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01일(SUN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52주차(127-129문답)

[제127문] 여섯째 간구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대답]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며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의미입니다. 우리 자신만으로는 너무나 연약하여 한 순간도 우리 자신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시 103:14-16; 요 15:1-5). 우리의 불구대천의 원수인 마귀와(고후 11:14; 엡 6:10-13; 벧전 5:8) 세상과(요 15:18-21) 우리의 육신은(롬 7:23; 갈 5:17) 우리를 공격하기를 결코 멈추지 않습니다. 그러하므로 주의 성신의 힘으로 우리를 붙드시고 우리를 강하게 하셔서, 우리가 이 영적 투쟁에서 패하여 거꾸러지지 않고(마 10:19-20; 26:41; 막 13:33; 롬 5:3-5), 최종적으로 우리가 완전한 승리를 얻을 때까지 우리의 원수를 견고히 저항하게 하실 것입니다(고전 10:13; 살전 3:13; 5:23).

주기도문의 여섯 번째이자 마지막 기도 내용은 우리를 죄로부터 지켜달라는 간구입니다. 다섯 번째 간구에서는 이미 지은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이곳에서는 죄를 범하는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지켜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이 간구 역시 다른 성경 구절에 근거한 조심스러운 설명이 필요한데, 그렇지 않을 경우 잘못 해석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시험’이라는 단어의 정확한 의미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은 이 단어를 두 가지 경우에 사용합니다.

  1. 시험은 종종 ‘재판(trial)’, ‘입증하다(proving)’, ‘시험하다(testing)’ 등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하나님은 틀림없이 사람을 ‘시험’하십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를 시험했습니다. 아브라함도 시험하셨습니다(창 22:21). 욥도 마찬가지로 시험했습니다(욥 1:12; 2:6). 그리고 예수님은 빌립을 시험하셨습니다(요 6:5-6).
  2. 시험은 ‘죄로의 유혹(enticement to sin)’ 또는 ‘죄로의 유인(inducement to sin)’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선, 하나님은 어떤 사람도 시험하지 않으십니다. 오직 사탄과 악한 사람들 그리고 악한 일들이 우리를 죄로 이끌어 들입니다.

야고보는 그의 서신에서 시험의 두 가지 종류를 말합니다. 첫째, 그는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1:2)라고 했고, 그런 후에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라고 했는데, 이 말은 하나님은 사람이 죄를 짓는 원인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1:13).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시련은 하시지만, 결코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도록 시험하시거나 유도하시지는 않습니다. 매우 흡사한 이 두 가지 상황은, ‘죄를 짓게 하는 시험’과 그리고 ‘죄를 짓게 하지 않는 하나님의 시험’으로 구분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두 번째 의미로 이 간구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전체 간구를 하나의 덩어리로 받아 들인다면 이것의 의미는 명확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는 ‘악한 것’으로부터 보호해주시사 하는 간청을 드리는 것입니다. 실력 있는 헬라어 학자 한 사람이 이렇게 번역하였습니다. “우리 자신이 악(악한 사탄)의 시험에 드는 것을 용납하지 마십시오”

이 문답은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게끔 하는 사단의 분투에 맞선 우리의 고투와 관련하여 두 가지 중요한 진리를 가르칩니다.

첫째,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a. 왜냐하면 우리 자신은 전적으로 약하기 때문이고, 영적 원수들을 대항함에 있어서 우리의 힘으로는 조금이라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며, 우리 스스로 자신감을 갖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죄를 위한 시험에 맞서는 영적 전쟁과 관련하여 하나님을 떠나 순전히 자신만의 힘으로 싸울 수 잇는 성도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b. 우리를 유혹하여 죄를 추구하게 하는 원수는 사악한 삼인조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사탄, 세상, 그리고 우리 자신의 옛 사람입니다. 사탄은 세상의 배후에 있고, 그리고 우리의 연약한 육체는 그들을 더 강력하게 하는데 일조합니다. 사탄은 아담과 하와를 유혹했습니다. 그는 욥을 유혹했습니다. 다윗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거스려 이스라엘을 계수하도록 하였습니다(대상 21:1). 사탄은 그리스도를 공격했습니다(마 4장). 그는 베드로를 공격했습니다(눅 22:31). 그러한 사탄이 지금도 계속해서 지상에서 먹이 감을 찾는 우는 사자처럼 사방을 두루 다니고 있습니다(벧전 5:8). 우리의 영적인 원수와의 이 치명적인 투쟁은 중단되는 법이 없고, 따라서 휴전이나 휴가의 기회도 없습니다. “사탄은 중단 없이, 집요하고, 맹렬하게 우리를 공격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의 시험에 들지 않도록, 매일 자신을 살피고, 기도에 졸지 않아야 합니다(마 26:41).

