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21일(SUN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29주차(78-79문답)

[제78문] 떡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실제 몸과 피로 변합니까?  [대답] 아닙니다. 세례의 물이 그리스도의 피로 변하는 것도 아니고, 죄 씻음 자체도 아니며 단지 하나님께서 주신 표와 확증인 것처럼(엡 5:26; 딛 3:5), 주님의 만찬의 떡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마 26:26-29). 주님의 만찬의 떡을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는 것은(고전 10:6; 11:26) 성례의 본질을 나타내는 성례적 용어입니다(창 17:10-11; 출 12:11, 13, 26-27; 13:9; 24:8; 행 22:16; 고전 10:1-4; 벧전 3:21). 

첫째, 화체설을 주장하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거절된 잘못(error rejected)을 살펴보겠습니다. 제78문답에서는 명백히 로마 가톨릭 교회의 잘못된 교리를 거절합니다. (이 문답은 세례에 관한 잘못을 거절한 제72문답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A.D. 1215년 로마 카톨릭 교회는 성찬의 빵(떡)과 포도주가 문자적으로 그리스도의 실제 살과 피로 바뀐다고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을 ‘화체설(transubstantiation [trans = 건너서(across); substantia = 물질(substance) = 물질이 다른 물질로 건너감)’이라고 합니다. 후에 신앙고백문답에 첨가된 제80문답에도 이곳의 로마 카톨릭 교회의 잘못된 화체설을 다시 다룹니다.

화체설이라는 거짓된 가르침은 빵과 포도주가 기적적으로 참된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한다는 것인데, 이것은 정말이지 그 동안 다른 사람들은 왜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싶을 정도로 기상천외의 발상입니다. 이 잘못된 교리는 주님께서 만찬에서 말씀하신 짧은 구절에 대한 잘못된 해석으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주님은 마태복음 26:26, 28에서, 제자들에게 빵을 주목하게 하시면서 “이것은 내 몸이니라(is)”라고 말씀하셨고, 또한 포도주를 주목하게 하시면서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is)”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손에 실제로 자신의 살 조각을 들었거나 자신의 피를 컵에 들었다는 그런 의미로 말씀하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기서 사용된 ‘이다(is)’라고 한 단어는 ‘표시하다(represents)’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빵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표시하였던(represent) 것입니다.

이것을 이렇게 증명할 수 있습니다. 가령, 예수께서 “나는 문이다”(요 10:7)라고 말씀하실 때, 그리고 “나는 참 포도나무요”(요 15:1)라고 말씀하실 때, 문자 그대로 문이나 포도나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찌하든지 예수님께서 동시에 그 두 가지가 되실 수는 없지 않습니까? 오히려, 그는 문과 포도나무로 표시되었던 것입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성경만 왜곡시킨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식도 뒤집어 놓았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이치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빵(bread)이고, 빵으로 느껴지고, 빵 맛인 빵 조각이, 화학적 변화에 의해 진짜 사람의 살이 될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이런 것은 믿음(faith)이 될 수 없고, 반대로 말도 안 되는 미신입니다. 예수님께서 베푸신 기적들은 진짜(real) 기적입니다.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켰을 때(요 2:6-11), 그것은 진짜 성질의 변화였습니다. 당시 누구도 그것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곳의 문답에서는 정작 왜 포도주가 아닌 빵만을 거론하고 있는 것입니까? 이는 당시 그들이 ‘미사(mass)’라고 부르는 로마 가톨릭의 ‘성찬(Supper)’에서는 빵만을 사람들에게 주는데, 살 안에 피가 있기에, 사람들이 살(빵)을 먹을 때 피도 마신다고 주장하던 바를 염두에 두고, 잘못을 바로잡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러한 가르침도 더 악한 의도에 따른 그들의 추론일 뿐입니다.

둘째, 루터교의 잘못인 공재설(consubstantiation [con = with])도 비판을 받아야 합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의 화체설과 다르다고 해서 상대적으로 루터교 교리가 더 나은 것은 아닙니다. 공재설은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물질적인 살과 피로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대신 빵과 포도주와 함께(with) 한다고 가르치는 이론입니다. 이 역시 성경과 사람의 일반적인 상식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물질적 육체는 하늘에 있는 하나뿐입니다. 수 만개의 조각으로 찢어지지 않는 것은 당연하고, 따라서 모든 시대의 모든 교회들의 성찬상에 뿌려질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영적이지 않고, 실제로 우리와 같기 때문에 그것은 물질적으로 먹을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 속에서 역사하시는 성신을 통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믿음으로 구원의 축복을 받았다는 그러한 인식 차원에서 그리스도의 몸을 먹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문제는 다음 문답에서 다루게 됩니다.

