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29일(SUNDAY) ● 웨스트민스터 소신앙고백문답 제004문답 해설과 묵상

[제004문]  하나님 어떤 분이십니까? [대답] 하나님은 신이십니다(신 4:15-19; 눅 24:39; 요 1:18; 4:24; 17:29). 그분의 존재와(출 3:14; 시 115:2-3; 딤전 1:17; 6:15-16) 지혜와(시 104:24; 147:5; 롬 11:33-34; 히 4:13; 요일 3:20) 권능과(창 17:1; 시 62:11; 렘 32:17; 마 19:26; 계 1:8) 거룩하심과(사 6:3; 57:15; 벧전 1:15-16; 요일 3:3; 계 4:8; 15:4) 의로우심과(창 18:25; 출 34:6-7; 신 32:5; 시 96:13; 롬 3:5, 26) 선하심과(시 100:5; 103:5; 마 19:17) 인자하심과(출 34:6; 시 107:8; 롬 2:4) 진실하심은(신 32:4; 시 86:15; 117:2; 히 6:18) 무한하시며(왕상 8:27; 시 139:7-10; 145:3; 147:5; 렘 23:24; 롬 11:33-36) 무궁하시며(신 33:27; 시 90:2; 102:12, 24-27; 계1:4, 8) 불변하십니다(시 33:11; 말 3:6).

신앙고백문답에서 고백하듯이, 하나님의 대표적 특성에 대해 “하나님은 영이시니”(요 4:24)라고 말씀하신 분은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이 영이시라는 말의 가장 대표적인 의미로는 하나님은 다른 모든 만물과 구별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선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우리로서는 하나님을 직접 볼 수 없고, 오직 간접적인 방법으로만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만물에 ‘반영된 것’을 통해서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은 여러 가지 독특한 속성들을 지니셨습니다. 하나님은 무한하시나 인간은 그렇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무궁하시나 인간은 그렇지 못합니다. 이러한 속성들은 하나님께만 있기 때문에 ‘비공유적 속성’이라고 합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함께 공유하시는 속성들도 지니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기를 닮도록 하려고 그러한 속성들은 주셨기 때문에 ‘공유적 속성’이라고 부릅니다. 이상을 전제하고, 신앙고백문답의 가르침을 두 가지로 이해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이 영이심이 분명한데 왜 성경에는 이따금씩 하나님께서 신체를 지닌 분이신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까? 여호수아 4:24에는 ‘주님의 손’,  열왕기상 15:5에서는 ‘주님의 눈’ 등의 표현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출애굽기 24:10에는 모세와 다른 자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보았다’라고 했으며, ‘그 발 아래는 청옥을 편 듯하다’(출 24:10)라는 등등의 표현도 있습니다. 하지만 의심할 여지없이 이러한 표현들은 하나님을 우리 인간 수준에 맞추어 의인화하여 표현한 데 불과합니다. 성경의 여러 곳에서 사람의 모습을 하신 하나님의 출현이 언급되고 있으며, 그래서 사람들은 실제로 본 그대로 하나님을 묘사했습니다. 성경은 그러한 이유까지 설명해줍니다. 영적 실체인 천사들이 인간의 모양으로 자신을 드러내실 때에, 필요한 경우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한 현현 형태를 취하셨습니다(창 18:1-5, 16-25 등등). 칼빈은 이러한 모습을 가리켜 ‘장차 그리스도께서 신인(神人)으로 지상에 나타나실 것에 대한 서막’이라고 해석했습니다. 그러한 계시 끝에 그리스도께서는 실제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출현하셨던 것이요, 사역을 성취하셨고, 부활되사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따라서 지금 주님은 분명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참된 인성을 가지셨으므로, 천상에 계신 지금도 손, 발 등등의 신체를  갖고 계십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불변하는 분이시라고 선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어떤 경우에는 마치 변하시는 것처럼 말하는가 하는 문제를 보겠습니다. 창세기 6:6에서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라는 한 말씀은 대표적입니다. 사람이 후회할 때는 실제로 마음을 고쳐먹습니다. 하지만 성경이 하나님에 대하여 이렇게 말할 경우에는, 항상, 그리고 실제로는 인간이 변했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에 대한 태도와 관계에 있어서 수시로 변합니다. 인간에게 일어난 이 변심으로부터,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대응상의 태도에 변화가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변화는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고 실상은 인간에게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거룩하시므로, 인간이 하나님을 거스려 범죄할 경우 그들은 하나님이 죄에 대해서 가지시는 거룩하신 진노에 처해지게 됩니다. 원칙적으로 하나님은 자신을 부인할 수 없으시므로 항상 불변하십니다(딤후 2:13). 즉, 자신이 행하시는 일들과 관련하여 마치 마음을 바꾸신듯이 표현된 것은, 그만큼 인간의 불충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악하게 될 때 하나님은 필연적으로 슬퍼하시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 자신의 불변하신 거룩성을 고려할 때 하나님은 결코 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그 위엄에 맞게끔 섬김을 받으셔야 합니다. 이 문제를 우리가 하나님의 존전에 가장 실효적으로 나아가는 예배 의식과 관련하여 생각해 봅시다. 요즈음 성도들은 예배를 실제로 하나님의 어전에 부복한 것처럼 생각합니까? 혹 세상살이에서 치르는 이런저런 여러 의식들처럼 그렇게 여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요즈음 유행하는 열린 예배란 어떤 의미에서 실제로는 인간의 즐거움을 위한 일종의 쇼(놀이)와도 같은 것입니까?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히 절대적인 위치를 점하는 예배를 하나의 쇼로 전락시키는 교회는 과연 올바른 교회이겠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살고자 하는 성도라면, 그러한 교회에 계속 머물러 있어야 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목회자가 자신의 이름도 몰라주는 그토록 덩치가 큰 교회, 그런 교회에 속해 있는 자체를 행여라도 자신의 구원의 보호나 보장으로 여긴다면 정말 어리석은 행동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Posted in 오늘의 신앙고백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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