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28일(SUN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30주차(80-82문답)

[제80문] 주님의 만찬과 로마 교회의 미사는 어떻게 다릅니까? [대답] 주님의 만찬은, 첫째,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십자가 위에서 단번에 이루신 유일의 제사에 의해 우리의 모든 죄가 완전히 사해졌음을 확증합니다(마 26:28; 눅 22:19-20; 요 19:30; 히 7:26-27; 9:12, 25-28; 10:10, 12, 14). 둘째, 성신에 의해 우리는 그리스도에게 연합되었으며(고전 6:17; 10:16-17), 그의 참된 몸은 지금 하늘에 있고 하나님 우편에서(시 110:1; 막 16:19; 골 3:1; 히 1:3; 8:1-2) 우리의 경배를 받으심을 확증합니다(요 4:23-24; 행 7:55-56; 빌 3:20; 살전 1:10). 그러나 미사는, 첫째, 그리스도가 산 자들이나 죽은 자들을 위해서 사제들에 의해 지금도 매일 드려지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고난에 의해서는 그들이 죄 사함을 받지 못한다고 가르칩니다. 둘째, 그리스도는 떡과 포도주의 형체 속에서 몸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그 속에서 경배를 받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미사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단번의 제사와 고난을 부인하는 것이며 저주받을 우상숭배입니다(히 9:26; 10:12, 14).

제69문답에서 주어진 도표에서 살펴보았듯이, 제72문답에서는 세례와 관계되어 부인된 잘못이 정죄 받았음을 보았습니다. 이외에 두 개의 문답(제78문답과 80문답)에서 로마 가톨릭 교회의 주님의 만찬에 대한 잘못을 정죄했습니다. 여기 제80문답은 신앙고백문답의 성례 설명에서 따르는 패턴에 따라 잘못된 곳을 지적합니다.

순서가 이렇게 된 이유는 제80문답이 나중에 로마 가톨릭 미사를 더욱더 정죄하기 위해 선제후 프리드리히 3세(Frederick III)에 의해 삽입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느끼기에 문답 78번이 미사의 악함을 알리기에는 충분히 단호하지 않았습니다.

왜 가톨릭 교회에서는 주님의 만찬을 ‘미사(Mass)’라고 부릅니까? 이 단어는 ‘해산시키다’라는 뜻의 라틴어 ‘미사(missa)’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기독교 초기에 주님의 만찬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는 설교가 끝나고 만찬이 시작되기 전에 떠나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만찬으로부터 회중의 일부를 퇴출하기 위한 용어였는데, 이후 만찬 그 자체만을 위하여 사용하는 용어로 변질되어 버렸습니다. 실제로, 결국 그들은 주님의 만찬을 버렸습니다.

답변에서 첫 번째 부분은 앞의 문답에서 우리가 다양하게 고려해 보았던 주님의 만찬의 성경적 의미를 제공합니다. 두 번째 답변 부분은 로마 카톨릭 교회의 미사에 의해 제정된 두 가지 사악한 오류를 지적합니다. 이 두 번째 답변 부분을 자세히 보겠습니다.

첫째, 미사는 그리스도를 다시 바치도록 요구합니다. 미사는 미사가 행해질 때마다 그리스도의 새로운 희생을 요구합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의 신앙고백서에 “미사는 십자가 위에서 일어났던 희생과 동일하게 그처럼 제물을 받치는 것이다”라고 합니다(발티모어 신앙고백서 #931). 그러므로 로마 가톨릭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과거에) 희생하셨다”가 아니라 계속해서 “(지금 현재도) 자신을 희생시킨다”고 믿습니다. 결국 이것의 의미는 앞선 그리스도의 죽음(희생)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단 번에 모든 사람들의 죄값을 지불하기 위해 치러진 주님의 진짜 죽음이란 것은 없어져 버립니다. 만약 2000년이 지나도록 그리스도의 죽음이 끝나지 않았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리스도께서 확실하게 죽으신 것을 확신할 수 있겠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뿐 아니라, 지금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도 완성된 희생제사에 의해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정반대를 가르칩니다.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도다”(요 19:3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9:26, 28과 10:12은 그리스도께서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 번에 드리셨다고 가르칩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통상 교회, 사제들 그리고 떡(wafer)은 신뢰하지만, 십자가 위에서 그리스도의 단 번에 이루신 유일한 제사는 신뢰하지 않습니다.

