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7일(SUN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31주차(83-85문답)

[제83문] ‘하늘에 계신’이라는 말이 왜 덧붙여졌습니까? [대답] 하나님의 천상의 위엄을 땅의 것으로 생각지 않고(대하 6:18-19; 렘 23:23-24; 행 17:24-25), 그의 전능하신 능력으로부터 우리의 몸과 영혼에 필요한 모든 것을 기대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롬 8:31-32). 

우리는 믿지 않는 자(교리적인 오류)나 경건치 못한 자(도덕적인 잘못)들에 의하여 신성모독이 되지 않도록 잘 막아내기 위해서 주님의 만찬식을 잘 보호해야 하는 의무가 안수 받은 교회 직분자인 장로들의 사역에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제 제83문답, 84문답, 그리고 85문답을 통해서 이 일과 관련한 ‘교회의 권위’ 혹은 ‘천국의 열쇠’ 주제를 다루게 됩니다.

제83문답은 교회는 천국문(유형교회와 무형교회를 의미; 제54문답 참고.)을 열고 닫는 두 개의 ‘열쇠’를 지녔다고 고백합니다. 이에 대한 설명은 마태복음 16:19과 요한계시록 1:18; 3:7-8 등에 나타난 주님의 가르침으로부터 나옵니다. 여기서 열쇠는 ⑴ 공적인 교회의 설교와 ⑵ 공적인 교회의 훈련(권징)을 가리키는 것인데 모두 장로들의 권한에 속해 있습니다.

이러한 권한은 미물인 인간에게 너무 큰 권한을 준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어떤 개혁자들은 교회의 권위인 ‘열쇠’의 가르침을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다름 아닌 주님의 가르침에 따른 것이므로 조심스럽게 주의를 기울여 해석해야 합니다. 직무로서의 열쇠의 권한을 고려할 때 우선적으로 이해하여야 할 것은 신약성경이 가르치는 교회의 통치권에 관한 것입니다. 오늘날의 교회가 시행하고 있는 교회의 통치권에는 세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첫째, 신분상의 계급 제도가 있습니다. 감독, 주교, 대주교, 교황 등으로 구분하는 신분 계급 제도는 낮은 성직자는 자기보다 위에 있는 더 높은 성직자에게 속합니다. 이러한 정치 제도를 취하는 교회로는 로마 카톨릭 교회와 감리교회와 복음주의 연합 형제교회 등이 있습니다.

둘째, 회중 제도가 있습니다. 이는 지역의 회중이 최종 결정권을 갖는 입장으로 교회원의 입교와 출교 및 다른 교회의 문제들을 다룰 때에 온 회중이 투표로써 결정합니다. 다른 교회로부터 시작하여 지역 회중을 감독하기 위하여 특정한 권위를 행사할 장로나 기타 교회의 직분자를 두지 않습니다. 이 형태는 침례교회, 회중교회, 그리고 기타의 ‘독립 교회들’이 취하고 있습니다. 일부 독립 교회들은 엄한 회중정치가 아니라 장로들의 협의체가 좌지우지하기도 합니다.

셋째, 장로교회나 개혁교회의 제도입니다. 이러한 교회 정치 형태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⑴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로 인정합니다(엡 5:23). ⑵ 다스리는 공적인 장로를 인정합니다. 비록 사람들에 의해서 장로가 선택되지만, 그리스도의 권위로써 다스립니다(행 20:17-28; 고전 12:28; 히 13:17). ⑶ 모든 장로는 권위 면에서 상호 동등하다는 것을 인정하여야 하고, 각 교회에는 목사를 포함하여 최소한 두 명의 장로가 있어야 합니다(행 14:23; 벧전 5:1). ⑷ 총회나 노회로 불려지는 모임에서 다른 회중의 장로들을 만났을 때, 그들은 서로의 권위(대표성)를 인정하여야 합니다(행 15:22; 딛전 4:14). ⑸ 필요한 경우 지역 교회의 법정에서부터 최고의 교회 법정까지의 의제를 상정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행 15장).

