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18일(SUN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37주차(101-102문답)

[제101문]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으로 경건하게 맹세할 수는 있습니까? [대답] 그렇습니다. 국가가 국민에게 요구하는 경우, 혹은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의 복을 위하여 신뢰와 진리를 보존하고 증진시키는 데 꼭 필요한 경우에는 맹세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맹세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것이며(신 6:13; 10:20; 히 6:16), 그렇기에 구약과 신약의 성도들도 이것을 옳게 사용해 왔습니다(창 21:24; 31:53; 삼상 24:21-22; 삼하 3:35; 왕상 1:29-30; 롬 1:9; 9:1; 고후 1:23).

신앙고백문답 제101번과 102번은 세 번째 계명에 순종하는 맹세의 합법적이고 올바른 사용에 대해 다룹니다. 제101문답은 공적인 상황에서 맹세하는 것은 합법적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제102문답은 맹세의 특성을 가르칩니다.

종교개혁 당시 주님께서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마 5:34)라고 하신 말씀을 제시하면서 어떠한 맹세든지 다 금지해야 한다고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일부 교회들도 이러한 사상을 가르칩니다. 그러나 성경 다른 곳에서 증명하듯이, 그리스도께서 맹세 자체를 아예 금지하라고 하신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구약성경에서는 엄숙한 의식으로 서약할 것을 명령한 부분이 있습니다(신 10:20). 그리스도께서는 그러한 율법을 폐지하시지 않고, 완성하시고, 나아가 그것을 증대시키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대제사장이 맹세하라고 요구했을 때, 주님께서는 스스럼 없이 맹세하셨습니다(마 26:63-64).

맹세하는 것은 앞서 제99문답에서 보았고, 그리고 다음 문답에서도 볼 것인데, 이것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하든지 진리 혹은 약속을 만들거나 혹은 서원을 증언하는 행위입니다.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문제 앞에서의 맹세일 경우, 그때 사용하는 하나님의 이름은 사실상 하나님의 저주를 불러내는데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맹세하는 행위는 하나님을 증인과 재판장처럼 부르는 진지한 종교적인 행위입니다. 이 문답에서 다음의 사실을 배웁니다.

첫째, 맹세를 할 수 있는 적절한 기회에 관해서입니다. 행정관이 그것을 요구할 때 맹세할 수 있습니다. 당국자들은 어떤 필요한 경우에 문제의 진실성을 결정하기 위해 백성에게 맹세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출 22:10-11). 또한 다른 경우에도, 때로는 사람들에게 충실하고 신실한 맹세를 요구하는 것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스 10:5). 물론, 집정관이 죄를 짓는 문제를 맹세하라고 요구할 때는 당연히 거부해야 합니다.

맹세해야 하는 또 다른 법적인 경우는, 증인들로부터 진실을 입수해야 하는 교회의 법정에서입니다. 다른 경우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연설은, 엄숙하고 신성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신약성경 기록의 일부분에서 실제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완전한 진리를 순수히 말하고 있음을 그의 독자들에게 숙지시키려고 그렇게 했습니다(롬 1:9; 9:1; 고후 1:23; 11:31; 12:19; 갈 1:20; 빌 1:8; 살전 2:5; 딤전 2:7).

둘째, 맹세의 목적에 관해서입니다. 어떤 특별한 상황에서의 맹세가 허락되고 명령된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과 삶의 신실함과 우리 이웃들의 선을 위한 진리를 유지하려는 때문입니다. 그리고 법정에서 진리를 확정하기 위하여, 또한 사람들에게 그들의 상관에게 충성을 약속하는 데 대한 근거로서도 맹세는 필요합니다.  

진리를 말하거나 약속을 위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진노(를 생각하는 것)보다 더 숭고한 동기는 없습니다. 기독교인 사회의 건전성은 상호 진실을 말하는 것과 자신의 말에 대한 충실성에 달려 있습니다. 맹세는 보증을 위한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조지 워싱턴은 국민들 앞에서 직무에 대한 충성을 강조할 때, 국가를 건강하게 하는 성경적 맹세의 중요함을 인식했습니다. “만일 종교적 의무에 대한 각성이, 정의의 법정에서 조사의 도구인 맹세를 저버린다면 재산, 명예, 삶을 위한 보장이란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이겠습니까?” 그의 의미는 하나님께 대한 맹세에서 하나님의 권위를 인식했을 때에 비로소 민족도 설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법원과 시민 지도자들은 신성한 서약을 수행함에 있어서 얼마나 진지합니까? 중요함을 인식하고 있습니까?

[제102문] 성인이나 다른 피조물로도 맹세할 수 있습니까? [대답] 아닙니다. 정당한 맹세는 오직 홀로만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을 불러, 진리에 대해 증인이 되어 주시고, 혹 우리가 거짓으로 맹세할 경우에는 처벌하시기를 구하는 것입니다(롬 9:1; 고후 1:23). 이러한 영예는 어떤 피조물에게도 돌아갈 수 없습니다(마 5:34-36; 약 5:12). 

