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 25일(SUN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51주차(126문답)

[제126문] 다섯째 간구는 무엇입니까?  [대답]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이렇게 하는 간구입니다. “주의 은혜의 증거가 우리 안에 있어서 우리가 이웃을 용서하기로 굳게 결심하는 것처럼(마 6:14-15; 18:21-22, 35), 그리스도의 보혈을 보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과와 아직도 우리 안에 있는 부패를 불쌍한 죄인인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시 51:1; 143:2; 롬 8:1; 요일 2:1).”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이 모범 기도의 다섯째 간구는 언뜻 오해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것은 돈 채무를 언급하는 것입니까? 실제로 우리가 용서를 구하기도 전에 이미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었다면, 왜 우리는 계속해서 용서를 구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까?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용서하지 않으십니까? 만약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해 주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용서해 주시는 것이라면, 그리스도의 용서의 공로가 아닌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이러한 질문들이 이곳의 간구와 함께 발생되는 문제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음 요점들을 공부해 봅시다.

첫째, 하나님의 용서에 대해서입니다. ‘빚’이란 돈과 연계된 것이 아니라 누가복음 11장 4절에서처럼 죄와 관계된 것입니다. “우리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즉 우리의 죄를 ‘빚’이라고 불렸습니다. 여기서 빚은 하나님의 율법이 요구하는 바대로의 하나님께 대한 완전한 사랑과 순종을 위해 지불해야 하는 우리의 실패를 대표합니다. 신앙고백문답 여러 곳에서 설명하듯, 우리가 하나님께 지불해야 하는 순종의 실패로서의 빚은 우리가 마땅히 지불해야 하는 징계의 빚을 의미합니다(예를 들어, 제12문답과 제16문답). 이 빚은 우리 스스로에 의해서는 결코 지불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아들 안에서 제공되는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의 사랑과 징계의 모든 빚은 지불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빚은 탕감 받을 수 있습니다. 이 문답은 다른 것이 아닌 오직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그의 희생적 죽음)로 죄가 용서된다는 것을 한 번 더 확실하게 고백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결코 용서에 대한 공로를 시작할 수 없고, 성취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무슨 죄들을 무상으로 용서하셨습니까? ‘우리의 다양한 죄(우리의 실제 생각, 말, 그리고 행동의 죄)’, 그리고 항상 우리에게 붙어 다니는 우리의 사악, 타락한 본성 등입니다. 범한 죄(악을 행함), 태만의 죄(선행의 실패), 개인적인 죄, 공공의 죄, 의도적으로 행한 죄, 의도적이지 않은 죄, 대놓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 우리 자신을 대적하고, 다른 사람을 대적하는 죄 기타 등등입니다.

둘째, 용서의 조건에 대해서입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이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 속한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 냈는데, 왜 우리는 반복해서 용서를 구해야 합니까? 하나님으로 인하여 한 번 의로워지면, 하나님의 은혜의 사역으로 하나님과 우리의 계산이 영원히 청산된다는 것은 사실입니다(롬 5:1; 8:33). 하지만, 우리의 일상적인 죄들은 그 자체로 처벌을 받을만하고,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가 도적적인 피조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기를 요구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개인적 칭의에 대한 보증은 죄에 대한 계속적인 우리의 회개와 고백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의 고백과 용서에 대한 확신은 분리될 수 없는 것으로 정해 놓으셨습니다(시 32:3-5; 요일 1:9). 

이 간구는 우리에게 죄 지은 다른 사람을 용서할 것을 가르칩니다. 다시 한 번, 이것은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진 돈 부채가 아닌 우리를 대적하여 저지른 죄를 가리킵니다. 우리를 향한 이웃의 모든 죄들은 진심으로 용서되어야만 합니다.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용서할 수 있는 것은 우리 마음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6장 14-15절에서 예수님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용서에 대한 거부는 자신의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가 부족하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한다는 것은 더 이상 그를 적대하기 위하여 그것들을 붙잡아 두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신이 받은 상처는 잊을 수 없겠지만, 그러나 그것들을 더 이상 생각하거나 말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용서한 사람을 실제로 용서했다고 단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를 대적한 모든 죄들을 무조건 용서해야 합니까? 일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가복음 17장 3-4절은 회개하는 사람만을 용서하는 것이라고 확실하게 가르칩니다. 만약 그가 “’나는 회개합니다’라고 당신에게 말한다면, 당신은 그를 용서해야 합니다.” 하루에 일곱 번이나 반복되더라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겸허한 간청을 기대하기 전에, 우리는 상대방에게 사랑의 심정으로 먼저 책망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소위 범죄자라고 불리는 사람과 이 문제를 논의하기를 거절한다면, 우리는 그에게서 우리의 용서를 구하라고 요구할 권리가 없습니다. 자신들의 죄를 알려 주었을 때 회개하기를 거절하는 사람은 우리에게서도 용서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확실히 하나님으로부터 용서함을 받지 못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요일 1:9).

물론 우리는 하나님께서 원수들의 마음에 은혜로 역사해 주셔서 그들이 회개할 수 있게 해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항상 기도해야만 합니다(마 5:44). 우리를 대적하여 죄를 지은 악한 자들에게 악으로 갚으면 결코 안 되고, 오히려 그들을 용서하고자 하는 신실한 바램을 항상 보여주어야만 합니다.

Posted in 오늘의 신앙고백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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