[제79문] 그렇다면 왜 그리스도는 떡을 그의 몸이라고 하시고, 잔을 그의 피 혹은 그의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라고 말씀하십니까? 또한 바울 사도도 왜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 말합니까? [대답]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데에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마치 떡과 포도주가 육신의 생명을 유지시키 듯이, 십자가에 달리신 그의 몸과 흘리신 피가 우리 영혼을 영생으로 이끄는 참된 양식과 음료라는 사실을 가르치려 하셨습니다(요 6:51, 53-55). 더 나아가서 그리스도께서는 눈으로 볼 수 있는 이러한 표와 보증으로써 우리에게 다음 사실을 확신시키려 하셨습니다. 첫째, 우리가 그리스도를 기념하면서 이 거룩한 표들을 육신의 입으로 받아 먹는 것처럼 실제로, 성신의 역사에 의해 우리가 그의 참된 몸과 피에 참여합니다(고전 10:16). 둘째, 그리스도의 모든 고난과 순종이 확실하게 우리의 것이 되어, 마치 우리 자신이 직접 모든 고난을 당하고 우리의 죄값을 하나님께 치른 것과 같습니다(롬 6:5-6, 8-9; 고후 5:14).

앞에서 주님의 만찬에서 빵과 포도주를 취할 때에 실제로 그리스도의 물리적인 몸을 먹고 피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는 데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지금부터는 그처럼 빵을 먹고 포도주를 마실 때 실제로 무엇을 받게 되는 것인가를 배웁니다. 앞서 제73문답은 세례 성례에서 받는 확신의 은혜(the grace of assurance)를 가르쳤습니다. 같은 방식으로 이곳에서는 주님의 만찬에 참여할 때 믿는 자에게 받은 은혜에 대한 확신이 주어진다는 것을 배웁니다. 하나님께서 신자들에게 확신시켜 주시는 것은, 그리스도의 죽음으로서의 그리스도의 살과 피는 그들의 구원을 위해 진실하다는 데 대한 것입니다.

우리는 ‘성례적 용어’에 친숙해져야만 합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외적인 표(outward sign)는 영적 축복 그 자체라고 종종 불려진다는 것입니다. 세례의 물은 ‘죄를 씻어낸다’(행 22:16)고 말하듯이, 성찬에서의 빵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살’과 ‘피’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그것들을 제대로 받게 될 때 은혜의 약속이 외적 요소에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성례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외적 표는 표명된 것의 영적 은혜를 성신께서 전달하시려고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세례도 주님의 만찬도 단순히 공허한 준수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을 통해 은혜를 베푸십니다. 어찌되었든 성례는 개심하는 의식(converting ordinances)이 아니라는 것도 강조되어야만 하지만, 그것들은 이미 임했거나 앞으로 임할 은혜(유아 세례의 경우)를 강화시켜 주고 확신시켜 줍니다.

이 문답에서는, 성찬의 표와 인 양면이 다시 강조됩니다(이미 제75문답에서도 강조되었습니다). 첫째로,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몸과 흘리신 피는 우리의 영혼을 영생으로 인도하는 참된 양식과 음료’라고 배웠습니다. 둘째, 그리스도의 순종과 죽음에 의한 축복은, 우리가 믿음으로 빵과 포도주를 받는 것처럼 성신에 의해 우리에게 인쳐집니다. 즉, 우리의 마음이 점차적으로 확신되고(assured), 우리는 더욱 더 그리스도께 속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로서는 주님의 만찬의 목적과 의미를 확실하게 이해하는 것이 참으로 얼마나 중요한지를 확인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참으로 위대한 영적 특권들 중의 하나로 여겨야 합니다. 주님의 축복된 상으로 가는 허락을 받기 전까지는, 신앙적으로 모든 것이 만족한 듯이 그대로 있어서는 안 됩니다.

Posted in 오늘의 신앙고백묵상.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