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21일(MO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66문답

십계명에서 제5계명은 '약속이 부가된 계명'이라는 데서 앞의 네 계명과는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앞의 네 가지 계명의 경우에는 굳이 약속이 첨가될 필요가 없는 것은 계명 자체의 절대성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을 경외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섬겨야 하는 것은 절대적 당위입니다. 물론 자식이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당위이지 조건은 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를 공경하는 자에게 '장수'와 '번영'의 축복을 베푸시겠다고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것은 부패한 인간에게서 나오기 쉬운 부모 경시죄를 고려하여 선을 장려하시려는 때문입니다. 오늘 공휴일을 부모님께 대한 효도의 날로 지내보면 어떻겠습니까?

2019년 10월 20일(SU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66문답

[질문] 제5계명을 지킬 이유로 이어서 말씀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대답] 제5계명을 지킬 이유로 이어서 말씀하신 것은 이 계명을 지키는 모든 사람이 장수하고 번영하리라는 약속입니다. 다만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그들에게 선이 되는 한 그렇습니다(출 20:12; 신 5:16; 엡 6:2-3).

두 번째 돌판을 시작하는 제5계명은, 첫 번째 돌판의 두 번째 계명의 경우처럼, 계명을 잘 지키는 자들에게 축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출애굽기 본문을 보면 “네 부모를 공경하라”라고 한 다음 즉각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라고 했습니다(출 20:12).  이는 첫 번째 돌판의 두 번째 계명에서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라고 한 다음 즉각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 20:4-7)라고 한 구도와 같습니다.

지난 번에도 언급했듯이, 십계명은 두 돌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 번째 돌판에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조항들이 실려 있고, 두 번째 돌판에는 사람과의 관계에 관한 조항들이 실려 있습니다. 물론 문장 형태는 대체적으로 ‘부정명령’ 형식이지만, 첫째 돌판에서의 마지막 조항을 형성하는 네 번째 계명(안식일 준수)과 둘째 돌판의 첫 번째 조항을 형성하는 다섯 번째 계명(부모 공경)은 각기 ‘긍정명령’ 형식을 취함으로써 두 돌판의 분리될 수 없는 ‘상호 연결성’ 또는 ‘하나님 공경’과 사람에 대한 ‘공정성 유지’의 ‘상관관계’를 보여주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십계명은 비록 두 돌판에 나뉘어져 있지만, 사실은 ’신앙의 정도’라고 하는 중심 사상을 형성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십계명 두 돌판의 구조 및 관계를 다시 한 번 상세히 살펴본 이유는,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반드시 기억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먼저 첫째 원리인데, 이는 ‘부정명령’을 대할 때 사실은 ‘긍정명령’, 즉 ‘부작위의 죄’ 문제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하고, 따라서 ‘긍정명령’을 대할 때에는 역시 ’부정명령’, 즉 ‘작위의 죄’ 문제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하는 원리입니다.  사안의 중요한 성격상 제42주차를 해설할 때 설명한 내용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가령, 어떤 무엇인가가 금지될 경우, 이는 동시에 이것과 상반된 의무가 명령되는 것이며, 동시에 이와 비슷한 모든 종류의 죄도 금지된다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모든 외적인 행위뿐만 아니라, 모든 모든 죄를 향한 내적인 애정까지도 금지되는 것이다.  또한 안식일 준수 명령과 부모 공경 명령의 경우처럼, 무슨 의무이든지 명령되게 되면 그와 상반된 것은 더불어 금지되는 것이고, 역시 비슷한 모든 종류의 의무들, 즉 거기로 향하는 모든 합당한 애정들과 함께, 거기에 이르는 데 도움을 주고 촉진시키고 조장시키는 수단들의 사용,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순종하도록 도움을 주고 고무시켜 주기 위한 우리의 모든 노력과 의무들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원리는, 하나님께 대한 신앙은 그 자체의 순수성과 더불어 일상 대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의 ‘공정성’의 유지 문제, 특별히 윗사람인 부모님께 대해 자식으로서 마땅한 도리를 행하는 것과 결코 분리되지 않는다고 하는 원리에 대한 것입니다. 첫 번째 돌판에 대한 신실성은 네 번째 계명(안식일 준수)이 시금석 노릇을 하듯이, 두 번째 돌판에 대한 신실성은 다섯 번째 계명(부모 공경)이 시금석 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하나님께서 레위기의 말씀을 베푸실 때에 이 둘 간의 관계를 하나로 보시면서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레 19:3)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이상 살펴본 두 가지 원리를 염두에 둔다면, 이제 네 번째 계명과 다섯 번째 계명에 각기 붙어 있는 약속의 말씀은, 실상은 그 두 계명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는 십계명의 모든 조항에도 마찬가지로 첨부된 약속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하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나타난 모든 하나님의 계명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취해주신 구속사역의 모든 공효를 덧입게 되었음에 따라, 신약시대의 성도들에게는 더 강력한 실천력이 요구됩니다. 물론 냉혹한 의무조항으로서가 아니라, 자신에 이루어져 있는 ‘새 생명’의 가치를 한껏 발휘하고 즐기는 차원에서입니다. 잊지 마십시다. 우리가 이 땅에서 받은 구원이란, 궁극적으로는 영원한 부활 생명이 확보되었다는 의미로되, 이 부활 생명의 실상과 가치는 성도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평생에 걸쳐 실제로 경험되는 효험으로서 확증되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도는 기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으로서 사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단계에서 좀 더 나아가야 하는 것은, 성도가 발휘하는 ‘부활 생명’의 진상을 자기 한 사람 개인의 인격이 도덕적으로 보다 고상해지는 그런 차원을 뛰어 넘어,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에 연합되어 있는 앞뒤좌우의 형제자매들과 매우 친밀하게 상합하고 연락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품위를 세상 앞에 넉넉히 구현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장수의 복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2019년 10월 19일(SATUR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65문답

