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월 13일(SUN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45주차(116-119문답)

[제116문] 그리스도인에게 기도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대답]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감사의 중요한 부분인데(시 50:14-15; 살전 5:17-18), 또한 하나님께서 그의 은혜와 성신을 오직 탄식하는 마음으로 쉬지 않고 구하고 그것에 대해 감사하는 사람에게만 주시기 때문입니다(마 7:7-8; 눅 11:9-10, 13). 

신앙고백문답은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순종하고 감사함으로 섬겨야 하는가를 가르치는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조심스러운 설명 다음으로 기도를 설명하면서 끝을 맺습니다. 신앙고백이 가르치는 기도는 감사의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율법과 기도 양면은 우리의 성화와 감사의 삶을 만들어 냅니다. 우리가 원리상으로는 율법이나 기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지만, 그럴지라도 경험상으로는 기도와 순종으로 우리는 의롭게 되고 개심하게 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율법에 대한 우리의 복종은 기도로서 구체화되어야 하고, 이렇게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하나님의 율법과 그의 뜻에 순종하기 위한 목적으로 은혜를 구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제116문답과 117문답은 기독교인의 기도에 관한 중요한 주제를 가르칩니다. 이때 우리를 전적으로 숙지시키는 것은 ‘주기도문’이라는 명칭의 하나님을 경외하는 기도의 완전한 모델에 대한 설명입니다. 먼저 제116문답은 기도의 절대 필요성을 고백하고, 이어서 제117문답은 기도의 본질을 고백합니다. 이들에 따르면 기도는 기독교인에게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 이유 때문에 필요합니다.

첫째, 감사의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첫 번째 방법입니다. 진실로 성도는 거룩하게 사는 것과 더불어 하나님과 다른 사람 앞에서 사랑의 삶을 사는 것으로서 자신의 감사를 하나님께 보여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개인적인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가 하나님께 아뢰기를 원하시고, 이때 우리의 마음에 들어 있는 것을 진솔하게 고백하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은 주님께로부터 치료 받은 문둥병자가 다시 돌아와 감사한 사건에서 잘 나타납니다. “큰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의 발 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더라”(눅 17:15-16).

시편 기자는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라고 선포합니다(시 103:1). 기독교인만이 주님께 진실로 기도할 수 있고, 실제로 모든 진실된 기독교인은 의당히 기도합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에게 기도할 것을 요구하시고, 그리고 성신께서도 기도할 수 있도록 우리 안에서 역사해주십니다.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 마음이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시 27:8). 찬양으로써 드리는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께 할 수 있는 기도 형태들 중에서 가장 숭고한 경외입니다.

둘째, 기도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성신을 제공하는 수단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의 은혜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그러나 그것을 위한 우리의 간구(간청)를 제쳐 놓지는 않았습니다. 주님은 우리 자신이 아는 것보다도 더 우리의 필요를 잘 아십니다(마 6:8).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그러한 필요를 얻기 위하여 직접 간구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예수께서는 두 개의 비유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자녀들에게 은혜를 주시기에 앞서 먼저 기도할 것을 요구하신다는 사실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누가복음 11:5-13은 만약 우리가 하나님께 계속해서 간청하면, 결국에는 감동하셔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신다는 것을 가르치는 ‘간청하는 친구’의 비유입니다(8절, 13절). 누가복음 18:1-8도 역시 집요하게 원하는 것을 요구하였기에 결국 원하는 것을 갖게 되었다는 ‘간청하는 과부’의 비유입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7절)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혹 우리에게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계속해서 간구하고, 계속해서 구하고, 계속해서 두드리기를 원하시는데, 그런 후에 비로소 우리가 원하는 것을 주십니다(눅 11:9-10).

매일마다 매 순간마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성신이 필요합니다. 성신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들 중에서 가장 큰 것입니다. 성신께서는 하나님의 은혜와 호의를 가져와서 다른 모든 하나님의 은사와 함께 우리를 거룩하게 해주십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우리는 매일 같이 성신과 은혜를 달라고 하나님께 간청해야 합니다. 어떻습니까? 진정 기도는 당신의 음식이나 공기와도 같이 당신의 삶 속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부분입니까?