교회의 정치제도와 관련하여 상기한 성경적 원리들을 인정하면서 모두 채택하고 있는 교회는 개혁교회와 장로교회뿐입니다. 이 제도야 말로 성경을 가장 적합하게 따르는 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직분자가 취임할 때에는 안수를 받게 되는데, 이러한 상징적 행위를 통하여 그들의 직분이 사람이 아닌 하나님에 의해 세워졌다는 사실이 공적으로 공표된 것이므로, 교회원들이 장로의 직분을 수행하는 자에게 온전한 존경과 순종을 보이는 것은 사활적으로 중요합니다.

[제84문] 거룩한 복음의 설교를 통하여 어떻게 천국이 열리고 닫힙니까? [대답]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공로 때문에 사람들이 참된 믿음으로 복음의 약속을 받아들일 때마다 참으로 그들의 모든 죄를 사하신다는 사실이 신자들 전체나 개개인에게 선포되고 공적으로 증언될 때, 천국이 열립니다. 반대로 그들이 돌이키지 않는 한 하나님의 진노와 영원한 정죄가 그들 위에 머문다는 사실이 모든 믿지 않는 자와 외식하는 자에게 선포되고 공적으로 증언될 때, 천국이 닫힙니다. 이러한 복음의 증언에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와 장차 올 세상에서 심판하실 것입니다(마 16:19; 요 3:34-36; 20:21-23). 

예수님은 베드로를 비롯한 다른 사도들에게 무엇이 되었든지 그들이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는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마 16:19; 18:18). 이것은 교회의 판단에 따라, 회개치 않는 경우 그들의 죄가 그들 위에 머문다는 선포요, 반대로 죄를 회개할 경우 죄인들이 자신들의 죄로부터 풀려난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물론 오직 하나님만이 스스로 용서하시거나 징계하시는 권세를 지니셨습니다. 그러나 교회로서는 누가 용서 받을 수 있고, 누가 용서 받을 수 없는지에 대해, 하나님의 권세를 대신하여 공적으로 공표할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제84문답에서 고백하는 교회의 공적 설교로서의 열쇠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사역자(그리스도에 의해서 교회를 통하여 부르심을 받고 임명된)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에,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무형교회(하나님 나라)의 문이 넓게 열렸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모든 회개하고 믿는 자들은 자신들의 죄가 용서되었고 영생을 받았다는 것이 참 설교자에 의해 확인됩니다. 설교자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롬 10:13)라고 선언해야만 하고, 또한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 1:16)라고 선언해야만 합니다.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의 왕국으로 들어가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만이 홀로 허락할 수 있지만,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목사들로 하여금 이 사실을 회중에게 선포하게 하십니다. 참 설교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에,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그를 통하여 선포하시는 것이고, 동시에 자신에게 굶주려 있고 목마른 자들에게 구원의 문을 열어주십니다. 

하지만 교회의 공식적인 설교의 열쇠는 또한 선포된 말씀을 듣는 많은 자들에게 문을 닫기도 합니다. 신실한 목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 들이기를 거절하는 모든 자들에게 심판을 확실히 선포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영원한 징벌이 개종하지 않는 자로서 오래도록 남아 있는 믿지 않는 자들과 외식하는 자들에게 임할 것입니다. 하늘 문은 그들에게는 꼭 닫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그들에게 어떤 의심도 없이 들려져야만 합니다(요 3:36; 눅 13:3).

그리스도의 복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목사에 의해 공적으로 선포되는 때라면 언제든지 ‘풀고’ 또한 ‘매는’ 일이 일어나는데, 그래서 구원의 문이 열리거나 닫힙니다. 듣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들이 어느 편의 문에 서 있는지 확실하게 통보 받게 됩니다. 말씀의 참된 설교는 중생했고, 용서받은 영혼인 경건의 표와 그리고 여전히 죄를 사랑하는 외식하는 자들은 징계 아래 있다는 표를 양면으로 선명하게 보여주어야만 합니다. 당신은 하나님께 대한 경건으로서 확신과 능력으로 율법과 복음을 설교하여 성도로서는 위로를 얻게 하지만 죄인으로서는 하나님의 주권 앞에서 떨게 하는 당신의 교회의 설교자를 위하여 얼마나 자주 기도합니까?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기 때문에 믿지 않는 자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구원받은 자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게 하는 냄새입니다(고후 2:16).

