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 23일(SUN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42주차(110-111문답)

[제110문] 제8계명에서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대답] 하나님께서는 국가가 법으로 처벌하는 도둑질과(출 22:1; 고전 6:10) 강도질만을(레 19:13) 금하신 것이 아니고, 이웃의 소유를 자기의 것으로 삼으려고 시도하는 모든 속임수와 간계를 도둑질이라고 말씀하십니다(눅 3:14; 고전 5:10). 이런 것들은 폭력으로 혹은 합법성을 가장하고서 일어날 수 있는데 곧 거짓 저울이나 자나 되(신 25:3-15; 잠 11:1; 16:11; 겔 45:9-10), 부정품, 위조 화폐와 고리대금 같은 일, 기타 하나님께서 금하신 일들입니다(시 15:5; 눅 6:35). 하나님께서는 또한 모든 탐욕을 금하시고(눅 12:15; 엡 5:5), 그의 선물들이 조금이라도 잘못 사용되거나 낭비되는 것을 금하십니다(잠 21:20; 23:20-21; 눅 16:10-13). 

첫째, 소유권 개념부터 정의해 보겠습니다. 제8계명에서 “도둑질하지 말라”라고 한 것은 이웃의 소유를 존중하라는 명령입니다. 이 계명의 배후에는 개인의 소유권은 하늘에 속한 권리라는 원리가 전제되어 있습니다. 각인의 재산은 개인에게 속해 있으므로, 힘을 행사하거나 속여서 다른 사람의 재산을 빼앗을 권리란 누구에게도 없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세상의 모든 재산은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시 24:1). 하나님은 인간에게 재산을 위탁하신 것이므로, 합법적으로 그 재산을 소유한 사람은 일차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데 사용해야 합니다.

하나님 아래 있는 개인 재산권은 ‘자본주의’라고 불리는 경제 제도의 근간이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사회생활을 위해서 자유와 재산권을 요구합니다. 미국은 개혁주의 신앙과 청교도 신앙이라고 하는 유산으로부터 받은 성경의 도덕법에 따라 세워진 나라입니다. 기본이 된 원리, 즉 사적 재산권, 경제적 자유, 정직한 돈(참 가치를 깨끗한 돈)을 국가 기본법인 헌법에 명시했습니다.

불신자들은 제8계명을 없애고 자유로운 ‘자본주의 제도’와 ‘사적 재산권’을 다른 종류의 사회제도로 바꾸려고 했습니다. 거기엔 자유가 없고 정부가 ’가난한 자들을 돕는다’는 명분 하에 땅, 재산, 사업체를 빼앗습니다. 이러한 불신자 정부는 자신들을 사회주의, 공산주의, 복지국가라고 부릅니다. 역사상 그러한 시도가 여러 번 있었고, 이따금 정부도 헌법을 어기면서까지 시도하려 합니다. 그 결과 교회를 핍박하게 되고 불신자인 독재자들이 사람들을 노예화합니다.

로빈후드의 이야기의 핵심은 부자의 돈을 훔쳐 가난한 자들을 돕는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악마를 도울 뿐이고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돈을 벌어 물건을 사고 재산을 소유할 권리를 주셔서 자신을 위해서도 살고 남도 돕도록 하십니다. 이웃 역시 동등한 권리를 갖고 있습니다. 정부는 개인의 권리를 보호해야 하고 부당하게 재산을 몰수하거나 과도한 세금을 물리거나 노동의 권리를 제한해서는 안됩니다. 아합 왕은 나봇의 포도원을 강탈했고(왕상 21장), 르호보암 왕은 과도한 세금을 부과하는 죄를 지었습니다(왕상 12:3-4, 14, 16). 정부는 나름 세금을 받을 수 있지만, 원칙적으로 하나님의 재산이요, 하나님께서 만인에게 동등의 소유권으로 베푸신 땅과 그 땅의 상속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비성경적입니다.

소유와 재산에 대한 권리는 하나님에 대한 의무 안에서 제한을 받습니다. 재산을 얻을 권리는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것입니다. 자신이 가진 돈과 재산을 완전히 자기 개인만의 것인 양 주장할 수 없는 것은 우리의 몸과 영혼을 자기 것이라고 주장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돈, 재산, 몸, 영혼 모두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단지 하나님의 재산을 맡은 청지기이자 관리인일 뿐입니다.

둘째, 소유권을 깨트리는 도적질에 대해서 보겠습니다. 제8계명을 어기는 도적질의 양상은 의외로 다양합니다. 저울이나 자를 속이는 식의 아주 초보적인 데서부터 시작하여, 장사나 사업에서 대대적이고도 좀 더 교묘하게 속이는 것이 있습니다. 돈을 위조하는 것도 죄이지만, 궁핍한 형제에게 돈을 빌려주고 과도한 이자를 물리는 것도 사실상의 도적질입니다(레 25:35-36).

