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7일(SUN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27주차(72-74문답)

[제72문] 세례의 물로 씻음이 곧 죄 씻음 자체입니까? [대답] 아닙니다(마 3:11; 엡 5:26; 벧전 3:21).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성신만이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합니다(고전 6:11; 요일 1:7). 

신앙고백문답 제72문답은 로마 가톨릭 교회와 루터 교회의 잘못된 교리를 받아 들이지 않습니다.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주제를 보겠습니다.

첫째, 로마 카톨릭 교회와 루터 교회의 잘못을 보겠습니다. 세례를 받을 때 영혼이 자동적으로 씻겨진다는 것은 잘못된 가르침입니다. 사실 로마 가톨릭 교도들은 사람이 세례를 받을 때, 하나님의 은혜를 막아내지 못하도록, 세례의 거룩한 물에는 영혼을 씻어내는 효력이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루터교의 가르침은 믿음에 더 강조를 두는 까닭에 그렇게 극단적이지는 않아 보입니다. 그러나 루터는 성례 그 자체에 거룩한 능력이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는 자신의 신앙고백문답에서 그렇게 주장했습니다. “세례는 죄를 용서하고 그리고 죽음과 사탄으로부터 건져내고, 그리고 모든 믿는 자들에게 영원한 구원을 고백하게 하는 일을 합니다.” 다시 한 번 그는 기록했습니다. “세례는 생명의 은혜로운 물과 중생의 씻음이라고 합니다”(루터의 [서술형] 소신앙고백문답).

둘째, 개혁교회의 가르침은 성신의 역사에 강조점을 둡니다.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는 개혁주의 해석에 의하면, 영혼의 씻음은 오직 그리스도의 보혈(그의 죽음)과 그리스도의 영(성신)에 의한 중생이라는 데 강조점이 있습니다. 따라서 그러한 씻음은 물세례의 행위 자체로써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사실상 중생은 세례를 시행하기 전이나, 시행하는 중에, 또는 시행한 후에, 그리고 더 나아가 세례와는 상관없이, 성령의 기능과 목적이 어떠냐에 따른 주권적 시기에 선택된 자들에게 주어진다고 보아야 합니다. 성례에는 구원이 자동적으로 일어나게 하는 능력은 결코 없습니다.

셋째, ‘세례적 중생’이라는 주장은 잘못입니다. 오늘날도 로마 카톨릭 교회처럼 스스로를 ‘그리스도의 제자들’ 혹은 ‘그리스도의 교회’라고 부르면서 세례적 중생을 가르치는 여러 종파의 교회들이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세례를 받으라는 명령에 순종하는 바로 그 순간에 개인의 죄가 그러한 세례로써 씻겨 진다는 주장인 것입니다.

이상 여러 가르침을 보았는데, 정리하자면 하나님 말씀을 사용하시는 성신에 의해 죄의 권세로부터 우리의 마음이 깨끗하게 되고, 그리고 그리스도의 죽음을 믿는 바대로 죄책과 죄의 심판이 물러간다고 가르칩니다(제70문답). 물 세례는 설혹 물이 몸에 닿을지라도 발생하지 않을 수 있는 영적 씻음에 대한 표와 인입니다.

[제73문]  그러면 왜 성신께서는 세례를 ‘중생의 씻음’과 ‘죄의 씻음’이라고 하셨습니까? [대답]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데에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몸의 더러운 것이 물로 씻겨지듯이 우리의 죄가 그리스도의 피와 성신으로 없어짐을 우리에게 가르치려 하셨습니다(고전 6:11; 요일 3:5; 5:6-8; 계 1:5; 7:14). 더 나아가서 우리의 죄가 영적으로 씻어지는 것처럼 매우 실제적임을 이러한 신적 약속과 표로서 우리에게 확신시키려 하셨습니다(막 16:16; 행 2:38; 갈 3:27). 

신앙고백문답 제72문답에서 본 것과 같이, 물세례를 행하므로 죄가 씻겨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물세례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신앙고백문답은 다시 한 번 우리로 하여금 물세례를 과소평가하지 않도록 주의를 상기시킵니다.