[제117문]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들으시는 기도는 어떠한 것입니까? [대답] 첫째, 그의 말씀에서 자신을 계시하신 유일하신 참 하나님에게만(요 4:22-23; 계 19:10) 그가 우리에게 구하라고 명하신 모든 것을(잠 28:9; 롬 8:26; 약 1:5; 요일 5:14) 마음을 다하여 기도합니다(시 145:18-20; 약 1:6-9; 4:3, 8). 둘째, 우리 자신의 부족과 비참함을 똑바로 철저히 깨달아 그의 엄위 앞에 겸손히 구합니다(대하 7:14; 20:12; 시 2:11; 사 66:2). 셋째, 비록 우리는 받을 자격이 없는 자들이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에서 약속하신 대로(시 27:8; 마 7:8), 우리 주 그리스도 때문에 우리의 기도를 분명히 들어주신다는 이 확실한 근거를(단 9:17-19; 요 14:13-14; 15:16; 16:23; 엡 3:20-21) 우리는 가지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기도 같지 않다고 생각되는 그런 기도를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과거의 기도가 지금 느끼기에 기도가 아니었다고 생각되는 그런 기도를 기억할 수 있습니까? 아마도 과거의 몇몇 기도들이 창피하게 느껴지는 경우들이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도는 결코 기계적이어서는 안됩니다. 기도는 항상 마음으로부터 나와야 하고, 실제로 마음의 신실함에서 우러나오는 요청이어야 합니다. 게다가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에 대한 표현이어야 합니다.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요일 5:14). 그래서 기도는 우리가 성경에서 배운 바에 입각한 말씀으로써 하나님께 계속해서 아뢰는 완벽한 영적 기술입니다. 사도들은 기도를 가르칠 필요가 있었고, 실제로 기독교인들에게 가르쳤습니다(눅 11:1; 롬 8:26-27). 성신께서는 말씀을 쓰심으로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위하여 기도해야 하는지를 가르치십니다.

이 문답은 참된 기도의 본질을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참된 기도가 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첫째, 기도는 성경에 계시된 삼위일체 하나님께 온 마음을 다하여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의 절대자이신 하나님께서 인정하시지 않는 어떤 기도나 또는 삼위일체의 이름으로서가 아닌 기도는 거짓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는 유대인이나 현대주의자들이나 기타 그런 사람들의 기도는 거짓된 기도입니다. 마리아의 이름이나 다른 성인들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기도는 거짓 기도입니다. 기도는 필히 성신의 은혜를 힘입어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드려져야 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기도는 진실한 믿음인 온 마음으로서 드려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중 마음을 미워하십니다(약 1:6-7).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하라고 명령하신 모든 것들을 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앞으로 ‘주기도문’을 논할 때, 이 문구가 충분히 설명될 것입니다(제118문답 참조).

둘째, 기도에는 겸손과 회개가 수반되어야 합니다. 스스로 의로운 태도로 기도하는 것이나 또는 스스로의 확신과 교만은 기도의 본성에 매우 어긋나는 것입니다. 기도는 ‘신적 위엄’ 앞에서, 자신은 죄인이고 무가치한 사람이고 그리고 하나님의 모든 선한 일에 가치가 없고, 그리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자비에 의존되어야 한다고 인정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바리새인과 세리의 이야기는(눅 18:9-14) 스스로 의롭게 여기는 것과 자신의 죄를 자책하는 기도의 차이가 어떻게 다른가를 보여줍니다.

셋째, 기도는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와 진가에 기초를 두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이십니다. 그리스도는 항상 살아 계시면서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는 우리의 유일한 대제사장이십니다(히 7:25).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올 수 없습니다(요 14:6). 그러면 이상의 말은 모든 기도 후에는 꼭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를 덧붙여야 한다는 의미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모든 기도는 우리를 구속하신 중에 아버지께로 인도하시는 우리의 대제사장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로소 하나님께서 들으신다는 데 대한 의식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합니다.

위의 세 가지 특징은 모든 참된 기도의 표시입니다. 기도에는 경배, 고백, 감사, 그리고 기원과 같은 다양한 측면이 있지만, 기도의 개별적인 내용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이 길든 짧든, 그것은 분명 겸손한 마음으로부터 비롯되어야 하고, 유일한 중보자시며 중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존귀하신 하나님께 드려져야 합니다. 우리는 종종 “기도한다”라고 하는데, 하지만, 실제로 우리는 얼마나 자주 진실한 마음으로 기도합니까?

