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16일 (TUE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13문답 묵상2018년

하나님은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으면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원칙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한 말씀 한 말씀이 진리요 법입니다. 이때 사탄이 나타나 선악과를 먹어도 결코 죽지 않을 것이고, 도리어 하나님처럼 될 것이라면서 아담을 꼬드겼습니다. 꼬드기는 대화가 계속됨에 따라 결국 혹 하는 마음이 아담에게 들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탄의 말을 더 신뢰하게 되었고 그리하여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바로 그 사탄이 이번에는 둘째 아담으로 나타나신 예수님을 유혹하며 덤벼들었습니다. 하지만, 아담과는 달리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의지하셨고 결국에는 사탄을 물리쳤습니다. 마태복음 4장 4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이 놀라운 말씀의 배경은 하나님께서 광야 이스라엘 백성을 40년 동안 살리신 데 근거한 것입니다(신 8:3). 이 둘의 신앙의 공통성을 논의해 봅시다.

2018년 10월 15일 (MO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13문답 묵상2018년

세상이 처음 창조될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는 인간뿐이었다니 얼마나 큰 영광입니까! 지금 인간은 이를 너무 당연한 듯이 여기고 있지만, 사실은 굉장한 영광을 얻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오직 사람만이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만이 생각하고, 기억하고 앞 일을 계획할 수 있었습니다. 본능으로 살아가는 다른 피조물들과 달리 선택할 능력도 주셨습니다. 그런 특권을 누리는 만큼 책임도 뒤따랐습니다. 자신의 자유로은 선택을 통하여 하나님께 순종하기로 결정할 수도 있었다는 것은 결코 가벼운 선물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신명기 10장 12-13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왜 그러한 요구를 하십니까?

2018년 10월 14일 (SU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13문답 묵상2018년

[질문[: 우리의 시조는 창조받은 지위에 그대로 있었습니까? [대답]: 우리의 시조는 의지의 자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범죄함으로써 창조받은 지위에서 타락하였습니다(창 3:6-8, 13; 고후 11:3).

시조(始祖)란 한 겨레나 가계의 맨 처음이 되는 조상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당연히 아담은 우리네 인류의 시조입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인류를 창조하실 때에 오직 아담과 하와만을 만드셨고, 그들을 통하여 인류가 생육적으로 번성케 될 것을 계획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에게서 최초의 자녀들이 태어나고, 그렇게 태어난 자녀들 간에 혼인하여 다시금 자녀들을 낳아가는 식으로 이 세상에 인류가 충만케 하려 하신 것입니다. 지금의 시점에서 그러한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해설(?)을 시도하는 것은 분명 옳지 않을 것입니다.  당시의 하나님의 계획은 가장 지혜롭고 최선의 것이었음이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아담의 위치는 결코 자기 개인만으로 독립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후대에 태어나는 모든 인류를 대표하는 신분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신앙고백문답은 ‘창조받은 지위’라고 표현했는데, 이는 앞의 제12문답에서 살펴보았듯이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에 대면해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이 특별한 섭리란, 은혜 언약 또는 생명 언약이었습니다.  즉 아담은 하나님과의 언약 상태에 있었던 것입니다.

혹여 아담이 생명의 언약을 잘 지켰다면, 그에 따른 행복하고 아름다운 결과가 그의 후손들 모두에게 미쳤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죄라고 하는 부패가 들어올 수 없었고, 그로 말미암은 온갖 고통 및 죽음과 형벌은 결코 없었을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서 영원무궁토록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은 언약을 파괴하고 말았고, 따라서 언약 규정에 따라 그의 후손들 모두는 지금까지 쓰라린 결과를 겪고 있습니다. 반복하거니와 이는 당시 아담은 홀로였던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태어나는 후손 모두를 대표하는 언약의 머리였기 때문입니다.

간혹, “사탄이 우리의 첫 조상을 유혹하도록 어떻게 허용되어졌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되곤 합니다. 이에 대한 대답은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과 모든 행위를 보존하시며 섭리하신다고 한 앞의 제11문답에서 찾아질 수 있습니다. 즉 아담이 유혹을 받는 것 역시도 하나님의 위대하신 계획의 한 부분이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지금의 우리로서는 들여다 볼 수 없는 하나님의 깊으신 심중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이 문제와 관련하여 확실하게 두 가지를 가르치는데, 첫째, 하나님은 피조물과 그의 모든 행위를 통제하시고, 둘째, 그럴지라도 하나님은 죄의 조성자가 아니시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죄의 조성자가 아니시면서도 어떻게 해서 모든 것을 통치하실 수 있는가, 즉 어떻게 해서 사탄이 아담에게 다가가 유혹할 수 있었는가 하는 데 대해서는 비밀로 넘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우리는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서 이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여하튼 하나님은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주장하는 분이시고(엡 1:11), 그러면서도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는 분이십니다(약 1:13). 시편 기자는 이 사실 때문에 “여호와께서는 그 모든 행위에 의로우시며 그 모든 행사에 은혜로우시도다”(시 145:17)라면서 탄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신앙고백문답은 아담의 역사적 실재성을 가르칩니다. 다시 말하자면 창세기 1-3장의 기록은 특별한 시간과 장소의 지구상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기록입니다. 현대에 들어 인간 이성만을 의지하는 일부 신학자들은 아담을 단지 상징적 인물로만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부 사람에게는 이와 같은 현대 신학의 주장이 매우 매력 있게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아담의 이야기를 믿는다고 말할 때에 조심해서 새겨 들어야 합니다. 아담의 이야기가 품고 있는 어떤 가치관을 믿는다는 의미로 그렇게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실제로 역사 속에서 일어났던 사건에 대한 기록으로는 믿지 않습니다. 그들은 ’아담’이라는 이름은 단지 ‘범죄하고 타락하려는 인간의 성향’을 뜻할 뿐이라는 얼토당토 않는 논리를 펼칩니다.

