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11일(SUN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36주차(99-100문답)

[제99문] 제3계명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대답] 우리가 저주나(레 24:15-16; 민 22:5-6), 거짓 맹세(레 19:12), 또는 불필요한 서약으로(마 5:37; 약 5:12)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거나 잘못 사용하지 않는 것이며, 더 나아가 침묵하는 방관자가 되어 그러한 두려운 죄에 참여하지 않는 것입니다(레 5:1; 잠 29:24). 오히려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두려워하고 존경하는 마음으로만 사용하여(사 45:23; 렘 4:2), 우리가 하나님을 바르게 고백하고(마 10:32; 롬 10:9-10), 부르며(시 50:15; 딤전 2:8), 우리의 모든 말과 행실에서 그분이 영광을 얻도록 하는 것입니다(롬 2:24; 엡 4:29; 골 3:17; 딤전 6:1).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은 제99문답부터 102문답까지를 통해 십계명의 세 번째 계명을 설명합니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이 계명은 하나님의 이름을 향한 우리의 의무를 말합니다. 흔히 맹세할 때에 하나님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은 오늘날 아주 흔한 죄 중에 하나입니다. 조심성 없을 뿐 아니라, 무지한 사람들은 모독적인 말까지도 사용하는데, 심지어 공무원, 연예인 및 기타 공적 인물들의 입술에서조차 그런 것을 듣습니다. 그리고 책과 잡지에서도 그런 것을 많이 읽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라고 한 표현은 무슨 의미입니까?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인격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그림으로서가 아닌 그의 인격을 대변해 주는 모든 이름으로 나타내십니다. 아담이 짐승의 이름을 지을 때(창 2:19), 그것들의 본성과 특성을 기초로 했습니다. 구약에서 인간은 종종 그들의 특성 혹은 행위를 기반으로 이름이 불려졌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이름들은 그들의 성품을 묘사했습니다. 그래서 ‘이브’는 모든 ‘산 자의 어미’를 의미하고, ‘노아’는 ‘휴식’을 의미하고,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비’를 의미하고, ‘나발’은 ‘미련한 자’를 의미하고, ‘엘리사’는 ‘하나님은 구원이시라’를 의미합니다. 이렇게 구약시대 때 사람들조차도 의미 있는 이름을 가졌다면, 하나님의 이름은 더더욱 그러하므로 최고로 존중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에는 의미가 풍성하기 때문에 그것을 가볍고 불경건한 방법으로 사용하는 것은 가벼운 죄가 아닙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여러 가지 특별한 이름과 칭호의 경우는 하나님 자신의 특별한 측면을 계시합니다. 마치 국기가 나라를 표현하듯, 또는 사진이 그 속에 담겨 있는 친구나 친척들을 표현하듯, 그렇게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국기 위에 선다든지, 또는 특정한 사람의 사진에 침을 뱉는 것은, 그것들이 표현하고 있는 무엇 또는 누구를 모욕하는 것입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경멸하거나 가볍게 말하는 것)은 실제로 하나님 자신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레 24:11, 15). 하나님의 이름은 두 가지 방법으로 이해됩니다.

첫째, 자연에서 하나님의 일반적인 자기 계시입니다. 시편 8:1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을 하늘 위에 두셨나이다.” 모든 창조와 섭리는 하나님의 이름과 성품을 계시함으로써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도록 우리를 불러냅니다. 둘째, 성경에서 사용한 독특한 이름과 칭호에 의한 하나님의 특별한 자기 계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정식 이름인 ‘하나님’이라는 이름의 경우처럼, 여호와, 주님, 아버지,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 성령 등은 모두 성경이 계시하는 가장 흔한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서술적인 하나님의 칭호, 전능함과 같은 이름, 가장 높으신, 자비의 아버지, 거룩하신 분, 군대의 주인, 영원하신 분, 바위 등등의 칭호들은 하나님의 확실한 속성과 성품을 보여 줍니다.

세 번째 계명에서 ‘이름’이란 단어는 특히 하나님의 이러한 이름들과 칭호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또한 자연에서 하나님의 자기 계시에 적용됩니다. 사람은 자신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소중히 여기고, 경의의 심정으로 그것을 사용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나 신앙고백문답이 가르치듯이 죄인인 인간은 도리어 하나님을 미워하면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혔습니다. 신앙고백문답 제99번에 따르면 아래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힌 주된 형식 네 가지가 나옵니다.