잠언에는 우리 이웃을 정직하고 공평하게 대하라고 요구하는 내용이 많이 있습니다.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잠 11:1), “한결같지 않은 저울추와 말은 다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느니라”(잠 20:10), “망령되이 얻은 재물은 줄어가고 손으로 모은 것은 늘어가느니라”(잠 13:11), “모든 수고에는 이익이 있어도 입술의 말은 궁핍을 이룰 뿐이니라”(잠 14:23). 또 다른 도적질의 형태에는 거짓된 광고, 훔친 물건 수용(잠 29:24), 빚을 갚지 않는 것, 임금을 지불하지 않는 것(레 19:13; 약 5:4), 기타 돈을 건 카드나 주사위 놀이, 일확천금을 기대하는 복권 사기 등등의 형식으로 사실상 도박을 하는 것 등입니다(잠 13:11; 16:8; 살후 3:10-12).

재산과 물건을 오용하고 낭비하는 것도 엄격히 말해서 제8계명을 어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것과 우리 자신의 것을 훔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라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런 선물을 적절히 사용하지 않고 낭비하는 것은 하나님과 우리 자신으로부터 빼앗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오 천명을 먹이신 후 남은 음식을 모으셨습니다(요 6:12). 제8계명은 하나님 아래 있는 자유민들의 경제적인 안녕에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제111문] 제8계명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대답] 우리가 할 수 있고 해도 좋을 경우에는 우리의 이웃의 유익을 증진시키며, 우리가 남에게 대접을 받고 싶은 대로 이웃에게 행하고(마 7:12), 더 나아가 어려운 가운데 있는 가난한 사람을 도울 수 있도록 성실하게 일해야 합니다(사 58:5-11; 갈 6:9-10; 엡 4:28).

제110문답은 8계명이 금하는 것을 대한 선포인 반면, 제111문답은 8계명이 요구하는 긍정적인 측면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웃의 재산을 훔치거나 이웃을 속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뿐 아이라, 나아가 이웃의 경제적인 면과 재정적인 면의 향상을 위해 자신의 능력이 허용하는 한 최선을 다해 자원하여 신경을 써야 합니다. 마태복음 7장 12절의 통상 ‘황금률’로 잘 알려져 있는 말씀에서 주님은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라고 하셨습니다. 주위에서 나에게 요구하는 이웃이 있으면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다 내어주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자신이 대접받고 싶어하는 만큼 자신도 이웃을 정직하게 대하고, 나아가 모든 영업이나 사업에서 올바른 거래를 하라는 말입니다. 그러한 까닭에 참으로 무엇을 필요로 하는 이웃이 있다면 그를 기꺼이 도우라는 것이기도 합니다. 자선을 베풀 때에 다음의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먼저, 자기 재산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일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 그렇다면 “… 먹지도 말게 하라”(살후 3:10)고 명령합니다. 일할 수 있는 사람은 모두 일해야 하는데, 일하지 않고 정부로부터 복지기금을 받으며 놀고 먹으려 드는 것은 사악한 일입니다. 누구나 일정한 직업을 갖고 일해야 하는 것은 자신의 생계 유지를 위한 필요이기 이전에 하나님께 대한 의무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재정적인 필요를 충족시키도록 우리가 생활비를 버는 것은 필수적인 일입니다.

둘째, 우리가 번 돈과 소유물은 실제로는 우리의 것이 아니라 모두 하나님의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는 하나님의 청지기이므로 가지고 있는 재산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사용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이 주신 모든 은혜들, 즉, 능력, 기회, 소유, 돈 기타 등등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이라는 데 대해서는 달란트 비유와 기타 여러 말씀들을 통해서 강조되었습니다(마 25:14-30). 부자인 것이 죄는 아니겠지만, 인색하게 사는 부자라면 분명 죄입니다. 물론 반대로 인색해서 가난해진 자도 죄인입니다. 무엇보다도 공통적으로 탐욕에 빠지고 사치에 빠져 돈을 함부로 쓰는 허영의 삶은 하나님의 선물을 잘못 사용하는 것입니다.

셋째, 우리의 선행은 개인적으로 기회 있을 때마다 시행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교회 공동체 유지’와 ‘교회 공동체를 통해서’라고 하는 원리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우리의 봉사와 선행을 하나님께서 받으신다는 차원에서 ‘하나님께 바친다’ 하는 형식을 취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소득에서 어느 정도를 연보 형식으로 교회에서 드리면 좋겠습니까? 구약에서는 10분의 1을 십일조라는 명목으로 드려야 하는 것이 원칙이었습니다. 싫든 좋든 바쳐야 하는 의무였습니다. 예수님은 구약시대 때 요구된 이 원칙을 강조하셨습니다(마 23:23).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사역에 근거하여 교회 시대가 열리게 되자, 그리하여 구약의 의식 제도가 폐지되게 되자, 그러한 의식이 지향하던 정신이 활성화됨에 따라 좀 더 자유롭고도 책임 있는 원칙이 설정되었습니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 9:7). 자신이 속해 있는 교회의 활성화를 위해 최선을 다해 기여하는 것이야 말로 온전한 헌금 행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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