[제85문] 교회의 권징을 통해서 어떻게 천국이 닫히고 열립니까? [대답]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라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그리스도인답지 않을 경우, 먼저 형제로서 거듭 권고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신의 오류나 악행에서 돌이키지 않으면, 성례에 참여함을 금하여 성도의 사귐 밖에 두어야 하며, 하나님께서도 친히 그들을 그리스도의 나라에서 제외시키실 것입니다(마 18:15-18; 고전 5:3-5, 11; 살후 3:14-15; 딤전 5:20; 요이 10-11). 그러나 그들이 참으로 돌이키기를 약속하고 증명한다면, 그들을 그리스도의 지체와 교회의 회원으로 다시 받아들입니다(눅 15:20-24; 고후 2:6-8).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교회에 세우신 직분자들에게 두 개의 열쇠를 주셨는데, 설교의 열쇠와 교회 권징의 열쇠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두 번째 열쇠는 대부분의 교회들 속에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경시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적 개혁교회라면 신앙고백문답 제85문답에서 고백하는 바대로 교회적 권징을 열쇠로서 적절히 사용할 것입니다.

교회 권징의 열쇠 사용은 말씀 설교를 필히 따릅니다. 설교의 열쇠에 의하여 각 개인들이 예수 그리스도께로 회심하였고, 그리하여 천국에로 들여졌으므로, 그에 따라 그들은 두 번째 열쇠의 사용에 의하여 지역 회중인 유형교회에 소속되어야 합니다. 이때 장로들의 모임은 그를 교회원으로 받아들일 것인지 아닐 것인지를 그의 신앙고백과 삶의 실질을 살펴봄으로써 정확하게 점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다음 어떤 결정을 하든지 간에 항상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권위로서 시행되어야 합니다. 이때 교회로 받아들여진 사람의 경우 장로들이 행하는 권징의 열쇠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결코 분리되지 않고 함께 사용되어야 하는 이 두 개의 열쇠를 위해서 하나님 말씀에 의해 주어진 사중의 목적이 있습니다.

첫째, 그것은 밖에 속해 있지만 안에 속해 있었던 사람들을, 믿음을 통한 은혜에 의해, 교회 안으로 데려오는 데 사용할 수 있습니다. 둘째, 그것은 안에 속해 있지만 사실은 밖에 속해 있는 사람을 쫓아내는데 사용할 수 있는데 이유는 그들의 불순종과 불신앙 때문입니다. 셋째, 그것은 밖에 속한 사람을 밖에 있게 하는데 사용되어야 하는데 이유는 그들의 반란 때문입니다. 넷째, 그것은 안에 속한 사람을 밖으로 나가자고 유혹하는 자들로부터 안을 지키는데 사용되어야 하는데 이유는 그들은 중생되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제멋대로 하면서 교회의 권징을 반대하는 경향을 보여줍니다. 통상적으로 교회원이 경건하지 않은 행동을 할지라도 아무 것도 행해져서는 안 된다면서 다음과 같은 이유가 제기되곤 합니다.

첫째, 권징은 사람을 화나게 하므로 무시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훈계가 시행되게 되면, 부득불 죄를 범하고 있는 형제의 기분을 상하게 할 뿐만 아니라, 회중 안에 있는 그의 친구들 역시 불쾌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반감에 대한 대처법은 그리스도께 죄를 범하는 것보다 사람에게 죄를 범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인식하는 데 있습니다. 권징의 열쇠가 엄하고 사랑이 없어 보이고 불쾌를 촉발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러한 죄들을 담당하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진리는 만약 기독교적 권징이 무시된다면 죄인의 영혼은 무시되게 될 것이고 그는 고집대로 남겨질 것이고 그리고 아마도 그의 완고함과 죄로 인하여 죽게 될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고린도 교회 안에서 권징의 열쇠를 사용한 결과는 죄를 지은 교회원을 회개하도록 만들었습니다(고전 5:13; 고후 2:6-8). 따라서 이러한 권징의 결과는 죄를 짓는 사람이 없게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둘째, 권징은 사람의 마음을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에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신앙심 좋게 들리는 이 반박에 대한 대답은 이것 역시 완전히 거짓이라는 것입니다. 교회 권징은 결코 사람의 마음에 대한 심판을 겨냥하지 않습니다. 그것보다는 그 사람의 신앙고백과 삶에 대한 징계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장로들에게 권징의 열쇠를 사용하라고 말씀하셨으므로, 그들은 마땅히 주님께 순종해야 하고, 그리고 그들의 보호 아래서 교회원들의 믿음과 행위는 검사되고 판단되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7:16-20 말씀은 마태복음 7:1에서 “비판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라고 한 바를 반박하지 않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5:7; 데살로니가전서 5:14; 데살로니가후서 3:6, 14-15; 디모데전서 5:20 그리고 디도서 3:10을 기록했을 때, 그는 주의 말씀을 욕되게 하는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장로들이 교회 안에 있는 회원들을 권징하고 심판하는 것이 잘못이라면, 최초에 그들을 판단하여 교회 구성원으로 인정하는 것까지도 역시 잘못된 것입니다. 물론 사람의 마음의 깊은 동기는 오직 하나님께만 알려질 수 있지만, 그의 고백과 삶은 교회에 알려져야만 하고 또한 그들이 성경의 표준에 따르는지의 여부도 판단되어야만 합니다.