첫째, 저주입니다. 이것은 저주를 말하거나 또는 어떤 물건이나 어떤 사람 위에 저주를 부어주십사 하고 하나님께 아뢰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종종 악한 말로 “지옥에 떨어져라!”라고 하지만, 사실 오직 하나님만이 모든 사람을 지옥에 보내는 권세를 가지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을 건 저주, 또는 저주 그 자체만도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인데, 이유는 확실히 저주란 하나님의 권세로부터 나와 발음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거짓 맹세 혹은 위증입니다. 이것은 진실을 말하려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를 취하는 것을 가리키는데, 거꾸로 거짓을 말하려고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부르는 것임과 동시에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잘못 사용하는 것입니다.

셋째, 불필요한 맹세입니다. 맹세, 또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은 오직 매우 진지하고 신성한 경우에 사용하는 것입니다. 일상적인 말을 하면서도 습관적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가볍게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의해 ...” 혹은 “그리스도에 의해 ...”와 같은 표현은 이 죄에 대한 대표적 실례입니다. 그러나 변질되었거나 혹은 무지한 까닭에 기독교인조차 쉽게 사용하는 다른 더 많은 ‘점잔 빼며 하는 맹세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5:34-37을 통해서 이와 같은 모든 거짓 맹세를 질타하였습니다.

넷째,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사람을 묵인하는 경우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이 계명을 어기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면, 역시 같은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신앙고백문답이 말하듯이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함부로 취급하는 모든 경우를 반드시 피해야만 합니다. 신성모독에 관여하는 사람을 볼 경우 과감하게 주의를 일깨워주어야 하고, 여하간 침묵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제100문] 맹세나 저주로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은 그들이 할 수 있는 대로 그러한 죄를 막거나 금하지 못한 사람들에게까지 하나님께서 진노하실 정도로 중대한 죄입니까? [대답] 진실로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보다 더 크고 하나님을 진노케 하는 죄는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이 죄를 사형으로 벌하라고 명하셨습니다(레 24:16).

제100문답은 세 번째 계명을 위반하는 사람을 대할 때에 우리가 취해야 할 의무를 고백합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의 끔찍한 죄에 대한 참가’와 관련한 앞의 문답에서 주어진 경고에 대한 자세한 설명입니다.

이 계명을 지킴에 있어서 우리가 단순히 입을 다물거나 신성모독을 직접 하지 않는 정도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실로 중요합니다. 다른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모습을 볼 때, 우리는 솔직하게 나서서 그것을 막아야 합니다. 이것이 세 번째 계명을 긍정적으로 적용하는 방식입니다. 기독교인으로서의 우리는 선지자들이므로(제31-32번문답 참조),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이름을 명백히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침묵으로 일괄하면서도 선지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침묵하는 선지자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그리스도인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이 거룩한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고 불손하게 말하는 것에 끌려 다닌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이의를 제기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것이고, 따라서 우리 역시 그리스도를 배신한 것이요, 정확하게 죄가 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근거 없이 사용하는 저주는 물론이고, 무의식적으로 무익하고 심지어 더럽기까지 한 농담거리로 삼는다거나 그러한 대화에 빠져드는 것은 명백히 하나님의 이름을 거스르는 커다란 죄입니다. 성경적인 주제들에 관한 농담일지라도, 그리고 기독교인들이 가끔 듣고 반복하는 그런 것들은, 비록 농담일지라도 하나님께 대한 끔찍한 범죄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과 관계된 농담을 해서는 안 되고, 그렇게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책망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방지 및 금지’ 문제와 관련하여 다른 사람 안에 있는 이 죄를 어떻게 예방해야 합니까? 이것은 쉽게 대답하기에는 힘든 질문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어떤 방법으로라도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 경우, 우리로서는 그에 대해 찬성하지 않는다는 자세를 확실하게 드러내 보여야만 합니다. 만약에 대화 중에 더러운 농담과 이야기가 나누어짐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계속 거기에 남아 있든지 웃든지 하면서 동조한다면, 우리 역시 죄를 범한 것입니다. 만약 상대방이 우리가 그의 신성모독을 비난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를 무시하고 고집을 부린다면, 그러면 우리로서는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죄를 미워하신다고 선포한 다음, 가능한 최선을 다해 그 사람을 무시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신앙고백문답이 우리를 일깨워주듯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죄는 결코 작은 죄가 아닙니다. 구약시대에서 그러한 죄는 죽음으로 처벌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 때, 하나님의 이름을 지키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부끄러워하는 사람은 반드시 회개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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