[제118문] 하나님께서 당신께 구하라고 우리에게 명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대답] 영혼과 몸에 필요한 모든 것인데(마 6:33; 빌 4:6; 약 1:17), 그것들은 그리스도 우리 주께서 친히 가르쳐 주신 기도에 다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께 구하라고 우리에게 명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이 질문은 제 117문답의 처음 부분이 말하는 바를 설명하려고 제기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간구할 모든 것에 대해 하나님께서 명령하셨습니다”라고 아룁니다. 이것은 무척 중요한데,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간구하라고 말씀하신 것만을 간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에 반대되는 한 어떤 것도 요구할 수 없습니다.

야고보는 이기주의적인 이유로 기도하는 사람을 질책합니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약 4:3). 어떤 부흥사들은 강한 믿음으로써 기도할 경우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대로 받을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사실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구할 수 있을 때라야 하나님께서도 들으시고 응답하실 것입니다(요일 5:14).

이 문답은 우리의 일상 기도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진실한 간구가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가르쳐줍니다. 간절한 간구 그 자체가 우리의 기도의 유일한 요소인 것은 아닙니다. 동시에 우리는 찬양하고 감사하며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것도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 문답의 답변은 우리의 영혼과 육체가 필요로 하는 개인적 필요를 위한 우리의 간청을 제한합니다. 우리 자신의 필요보다 앞에 놓아야 할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주기도문’이 가르치듯, 첫째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의 왕국이 확장되기를 간구해야 하며, 두 번째로 우리 자신의 필요를 위해 간구할 수 있습니다. 그것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영적인 필요입니다. 우리의 첫 번째 영적인 필요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그리고 인내로써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 순종케 하기 위해서 필요로 하는 은혜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가장 중요한 필요를 육체적이고 지상적인 것에서 찾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은 아닙니다. 육체가 치료받는다거나 또는 지상에서의 즐거움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가 첫째입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가르치신 위대한 교훈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지상적 행복과 번영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믿음이 없는 자의 자세로 ‘이방인의 모습’입니다(마 6:32-33). 우리의 영적 필요는, 특별히 괴롭고 고통 가운데 있을 때 매일 같이 죄에 대한 용서를 구하는 것을 포함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지속적으로 성령으로 새롭게 되고, 그리고 기독교인으로서의 감사의 외적 열매는 맺는 것입니다.

둘째, 육체적 필요입니다. 육체적 필요는 항상 두 번째이고 덜 중요합니다. 우리가 살펴볼 제125문답의 주기도문에는 건강, 음식, 옷, 재산, 평화스러운 생활 등등 우리의 육체적 필요에 관한 간구를 다룹니다(잠 30:8; 약 5:15). 하지만, 육체의 필요를 위하여 기도할 때 ‘만약 하나님의 뜻이라면’이라는 측면을 기억한다면, 결코 그것들 자체를 하나님께 강력히 요구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 스스로가 친히 모범을 보이신 것입니다(마 26:39; 눅 22:42). 그러나 은혜와 성신과 같이 우리의 영적인 필요를 위한 간구에는 “만약 하나님의 뜻이라면”이라는 말이 필요 없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구원의 진보를 위해서는 이와 같은 본질적인 은사가 필요하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하튼, 예수님께서는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18:1). 우리는 하루 하루의 삶을 위해서도 매일매일 기도에 더욱더 힘써야 합니다. 실제로 주님은 우리가 관심을 갖는 모든 것들, 곧 우리의 건강, 우리의 교육, 우리의 데이트, 우리의 가족,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들과 친족, 우리의 일, 크고 작은 우리의 모든 문제들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119] 주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는 무엇입니까? [대답]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며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마 6:9-13; 눅 11:2-4). 