이제 개혁된 교회의 신앙고백에서는 이 점을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아담의 역사적 실제성을 부정하게 되면 기독교 교리체계 전체가 무너지고야 맙니다. 성경은 확실하게 “한 사람이 순종치 않음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된 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롬 5:19)고 선포합니다. 따라서 아담이 실재 인간이었음을 부인하는 것은 성경이 말하는 그리스도의 실재를 부인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즉, 성경이 말하는 아담의 실재성과 그가 행위 언약 하에서 행한 바를 믿지 않는다면, 성경이 말하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은혜 언약 하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바에 관해서도 사실상 믿지 못하게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원은 어떻게 되는 것이겠습니까?

 

2018년 10월 13일 (SATUR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12문답 묵상2018년

어떤 사람이든지 자신이 행한 데 대한 삯을 받습니다. 로마서 6장 23절에서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과의 간격이 멀어지는 것은 영적인 죽음의 과정인데, 아담 안에서 영적인 죽음에 빠져 있는 인간인지라 죄를 싫어하시는 하나님과 계속 원수된 상태를 굳혀 갑니다. 에베소서 2장 1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나가 있는 한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면할 수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 8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순종은 생명을, 불순종은 죽음을 가져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모든 능력을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에 접붙여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2018년 10월 12일 (FRI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12문답 묵상2018년

창세기 2장 7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만드시고 생기를 불어넣으셨습니다. 즉 생명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숨쉬고 걷고 생각하고 웃을 수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입니다. 또한 항상 하나님과 함께 사는 법도 알려주셨습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는 사람의 삶은 영원히 지속되면서 완벽한 행복으로 귀결될 것입니다. 요한복음 17장 3절, 11장 25-26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삶의 형태에는 어쩌면 육신의 삶, 영적인 삶, 영벌의 삶, 영생의 삶, 네 종류가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하나님을 힘입어 순종하는 데서, 인간의 행복은 최고조에 달하게 됩니다. 이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2018년 10월 11일 (THUR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12문답 묵상2018년

하나님의 언약은 완벽한 순종을 요구합니다. 가령, 어떤 사람을 선하다고 말할 때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선하다는 것이지 100% 선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계명에 완벽하게 순종하는 경우에만 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완벽하게 선하시고 거룩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레위기 19장 2절, 신명기 18장 13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순종을 명령하기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도 주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2018년 10월 10일 (WEDNE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12문답 묵상2018년

인간은 다른 피조물보다 월등히 뛰어난 존재지만, 그럴지라도 피조물의 범주를 벗어나지는 못합니다. 창조주를 떠나서는 하루도 살 수 없는 존재인 것입니다. 즉 생명 자체가 창조주께 의존해야만 보존되는 존재입니다. 시편 104편 27-30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하나님이 아담과 맺으신 언약의 핵심은 하나님의 말씀을 준종함으로 거기에 순종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초점은 왜 먹지 말라고 하셨는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하는 데 있습니다. 인간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평가할 수 없습니다. 왜 그런지 여러 가지 이유들을 제시해봅시다.

2018년 10월 9일 (TUES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12문답 묵상2018년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시고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셔서 완벽한 세상에서 살게 해주시면서 모든 것을 다 누리게 하셨으되, 단 한 가지만은 금하셨습니다. 생명나무 열매는 먹을 수 있지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하신 약속이 수반된 명령이지만 일종의 최초의 언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용은 순종하면 살고 불순종하면 죽는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2장 8-17절 말씀을 보십시오. 먹지 못하게끔 강제로 억제하지 아니하시고, 자유를 존중해주신 것입니다. 아담은 이 자유를 죄로 발전시키고 말았는데 왜 그랬다고 생각하십니까?

2018년 10월 8일 (MO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12문답 묵상2018년

하나님은 일방적인 은혜로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본래 사람 간의 언약은 쌍방이 서로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한 쪽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다른 한 쪽은 그 약속을 파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언약은 그러한 인간의 계약과는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조건 은혜를 언약으로 베푸셨는데 이때 축복을 약속하시면서 사람 편에서 할 일을 요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최초로 세우신 언약은 아담과 맺으신 것입니다. 향후 몇 번의 언약을 거치면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있었습니다. 시편 103편 17-19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여기서 갑자기 왜 언약을 지키는 자의 복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입니까?

