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28일(SUN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34주차(92-95문답)

[제92문] 하나님의 율법이 무엇입니까? [대답]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출 20:2-17; 신 5:6-21).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제1계명: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제2계명: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제3계명: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제4계명: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제5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제6계명: “살인하지 말찌니라.” 제7계명: “간음하지 말찌니라.” 제8계명: “도적질하지 말찌니라.” 제9계명: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찌니라.” 제10계명: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찌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찌니라.”  

이제부터 하나님이 율법의 두 번째 시간을 맞이합니다. 율법의 첫 번째 시간은 신앙고백문답(제3, 4문답과 5문답)을 처음 시작하였을 때입니다. 율법은 인간에게 유죄를 선고하면서, 대신 구속을 위하여 그리스도께로 우리를 내몰았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해서 은혜를 입어 구원 받았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우리로 하여금 기독교인으로서 그리스도께 순종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게 하려는 의도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다시 율법으로써 인도합니다.

앞서 제86-91문답에서는 선행에 대한 성경적 교리를 고백했습니다. 이제부터는 선행의 표준 또는 규범인 십계명(‘열 개 의 단어들’이라는 의미의 십계명)에 대한 해설로 들어갑니다. 기독교인의 감사에 대한 주제를 발전시킴에 있어서 신앙고백문답이 발전시켜 나가는 방법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구원을 받은 기독교인은 마땅히 감사함으로 살아야 합니다. 둘째, 감사는 선행의 삶을 산다는 의미입니다. 셋째, 선행은 신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율법에 실제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92-115문답의 주제는 ‘율법과 기독교인의 감사’입니다. 먼저 제92-93문답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율법을 소개합니다. 이때 제92문답과 제93문답이 예수 그리스도를 사이에 두고 구분되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주신 것은(출 19-20장),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아주 오래 전의 일이었지만, 그럴지라도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행하신 아주 엄청난 사역 중에 하나입니다. 그런 다음에 더욱 중요한 일이 일어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주시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로 지금까지, 십계명은 모든 선행과 도덕 그리고 인간을 시험하고 심판하기 위한 올바른 기준으로 간주되어 왔습니다. 그러면 십계명의 특징을 검토해 보겠습니다.

첫째, 십계명은 하나님 뜻의 변치 않는 계시입니다. 따라서 아담은 창조되었을 때 하나님의 뜻을 잘 알았습니다. 그리고 아담을 따르는 자들도 역시도 하나님의 뜻을 잘 알 수밖에 없었습니다(롬 2:14-15). 그런데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영구적이고 객관적이 되게 하시려고 돌판 위에 써 주셨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심판하시기 직전까지 사람을 위해 당신의 불변하신 뜻을 돌 판에 영구적으로 새겨주셨던 것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예수께서 십계명을 폐지하러 오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마 5:17).

둘째, 십계명은 모든 시대에 걸쳐 모든 사람을 위한 하나님의 도덕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제사와 의식에 관한 법들도 주셨는데, 이것들은 오직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만을 위한 한시적인 법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그것들이 상징하고 있던 바를 성취하셨음에 따라, 이제 그것들은 폐지되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십계명은 모든 사람들을 구속하는 도덕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십계명은 사람들 자신이 하나님과 이웃에 대하여 지고 있는 의무가 무엇인가를 가르칩니다. 따라서 이 율법은 장차 하나님께서 심판 날에 모든 사람에게 가하실 심판을 위해 적용하실 기준이 됩입니다(롬 3:19).

셋째, 십계명은 도덕의 근본 원리를 제공합니다. 시민법을 포함하여 성경의 모든 도덕적인 가르침은 십계명을 기초로 합니다. 우리가 성경 전체를 잘 연구해보면, 십계명 각각에 대하여 더 넓고 깊이 적용되어야 하는 의미들에 대해 배우게 됩니다. 그러므로 시편 기자는 말하기를 “주의 계명들은 심히 넓으니이다”(시 119:96)라고 했던 것입니다.