“주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는 무엇입니까?” 예전에 이 기도문은 더 정확하게는 ‘제자들의 기도’라고 불리었는데, 이것은 우리 주님 스스로를 위한 것이 아니고 제자들이 사용하도록 가르치신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하신 기도는 마태복음 11: 25-27까지, 누가복음 22:41-45절지 그리고 23:34-46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께서는 ‘주기도문’을 사용하지 않으셨습니까? 그 이유는, 다섯 번째 부분이 죄 용서에 대한 요청인데, 예수께서는 용서 받을 죄가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주기도문은 실제로 완벽한 기도이며, 기도의 유형과 모델을 제시해 주시려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친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마 6:9)라고 하신 것입니다. 물론 주기도문만이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기도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신약은 사도들이 다른 형식의 기도를 한 것을 보여줍니다. 누가복음 11:1-4은 이 주기도문의 내용에 대한 약간 다른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럴지라도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때문에 우리는 마태복음 6:9-13까지의 번역만이 유일하게 허용될 수 있는 기도인 것은 아님을 알게 됩니다. 이 모델의 기도는 오히려 잘못된 방법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사용된 단어들의 정신을 무시하고 기계적으로 또는 미신적으로 단지 암송하듯이 하기 때문입니다. 그럴 경우 ‘중언부언’(마 6:7)하는 방식으로 주기도문을 사용하는 나쁜 선례가 되는 것입니다. 모든 기도를 위한 완벽한 모델이 되게 해주는 주기도문의 중요한 요소들을 간략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개종한 사람들만을 위한 기도입니다. “우리의 아버지”라고 한 단어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게 된 참된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사용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모임에서 이 기도를 사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죄인이 기도해야 하는 유일한 기도는 용서와 구원을 위한 것입니다.

둘째, 간략하지만 완결된 것은 아닙니다. 어린아이일지라도 이것은 짧은 순간에 기도할 수 있는데, 그럴지라도 이 기도에는 하나님을 향한 참된 기도의 모든 본질적인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모든 기도가 이것만큼 짧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가령, 열왕기상 6:12-42까지의 솔로몬의 기도는 7배나 더 깁니다. 그러면서도 이 기도는 억지로 오래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많은 아름다운 말에 감명받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직설적으로 솔직하고 정직하게 말하길 원하십니다.

셋째, 순서가 완전합니다. 시작 말부터 하나님께 두었고, 그리고 세 가지의 기원이 뒤따르는데,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 왕국의 도래입니다. 그리고 또 다시 세 가지 간구가 뒤따르는데,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의 필요에 관한 것입니다. 주기도문은 의미 있는 송영과 신성한 아멘으로 마칩니다. 결국 이 기도는 전체적으로 하나님 중심적이지 사람 중심적이 아닙니다.

넷째, 다른 사람을 위한 간구도 역시 있습니다. 이것은 복수 형태인 데서 알 수 있습니다. 복수 대명사 ‘우리의’, ‘우리’, 그리고 ‘우리를’ 등은 우리 자신 뿐 아니라 다른 기독교인의 필요도 항상 기억해야 한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주기도문에서 보는 원리 외에 기도에 대한 다른 성경적 법칙들에 관해서도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첫째, 우리의 기도는 항상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목표 삼는 하나님 중심적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그의 왕국의 영광이 항상 첫째이고, 우리는 오로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 우리의 기도는 믿음으로 행해져야 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 또는 하나님으로부터의 응답도 받을 수 없습니다(마 21:21-22; 히 11:6).

셋째, 우리의 기도는 명확해야 합니다. 우리는 막연하게 기도해서는 안 되고, 하나님께 분명한 것, 명확한 문제와 사람 그리고 일이나 사건에 관하여 말씀 드려야 합니다(딤전 2:1-2). 예를 들면, 개인적으로 선교사들을 위하거나 또는 친구의 개종을 위하여 개인적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넷째, 우리의 언어는 분명한 경외심을 담아내야 합니다. 속어를 사용한다거나 되는 대로 하는 말은 왕 중의 왕이신 분께 적합하지 않습니다. 우리로서는 하나님께서는 항상 최고의 경외를 받으셔야 한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일부 사람들은 고대 영어의 대명사인 ‘당신을(에게)’, ‘당신’ 그리고 ‘당신의’ 같은 용어를 기도로써 하나님께 아뢸 때 사용합니다. 이러한 언어 형태는 그리 존중스러워 보이지 않습니다.

다섯째, 기도는 규칙적이고 자발적이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는 매일 기도를 위한 시간을 따로 할당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가령 다니엘은 매일 규칙적으로 세 번 기도했다고 했습니다(단 6:13). 그러나, 위급한 상황에서는 다윗이 그랬던 것처럼(시 38:22; 69:1), 호흡이 기도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항상 방심하지 않고 대기하듯이 하늘 아버지께 말씀 드려야 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살전 5:17)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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