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08일(SUNDAY) ● 웨스트민스터 소신앙고백문답 제001문답 해설과 묵상

[제1문]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대답] 사람의 최고봉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시 86:8-13; 사 43:21; 60:21; 롬 11:36; 고전 6:19-20; 10:31; 계 4:1), 하나님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시 16:5-11; 73:24-26; 144:15; 사 12:2; 눅 2:10; 요 17:22, 24; 빌 4:4; 계 21:3-4).

신앙고백문답은 인간이 존재하는 데에는 궁극적이고 절대적인 이유가 있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그 이유는 인간 속에서 발견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자기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하셨습니다. 인간은 그렇게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되는 것을 통하여 자기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으로 살도록 지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죄가 만물을 파멸시키기 전까지는 실제로 인간은 모든 생각과 열망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 즐거워하는 삶을 통해서 가장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아담이 하나님을 거스려 범죄하게 되자, 순식 간에 모든 것은 변하고 말았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시고 놀라우신 분이신가를 생각하면서 그러한 분의 돌보심을 받는 데서 누리는 행복으로 인해 하나님을 찬양하던 삶에서 떨어져 나와, 이후로는 순전히 자신만을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은 그 자신이 위대해질 수 있다면 무엇과 같이 될 것이며, 얼마나 그 자신을 즐길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구원을 받게 되면 이것이 바로 잡히게 됩니다. 따라서 사람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회개의 삶을 살게 되기까지는, 하나님 중심의 삶을 전혀 살 수 없다는 사실이 항상 강조되어야만 합니다. 성도는 자신이 어떻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영원토록 즐거워할 수 있을 것인가를 알기 위해서 결국 성경이 가르치는 구원의 길을 배워 깨달아야만 합니다. 성도는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어떻게 믿어야 할 것과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는 본분, 곧 임무가 무엇인가”를 배워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만든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을 주의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미 영화로우십니다. 하나님은 영원부터 영화로우셨고, 따라서 창조된 어떤 것도 이미 영화로움으로 충만한 분이신 하나님을 더 영화롭게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라는 말은 ‘하나님의 영광을 반사한다’라는 의미로 이해되어져야 합니다. 시편에서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시 19:1)라고 말한 바와 같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세계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는 하나의 거울과도 같아서, 그 거울을 잘 들여다보면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즐거워하도록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그냥 단순히 창조된 하늘과 땅의 경우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하늘과 땅은 단지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할 뿐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스스로 이 일을 다양하게 할 수 있는 놀라운 특권을 부여받았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는 지상에서 성부 하나님 아버지를 섬기셨던 것과 같은 일입니다. 즉,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요 17:4)라고 한 바와 같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자신이 하기를 원하신 바를 열정을 다해 수행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신 이유는 단 하나 하나님께서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것이야말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시고, 또한 하나님을 영원토록 즐거워하고 계시는 모습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하나님을 영원히 즐거워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사실 은혜를 입어 구원을 받기 전에는 이러한 삶을 산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자신의 제일 된 본분을 행하며 산다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구원이 이루어져 있는 데 대한 확실한 증거가 된다는 것을 알고, 기뻐하면서 이를 실행하기에 열심을 다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삶을 가능하게 해주는 현장 또는 그러한 능력을 계속 공급받는 원천은 바로 교회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요, 성도라면 예외없이 교회의 훔에 안겨 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에 접붙여져 있기 마련인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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