넷째, 십계명은 적용에 있어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양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이렇습니다. 우리에게 ‘하지 말라’라고 명령할 뿐 아니라, 그 반대의 일을 하라는 명령의 의도가 담겨 있다 하는 것이 여기 신앙고백문답의 핵심 내용입니다. 십계명의 핵심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도록 한 요구로써, 우리를 적절히 인도하여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게 합니다. 이처럼 사랑만이 우리가 율법을 지키기에 인정받을 만한 방법입니다.

[제93문] 십계명은 어떻게 나뉩니까? [대답]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처음 부분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가르치며, 둘째 부분은 이웃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가르칩니다(마 22:37-40).

계속해서 하나님의 율법을 소개하겠는데 이곳에서는 십계명을 어떻게 구분하는가를 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2:37-40에서 인용하신 신명기 6:5과 레위기 19:18에서 십계명은 두 개의 주요 부분으로 구분됩니다.

우리의 신앙고백문답을 따르면, 첫 번째 부분은, 첫째 계명부터 넷째 계명까지 포함되는 것들이 예수님에 의해서 ‘첫째 되고 가장 큰 계명’으로 불려졌습니다. 이 계명들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의무, 그리고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라고 한 말로써 요약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두 번째 부분은, 다섯째 계명부터 열째까지인데, 사람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가르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두 번째’ 큰 계명에 대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고 요약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두 계명은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40)라고 말씀하셨는데, 결국 구약 성경 전체의 도덕성은 십계명에 기초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사실 성경은 십계명을 첫 번째와 두 번째 큰 계명으로 직접 구분하지는 않습니다. 그에 따라 일부 사람들은 다섯 번째 계명이 첫 번째 큰 계명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구분하는 것은, 부모들은 그들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으로 대표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 현재와 같은 우리의 구분이 더 적절합니다.

두 돌판에 대한 질문도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계명을 나무가 아닌 ‘두 돌판’에 적으셨다는 것을 압니다(출 31:18; 32:15-16). 그러나 네 개의 계명을 한쪽 돌판에, 다른 여섯 개의 계명은 다른 돌판에 썼는지, 혹은 열 개의 계명을 한 개의 돌판에 써서 두 개가 되게 하셨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여하튼 십계명을 분리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두 가지 설명이 더 필요합니다.

첫째, 루터파 교회는 첫 번째와 두 번째 계명을 하나로 묶고서는, 전체적으로는 열 개의 계명이 되게 하기 위해, 열 번째 계명을 두 개로 나눈 로마 가톨릭의 방식을 따릅니다. 하지만 이 방법은 명백히 잘못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첫 번째와 두 번째 계명은 같은 죄를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곧 보겠지만, 달리 분리할 수 없을 정도로, 열 번째 계명 전체는 탐내는 것과 관계됩니다. 그래서 “네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라는 계명의 마지막 부분인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라는 부분을 분리시키는 것은 잘못입니다.

둘째, 율법의 서문과 관련한 것입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라고 한 이 선언은 첫째 계명의 일부분이 아니고, 율법 전체를 총괄하는 서문입니다. 이 사실을 확실하게 이해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 율법을 주심으로서 그의 백성들에게 다음 두 가지를 가르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가르칩니다. 하나님은 당신께서 만드신 모든 창조물에게 자신의 명령을 율법으로서 주실 수 있는 권한이 있으십니다. 모든 인류와 천사는 자신들을 지으신 창조주의 권세를 순전히 받아 들여야만 합니다. 다음으로, 자신이 은혜로운 구원자이심을 가르칩니다. 주님은 속박으로부터 구원 받은 자신의 백성을 위하여, 즉 그들의 삶을 윤택하게 해주시려고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율법에 복종해야 하는 ‘이중의 의무(이유)’가 이스라엘에게 놓여졌고,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놓여졌는데, 곧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주시며 동시에 구속주이십니다.

