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월 20일(SUN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46주차(120-121문답)

[제120문] 그리스도께서는 왜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명하셨습니까? [대답] 그리스도께서는 기도의 첫머리에서부터 우리 마음에 하나님께 대하여 어린아이와 같은 공경심과 신뢰를 불러일으키기를 원하셨는데, 이것이 우리의 기도의 기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아버지가 되셨으며(사 63:16; 요 20:17; 갈 4:6), 우리가 믿음으로 구하는 것에 대해서는 우리 부모가 땅의 좋은 것들을 거절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더 거절하지 않으실 것입니다(마 7:9-11; 눅 11:11-13).

신앙고백문답은 제120문답서부터 주기도문에 대한 해설을 시작합니다. 주기도문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⑴ 인사말, ⑵ 여섯 가지의 간구, ⑶ 송영 등입니다. 이 문답과 다음 설명은 “하늘에 계시 우리 아버지여”라는 말로써 기도의 인사말을 설명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정확하게 하나님을 향하는 것은 확실히 중요합니다. 유일하게 기독교만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아버지라는 표현은 아주 친밀한 의미가 있는데, 전능하신 하나님과 우리와의 이 영적인 관계는 성신께서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해주심으로써 제대로 인식됩니다. 하나님께서 재판장이시고 악한 자들을 벌하시며, 전능하신 창조주이시고, 무한하시고 그리고 이해 불가한 통치자시기에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의 위대함과 주권을 존중해야 함은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참으로 위대한 분이신 하나님을 이제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기를 원하신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합니까!

신약성경만이 아니라 구약성경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신을 스스로 아버지로 계시하셨습니다. “나는 이스라엘의 아비요”(렘 31:9), “여호와여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라”(사 63:16; 시 103:13; 대하 29:10 참조). 이러한 사실은 현대주의자들이 예수께서는 구약에서는 몰랐던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가르치셨다고 주장하는 것이 잘못임을 보여줍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모든 인류의 아버지이십니까? 현대주의자들은 “그렇습니다!”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의 아비는 본래 ‘마귀’(요 8:44)였다고 가르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만 아버지가 되십니다(요 1:12). 그러므로, 오직 그리스도인들만이 이 주기도문으로써 기도할 수 있고, 기도할 때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아버지가 되시는 데 따른 귀중함을 생각해 봅시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버지이십니다. 그 이유는 세상을 창조하기 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자녀가 되도록 선택하셨기 때문이요(엡 1:4), 그리스도의 죽음으로써 우리를 구속했기 때문이요(갈 4:5), 성신으로써 우리를 거듭나게 하셨기 때문이요(갈 4:6), 우리를 하늘 가족으로 입양하셨기 때문입니다(갈 4:5).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인 것이고, 그리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 영광의 모든 부요함을 누리는 후사인 것입니다(롬 8:17).

둘째, 우리는 기도할 때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직접 아뢸 수 있습니다. 기도는 개인적이고도 친밀한 대화가 되어야 합니다. 혹여 다른 사람이 쓴 기도문를 사용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것이 반드시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우리가 지상의 아버지께 말씀을 드릴 때 다른 사람의 말을 읽는다면 얼마나 부자유스럽겠습니까?

셋째, 우리는 하나님을 육신의 아버지 이상으로 경외하고 존경해야 합니다. 육신의 자녀들은 지상 아버지를 공경하게끔 되어 있는데(다섯 번째 계명), 그렇다면 천상의 아버지께 대해서는 얼마나 더 사랑하고 존경해야겠습니까.