우리가 이 한 주간에 제5계명의 정신을 잘 받드는 삶을 살았다면, 그러한 실력을 토대로 하나님께는 더더욱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최고로 높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감히 견줄 수 없는 지극히 높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러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영의 부모가 되어주셨으니, 우리로서는 참으로 더 참된 공경과 친근함으로 섬길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의 섬김을 맘껏 올려드릴 수 있는 주일의 예배가 내일 목전에 닥쳐 있습니다. 이를 위하여 오늘 특별히 무엇을 준비하시겠습니까?

2019년 10월 18일(FRI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65문답

제5계명은 성도들 상호 간에 명예를 존중하지 않고 합당히 행해야 할 의무를 게을리 하는 데 대해서도 죄로 규정하였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0:24에서 성도란 자기의 유익보다 남의 유익을 구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혹여 미움이나 원한, 시샘이나 질투, 악담이나 모함 기타 등등으로써 상대방의 인격이나 존경을 해치는 경우가 있다면 이는 명백히 제5계명을 범하는 것이겠습니다. 에베소서 4:31-32을 읽어 봅시다. 여기에 몇 가지 악덕이 금지되었습니까? 반대로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어느 수준이나 정도까지 그래야 한다고 합니까?

2019년 10월 17일(THURSE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65문답

신명기 27:16에는 "그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라고 한 말씀이 나옵니다. 또한 잠언 30:17에서는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이 타락한 현상들 중에서 '부모 공경 사상이 허물어진 것'은 기타 여러 타락을 막고 있던 댐이 터져버린 것과도 같습니다. 이 죄는 영혼의 부모이신 하나님께 대한 죄를 수반합니다. 왜냐하면 눈 앞에 보이는 부모에 대해서 그러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상대로는 더더욱 그러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잠언 23:22을 읽어봅시다.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2019년 10월 16일(WEDNE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65문답

소신앙고백문답 제5계명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한 내용인데, 이 계명이 '금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제시하면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관련 성구로 제시했습니다.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목자들을 쳐서 예언하라 그들 곧 목자들에게 예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자기만 먹이는 이스라엘 목자들은 화 있을찐저 목자들이 양의 무리를 먹이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냐 너희가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양의 무리는 먹이지 아니하는도다"(겔 34:2-4). 이것은 '각 사람에 대한 의무 수행'과 관련되는데 특별히 목사들이 성도들의 '명예를 존중하지 않는 죄'와 '그들에 대한 의무를 수행하지 않는 죄'를 지적한 것입니다. 반대로 성도 편에서는 목사에게 어떤 형태로 이 계명이 범해질  있겠습니까?

