택하신 자들을 어떻게 죄와 비참한 처지에서 구원의 상태로 옮기시는가를 보게 됩니다.  사실 하나님께 범죄한 인간의 입장에서 유일한 소망은 하나님의 자비뿐이겠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자비는 선택을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고, 반드시 선택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이 사실을 선포하고 있는 성경 구절은 많지만 우선 눈에 띄는 것으로 “하나님은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고 … 자기의 아들이 되게 하셨다”(엡 1:4-5)라고 한 말씀이 있습니다.

그런데 선택 교리가 성립되는 원천에 대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라고 한 부분은 주목을 요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고 싶어서 하신 일입니다. 이 이유 외에 다른 것을 찾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항상 선 중의 선이고 지혜 중의 지혜이고 능력 중의 능력입니다. 선택 교리와 관련해서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하시느냐고 궁금해 하는 것은 사실상 하나님께서 왜 이 세상을 창조하셨는가 하고 궁금해 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고 싶어하셨으므로 ‘선’이고, 그렇게 하셨으므로 ‘선’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뜻이 ‘선하다’라고 할 때에, 이것은 단순히 하나님의 주권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주권의 내용도 가리킨다는 사실은 결코 간과되어서는 안됩니다. 여기서 내용이란 당연히 ‘구원’을 가리킵니다.  이렇게 해서 선택 사상(주권)은 항상 구원 사상(내용)과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실 어느 신학자가 말했듯이, 현재와도 같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비를 빼면 바로 그 자체가 지옥이랄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세상이 그나마 적극적인 죄악에서 건져지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능력으로써 이 세상을 권능의 왕국으로 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즉 권능의 왕국(세상)으로 하여금 은혜의 왕국(교회)을 돕도록 섭리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자비가 없다면 이 세상은 한 순간에 겆잡을 수 없는 아수라장으로 변하고 말 것입니다. 이름하여 양육강식의 법칙만이 지배하는 정글의 모습과 다를 바 없겠습니다. 참으로 주권적 권능이 무한한 자비로써 역사되고 있는 ‘하나님의 선’의 이와 같은 특성 때문에 죄악의 무한한 정복욕과 전염성은 통제를 받아 세상이 그나마 지금과도 같은 나름의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공상이나 감상과도 같은 뜬구름인 것이 아니라 아담 안에서 영원한 지옥 형벌에 처해 있는 비참한 인간들을 180도로 뒤바꾸어 놓는 놀랍고 위대한 능력입니다. 소신앙고백문답은 이러한 하나님의 선의 첫 자욱이 바로 선택 교리에서부터 풍성하게 나타났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선하신 뜻대’로 주관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렇게 주관하신 결과는 항상 선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하나님의 주권의 선하심을 고려하지 못하기 때문에 선택 교리를 생각할 때에 “왜 하나님은 어떤 자는 버려두고 어떤 자만 택하셨는가?” 하는 무익한 질문을 되풀이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보기에 이러한 하나님의 주권이 아주 불공평한 듯합니다. 동시에 조건 없는 선택 교리는 사람을 태만하게 만드는 것인양 생각합니다. 가령, “만약 하나님이 나를 구원을 얻도록 선택하셨다면 나는 무엇을 행하든지 구원은 받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본래 성경이 가르치는 선택 사상을 순전히 인간 차원에서만 생각하는 데 따른 것입니다. 선택 교리를 가르치는 성경은 다른 곳에서는 또한 사람들이 자동적으로 구원받는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이는 선택은 항상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사상과 분리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신앙고백문답이 선택 교리와 연결시켜 ‘은혜 언약을 세우셨다’고 한 말씀의 의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생명 언약 안에서 아담을 통해서 인간을 대하셨던 것 같이, 지금은 은혜 언약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택자들을 대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구원 받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대가로 지불한 데 따른 것입니다.

무조건적 선택의 교리는 실로 위대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 거의 신비라고 보아야 합니다. 인간으로서는 선택 교리를 충분히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성경이 선포하는 사실이 허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너댓살짜리 아이가 인간이 어떻게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나는게 되는가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실제로 그러한 태어남이 허사가 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우리가 이 교리의 확실성을 받아들이게 될 때에 일어날 수밖에 없는 반응이 있는데, 곧 신뢰심입니다. 자신에게는 하등의 자랑할 것이 없다는 고백과 더불어 단지 베드로처럼 말하고 행동하기만 하게 될 것입니다.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치 아니하리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벧후 1: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