넷째,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아버지로서 돌보시고 보호하신다는 것을 신뢰해야 합니다. 지상의 아버지도 자녀인 우리를 돌보고 보호하는 데 엄청난 희생을 합니다. 하물며 천상의 아버지께서는 자녀들이 ‘믿음으로 간구할 때’ 얼마나 더 보살피시고 능히 필요를 공급해 주시겠습니까? 신앙고백문답 저자들은 마태복음 7장 9절에서 11절과 누가복음 11장 1절부터 13절에서 지상의 부모가 자녀들에게 주고 싶어하는 심정에 빗대어 더 좋은 선물들을 더 간절히 주고 싶어하신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는 말씀은 삼위일체의 일위 혹은 삼위일체 전체를 주목하게 합니까? 개혁자들은 여기서의 아버지라고 한 이름은 삼위일체 전체에 대한 언급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도신경에서도 동일합니다. 실상은 이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은 우리 안의 성신님의 역사로 인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아버지이십니다(갈 4:6). 신앙고백문답은 ‘삼위일체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의 아버지가 되셨다’는 견해를 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여간,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은 방탕한 아들인 우리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제121문] ‘하늘에 계신’이라는 말이 덧붙여진 이유는 무엇입니까? [대답] 하나님의 천상의 위엄을 땅의 것으로 생각지 않고(대하 6:18-10; 렘 23:23-24; 행 17:24-25),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으로부터 우리의 몸과 영혼에 필요한 모든 것을 기대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롬 8:31-32). 

주기도문을 시작하는 전개의 두 번째 부분은 ‘하늘에 계신’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과 그의 전능하신 능력을 생각함에 있어서 천상에서의 주권을 세속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고, 그리고 몸과 마음을 위하여 필수적인 모든 것들에 있어서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만을 기대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에 관한 두 번째 부분은 서로가 조심스럽게 균형을 이룹니다. 한쪽은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신데, 그러면서도 하나님은 하늘에도 계신 그런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은 지상의 아버지가 아니시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아버지되심을 올바른 차원에서 기억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기도 시에 하나님을 결코 인간적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이따금 하나님께서 우리의 학교 친구나 혹은 단지 사람에 불과한 것처럼 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하나님은 정말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은 항상 전능하신 하늘의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의 경우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에 관한 영적인 생각의 균형을 위한 좋은 실례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의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창 18:17)라고 말씀하실 때, 당신의 부성애적인 성품을 보이셨고, 나아가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친구’라고까지 부르셨습니다(약 2:23). 하지만 아브라함은 천상의 아버지는 실제로는 전능하시고 무한한 영광의 하나님이신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이 말씀하여 가로되 티끌과 같은 나라도 감히 주께 고하나이다”라고 자신을 한없이 낮추어 겸손히 말씀을 올렸던 것입니다(창 18:27).

우리는 기도할 때 일반적으로 하나님께 대한 어떤 그림을 마음에 품습니까? 혹 눈을 감고 기도할 때 희미하게 사람의 그림을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우리로서는 이 세상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자연스러움이 쉽게 일어납니다. 그러나 이것은 명백한 잘못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주님의 모습이나 품성을 세상적 관점으로 생각해서는 결코 안 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고전 5:16)라고 가르칩니다. 사도 베드로는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께 대해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라”(벧전 1:8)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천상의 아버지와 그리스도를 지상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에 대항하여 싸워야 합니다.

‘주님의 기도’는 두 번에 걸쳐 천상에 대해 말합니다. 그러면 천상은 어디에 있습니까? 고린도후서 12장 2절을 보면, 성경은 세 가지의 종류의 천상을 말하는 것을 봅니다. 첫 번째 천상은, 지상 위의 공기에 구름이 떠 있는 곳으로 바로 하늘 그 자체입니다(시 104:12). 두 번째 천상은, 별과 행성들이 있는 공간 밖입니다(창 1:14; 시 33:6). 세 번째 천상은, 하나님의 영광(시 103:19; 왕상 8:27)과 영광의 그리스도와 그의 천사들과 성도들이 거하는 거처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지옥을 포함하여 어디든지 계시지만(시 139:8),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영광은 천상으로 불리는 특별한 장소에서 분명히 나타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몸과 영혼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우리에게 주실 수 있으십니다. 아울러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기를 확신 있게 기대합니다. 하나님에게는 어려울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Posted in 오늘의 신앙고백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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