2019년 10월 15일(TUE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65문답

빈부귀천이 어떠하든지 간에 상대방을 존중하여야 하는 것은 인간이라면 공통적으로 지고 있는 의무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란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입장에서 이웃이란 자신과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해당됩니다. 따라서 타인의 명예를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확고한 도덕성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도덕성이란 하나님께서 인류 공통에게 심어주신 자연법, 곧 양심에 기초한 행동강령이지 않겠습니까? 마태복음 25:31-46을 읽어봅시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사랑을 베풀 때에, 이것을 자신에 대한 경배로 여기겠다고 하신 우리 주님의 말씀은 지금 우리에게 어느 정도의 권위를 행사하고 있습니까?

2019년 10월 14일(MO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65문답

금주에는 제5계명이 '금하는 것들에 대한 주제'입니다. 인간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언필칭 상하 관계를 이루게 됩니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 못지 않게 윗 사람과 아랫 사람 간의 관계를 형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왕에 설정된 관계를 인정하여 윗 사람을 그에 걸맞게 대우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인 것입니다. 윗 사람으로서는 아랫 사람에게 사랑과 자비를 베풀어야 함이 마땅하듯이, 아랫 사람 역시 윗 사람을 의당히 공경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타락한 인간으로서는 윗 사람을 지나치게 존종하여 아부하는가 하면, 반대로 아예 깎아 내려 멸시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강조하려는 것은 적절한 중용의 처신에 대해서가 아니라 상하 관계의 질서를 제정하신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존중에 대한 것입니다. 이 문제를 좀 더 깊이 숙고해 보십시다.

2019년 10월 13일(SU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65문답

[질문] 제5계명이 금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대답] 제5계명이 금하는 것은 각각의 여러 지위와 인륜 관계에서 각 사람의 명예를 존중하지 않고, 각 사람에 대한 의무 수행하기를 소홀히 하거나 거스르는 것입니다(겔 34:2-4; 마 15:4-6; 롬 13:8).

소신앙고백 제65문답은 십계명의 다섯 번째 계명에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라고 한 주제에 계속 머무는데, 공경의 대상을 육신의 부모로 한정시키지 않고, ‘나 자신보다 윗사람’ 모두에게 적용시킨 제64문답의 기조를 계속 이어갑니다. 제64문답에서는 긍정적인 측면에 집중한 반면, 여기 제65문답에서는 부정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춥니다. 누가 자신의 윗사람인가를 규정 짓는 것은 각 사람의 형편에 따라 다양하겠지만, 여하튼 누구에게나 윗사람은 있기 마련입니다.

첫째, 혈통 관계에서의 윗사람은 주로 부모일 것입니다. 사실 부모 공경 사상은 서양보다는 동양의 문화권에서 보다 엄격히 강조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공자는 부모가 죽으면 3년 동안 그의 묘지 곁에서 애곡의 날을 보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요즈음 이렇게 한다면 영락없이 정신병자 취급을 당하겠지만, 옛적에는 그렇게 가르치고 받아들이는 것이 당연시 되었을 정도로 상식이었습니다. 공자의 가르침에서 유명한 부분이 바로 삼강(三綱)입니다. 첫째, 군위신강(君爲臣綱)으로, 이는  신하는 임금을 섬기는 것이 근본이라는 것이고, 둘째, 부위자강(父爲子綱)으로, 이는 아들은 아버지를 섬기는 것이 근본이라는 것이고, 셋째, 부위부강(夫爲婦綱)으로, 이는 아내는 남편을 섬기는 것이 근본이라는 것입니다. 훗날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사회를 만드는 주된 폐해로 이와 같은 유교의 삼강 정신은 집중적인 비판을 받았습니다. 십계명의 선언과 함축된 의미에 의하면, 성도로서 부모의 명예를 존중하지 않는 것은 명백히 죄로 규정됩니다. 실로 부모에게 마땅히 드려야 할 존경을 드리지 않는다거나, 말과 행위로써 부모를 멸시하는 행위는 명백히 불모를 업신여겨 불명예스럽게 하는 죄입니다.  모세는 “그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신 27:16)라고 했습니다. 이는 훗날 잠언에서 “두렵건대 마지막에 이르러 네 몸, 네 육체가 쇠패할 때에 네가 한탄하여 말하기를 내가 어찌하여 훈계를 싫어하며 내 마음이 꾸지람을 가벼이 여기고 내 선생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며 나를 가르치는 이에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였던고”(잠 5:11-13)라고 한 내용으로 의미가 확대되었습니다.

