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28일 (SUNDAY)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문답 제015문답 묵상2018년

[질문]: 우리 시조가 창조받은 지위에서 타락하게 된 죄는 무엇입니까? [대답]: 우리 시조가 창조받은 지위에서 타락하게 된 죄는 금하신 열매를 먹은 것입니다(창 3:6, 12).

웨스트민스터 소신앙고백문답 제14문답에 대한 학습은 “사람은 자기를 알아야 한다고 옛적 격언(proverb)이 역설한 것은 조금도 틀린 말이 아니다(1.1.1)”라고 한 칼빈의 말을 인용함으로써 시작하겠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가, 또는 어떤 존재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인생사에서 자기를 모르기 때문에 필요한 일을 결정할 때 비참한 자기 기만에 빠지고 심지어는 눈 뜬 소경이 된다는 것은 더욱 혐오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교훈은 바르게 이해되어야 합니다. 어떤 철학자들은 자기 자신의 가치와 우월성을 아는 것이 인간의 목표라고 잘못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에 대한 지식에 이르는 데에는 두 단계가 있습니다. 첫째, 창조시에 우리가 무엇을 받았으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관대한 호의를 계속하시는가를 생각하는데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으므로(창 1:27), 여타 동물과 구별되는 거룩하고 정직한 생활로써 복된 영생을 향하여 매진하게끔 된 존재들입니다. 둘째, 하지만 아담의 타락 이후에 불행하게 된 우리의 처지를 반드시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로 이러한 생각이 근원이 되어, 먼저 우리 자신에 대한 증오감과 불쾌감과 겸손이 생기게 되고,  그에 따라 잃어버린 선을 회복하기 위하여 하나님을 찾겠다는 열성의 불길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름하여 타락에서 구원으로의 대 전환입니다. 태초의 인간 아담이 타락함에 따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게 됨에 따라 이와 같은 구속사의 구도가 형성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아담이 타락한 상황을 좀 더 자세히 보겠습니다. 창조 당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순종 여부를 드러내는 리트머스 시험지처럼 에덴 동산에 서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시 인간에게 4대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첫째, ‘음식을 먹는 즐거움’을 주셨습니다(창 1:29). 인간에게 먹는 즐거움을 주신 하나님께서는 이를 위하여 에덴 동산에 온갖 종류의 먹을 것들을 두셨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생명나무 열매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시험도 바로 이 먹고 사는 법칙과 연관되어서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먹고 사는 이 일은, 창세 때부터 있는 것으로 종말에 이르기까지 변하지 않는 영원불변의 법칙입니다.

둘째, ‘노동 명령’입니다(창 1:28).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담으로 하여금 에덴 동산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니까 아담은 노동하는 것을 통하여 과실을 먹어야 했습니다. 노동은 인간의 신성한 의무요, 먹는 즐거움을 뒷받침해 줍니다. 인간은 음식을 먹을 때 그냥 공짜로 먹어서는 안 되고, 신성한 노동을 수행한 대가로서 먹어야 하는 것입니다. 노동 없이 먹으려고 하는 것은 창조 원리를 거역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아예 먹지도 말아야 합니다.

셋째, ‘혼인 명령’입니다(창 2:24).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만드신 후, 돕는 배필로 여자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인간은 아이일 때에는 가정에서 부모의 양육을 받으며 자라나게 됩니다. 그러나 성장하게 되면 더 이상 부모 밑에 있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남자는 부모를 떠나 아내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어 새로운 가정을 이루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넷째, 여기에 더하여 ‘안식일 준수 명령’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창 2:1-3). 특별히 이 명령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모범에 입각하여 주신 명령이라고 하는 특징을 갖습니다.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지으신 것을 보실 때에 심히 좋았습니다. 그래서 창조하시던 일을 멈추시고, 일곱째 날에는 쉬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최초의 사람 아담을 생각할 때 두 가지 사실을 주목하여야 합니다. 창조된 아담은 완전한 상태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어 참된 지식과 의와 거룩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는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상태’이었으나, 아예 ‘죄를 지을 수 없는 상태’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은 자였으나 그러나 그것을 잃을 수 있는 상태에 있었습니다. 낙원에 있는 인간에게는 영육간에 모든 것이 풍족하였으나 부족한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영생에의 ‘절대적 확실성’이었습니다.

이러한 아담은 이상과도 같이 하나님께서 선으로 베푸신 4대 명령을 잘 이어가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토록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끔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결과는 비참했으니,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함으로써 타락하고 만 것입니다. 칼빈은 아담의 타락은 하나님께 대한 배신의 의미요, 이것이 최초의 죄인 ‘원죄의 성격’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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