셋째, 교회는 회원들의 사생활에 관심을 갖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대답은 이렇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장로들에게 모든 교회원의 영혼을 돌보는 책임을 맡기셨습니다(히 13:17). 성경은 교회원들의 사생활과 공중생활 간에 이런저런 차이를 만들지 않습니다. 물론 장로들은 단순히 ‘참견 잘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되기에 원칙적으로 교회원들의 사적인 일에 쓸데없이 참견해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장로들은 그리스도의 모든 양들을 대상으로 영적인 건강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이 일은 아마도 개인적인 접촉을 필요로 하고 때로는 특별한 질문 역시 필요로 할 것입니다. 정기적인 심방은 이러한 접촉을 유지하기 위한 성경적 방법입니다(행 20:20). 개인에 대한 권징 문제가 개인적인 차원에서 성공하지 못할 때에는 교회의 문제로 옮겨지게 됩니다(마 18:17).

제85문답에서 우리는 교회 권징을 위한 순서를 배웁니다. 이러한 지침은 마태복음 18:16-18에 의한 그리스도의 지도에 근거합니다. 이 성경적 진행을 잘 기억하십시다. 대부분은 따르지 못하는 경향이지만, 사실상 이것은 무척이나 중요합니다.

첫째, 각 교회원들은 잘못을 범한 동료 교회원의 회복을 추구할 의무가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죄를 지은 형제를 알게 되었다면, 개인적으로 그를 찾아가서 죄에 대하여 물어야 합니다.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갈 6:1). 혹은 반대로 만약 당신이 고의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죄를 범하였다면 그에게 가서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둘째, 만약 죄를 지은 형제가 회개치 않는다면, 그러면 당신은 양편의 논쟁을 들을 두 명의 증인을 데리고 가야 합니다.

셋째, 만약 죄를 지은 형제가 여전히 자신의 죄에 대한 고백을 거절한다면, 그렇다면 교회 장로들에게 요청하여 이러한 상황에 대해 판단하게 해야 합니다.

넷째, 장로들은 죄인이 회개하도록 먼저 설득해야 합니다. 만약 그가 회개치 않는다면, 장로들은 그를 주님의 만찬이나 성도의 교제 같은 교회적 특권으로부터 그를 금지시켜야 합니다. 만약 그래도 그가 죄를 회개치 않는다면, 마지막 방책으로 그를 제명하여 전적으로 교회에서 쫓아내 ‘이교도(불신자)’로 여겨야 합니다.

교회 권징의 목적은 성도를 교회로부터 제거시키는 것이 아니라 죄 짓는 데서 분리시키는데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권징의 열쇠가 저항을 받는다면, 그러면 전체 몸이 부패되거나 그리스도의 진노가 전체 회중에게 내리지 않게 하기 위하여 죄인은 반드시 숙청되어야 합니다(고전 5:6-7).

모든 죄는 하나님의 저주를 초래하므로 회중 안에서 명백해질 때마다 공정하게 다루어져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무시되는 공공의 죄란 결코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권징은 되풀이 되는 그러한 죄를 상대하여 마땅히 사용되어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최악의 범죄자라 할지라도 진심으로 회개하면 용서해주어야 하고 다시 받아 들여야만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회개한 죄인들에게 용서를 약속하시므로, 그들은 그의 몸인 교회가 되어야만 합니다.

기독교의 권징 열쇠 사용을 두려워하는 회중은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닙니다. 혹시 당신들이 그렇지는 않습니까?

Posted in 오늘의 신앙고백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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