둘째, 사회 속에서의 윗사람은 자신의 상사일 것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제5계명을 확대하여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여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하는 자나 주에게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니라”(엡 6:5-8)라고 하였습니다. 종 또는 직원이나 부하의 위치에 있으면서, “합당하고 온당한 명령에 불순종한다거나, 마지못해 억지로 순종한다거나, 주인이 없다고 해서 게으름을 피우는 등등의 행위는, 그렇게 하지 말 것을 명령하는 분이신 하나님께 대해 짓는 명백한 죄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참조. 골 3:22-23). 자기보다 높은 상전을 불명예스럽게 하는 행동이나 대화를 하지 말아야 함이 마땅하므로, 혹시라도 윗사람에게 욕설을 퍼붓거나 비난의 말을 일삼거나 무례하게 행동한다거나 건방진 태도로서 대하는 것은 금물입니다.

셋째, 성도로서 국가 위정자들을 거스르는 경우도 죄가 됩니다. 나아가 그들을 타도하고 멸망시키기 위해 모반을 도모하거나 반역을 꾀하는 경우는 더더욱 말할 것이 없습니다. 비록 국가 권력이 인권을 유린한다거나, 심지어 심각한 독재자가 되어 백성을 압박한다 할지라도, 성도는 그러한 것을 이유로 반항한다거나 나아가 퇴진 운동을 벌이는 행위를 조심해야 합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의사표현을 할 수는 있겠지만, 폭력을 사용하는 집회라면, 주도하거나 참석해서 안 될 것임은 자명합니다. 또한 당연히 바쳐야 할 세금을 탈세하는 경우도 위정자들을 거스르는 죄가 됩니다. 극심한 독재자에게서 압박을 받는 경우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에 대한 징계를 그런 식으로 베푸시는 것이라고 보아, 어떻나 항거 행위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넷째, 교회 사역자에 대한 성도의 죄 문제도 이 범주에서 다룰 수 있습니다. 이는 사역자가 성도보다 윗사람이라는 차원에서가 아니고, 자신의 영혼을 돌보도록 하나님께서 지명하여 세우신 목자라는 차원에서입니다. 목회자에 대해 뒤에서 수군거리거나 비방하면서 험담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눅 10:16)라고 하셨습니다. 교역자들의 가르침을 잘 듣지 않는다거나, 부주의한 마음으로 조심성 없이 듣는 것도 마찬가지로 주님의 마음에 슬픔을 안겨드리는 것입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히 13:17)라고 한 말씀은 가슴 깊이 새겨두어야 합니다.

2019년 10월 12일(SATUR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64문답

금주에 집중적으로 보았듯이 제5계명은 육신의 부모께 대한 공경과 순종의 범위를 확대시켜 사회의 부모들이랄 수 있는 윗 사람들에게까지 적용됩니다. 그리고 로마서 13장에서 보듯이 최종적으로 국가의 통치자들에게까지 확장됩니다. 에베소서 5장과 6장에서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령하되, 부부 관계, 노사 관계 등과 하나의 테두리로 연결시킨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핵심에 교회를 놓았습니다. 에베소서 5:32을 읽어봅시다. 결론적으로 성도는 자신의 윗 사람이랄 수 있는 합당한 권위자들에게까지도 온전히 순종하고 공경해야 합니다. 교수나 목사 등의 가르치는 선생들에게도 마찬가지이고, 직장에서의 상관이나 이웃의 어른과 정부 공직자들에 대해서도 그러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데서 교회의 교회다움이 더더욱 드높아진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