둘째, 로마 카톨릭 교회는 성체(host, 그리스도의 몸)가 숭배되는 것을 가르칩니다. 로마 교회가 화체설을 주장할 때에, 이는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빵과 포도주에 임재하므로 그러한 빵과 포도주 안에서 그리스도를 마땅히 ‘예배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부가 성체와 컵을 높이 들 때에 그곳에 참여한 사람들은 그것에 경배합니다. 이러한 행위는 사실상의 우상숭배입니다. 그러므로 신앙고백문답은 ‘그리스도의 희생을 부정하고 저주받은 우상숭배’로서의 미사를 정죄하는 일에 확실한 입장을 취합니다. 이 판결은 루터가 ‘거대하고 괴물 같고 혐오스러운 교황의 미사’, 그리고 ‘모든 교황 우상숭배의 극단’(스말칼트 신조, 2-2)이라고 말 한 바와 같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로마 가톨릭 교회가 옳다고 믿는 일부 개신교들이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참으로 그들의 무식은 엄청나고 비통스럽습니다.

[제81문] 누가 주님의 만찬에 참여할 수 있습니까? [대답] 자기의 죄 때문에 자신에 대해 참으로 슬퍼하는 사람, 그러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에 의해 자기의 죄가 사하여지고 남아 있는 연약성도 가려졌음을 믿는 사람, 또한 자신의 믿음이 더욱 강하여지고 돌이킨 삶을 살기를 간절히 소원하는 사람이 참여할 것입니다. 그러나 외식하거나 회개하지 않는 사람이 참여하는 것은 자기가 받을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고전 10:19-22; 11:28-29). 

제81문답과 82문답에서 우리는 누가 주님의 만찬에 참여할 수 있는지를 배웁니다. 이 문답들은 누가 세례의 대상인지를 설명하는 제74문답과 연계됩니다.

주님의 만찬은 실로 ‘거룩한 만찬’이고 여기에의 참여와 축복은 오직 그리스도에 의해 허락 받습니다. 그리스도의 허락 없이 참여하는 자들에게는 심한 견책이 있습니다(고전 11:29). 이 문답은 기독교인인 우리로 하여금 만찬에 참여하기에 어울리는 태도로서의 개인적 자격(personal qualifications)을 취해야 할 것을 가르칩니다. 다음 문답에서는 성례에 참여하는 사람에게 요구되는 교회적 제한(Church qualifications)에 대해서 배우게 될 것입니다.

구약의 유월절에서처럼, 성찬에 참여하는 사람은 반드시 예식의 의미에 대한 자각이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성찬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오랜 동안 배움을 통하여 충분히 이해할 만큼 제대로 배운 사람만이 성찬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성찬에서 우리는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먹어야만 하고 동시에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따라서 아이들은 주님의 만찬에 나오기 전에 먼저 복음으로 교육을 받아야만 합니다. 이것이 당신이 성경과 신앙고백문답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기독교인은 주님의 만찬을 받기 전에, 자신의 상태를 다시 한 번 주의 깊게 점검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고전 11:28). 제81문답에서 설명된 대로 자신에 대한 점검에는 세 부분(three parts)이 있습니다. 참석하기 전에, 신자는 자신의 죄(sins), 자신의 구세주(Savior), 자신의 섬김(service)에 관하여 스스로에게 진지하게 물어야만 합니다(이것은 우리가 신앙고백문답의 요점으로서 알고 있는 바입니다).

  1. 나의 죄. 나는 내가 죄인인 것을 진실로 슬퍼합니까? 나의 부패한 본성과 하나님의 법을 어긴 것 때문에 진정으로 슬퍼합니까?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거나 혹은 마땅히 사랑해야 하는 나의 동료 그리스도인들과 이웃을 사랑하는 않는다는 것을 인정합니까? 나는 이 모든 죄를 참회하는 심령으로 하나님께 고백합니까?
  2. 나의 구세주. 나의 죄가 사함 받기 위해서 오직 그리스도의 죽음만을 신뢰합니까? 나의 모든 죄와 타락에 대한 용서를 위해 그리스도께 고백했습니까? 나는 그리스도께서 나를 구원하시고 나에게 영생을 줄 수 있는 오직 한 분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인정합니까?
  3. 나의 섬김.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좀 더 거룩한 삶을 살기를 진지하게 갈망합니까? 나는 좀 더 강한 믿음과 좀 더 경건하게 행동하기를 원합니까? 나는 하나님의 뜻을 순종함에 있어서 온전함(perfect)을 절실하게 바랍니까(마 5:48)?

