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 2일(SUN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39주차(104문답)

[제104문] 제5계명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대답] 우리의 부모님, 그리고 내 위에 있는 모든 권위에 대하여 모든 공경과 사랑과 신실함을 나타내고, 그들의 모든 좋은 가르침과 징계에 대해 합당한 순종을 하며(출 21:17; 잠 1:8; 4:1; 15:20; 20:20; 롬 13:1; 엡 5:22; 6:1-2, 5; 골 3:18, 20, 22), 또한 그들의 약점과 부족에 대해서는 인내해야 합니다(잠 23:22; 벧전 2:18). 왜냐하면 그들의 손을 통해 우리를 다스리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마 22:1; 롬 13:2, 4; 엡 6:4; 골 4:1). 

일반적이고 개혁적인 이해에 따라(제93문답), 두 번째 돌판은 하나님을 경외함에 기반을 둔 우리의 이웃에 대한 의무로부터 시작합니다. 이들 여섯 개의 계명들은 두 번째 돌판에 아마도 아래의 제목들로 되어 있을 것입니다.

5번 - 모든 합법적 권위에 대한 우리의 의무

6번 - 우리 이웃의 생활에 대한 우리의 의무

7번 - 우리 이웃의 결혼에 대한 우리의 의무

8번 - 우리 이웃의 재산에 대한 우리의 의무

9번 - 우리 이웃의 이름에 대한 우리의 의무

10번 - 하나님의 섭리를 존중하는 우리의 의무

다섯 번째 계명은 자녀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부모를 공경할 것과 그에 따라 행복하게 오래 살 것에 대한 기대를 말합니다. 신앙고백문답은 정확하게 ‘나를 지배하는 권위의 모든 것’을 포함시키며 확대합니다.

이 계명의 배후에는 하나님께서 사람 가운데 여러 종류의 권위를 세워 놓으셨다는 진리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한 종류 아니면 여러 종류의 권위 아래 있습니다. 다른 권위들로부터 벗어나려고 시도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반역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수 많은 젊고 늙은 사람들이 오늘날 시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유’를 원한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마땅히 받아 들여야 하는 여러 가지 종류의 권위를 살펴봅시다.

첫째, 가정입니다. 우리를 위한 권위 문제는 가정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모들이 아이들을 지배하게 하셨습니다. 모든 아이들은 그들의 부모님께 존경, 사랑, 믿음을 보여야 합니다. 에베소서 6장 1절부터 3절은 이 계명에 대한 신약적 해석을 제공합니다. 아이들의 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 약속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불순종하는 아이들은 만일 회개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선하지 않다는 것을 보이는 것이기에 결국 지옥을 준비하는 악한 아이들인 것입니다.

둘째, 학교입니다. 학교의 선생님들은 부모님들을 대신하여 아이들의 정규 교육에 관한 한, 마치 부모와도 같은 역할을 합니다. 아이들은 마땅히 자신들의 선생님에게 복종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을 경우 그들의 부모로부터 받을 징계를 예상해야 합니다. 아이들은 하나님께서 부모들에게 주신 것이지 국가가 준 것이 아닌 것처럼, 학교는 정부가 아닌 부모들에 의해 운영됩니다. 공산주의에서는 아이들의 주인이 국가이기에, 학교는 부모가 아닌 국가에 복종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는 혹시라도 공산주의가 되어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셋째,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는 사람들을 교회 직분자들의 권위 아래 두셨습니다. 성도들은 마땅히 교회의 통치에 복종해야 하는데(히 13:17),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그들 뒤에 계시면서 그들을 통해 성도들을 통치하시기 때문입니다.

넷째, 시민 정부입니다. 경찰, 재판관, 관리자, 대통령, 그리고 의원과 같은 우리의 정부 통치자들은, 불신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사람으로부터가 아니요, 사실상 하나님으로부터 그들이 행사하는 권위를 부여 받았습니다. 그리고 공무원들이 설혹 기독교인이 아니라 할지라도, 기독교인들은 마땅히 그들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로마서 13장 1절부터 7절은 성도들이 정부의 지도자들에게 복종하고 그들을 존중해야 할 의무를 확실하게 가르치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권세를 주셨고, 그들을 ‘하나님의 자신의 대행자(종)’로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다섯째, 고용주입니다. 성도들이 자신들의 고용주를 대항하여 파업을 하고 반란을 일으키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여 반란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18절을 읽어봅시다.

여섯째, 나이가 많은 윗사람입니다. 레위기 19:32은 “너는 센 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니라”라고 가르칩니다. 성도는 마땅히 노인들을 공경해야 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이러한 부분에 있어서 얼마나 많은 부족한 모습들이 드러나고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이와 같은 윗사람들을 마땅히 공경하고 순종해야 하는 주된 이유는, 그들이 우리보다 강하거나 지혜롭기 때문이 아니요,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서 그들을 우리 위에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교회 장로들은 도시에서 도로의 질서를 잡는 교통 경찰에게 복종해야 하고, 동시에 기독교인 교통 경찰은 교회 장로들이 하나님의 법을 집행할 때 그들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여러 방면에서 서로 간에 하나님의 권위 아래 놓여져 있습니다.

신앙고백문답은 완벽한 인간이란 없는 것처럼, 통치자들에게도 ‘결함들’이 있을 수 있음을 지적합니다. 그러나 통치자들의 그러한 결함들은 결코 그들에게 불순종하거나 그들에게 무례하게 굴기 위한 핑계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을 향한 복종에는 아주 중요한 한 가지 필요 조건 및 제약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사람이나 혹은 사람의 모임이 하나님의 뜻에 반대되는 복종을 요구할 경우라면, 그 때는 마땅히 불복종해야 합니다. 그러한 경우였으므로 다니엘은 왕의 명령에 불복종했습니다. 또한 사도들은 산헤드린이 복음을 전하지 말라고 명령했을 때 복종을 거부했습니다. 이러한 경우에는 그것이 우리에게 투옥과 죽음을 의미한다 할지라도 실로 베드로처럼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행 5:29; 4:17-20)라고 외치면서 용기 있게 나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경우 외에 성도는 일체의 권위에 복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께서 세우신 권위에 순종하는 사람들을 사랑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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