이 신앙고백문답에서는 특별히 맹세(oath)의 성격을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바르게 사용해야 할 것인가를 좀 더 자세하게 배웁니다. 신앙고백문답은 “성인이나 다른 피조물로도 맹세할 수 있습니까?”라고 묻습니다. 이 문제 앞에서 로마 가톨릭 교회는 위대한 ‘성자들’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것을 허락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거룩함이 보통 사람들보다 월등히 높고,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 가까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종종 성자들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것을 듣게 되는데, 특별히 영국계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많이 행해집니다. 그러나 아래 이유들에 따라 맹세는 오직 하나님의 이름만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만이 홀로 모든 진리의 제정자이시고 그리고 모든 진리의 판단자이십니다.

둘째, 하나님만이 홀로 사람의 마음을 살필 수 있고, 우리가 신실하게 진리를 말할 때, 하나님만이 홀로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일을 할 수 있는 피조물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맹세를 할 때에는 다윗의 고백처럼 진실한 마음으로 해야만 합니다.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시 139:4).

셋째, 하나님만이 홀로 거짓말쟁이와 맹세를 파기하는 자를 영원한 징계로써 심판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스스로 얼마든지 거짓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결코 사람에 의해 발견될 수 없을 수도 있지만,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시고 따라서 그러한 사람을 정의로 엄하게 다스립니다. 인간은 자신이 행한 모든 거짓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를 마땅히 두려워해야 합니다.

넷째,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자신의 선하심에 따라 진실을 말하는 자에게 축복하실 수 있습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이름을 들어 진실과 성실로 맹세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선하심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다섯째, 하나님의 이름으로 진리를 서약할 때 하나님 한 분만이 영광을 받으셔야 합니다.  

이상을 보아 오직 하나님의 이름만이 맹세에서 사용되어야 합니다. 맹세에 가깝게 관련될 수 있는 것은 서원(vow)입니다. 서원은 엄숙한 약속을 신성한 경우가 되게 하는 것으로 맹세와 비슷합니다. 둘 간의 다른 점으로는, 맹세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람에게 선언하거나 약속하는 것이고, 서원은 통상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지지를 받기를 희망하면서 자발적으로 약속과 의무를 하나님께 직접 하는 것입니다(창 28:20-22; 민 21:2; 삼상 1:11; 삼하 15:8).

“서원은 이행되거나(창 28:20), 하나님의 호위를 위해 돌아서거나(민 21:1-3), 하나님을 향한 열심과 헌신의 표현으로(시 22:25) 포기할 수도 있습니다(시 132:2). 서원을 하고 안 하는 자체는 죄가 아니지만, 하지만 만약 서원할 경우라면, 신성하게 구속되어야 합니다(민 23:21; 신 23:23)(New Bible Dictionary p. 1313)”. 서원은 ‘하나님께 바쳐진 선물(고르반)’에 관한 ‘유대인의 서원’의 경우에서 보듯이 죄가 될 수 있습니다(막 7:11). 바울이 한 서원(행 18:18; 21:23)은 일시적인 나사렛 서원으로, 경건한 유대인들을 위한 신실하고 적절한 행동이었습니다. 우리는 교회의 성찬 회원이 되기를 원하고, 결혼하고 싶어하고, 아이들에게 세례를 베풀 때, 그리고 사람이 교회의 직원으로 임명될 때에 하나님께 서원을 합니다. 이러한 서원의 사상과 자세는 거룩한 성찬에 참여할 때에도 또한 필요합니다.

모든 맹세와 서원이 우리가 죄 지을 것을 의미하는 경우조차에도 유지될 필요가 있는 것이겠습니까? 아닙니다. 마치 프리메이슨 비밀 결사대가 회원들에게 요구하는 비밀 맹세의 경우처럼, 잘못된 일을 하겠다는 약속 혹은 의무의 맹세를 지키는 것은 죄입니다. 그와 같은 약속은 신속히 파기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두 번째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헤롯은 세례 요한을 죽이겠다고 그의 양녀에게 맹세한 약속을 파기하지 않았으므로 결국 죄를 짓고야 말았습니다(마 14:6-9). 다윗은 나발과 그의 가족을 죽이겠다고 한 자신의 맹세가 잘못임을 알자 즉각 파기하므로 올바르게 행동했습니다(삼상 25:22, 32-34). 로마 가톨릭 신자와 결혼한 개신교 신자가 자신의 자녀들을 로마 가톨릭 교회의 믿음으로써 훈련 시킬 것을 서약(swear)하는 경우를 보는데, 이러한 서약은 그 자체로서 죄이고, 나아가 그것을 유지하는 동안 계속 죄에 거하는 것입니다.

신앙고백문답은 맹세와 서원을 가볍게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가르칩니다. 만약 죄스럽게 서약할 경우,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정당하게 서약한 것이라면, 우리는 자신의 말과 서원을 하나님 앞에서 지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결혼의 경우, 결혼 서원에 의해 형성된 관계는 오직 죽음만이 파기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맹세할 때 진실만을 말합니까? 물론 아닙니다. 우리는 항상 진실만을 말해야 하지만, 그러나 거짓말을 잘하는 습성을 지닌 까닭에, 맹세는 이 죄 많은 세상에서 요구되는 것입니다. 당신은 맹세가 천국에서도 사용될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Posted in 오늘의 신앙고백묵상.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