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 30일(SUN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43주차(112문답)

[제112문] 제9계명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대답] 우리가 어느 누구에게도 거짓 증언을 하지 않고(잠 19:5, 9; 21:28), 다른 사람의 말을 왜곡하지 않고(시 50:19-20), 뒤에서 헐뜯거나 중상하지 않으며(시 15:3; 롬 1:30), 어떤 사람의 말을 들어보지 않고 성급히 정죄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이 성급히 정죄하는 데에도 참여하지 않기를 원하십니다(마 7:1-2; 눅 6:37). 오히려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를 당하지 않기 위해(레 19:12; 잠 12:22; 계 21:8) 본질적으로 마귀의 일인 모든 거짓과 속이는 일을 피해야 합니다(요 8:44). 법정에서나 기타 다른 경우에도 우리는 진리를 사랑하고 정직하게 진실을 말하고 고백해야 하며(고전 13:6; 엡 4:25), 할 수 있는 대로 이웃의 명예와 평판을 보호하고 높여야 합니다(삼상 19:4-5; 벧전 4:8). 

제9계명은 우리로 하여금 이웃의 이름과 진실을 존중하게 합니다. 우리의 이웃의 명예와 평판은 그 사람 자신의 고유한 권리입니다. 그러므로 거짓말이나 좋지 않은 험담으로써 그의 명예와 평판을 떨어뜨리는 것은 작은 죄가 아닙니다.

제112문답은 오직 이 9계명만을 집중적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때 계명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양면을 보게 됩니다. 진실을 말하라고 명령하는 이 계명의 배후는 하나님 자신이 스스로 진리이시며 모든 진실의 근원이시라는 사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신명기 6장 4절을 봅시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요 14:6)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요한일서 5장 7절에서는 “성령은 진리니라”라고 했습니다. 요한일서 5장 20절 역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라고 선언합니다.

진실을 아는 것과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마땅히 하나님을 알기 때문이고, 그렇다면 대체적으로 기독교인이기 마련입니다. 불신자들은 예외 없이 모든 진실을 대적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 자신을 대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연인을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다”라고 했습니다(롬 3:13). 또한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3:4)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시편 58장 3절도 보십시오.

불신자들이 비록 많은 것을 배우고, 그리고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가 지니고 있는 모든 지식은, 어떠한 진리도 없어서 ‘거짓의 아비’로 불리는 사탄을 섬기는데 사용됩니다(요 8:44). 사탄은 최초이자 가장 악한 거짓말쟁이입니다. 그리고 그의 모든 자식들은 아비의 악한 행위를 철저히 본받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본능적으로 제9계명을 범하는 죄인이어서, 어떤 경우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진실을 사랑하거나 진실을 말하지 않습니다. 이제 이웃을 존중해야 하는 이 계명을 우리가 쉽게 범하는 경우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거짓 증언’입니다. 이것은 거짓말하는 것과 관계됩니다. 거짓 이야기를 만들어내든지 아니면 사실을 왜곡시킵니다. 그래서 공정한 영역에 잘못된 영향을 끼칩니다. 특별히 법정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진실을 말하겠다고 서약할 때, 그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거짓말을 하는 행위는 무서운 죄입니다. 이런 종류의 거짓말을 위증이라고 합니다. 위증죄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둘째, ‘다른 사람의 말을 왜곡’합니다. 이것은 다른 내용을 전달하려고 의도적으로 본래의 의미를 바꾸는 적극적인 행동입니다. 이것은 심지어 무의식 중에서도 행해지는데, 종종 정확하지 않든지, 아니면 사람들이 하는 말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보도하는 뉴스 기자들에 의해 행해지기도 합니다. 결과적으로 진실을 심각하게 잘못 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연루된 모든 사람에게 심각한 손해를 끼칩니다.

셋째. ‘험담과 비방’입니다. ‘험담’이란 뒤에 숨어서 악하고 해롭게 말하는 것을 통하여(진실한 사실을 보고할 경우일지라도), 누군가에게 치명적인 해를 입히게 됩니다. ‘비방’은 다른 사람에 관한 일에 있어서 진실과 사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헐뜯는 것입니다.

넷째, ‘다른 사람의 변명을 들어주지 않거나 또는 신중하지 못한 비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즉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는 태도와 관계됩니다. 이 계명은 거짓말을 하는 것 뿐 아니라, 증거가 불충분한 데도 그러한 말을 믿는 데서도 범해집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해 험담해서는 안 되고, 헛된 소문을 그대로 전달해서도 안 됩니다. 정말이지 세 치 혀를 각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쉴새 없이 들려오는 여러 가지 헛된 소문들에 조심해야 하고, 의심스러운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을 경계해야 합니다. 설사 우리가 다른 사람에 대한 나쁜 일을 알고 있다 할지라도, 첫 번째로, 우리는 개인적으로 질문하여 사실을 확인하여야 하고, 둘째, 그가 회개의 반응을 보일 경우 즉각 그 문제를 잊어버려야 합니다. 의도적으로나, 은연 중에 다시 반복하거나 타인에게 전달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아예 공개적으로 거짓말을 하거나 나아가 심지어 글을 쓰기까지 합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공개 석상에서 비난과 정정을 받게 될 것입니다.

왜 사람들은 거짓말을 합니까? 배후에는 ‘즐기기 위해’ 또는 ‘오락으로’ 그리고 여러 다른 이유들이 있습니다. 혹은 자신의 죄를 숨기기 위해, 또한 창피함을 피하려고 그렇게 합니다. 다른 사람을 증오하고 질투하기 때문에, 혹은 사업 거래에서 부당한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 그렇게 하기도 합니다. 계속 실례를 들자면 정말 쉽게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유가 무엇이든지, 거짓 증언을 제공하거나 거짓 말을 하는 행위는 하나님 앞에서 용서 받을 수 없는 일입니다. 보통 ‘작은 하얀 거짓말’이라고 하는 것 역시 하나님께서 좋게 보시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설혹 전도를 위한 것이라 할지라도 거짓 감동을 주는 것도 전적으로 거짓말입니다. 직접적 간증꾼들이 노골적으로 이런 죄를 범하기 쉽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결코 속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모든 말과 행동에는 진실을 사랑하는 모습이나 자세가 풍겨나야 합니다. 우리의 이웃의 명성을 존중해야 하고, 모든 험담과 모함과 거짓말과 속임을 몹시 싫어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이유는 당연히 진리의 하나님은 우리의 구세주시며 재판장이시기 때문입니다. 사탄과 마귀들처럼 거짓말을 즐기는 사람은 불타는 못에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계 21:8; 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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