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23일 (SATUR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9주차 (26문답) 묵상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에 대해 늘 알고 계심을 우리가 신뢰할 수 있는 것은 그분의 지혜가 끝이 없으시기에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라면 그 어떤 것이라도 다 공급해주실 수 있음을 우리가 믿는 것도 그분의 전능하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과 더불어 우리가 또한 아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아주심에 있어 당신의 모든 능력과 지혜를 동원하시되 그것은 그분께서 우리의 사랑하는 아버지 되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늘 좋은 것만 해주고자 하시는 것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일이기도 한 것입니다.
구약시대 때 바벨론의 포로생활 중에 있던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고통을 모르시는 게 분명하다며 불평하였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그들에게 상기시키기를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시며 또한 전능하신 분이시기에 분명히 그들을 도우실 것이라 하였습니다. 이사야 40장 27절로 29절을 읽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버리셨다며 불평하던 이스라엘에게 이사야 선지지는 대답하기를 어미가 자식을 잊을 수는 있어도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잊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49장 14절로 16절을 읽어보십시오. 만일 우리가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면 우리는 그분께서 시종일관 우리를 완벽하게 보살피심에 대하여 온전히 신뢰할 수 있어야 합니다.

2017년 9월 22일 (FRI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9주차 (26문답) 묵상

자식에게 늘 좋은 것만 해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과는 달리 상황이 따라주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어쩌면 부모가 매우 가난한 나라에 살고 있어서 자녀들에게 영양 많고 신선한 음식을 먹이고 싶어도 그럴 돈이 없을 수가 있습니다. 자식의 아픔을 원하는 부모는 단 하나도 없으려니와 할 수만 있다면 세상의 모든 나쁜 것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해주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매 순간 그들 곁을 지킬 수만은 없는 일입니다. 때로는 부모의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사고 등이 일어나 자녀들이 다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좋은 부모는 자녀들이 스스로 자신을 지키고 미래에 대한 준비를 할 수 있게끔 가르치지만 그렇다고 부모가 모든 것을 관제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모든 것이 늘 부모가 원하는 대로만 되지는 않습니다.
우리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는 세상 모든 지혜와 능력의 소유자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몸과 영혼의 잘됨을 위하여 무엇이 필요한지를 늘 정확히 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의 주인되시며 또한 그 모든 것을 지배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든 일체 공급하실 수가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진정으로 해가 되는 나쁜 일들은 막으실 수 있습니다. 또한 그분께서는 한 차원 더 나은 결과를 위하여 우리에게 일어나는 나쁜 일을 역으로 이용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궁극적인 이익을 위하여 이용하실 나쁜 일과 진정으로 해가 되는 나쁜 일을 분간하시기에 충분히 지혜로우십니다.
하나님께서 세상 모든 지혜를 가지신 까닭에 우리는 그분께서 우리의 모든 필요에 대해 아시는 것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전능하시므로 우리의 필요가 무엇이든 다 제공할 수 있으심을 우리는 압니다. 로마서 8장 28절, 31절로 32절, 37절로 39절을 읽어보십시오.

2017년 9월 21일 (THURS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9주차 (26문답) 묵상

자신을 사랑하는 현명한 아버지를 뒀다고 생각하는 아이는 아버지께 벌을 받을 때 조차도 아버지를 신뢰합니다. 그렇다고 그 아이가 벌받기를 좋아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벌을 받으면서 울지도 않고 징계의 모든 과정을 묵묵히 다 수행한다는 뜻도 아닙니다. 하지만 아이는 아버지가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훈계한다는 것만큼은 압니다. 그 아이는 아버지가 자신에게 좋은 것만 해준다는 사실을 온전히 신뢰합니다. 이런 것에 대해 어느 정도 생각을 할 줄 알만한 나이가 된 아이라면 자식을 훈계하지 않는 부모 두는 것은 본인도 원치 않을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런 훈계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은 부모가 자식의 안전에 대한 염려도 없고 바르고 성숙한 어른으로 자라도록 훈련시키는 일에도 별 관심이 없다는 뜻이라는 것을 아이도 잘 알 테니까요. 부모의 충분한 관심과 훈련을 받지 못한 아이는 아무리 어려도 이미 일종의 불안감을 나타내기 마련입니다.
우리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어려운 일들과 고난을 허락하십니다. 우리가 성장하는 것을 돕기 위해 그리 하십니다. 그러한 것들이 종국에는 우리에게 득이 될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역경이 어찌 우리에게 득이 된다는 것인지 우리는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우리가 원하는 것은 더더욱 아닐지도 모르죠. 하지만 적어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는 사실만큼은 신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작정하심이 없다면 그 어떤 일이라도 우리에게 일어날 수 없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만일 그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라면 분명 우리에게 필요한 것임을 우리는 또한 압니다. 하나님께서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겠다고 당신의 자녀들에게 약속하신바 있습니다. 히브리서 12장 5절로 11절을 읽어보십시오.