둘째,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도움을 힘입어야 합니다. 우리는 확실히 이러한 상황과 환경에서 하나님께서 그의 능력의 성령, 말씀, 그리고 은혜로 개입하시지 않는다면, 우리로서는 항상 죄로 이끌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사탄과 그의 영향력으로부터의 보호와 구출을 위해 우리에게 기도할 것을 가르치셨으므로, 우리로서는 확신 있게 하나님께 이를 위해서 간구할 수 있고 더불어 응답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히 13:5). 기독교인의 신뢰는 시험에 빠지지 않는 법인데, 왜냐하면 자기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영께서는 세상에 있는 사탄보다 더 강하시기 때문입니다(요일 4:4). 게다가 하나님에 의해 태어난 사람(중생)은 결코 타락하기까지의 죄는 짓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중생인으로 하여금 자신을 스스로 지켜야 하는 노력을 통해서 일어납니다. 이런 의미에서 악인은 중생인을 만지지조차 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요일 5:18). 그런 셈입니다. 성도는 자기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능력으로써 어떠한 영적 원수들이라 할지라도 기어코 이긴다는 것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요셉이 그러했습니다(창 39:10-12). 욥도 마찬가지입니다(욥 42:12). 그리고 사도들 역시 그러했습니다(롬 8:37). 

우리가 매일 같이 이러한 간구로써 기도한다면, 항상 행복하기만 하다거나 죄 없이 사는 삶으로만 항상 승리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크신 경륜에 따라, 우리도 역시 아브라함, 욥, 다윗, 베드로 기타 등등의 믿음의 선진들처럼 심하게 시험 받고 고난을 당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험에 직면하여 죄 지을 상황에 처하게 되고, 어쩌면 베드로가 그랬듯이 우리 주님을 부인하기까지 할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슬퍼하고 회개하면서 주님께로 돌아오도록 은혜를 베푸실 것입니다. 우리로서는 시온의 대로를 달려나가는 중에 한 동안 일부 전투에서 패할 수 있겠지만, 더 크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안에 있기 때문에 결국에는 완벽한 승리를 쟁취할 것입니다.

말할 필요 없이, 이러한 간구로써 기도하는 사람으로서는, 일부러 하나님께 도전하여 사악한 영향력에 자신을 내어주고 노출시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한, 하나님께서 이 간구에 응답하시리라고 기대할 수 없습니다.

[제128문] 이 기도가 의미하는 당신의 결론은 무엇입니까? [대답]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라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모든 능력의 왕으로서 우리에게 모든 좋은 것을 주고 싶어하실 뿐만 아니라 또한 주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주님께 구하옵니다(롬 10:11-13; 벧후 2:9). 주의 거룩한 이름 때문에, 우리 자신이 아니라, 영원히 모든 찬송을 받으십니다(시 115:1; 요 14:13). 

이 완벽한 모범 기도문을 최종적으로 마치는 선언은 송영(doxology)입니다. 이 단어는 헬라어 ‘독솔로기아(doxologia)에서 파생되었는데, 의미는 ‘영광 혹은 찬양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종종 찬송하는 “모든 축복의 원천이신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역시 ‘송영’이라고도 불리웁니다.

현대 번역 성경에서, 예를 들면 ASV(the American Standard Version), RSV(the Revised Standard Version), NIV(the New International Version, the Catholic Bible) 기타 등등에서, 주기도문을 마치면서 이 놀라운 송영뿐 아니라 ‘아멘’까지도 포함하지 않은 것은 우리를 매우 놀라게 합니다. 그들의 이유를 보면, 첫째, 가장 오래된 사본에 이 송영이 포함되어 있지 않고, 둘째, 누가복음 11장 4절의 주님의 기도에는 송영이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송영을 포함한 사본과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을 받아 들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역대하 29장 11절의 명백한 근거에 따라, 즉 다윗 왕의 기도에서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라고 한 바에 따라 송영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다윗의 송영(doxology)에 ‘권능’, ‘영광’, 그리고 ‘왕국’ 등의 단어가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송영은 완전한 주님의 기도와 모든 참된 기도의 참된 기초입니다. 이 사실이 기도를 위한 이유 혹은 근거로 설명한 단어 ‘위하여(for)’로써 도입되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여기서 주님께서는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기도가 응답될 수 있고, 응답될 것이라는 데 대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가르치셨습니다.