첫째, 확신은 거룩한 세례와 연결되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보혈과 성신에 의해 ‘세례의 성례’와 우리의 ‘영혼의 씻음’ 사이의 가까운 영적 관계를 세우셨습니다. 이 문답은 제69문답과 아주 흡사합니다. 두 문답 모두 이 성례에서 받아지는 하나님의 ‘약속’과 ‘서약’ 그리고 구원의 ‘표시’을 강조합니다.

비록 세례 그 자체가 우리를 구원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성신께서는 우리가 정말로 우리의 죄로부터 씻겼다는 확신을 갖게 하시기 위해 우리의 세례를 사용하십니다. 성경은 외적 씻음의 형식인 세례는 내적 씻음과 같아서 구원과 아주 가깝다고 선포합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2:38은 “너희는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라고 합니다. 사도행전 22:16에서는 “이제는 왜 주저하느뇨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희 죄를 씻으라 하더라”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베드로전서 3:21은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라고 합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물이 아니라 항상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나 물 떠한 그리스도께서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심에 대한 표와 인으로 우리의 구세주에 의해 명령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세례는 오직 그리스도께서만이 우리의 죄를 씻을 수 있음을 가르치는 표시(sign) 차원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그리고 실제로 그리스도에 의해 우리의 죄가 씻겨졌음을 우리에게 확증케 하는 인(seal)으로서 그러합니다.

둘째, 물세례는 그리스도인의 의무입니다. 물세례는 성경적 의무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이것이 무시된다면, 그렇게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대한 죄스러운 불순종에 연루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성례를 그들의 언약적 아이들에게 베풀지 않는 침례교 그리스도인들은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이 아니고, 따라서 믿지 않는 자들처럼 정죄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은 잘못은 그들의 이해력이지 그들의 마음이 아니므로 우리는 그들의 마음을 정죄해서는 안됩니다.

믿는 자들의 어린아이들 역시 세례를 받아야 합니까? 우리의 다음 문답이 대답을 제공해 줄 것입니다.

[제74문] 유아들도 세례를 받아야 합니까?  [대답] 그렇습니다. 그것은 유아들도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언약과 교회에 속했고(창 17:7; 마 19:14), 또한 어른들 못지 않게 유아들에게도 그리스도의 피에 의한 속죄와 믿음을 일으키시는 성신이 약속되었기 때문입니다(시 22:10; 사 44:1-3; 행 2:39; 16:31). 그러므로 유아들도 언약의 표인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교회에 연합되고 불신자의 자녀와 구별되어야 합니다(행 10:47; 고전 7:14). 이런 일이 구약에서는 할례를 통하여 이루어졌으나(창 17:10, 14) 신약에서는 대신하여 세례가 제정되었습니다(골 2:11-12).

제74문답을 마지막으로 세례에 대한 부분은 끝맺게 됩니다. 이 마지막 질문에서는 세례 받아야 하는 대상이 누구인지를 말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 부모와 유아들에게 구원의 표와 인으로 세례를 베풀기 위한 설명이므로 아주 중요한 문답입니다. 이 문답은 세례에 관하여 침례교와 루터교의 잘못을 정정해 줍니다.

이 문답에는 살펴보아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주된 중점들만 간단하게 검토하겠습니다.

첫째, 옛 언약에서도 믿는 자의 아이들은 할례를 받았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성경을 따라 신앙고백문답은 그리스도와 성신에 의하여 선택된 백성들을 구원하시어 영원히 그들의 하나님과 친구가 되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인 ‘구원 언약’ 혹은 ‘은혜 언약’에 기초하여 유아들의 세례를 가르칩니다.

이 언약은 성경 전체를 통하여 말씀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에게 베풀어지는 구원의 언약을 말씀하실 때, 유아들 역시 이 언약에 포함된다는 것을 확증하셨습니다. 이것은 창세기 17:1-9에서 명확하게 나타납니다. 특별히 7절에서 하나님의 언약은 아브라함 이후에 살게 되는 모든 세대의 믿는 자들에게도 ‘영원한 언약’이 된다는 것을 선포합니다.