[제94문] 제1계명에서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대답] 내 영혼의 구원과 복이 매우 귀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온갖 우상숭배(고전 6:9-10; 10:7, 14), 마술과 점치는 일과 미신(렘 19:31; 신 18:9-12), 성인이나 다른 피조물에게 기도하는 것을(마 4:10; 계 19:10; 22:8-9) 피하고 멀리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유일하고 참되신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호 6:3; 요 17:3) 그분만을 신뢰해야 하며(렘 17:5, 7), 모든 겸손과(벧전 5:5-6) 인내로 그분에게만 복종하고(롬 5:3-5; 고전 10:10; 빌 2:14; 골 1:11; 히 10:36), 모든 좋은 것들을 오직 그분에게서만 기대하며(시 104:27-30; 사 45:7; 약 1:17), 마음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고(신 6:5; 마 22:37-38) 경외하며(신 6:2; 시 110:10; 잠 1:7; 9:10; 마 10:28; 렙 5:21; 벧전 1:17) 그분만 섬겨야 합니다(신 10:20; 마 4:10). 그러하므로 지극히 작은 일이라도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행하기보다는 오히려 모든 것을 포기합니다(마 5:29-30; 10:37-39; 행 5:29).

첫 번째 돌판의 네 개의 계명들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의무를 가르칩니다. 제1계명은 ‘하나님의 고유한 존재’, 제2 계명은 ‘하나님께 대한 예배’, 제3 계명은 ‘하나님의 성호 존중’, 제4 계명은 ‘하나님 날 준수’ 등과 관련한 우리의 의무가 각기 무엇인가를 알려줍니다.

첫 번째 계명, 곧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라고 하신 말씀은 우리가 진정 누구를 섬기고 예배해야 하는지를 선포합니다. 오직 한 분 하나님이신데, 곧 아버지, 아들 그리고 성신이신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이 계명은 뒤에 이어지는 모든 계명들을 위한 기초가 됩니다. 하나님은 항상 첫 번째 자리에 계시는데,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과 삶에서도 항상 첫째 자리에 계셔야 합니다. 참된 신이신 하나님은 오직 한 분뿐이심이 명확하지만, 사람의 죄악된 마음은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할 거짓 신들을 만들고 사랑하면서 자리를 내어주기에 신속합니다.

우리가 무슨 마음으로, 그리고 어떤 신들을, 얼마나 두든지 간에, 그것들은 모두 거짓 신들이므로 허무인 동시에 하나님께는 맹백히 우상숭배 죄를 짓는 것입니다. 이교 국가들은 예외 없이 거짓 신들을 섬기면서 나아가 그것들의 형상까지도 만들었습니다. 요즈음 현대인들이 섬기는 많은 거짓 신들에는, 가족, 돈, 쾌락, 섹스, 명예, 음식, 운동선수, 영화 배우 기타 등등 여러 분야에서 여러 가지 것들이 있습니다.

신앙고백문답의 첫 번째 대답은, 참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으로서는 마땅히 피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줍니다. 온갖 우상숭배, 마술과 점치는 일과 미신, 성인이나 다른 피조물에게 기도하는 것 등등을 피하고 멀리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이것들은 확실히 우상숭배입니다. 웨스트민스터 대신앙고백문답은 이 계명에서 무려 33가지 정도의 우상숭배 행위들을 나열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겠습니다.

첫째, 우상숭배: 참 하나님 이외에 무엇인가를 예배하고, 사랑하고 그리고 섬기는 것으로, 다음 문답에서 이 문제를 좀 더 검토할 것입니다.

둘째, 마술: 이익을 얻으려고, 하나님 한 분을 신뢰하는 대신에, 마술을 사용하고 악령의 능력을 마술에 이용하는 것입니다.

셋째, 점 치는 일(혹은 예언): 미래를 예언하고, 점성술을 믿고, 무당을 의지하고, 소위 현대에 유행하는 철학관을 찾는 등등으로,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파괴하고 사탄의 가르침을 떠 받드는 행동입니다.

넷째, 미신: 주변에서 미신의 다양한 형태들을 볼 수 있습니다. 토끼의 발, 편자, 네 잎 클로버, 행운의 숫자(그리고 불행의 숫자), 매력 팔찌, 그리고 위자 보드 등은 참되신 하나님을 거부하는 행동입니다.