만약 누구든지 이 세 종류 질문에 제대로 진실하게 대답할 수 없다고 느낀다면, 그는 주님의 만찬에 참여하기에 영적으로 적합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진실되이 회개해야 하며, 그러한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얻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그는 이 질문들에 대하여 만족스러운 대답을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은 먹고 마시지 않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그저 남에게 보이기 위해 성찬에 참여했다가는 그리스도의 화를 불러 일으킬 것입니다. 완고하고(회개치 않고) 가식적인(거짓의) 사람은 자신의 심판을 먹고 마실 뿐입니다. 참으로 조심하십시다!

[제82문] 자신의 고백과 생활에서 믿지 않음과 경건치 않음을 드러내는 자에게도 주님의 만찬이 허용됩니까? [대답] 아닙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언약이 더럽혀져서 하나님의 진노가 모든 회중에게 내릴 것입니다(시 50:16; 사 1:11-15; 66:3; 렘 7:21-23; 고전 11:20, 27-34).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그의 사도들의 명령에 따라, 그리스도의 교회는 천국의 열쇠를 사용하여 그러한 자들이 생활을 돌이킬 때까지 주님의 만찬에서 제외시킬 의무가 있습니다. 

이 문답에서는 성찬에 참여할 때 모든 기독교인들로서는 반드시 따라야 하는 교회적 자격(church qualifications)에 대해 배웁니다. 개혁교회는 교회 안에 있는 경건한 사람만이 성찬에 참여할 수 있다고 늘 주장해 왔습니다. 성찬은 교회 장로들에 의해 보호되어왔고, 그래서 오직 복음을 온전히 고백하고 경건히 생활해온 교회원만이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자격 없는 사람이 주님의 만찬에 참여할 경우 두 가지 악한 결과가 발생됩니다. 첫째, 언약이 더럽혀지고 하나님의 진노가 온 회중에 임하게 됩니다. 둘째, 자격 없는 상태에서 먹을 때에는 자신의 심판을 먹는 것입니다. 문답에는 누가 성찬 참여를 허락 받는지에 대한 세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첫째, 열린 성찬식을 봅시다. 이 견해는 성찬식은 참여하고 싶어하는 사람에게라면 모두에게 열려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무런 규제가 없습니다. 각인은 자신이 마음에 스스로 묻고 판단해야 하는데, 그에 따라 장로들은 참여하는 사람의 믿음 혹은 생활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 예를 든다면, 우리의 확인되지 않은 언약의 자녀들에게는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하면서도, 정작 현대주의자들과 간음한 자들이 진실한 신자들과 먹고 마시는 상황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주님께서 세상에는 성찬을 결코 주시지 않으셨고, 오직 당신의 제자들에게만 주신 데서 보듯이 확실하게 잘못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어 쫓으라”(고전 5:13)라고 했고, 또한 “유전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살후 3:6)라고 했습니다. 성례는 오직 죄를 고백하면서 진실하게 믿는 자들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장로들은 그들만이 성찬에 참여할 수 있도록 엄중한 태도를 취해야 합니다.

둘째, 닫힌 성찬식을 봅니다. 이 견해는 오직 소속된 교회 혹은 교단의 회원들만 참석한다는 것입니다. 이 견해는 다른 모든 교회는 거짓 교회이고 그리고 다른 교회에 소속된 모든 교회원들은 참 신자가 아니라고 여기는 관점입니다. 이것은 확실히 진리는 아닌데, 어떤 식으로든지 무조건 다른 교단의 교회원이라면 아예 성찬식에서 배제하는 것은 잘못일 수 있습니다.

셋째, 한정된 성찬식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붙잡아야 할 올바른 견해인데, 더 자세히 말하면, 장로들은 그들의 교리와 생활 기준으로써 참가여부를 판단하여 참 신자들만 받아들이는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만약, 다른 교회에서 온 신자가 복음의 진리를 확실히 고백하고, 그리고 실제로 성경을 믿는 교회에 속해 있으면서 교회에서의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다는 것이 확인된다면, 그러한 사람들도 얼마든지 참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교회원이 아닌 사람이 성찬식에 참여하기를 요청할 경우, 장로들에 의한 예의와 엄숙함을 갖춘 확실하고도 진지한 점검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하면 진실되이 믿지 않는 자들은 제외될 것이고, 악하거나 믿지 않는 사람이 성찬식을 욕되게 하는 문제로 스스로를 해치는 일이 허용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에 따라 진정 주님의 만찬식은 심판의 상이 아닌 축복의 상이 될 것입니다.

Posted in 오늘의 신앙고백묵상.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