아브라함을 필두로 계속해서 구약성경 전체를 통해 어린 남자 아이들에게 주었던 언약의 표와 인은 ‘할례’라고 하는 성례였습니다(창 17:10-14).

둘째, 새 언약에서 믿는 자들의 자녀들의 위치가 명확하게 선포되었습니다. 신약성경은 이미 우리가 본 바와 같이, 언약은 그것의 표와 인으로 할례를 대신하여 세례를 동일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믿는 자들은 같은 언약에 의해 세대를 통해 계속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들’이라고 불려집니다(갈 3:7, 29).

물론, 구약시대처럼 믿는 자들의 아이들은 하나님의 언약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오순절에 행한 베드로의 설교에서, 그가 “이 약속(언약)은 너희(믿는 자들)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행 2:39)라고 말함으로써 증명되었습니다. 우리의 구세주께서는 하나님 나라에 속해 있는 유아들 역시 자신에게 데려오라고 말씀하셨을 때, 구원의 약속의 언약은 아이들도 역시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눅 18:15-16).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의 자녀들에게도 성신의 중생과 믿음의 선물인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의 약속을 하셨습니다. 아이들까지도 이러한 언약의 약속을 소유한다는 것은, 세례로서의 표와 인을 부여 받는 것이 옳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물론, 여기서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이 언약은 오직 믿는 자들의 자녀들에게만 약속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탄의 아이들인 불신자의 자녀들을 위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셋째, 침례교인들은 유아 세례를 반대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침례교인들과 토의할 기회가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로서는 그들이 왜 유아 세례를 반대하는지, 그리고 그러한 반대에 어떻게 대답할는지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침례교도들의 유아 세례에 대한 반대 주장과 그에 대해 성경을 사용하여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를 몇 가지 대표적으로 보여줍니다.

반대 1: “유아는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고 세례를 이해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세례를 받을 수 없습니다.”

대답: “구약시대 때 유아들은 할례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할례가 명령되었습니다. 언약적 약속은 유아들이 그것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베풀어지는 것이 아니고,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 언약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베풀어지는 것입니다.” 

반대 2: “성경에는 유아 세례에 대한 명령이 없습니다.”

대답: “성경에는 굳이 그러한 명령을 내릴 필요가 없습니다. 언약은 영원한 언약으로서 계속되는 것이기에, 당연히 믿는 자들의 아이들도 언약에 포함되는데, 이는 베드로가 사도행전 2:29에서 말한 바와 같습니다. 침례교도들은 하나님께서 그의 언약을 취소하였다는 것을 성경으로서 우리에게 증명해 보일 수 있어야만 합니다.”

반대 3: “성경에는 유아 세례의 실례가 없습니다.”

대답: “만약에 그것이 사실이래도, 유아에게 세례를 베푸는 것이 잘못이라는 증거는 없습니다. 언약은 어린 아이들을 포함하고 있고, 따라서 그들에게도 언약의 표와 인을 주어야만 한다고 합니다. 아울러, 사도행전 16:15, 33; 18:8, 그리고 고린도전서 1:16은 유아가 포함된 가족 세례에 대해 말합니다.

반대 4: “마태복음 28:19과 마가복음 16:16은 세례에 앞서 믿음을 위치시킵니다.”

대답: “지상명령에 관한 내용들은 특별히 선교지에서 세례를 받지 아니한 이교도 어른들의 개종을 언급한 것입니다. 모든 비기독교 어른들은 세례를 받기 전에 먼저 개심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어른들이 그리스도인이 되고 세례를 받은 후, 구원의 언약은 그들의 아이들 역시 세례 받을 것을 요구합니다.”

침례교도들이 그들의 유아들을 세례에서 제외하는 것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언약을 확실하게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세례 받은 유아들이라 할지라도 모두가 다 구원 받았음에 대해서는 믿지 않았다는 것을 다시 반복합니다. 일부 유아들은 세례를 받기 전과 받은 후에, 그리스도의 보혈과 성신에 의해 깨끗하게 됩니다. 그러나 만일 하나님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면 결코 깨끗해지지 않습니다. 교회에 속한 그리스도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모든 유아들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셨기 때문에 세례를 받아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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