2017년 9월 20일 (WEDNES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9주차 (26문답) 묵상

아버지께서는 음식과 의복 그리고 쉼터와 같은 우리의 육체적 필요뿐 아니라 우리 영혼의 필요 역시도 채워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감사한 것은, 죽어서 천국에 가기 전까지는 늘 우리 안에 잔존해 있을 죄성 때문입니다. 사탄은 우리 주님을 싫어하므로 그분께 속한 우리 역시 여전히 싫어하며, 그래서 끊임없이 우리를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게 하려는 그의 유혹으로부터 우리는 평생 자유롭지 못한 것 입니다.
그러한 중에 우리 아버지께서 당신의 모든 지혜와 능력으로 우리를 붙들고 계시겠다고 하신 약속을 우리가 아는 것은 얼마나 큰 위안인지 모릅니다. 앞으로 그분께서는 절대 우리가 당신을 외면해버리도록 놔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성령을 보내시어 당신께 대한 우리의 순종이 가능하도록 도우십니다. 누가복음 11장 11절로 13절을 읽어보십시오. 우리가 하나님께 복종하는데 실패할 때면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징계도 하시지만 또한 용서도 해주십니다. 시편 103편 12절로 14절을 읽어보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을 외면함으로 영영 버림받는 일은 결코 없을 것임을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 보장하십니다. 요한복음 10장 27절로 29절을 읽어보십시오.

2017년 9월 19일 (TUES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9주차 (26문답) 묵상

자기 아버지를 향한 어린 아이들의 믿음을 떠올려 보십시오. 배가 고픈 어린 아이는 음식을 내어주는 아버지 앞에서 그 음식이 혹여 상한 것은 아닌지 따위를 의심하지 않습니다. 아이는 그 음식이 몸에 나쁜 것은 아닐지 혹 그것을 먹어서 탈이 나진 않을까 걱정하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자신에게 좋은 것만 준다는 것을 아이는 전적으로 신뢰합니다. 아들과 밖에 나갔다가 아들이 피곤해지면 아버지는 업고라도 아이를 데리고 다닐 것입니다. 그 때에도 아이는 혹시라도 아버지가 자기를 떨어뜨릴 것 같아 두려워 공포에 질린다거나 아버지를 필요 이상으로 꽉 붙잡고 놓지 않는다거나 하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자기를 어디로 데려가는지에 대한 염려를 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아버지가 데려가는 곳이 어디든 전적으로 믿고 의지한 채 자신을 맡깁니다.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을 신뢰해도 되는 것은 예수님께서 보장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아버지이신 까닭에 우리가 구하기도 전에 먼저 우리의 필요를 아십니다. 우리는 그런 아버지께서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고 선한 것으로 응답하실 것을 알기에 그분께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6장 25절로 33절을 읽어보십시오.

2017년 9월 18일 (MON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9주차 (26문답) 묵상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하여 보여주신 당신에 관한 모든 것을 내가 믿되 진실로 믿는다면, 예수님으로 인하여 하나님은 이제 나의 아버지가 되셨으며 나는 그런 하나님을 철저히 신뢰할 것입니다. 나는 그분 믿기를 어린 아이가 자신을 사랑하는 좋은 아버지를 믿듯이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행하신 일들로 인하여 이제 나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단순한 창조주나 또는 다른 사람들의 아버지만 되시는 것이 아니라, 그분은 나의 아버지이시며 나는 그분을 신뢰할 수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16장 27절과 로마서 8장 14절로 16절을 읽어보십시오.