다섯째, 성인 호출: 이것은 주로 로마 가톨릭 교회가 성인들을 신뢰하는 죄를 가리킵니다. 마리아를 필두로 그네들 식의 성인숭배는, 사실상 모든 능력과 자비의 원천이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제쳐놓고 보잘것없는 피조물을 신뢰하는 매우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여섯째, 다른 피조물에 대한 신뢰: 우리로서는 일상사 속에서 좋은 것을 얻기 위해 모든 합법적인 수단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제공하는 분이신 하나님을 제쳐놓고, 그것들 자체를 더 신뢰하는 행동은 명백히 우상숭배입니다.

신앙고백문답의 첫 번째 대답 부분은, 한 분이신 참 하나님을 어떻게 정확히 사랑하고 섬길 수 있는가에 대한 긍정적인 방향을 제시합니다.  

첫째,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가져야만 합니다. 이 지식은 성경에서만 나와야 합니다. 오직 성경 안에서만이 참 하나님을 알 수 있고, 동시에 어떻게 하나님을 올바르게 섬길 수 있는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현대주의자들, 유대인들, 그리고 다른 종교인들은 ‘최고의 존재’에 대해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오직 아버지, 아들 그리고 성신이신 삼위일체 하나님만을 선포합니다.

둘째, 우리는 모든 겸손과 인내로 홀로 하나님만을 신뢰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은 전능, 성실 그리고 진실한 분이심을 믿어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을 반드시 지키십니다.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실 것이고 우리를 떠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만 하고, 겸손하고 끈기 있게 하나님의 손길을 기다려야만 합니다. 하나님을 굳게 신뢰함으로써 공연한 불평이나 걱정에 사로잡히지 말아야 합니다.

셋째, 우리는 모든 좋은 것들을 오직 하나님에게서만 기대해야 합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모든 선하심과 축복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근원이십니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로부터 내려오나니”(약 1:17)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이든, 앞으로 오는 다음 세상이든, 참된 삶과 진정한 행복을 위하여, 이런저런 피조물들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넷째, 우리의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고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하나님 사랑과 하나님 경외는 분리되지 않고 항상 함께 갑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 행하기를 즐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을 우러러 존경하는 것이며, 이는 하나님의 권위를 존중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필히 하나님과 함께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는 행여라도 하나님을 대신해서, 찾거나 간직하고 있는 마음의 우상들이 있다면 깡그리 몰아내야만 합니다. 하나님만이 홀로 우리 영혼의 보좌에 좌정하셔야 하고, 최대로 통치권을 행사하셔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모든 다른 것들보다 앞서 하나님의 영광을 구해야 합니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롬 11:36).

정리하자면, 하나님의 뜻에 대적하는 일들을 줄이는 것 못지 않게, 지금 자신이 만들어 낸 모든 것들을 버리는 것이 먼저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첫 번째이자 기본 되는 필요조건입니다.

[제95문] 우상숭배란 무엇입니까? [대답] 우상숭배란 말씀으로 자신을 계시하신 유일하고 참되신 하나님 대신(요 5:23; 엡 2:12; 요일 2:23; 요이 9), 혹은 하나님과 나란히, 다른 어떤 것을 신뢰하거나 고안하여 소유하는 것입니다(대상 16:26; 사 44:15-17; 마 6:24; 갈 4:8; 엡 5:5; 빌 3:19).

첫 번째 계명의 두 번째 질문에서는 우상숭배의 본질을 배웁니다. 우상숭배는 한 분이신 참 하나님과 나란히 둔다거나, 혹은 우리가 신뢰할 뭔가를 대신 생각해 내거나 혹은 고안해 내는 행동들도 포함합니다. 따라서 우상숭배는 많은 형태를 취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죄 있는 인간의 마음은 살아계신 참 하나님을 대신하여 우상의 새로운 품종과 모델을 생산하기에 무척이나 바쁜 공장입니다. 뭔가 다른 종류의 신들 혹은 사람들이 신뢰하는 우상들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모든 우상숭배는 두 개의 그룹으로 배치할 수 있습니다.