2018년 10월 7일 (SU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12문답 묵상2018년

[질문]: 사람이 창조받은 지위에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행하신 특별한 섭리는 무엇입니까? [대답]: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신 후에 완전한 순종을 조건으로 생명 언약을 맺으시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 먹는 것을 사망의 벌로써 금하셨습니다(창 2:16-17; 호 6:7; 갈 3:12; 약 2:10).

제12문답은 섭리로써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이제 보다 새롭고, 보다 나은 ‘생명 언약(행위 언약)’이라는 방법으로써 인류의 두 부류 중의 한 무리를 특별히 다스리신다는 데 대한 신앙고백입니다. 하나님은 ’생명 언약’으로써 창세 전에 택하신 자들을 영원한 생명의 세계로 인도하십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언약 베푸시기는 성경 전체의 구속사를 통해서 점점 선명해지면서 발전해 나가다가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에 이르게 됩니다.

구속사에 나타난 언약에는 생명 언약을 필두로, 노아 언약, 아브라함 언약, 모세 언약, 다윗 언약, 새 언약 선포, 새 언약 성취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을 제대로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은 언약 속에서 한 번이라도 동등한 위치에 서지 못했다고 하는 생각을 확실하게 해두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인간과 언약 관계가 성립될 때 그 언약은 소위 말하는 상호 동등한 관계에서 맺는 ‘쌍무 계약’ 같은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은 언약의 종류와 언약의 기간 등에 대한 결정을 인간과 상의하지 않으신 채 주권적으로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이 진리를 잘 이해함으로써 성경에 나타나는 최초의 언약을 그 특성을 부각시켜려는 의도로 ‘행위 언약’이라고 말할 때 일어날 수도 있는 위험이 제거됩니다. 이 위험이란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을 얻을 수 있는 권리가 있는듯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근본적으로 인간은 하나님께 대가를 요구할 수 없는 존재라고 선포합니다. “명한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라 할지니라”(눅 17:9-10).

첫 언약은 ‘생명 언약’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이 언약의 특징을 아담에게 생명을 약속하시는 식으로 드러내셨기 때문입니다. 또 이것을 ‘행위 언약’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순종이라고 하는 행위를 요구하셨기 때문입니다.  즉, “이것은 행할 수 있지만, 저것은 해서는 안 된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것이 ‘생명나무 열매’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대상으로 했다는 것을 잘 압니다. 여기서 나무 자체의 정체성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일종의 도구로 사용되었을 뿐입니다. 여하튼 앞엣 것은 먹어도 되지만, 뒤엣 것은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일종의 순종 또는 행동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이 태초에 창조되었을 때의 지위이고, 하나님께서 특별한 섭리를 베푸신 상황입니다. 간단하게 축약하자면 행위 언약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조심해야 할 것은 생명 언약에 대해 혹 행위 언약이라고 칭할 때에 그 참된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하는 일입니다. 무엇보다도 성경 전체의 언약의 특징인 ‘은혜 언약’, 바로 이 은혜 언약에 대치되거나 대등하게 맞서는 그런 차원에서의 행위 언약이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행위는 ‘대가’를 연상케 하고, 은혜는 ‘무상’을 연상케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일반적인 두 대립 되는 관계 차원에서 이해하면 안 된다 하는 말입니다. 원칙적으로 성경 전체의 언약 사상은 ‘은혜 언약’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경의 여러 언약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시고 완성하신 하나님의 은혜로서의 ‘새 언약’, 바로 이 새 언약이라고 하는 큰 기둥에 붙어 있는 가지들과 같은 그런 가치를 갖는 것입니다.

생명 언약 혹은 행위 언약은 당시 아담에게 부족하거나 불공평한 것이 없었다는 사실 속에서도 이해될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아담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바를 실행하기에 필요한 모든 능력을 가진 자로 지음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습니다(전 7:29). 그러므로 당시 사탄조차도 아담을 죄인으로 만들 수는 없었습니다. 혹여 사탄이 아담에게 직접 나아갔다 할지라도 아담은 자신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도록 꾀이는 것임에 대해 잘 알 수 있었으므로 결코 넘어갈 수 없었습니다.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했다”(딤전 2:14)고 한 것이 이 때문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아담을 불순종에서 지키시기 위하여 여러 다른 좋은 것들로 둘러싸 놓으셨습니다.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으라”(창 2:16). 하나님께서 죽음의 무서운 형벌로 아담을 위협하셨을 때 아담은 불순종을 피할 충분한 여지가 스스로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언약 사상과 관련하여 상기한 내용만큼은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독교는 기본적으로 ‘은혜의 종교’이고, 이것은 ‘언약의 종교’라는 말임에 다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제대로 충분히 알 수 있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생명 언약, 아니 행위 언약에 대한 이해를 확실하게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