2017년 9월 17일 (SUN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9주차 (26문답) 묵상

제26문답: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 사역 (WSC 9, 8)

[문답] "우리는 전능하신 성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사오며”라고 고백할 때 우리는 무엇을 믿습니까? [대답]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하신 아버지께서 아무것도 없는 중에서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창 1:1; 2:3; 출 20:11; 욥 38:4-11; 시 33:6; 사 40:26; 44:24; 행 4:24; 14:15), 또한 그의 영원한 작정과 섭리로써 이 모든 것을 여전히 보존하고 다스리심을 믿으며(시 104:2-5, 27:30; 시 115:3; 마 10:29-30; 롬 11:36; 엡 1:11), 이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그리스도 때문에 우리의 하나님과 우리의 아버지가 되심을 우리는 믿습니다(요 1:12; 20:17; 롬 8:15; 갈 4:4-7; 엡 1:5). 그분을 전적으로 신뢰하기에 그가 우리의 몸과 영혼에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 주시며(시 55:22; 마 6:25-26; 눅 12:22-24), 이 눈물 골짜기 같은 세상에서 당하게 하시는 어떠한 악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실 것을 우리는 조금도 의심치 않습니다(시 84:5-6; 롬 8:28).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에 그리 하실 수 있고(창 17:1; 18:14; 롬 8:37-39; 10:12; 계 1:8), 신실하신 아버지이시기에 그리하기를 원하십니다(마 63:32-33; 7:9-11).

2017년 9월 16일 (SATUR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8주차 (24~25문답) 묵상

하나님에 대하여 아는 것, 또 하나님께서 아버지이신 것을 아는 것만도 놀라운 일이긴 하지만, 그런 하나님께서 우리의 하나님이고 우리의 아버지가 되실 수 없다면, 그 자체만으로는 우리에게 아무 의미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로 인해 가능합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인 우리와 똑같은 인생을 살아내셨고 또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던 사실에 근거하여,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그렇게 믿는 자들을 당신의 자녀로 받아주십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큰일을 행하신 예수님을 통하여, 예수님의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고, 예수님의 아버지는 우리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예수님 자신께서도 주기도문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음을 가르쳐주셨습니다. 마태복음 6장 7절로 9절과 요한복음 20장 17절을 읽어보십시오.

2017년 9월 15일 (FRI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8주차 (24~25문답) 묵상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말할 때는 몇 가지의 다른 의미가 있을 수 있습니다. 우선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세상 만물의 아버지가 되시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은 우리를 포함한 세상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8장 6절과 이사야서 64장 8절을 읽어보십시오.
둘째로, 독특한 방식이며 유일무이한 사례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예수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십니다. 그 어떤 부자 관계에서이든 아들이 있기 전에 아버지가 먼저 존재하시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경우는 그렇지 않죠. 성부와 성자는 두 분 다 영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하며 ‘아버지’와 ‘아들’을 거론할 때에는 부자간의 관계성에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한 분이 다른 한 분보다 먼저 되거나 나중 되심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17장 1절로 5절을 읽어보십시오.
세 번째로 크리스천들은, 가히 믿을 수 없을 만큼 크신 은혜 안에서 자신들을 당신의 자녀로 받아주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인함입니다. 당신을 향한 온갖 우리의 반역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 또한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너무도 크셔서 우리를 친히 자녀로 삼아주셨고 마침내 진정한 우리의 아버지가 되어주셨습니다. 갈라디아서 4장 4절로 7절을 읽어보십시오.

2017년 9월 14일 (THURS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8주차 (24~25문답) 묵상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창조물 일체를 보존하실 뿐 아니라 지배하기도 하십니다. 사전은 하나님을 가리켜 ‘절대자’라고 정의합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하나님이실 수 있으려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것보다도 당신께서 더 크고 더 높으셔야만 합니다. 혹시라도 하나님의 통치밖에 있는 것이 하나라도 있다면 바로 그것이 하나님보다 더 크고 높은 존재가 되는 것이고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도 더 이상 절대자는 되시지 못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결단코 없습니다. 시편 103편 19절을 읽어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창조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단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알고 계시며 그 모든 것들이 한데 합하여 당신의 목적하신 바를 이뤄내도록 경영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까닭에 우리도 하나님처럼 계획이란 것을 세웁니다. 흔히 사람의 계획은 여러 가지 이유로 차질이 빚어지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그렇지 않고, 그럴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목적하시는 것들은 그게 무엇이든 그 어떤 훼방도 받지 않으며 본래의 계획대로 완성되고야 맙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는 충분히 그것을 가능케 하고도 남습니다. 시편 33편 10절로 11절을 읽어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