첫째, “왕국은 너희의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하늘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모든 것들의 왕이시기도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리스도께 하늘과 땅에 속한 모든 권한을 주셨습니다(마 28:18; 하나님 왕국에 대해 논의한 제123문답 참조). 하나님이 왕이신 이유는, 세상 모든 것의 창조자시요, 공급자시요, 구속주시요, 그리고 재판장이시기 때문인데, 하나님은 그의 이름과 그의 나라의 발전을 위해 만드는 모든 간구를 응낙하실 권위(authority)가 있으십니다. 하나님은 진정한 주인이시고, 통치자이시고, 의와 진리와 그리고 사랑으로서 다스리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이유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둘째, “능력은 너희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들으시는 것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진정 어린 기도에 응답하실 수 있는 모든 능력을 실제로 가지셨기 때문입니다. 모든 능력은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거룩한 뜻을 집행할 능력이 있으십니다. 하나님의 손을 멈추게 하거나 하나님께 저항할 수 있는 권력이란 없습니다. 우리의 기도하는 마음에 이러한 사실이 확실한 믿음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우리는 약하다거나 도움을 줄 수 없는 그런 무능한 신에게가 아니라, 자신의 왕국을 향상시키는 간구에는 모두 응답하는 전능하신 분에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송영에 나오는 능력은 헬라어 원문으로는 ‘다이나믹(dynamic)’이데, (이것은 오늘날 ‘다이너마이트’라는 단어로 파생된) ‘에너지’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우주의 모든 에너지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셨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은 죄인들의 굳어진 마음까지도 바꿀 수 있으시고, 그들로 하여금 당신의 말씀을 믿게 하실 수 있습니다.

셋째, “영광은 너희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모든 것들의 왕이시라면, 그리고 만약 하나님께서 모든 권력과 능력을 가지고 있으시다면, 그러면 그는 모든 영광의 하나님이심이 틀림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은 영광스러우시다’라고 말할 때, 그것은 하나님의 전체 존재가 삼위로서 무한하시고 완벽하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광스러움’은 우리가 그 분 앞에서 경외와 감탄으로 영원히 서 있을 것으로서의 하나님의 선하심, 능력, 사랑, 공의, 그리고 기타 속성들입니다. 우리는 기도 시에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이 영화로워지시는 데 관심을 가여야 합니다.

이 송영의 마치는 단어는 ‘영원히’입니다. 이 단어는 세 개의 명사 모두를 수식합니다. 하나님의 왕국은 영원하고, 그의 권세도 영원하고, 그리고 그의 영광도 영원합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시기 때문에 그의 신실하심도 영원하십니다(시 89:2; 146:10). 하나님은 영원하시기 때문에, 그는 우리의 시간에 제한 받지 않으시고, 그리고 우리의 기도에, 심지어는 우리가 아뢰기 전임에도 불구하고, 응답을 준비하고 계십니다(사 65:24).

[제129문] ‘아멘’이라는 이 짧은 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대답] ‘아멘’은 참되고 확실하다는 의미입니다. 내가 위하여 기도하는 것을 참으로 갈망하는 것보다도 더 확실하게 하나님께서는 나의 기도를 들으십니다(사 65:24; 고후 1:20; 딤후 2:13). 

우리는 이제 주님의 기도에서 마지막 단어인 신성한 ‘아멘’에 도달합니다. 우리가 이 단어의 발음을 길게 혹은 짧게, 혹은 어떤 방법으로 하든 간에, 생각이 같다면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이 단어는 ‘확고한’, ‘보증’, ‘확실’, ‘그래서 그렇게 될지어다’, ‘그것이 될지어다’ 등을 의미합니다.

