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14일(SUN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32주차(86-87문답)

[제86문] 우리의 공로가 조금도 없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오직 은혜로 우리의 죄와 비참함으로부터 구원을 받았는데, 우리는 왜 또한 선행을 해야 합니까? [대답]  그리스도께서 그의 보혈로 우리를 구속하셨을 뿐 아니라 그의 성신으로 우리를 새롭게 하여 그의 형상을 닮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모든 삶으로써 하나님의 은덕에 감사하고(롬 6:13; 12:1-2; 엡 2:10; 벧전 2:5, 9)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찬양 받으시기 위함이며(마 5:16; 고전 6:19-20; 벧전 2:12), 또한 우리 각 사람이 그 열매로써 자신의 믿음에 확신을 얻고(마 7:17-18; 갈 5:6, 22-23; 벧후 1:10), 경건한 삶으로써 다른 사람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하기 위함입니다(마 5:16; 롬 14:18-19; 벧전 3:1-2). 

앞 부분에서는 신앙고백문답의 가장 긴 부분인 우리의 구속에 관한 내용을 두 번째로 끝마쳤습니다(제12-85문답). 이제부터는 신앙고백문답의 3번째와 마지막 부분인 감사와 예배에 대한 학습을 시작합니다.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신 주님께 사실 우리는 얼마나 큰 빚을 진 것이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로서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참된 종답게 현재 이 순간에도 항상 우리 자신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감사의 태도를 드러내 보일 수 있어야겠습니다. 언젠가 예수님께서는 용서함을 많이 받은 사람은 사랑도 많이 나타낼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7:47). 자신이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님으로 인하여 죄와 지옥으로부터 사함을 받았다고 확신한다면, 의당히 개심한 자답게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을 통하여 감사한 마음을 드러내 보일 것입니다. 참으로 기도에 열심을 내고,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 같이 읽고, 기타 등등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 안에서 성장하기를 추구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중생과 회심을 진정으로 경험하였다면, 기독교인으로서의 거룩함(경건한 삶을 살기)을 이루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아는 것도 또한 중요합니다. 현대주의자들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처럼 오직 그리스도를 위한 삶을 가능하게 해주는 기독교의 진리인 구원은 정작 부인합니다. 믿음이 없는 그러한 현대주의자들은 참된 기독교인의 삶을 살 수 없습니다.

문답 86번에서 91번까지, 우리는 선한 일(good works)에 대한 성경적 교리를 배웁니다. 다음과 같이 윤곽을 잡아볼 수 있습니다. 첫째, 선한 일의 목적(제86문답), 둘째, 선한 일의 필요성(제87문답), 셋째, 선한 일의 원천(제88-90문답), 넷째, 선한 일의 본질(제91문답) 등입니다.

선한 일은 우리의 중생한 마음으로부터 생산되는 열매와 행동인데 우리의 육체에 의해,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맞게끔 실행되는 데서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것들은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사랑하고 좋아하는 행동이고,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그것을 실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법이고, 그렇게 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왜 우리는 선을 행해야 합니까? 대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는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혈(죽음)에 의해 구원되었고, 또한 그의 성신에 의해 갱신(중생)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의 의미는 우리는 선한 일을 수행할 수 있기 위하여 구원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 혹은 우리 자신을 새롭게 하려는 의도로 선을 행하지는 않습니다. 기독교인들이 행해야 하는 이러한 선행에는 몇 가지 목적이 있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감사를 보여야 합니다. 이때 하나님께 순종으로 선을 행하는 것 외에 어떻게 우리의 감사함을 드러내 보일 수 있겠습니까?

둘째,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영광 받으십니다. 우리 같은 피조물들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수행할 때 하나님의 성호는 영광을 받습니다. 하지만 무신론자들은 그들의 악한 행위로 하나님의 성호를 멸시합니다. 우리는 과거에는 이러한 자들이었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셋째, 우리는 믿음 안에서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는 사실을 확신합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과의 대화를 단절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주님의 소유라는 확신은 가질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요일 2:3). 순종하는 생활과 믿음의 확신은 서로로부터 분리될 수 없습니다.

넷째,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그리스도께 마음을 쏟을 수 있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통해 참 기독교가 무엇인가를 보여줌으로써 효과적인 증인이 될 수 있고 또한 그로써 다른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되는데 흥미를 갖게 할 수 있습니다. 지금 당신이 사는 방식을 통해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말씀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그러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우리 모두 이 네 가지의 목적이 우리의 생활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선한 일에 열심 내는 사람’(딛 2:14)이 됩시다.

[제87문] 감사치도 않고 회개하지 않는 삶을 계속 살면서 하나님께로 돌이키지 않는 사람들도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대답] 결코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성경은 음란한 자, 우상숭배하는 자, 간음하는 자, 도둑질하는 자, 탐욕을 부리는 자, 술 취하는 자, 욕하는 자, 강도질 하는 자 기타 그와 같은 죄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고전 6:9-10; 갈 5:19-21; 엡 5:5-6; 요일 3:14-15). 

우리가 감사의 열매로서 선행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가 정말로 원한다 할지라도, 실제로는 필요 없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선을 행하는 생활은 기독교인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따라서 설사 기독교인이 되기를 고백하거나, 현재 교회원이라 할지라도, 죄 안에서 살고 계율을 깨뜨리는 사람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그 고백이 가짜이기 때문입니다.

거룩하게 사는 삶에 신경 쓰지 않는 기독교인은 결국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만약 하나님의 영이 우리의 삶을 거룩하게 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리스도께 속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믿음’은 살아 있는 믿음이 아니요 거짓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인에게 선행이 필수라고 할지라도 우리에게서 선행은 결코 구원을 얻거나 공덕을 쌓게 할 수는 없습니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선행이 구원의 공덕을 쌓게 한다고 가르치는데, 이것은 저주받을 교리입니다. 성경은 바대로 우리가 선한 일을 행할 수 있기 위해서, 그러한 능력을 위해서 구원을 받았다고 가르치지(딛 2:14), 우리가 구원을 얻기 위해서 선을 행해야 한다고는 가르치지 않습니다(딛 3:5). 이 두 개의 교리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따라서 계율을 어기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얻지 못한다고 가르칠 때에 신앙고백문답은 성경에 진실합니다. 만약에 하나님의 성신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따라 거룩한 삶을 살고자 하는 갈망을 주지 않는다면, 그런 경우 사실상 우리는 성신을 받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은 이 생에서 완벽에 도달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까? 아닙니다. 이 생에서 온전함을 위하여 기도하며 노력하고 그리고 우리가 넘어졌을 때 우리의 죄를 신실하게 고백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문답에 대한 대답은 고린도전서 6:9-10, 갈라디아서 5:19-21, 에베소서 5:5-6에서 사도 바울이 제시한 죄 목록에 따라 명백하게 두드러진 악한 죄를 근거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죄들이 단순히 비난거리 하나를 가져오는 욕망의 만족에 불과한 것이라고 결론지어서는 안됩니다. 죄의 ‘탐욕’은 마음이든 육체든 죄의 모든 형태를 포함하기 대문입니다. 우리는 죄 용서와 죄의 모든 유혹으로부터 견딜 수 있는 힘을 얻기 위하여 주님께 매일 기도해야 합니다.

지금 그리스도의 성령께서 하나님께 대한 의와 순종 앞에서 당신을 굶주리고 목마르게 만드는 일을 하십니까?

Posted in 오늘의 신앙고백묵상.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