첫째, 총체적 우상숭배는 개인적인 신들에게 예배하는 것입니다. 고대 사람들과 오늘날 비기독교인들은 많은 신들을 숭배하였습니다. 하나 이상의 신을 믿는 것을 ‘다신론’이라고 합니다. 가령, 애굽인들은 많은 신들을 소유했었는데(태양신, 바다 신, 강 신 등등), 모세의 하나님께서는 열 가지 재앙을 내려 애굽인들과 그들의 신들을 징벌하셨습니다. 가나안 사람들 역시 바알, 몰렉, 아세라, 다곤 등가 같은 신들이 있었습니다. 로마 사람들은 포르투나(운명의 여신), 바규스(와인의 신), 주피터(보호의 신), 마르스(전쟁의 신) 등등을 섬겼습니다. 루스드라 사람들은 바나바와 바울을 그리스의 신 제우스와 헤르메스라고 생각했습니다(로마인들에게는 주피터와 머큐리)(행 14:11-13). 그들은 우상과 동상을 만들면서 여하튼 정말 인격체처럼 생각되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진 신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둘째, 정신적 우상숭배 또는 인간이 생각해낸 신에 대한 숭배 행위가 있습니다. 고대나 현대를 무론하고 인간은 항상 유일한 창조주이신 살아계신 참 하나님을 제쳐 놓은 채로, 무엇인가 다른 신을 표현하고 설명하는 시도를 했으며, 자신들과 자신들이 살고 있는 우주에서 여러 종류의 종교적 믿음을 고안해 냈습니다. 이 문제는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습니다.

무신론(Atheism)(‘a’ = no, ‘theism’ = god)과 유물론(Materialism). 이것은 세상에는 개인적인 신이나 영은 없지만, 물질이 신이라고 보는 입장입니다. 물질 성분과 에너지는 분명 존재하는데, 그것들이 믿음의 대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공산주의자들이 종교 자체는 부정한다 할지라도, 실제로는 무신론과 유물론에 기초한 것이므로, 사실상 공산주의는 환상적인 종교입니다.

범신론(Pantheism). 이 단어는 ‘모든 것은 신이다’(all-is-god)’(‘pan’ = all; ‘theism’ = god)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범신론자들은 신은 모든 것이고 모든 것은 신이라고 말합니다. 나무, 새, 태양, 사람, 그리고 모든 것은 신의 모든 부분입니다. 이러한 ‘신’을 신뢰한다는 것은, 명백히 모든 창조물로부터 분리되고 구별되시는 인격자이신 참된 창조주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인본주의(Humanism). 이것은 현대인들에게 인기 있는 종교이며, 심지어 기독교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 속에도 많이 잠재되어 있는 ‘사실상의 종교’입니다. 인본주의는 인간을 예배합니다. 인간의 지혜와 능력, 인간의 선, 자신을 기쁘게 하는 인간의 자유, 가장 높은 목표인 인간의 안전 등등입니다. 모든 것들은 인간을 섬겨야만 합니다. 그래서 ‘신’조차도 인간을 섬기기 위해 존재해야 합니다. 인본주의는 오늘날의 자유주의 교육, 방만한 사회 그리고 정치적 행동 등의 뒤에서 그것들을 조종하는 것으로서 사실상 종교입니다. 또 하나의 실례로, 시민정부가 사람들의 안전과 질 높은 삶을 시민들에게 제공하기 때문에, 그것은 더욱 절대적이어야 하고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사실상 그런 유의 하나님을 만드는 것이고, 따라서 진실하고 살아계신 하나님보다 정치적 계획을 신뢰하는 행동입니다.

세속성(Worldliness). 비기독교인들은 성경의 하나님보다도 스스로 만들어낸 모든 종류의 신들을 소유하길 좋아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돈을 버는 것을 자신들의 인생에 가장 첫 번째 자리에 놓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유명한 사람이 되기 위해 삽니다.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가족을 첫 번째 삶의 목표에 놓기도 합니다. 그런 식으로 여러 종류의 기쁜 것들을 추구하면서 삽니다.

인간의 죄악 된 일관된 마음에서 나오는 우상의 다양성은 끝이 없습니다. 그러나 참 기독교인이라면 분명히 하나님을 첫 번째로 놓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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