‘아멘’은 헬라어 신약 성경에서 영어 번역에 이르기까지 축어적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 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아멘’은 진리나 율법에 사람의 신성한 동의를 나타내는데 사용되었습니다(민 5:12-22; 신 27:15 등을 보시오). 신약 성경에서는, 축복(롬 1:25)과 찬미(롬 11:36)와 축도(롬 15:33; 16:24)와 기도를 선포하고 난 후에 사용되었습니다.

구세주께서는 종종 중요한 가르침을 베푸실 때에 먼저 아멘을 사용했습니다. 이렇게 사용할 때, 그것은 ‘진실로’라는 말로 번역되었습니다. 주님은 요한복음에서는 이 단어를 이제 막 가르치는 것이 아주 중요한 진리임을 강조하시려고 두 번 연속적으로 사용하셨습니다. 이렇게 “진실로 진실로(문자적으로는, ‘아멘, 아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라는 표현은 요한복음에서 25번이나 사용되었습니다. ‘아멘’을 이와 같은 방법으로 사용한 신약성경 설교자는 아무도 없는데, 이 사실은 그리스도께서 자신만의 특별한 권위로써 말씀하셨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는 진리시오, 하나님의 아멘이시오(요 14:6; 계 3:14), 충실한 지지자시요, 진실한 증인이십니다.

‘아멘’은 확실함과 진실을 의미합니다. 신앙고백문답은 ‘아멘’을 ‘참되고 확실하다는 의미’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가 기도 마지막에 이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확실성과 진리를 이중적으로 적용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제129문답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두 가지가 포함됩니다.

첫째, ‘아멘’은 우리의 기도를 확실히 들으시고 응답하실 것이라는 데 대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보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를 하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겠다고 약속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후 1:20). 우리가 기도시에 언약적 약속들을 사용하면서 믿음으로 요청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자신의 언약적 약속을 무효화하실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로서는 이 ‘아멘’이라는 말을 깊이 생각하면서 신중하게 사용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을 일깨워드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참으로 확실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의 확실성은 우리의 ‘느낌’이나 ‘좋은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파기될 수 없는 약속에 근거합니다.

둘째, ‘아멘’은 우리가 신실하고 진실한 기도자로서 기도했다는 것을 하나님께 하는 우리의 엄숙한 약속입니다. 우리는 감히 위선이나 거짓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마음 깊은 곳에서 나와야만 합니다. 우리는 이 작은 단어로써 우리의 기도에서 오직 하나님만이 홀로 영광스러워지셔야 하고, 성경에서 계시된 바대로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뜻에 따라 기도하고 싶어하는 우리의 소망을 표현합니다. “제 마음과 깊은 생각을 아시는 아버지시여, 아버지께서는 제 기도가 신실하다는 것과, 그리고 제가 진실되이 아버지의 것들을 소망한다는 것을 아십니다.”

그리고 ‘아멘’은 성경에 근거한 우리의 기도가 그리스도의 공로를 힘입어 효력 있고, 응답될만하다는 데 대한 하나님과 우리 자신 양쪽을 위한 표시와 확증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믿지 않는 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왕국을 건설하고, 새 하늘과 새 땅을 가져와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의 일부로 하나님에 의해 사용됩니다.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서 말하는 우리의 은밀한 간구들은 하나님의 보좌로 올라가 주님을 위한 달콤한 향과도 같이 ‘금 대접’에 담깁니다(계 5:8).

이제 이 신앙고백문답으로서 ‘주님의 기도’라고 하는 주제뿐만 아니라, 또한 신앙고백문답도 마칩니다. 우리가 공부한 문제들이 진실되고 확실하기에 ‘아멘’으로 신앙고백문답을 끝마치는 것 역시 얼마나 적절한가를 절감할 것입니다. 우리는 진실한 ‘아멘’으로서 우리의 죄(sin)에 대한 학습, 우리의 구원(salvation)에 대한 학습, 그리고 우리의 축복된 구세주께 대한 우리의 예배(service)에 대한 학습으로서의 ‘우리의 삼중의 위로(our threefold comfort)’를 말합니다.

살든지 죽든지 간에, 이 작은 책의 위대하고 영원한 진리가 당신에게 영원토록 귀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당신의 교회가 교회의 신앙고백으로서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the Heidelberg Catechism)을 영원히 품고 있기를 기원합니다.

Posted in 오늘의 신앙고백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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