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14일(SUN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28주차(75-77문답)

[제75문]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이루신 단 번의 제사와 그의 모든 공효에 우리가 참여함을 주님의 만찬에서 어떻게 깨닫고 확신합니까? [대답]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와 모든 성도에게 자신을 기념하여 이 뗀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시라고 명령하시고 또한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마 26:26-28; 막 14:22-24; 눅 22:19-20; 고전 10:16-17; 11:23-25). 첫째, 주님의 떡이 우리를 위해 떼어지고 잔이 나에게 분배되는 것을 내 눈으로 보는 것처럼 확실히, 그의 몸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드려지고 찢기셨으며 그의 피도 우리를 위해 쏟으셨습니다. 둘째, 그리스도의 살과 피의 확실한 표로서 주님의 떡과 잔을 우리가 목사의 손에서 받아 입으로 맛보는 것처럼 확실히,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의 몸과 흘리신 피로써 우리의 영혼을 친히 영생에 이르도록 먹이시고 마시우실 것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75번부터 82번까지를 통해서는 우리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두 번째 성례인 성찬을 다룹니다. 여기서도 세례 부분과 같은 형식을 따를 것입니다(문답 69번 참조). 이 문답은 자세히 말하자면 역시 상징인데, 세례에 관한 문답 69번같이 성찬에 관하여 이것을 묻는 것입니다.

첫째, 두 가지 요소가 있는데 빵과 포도주입니다. 주님의 만찬은 ‘성찬’이나 ‘주님의 식탁’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두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이 두 가지는 성경 시대에는 무척이나 일반적인 음식들이었는데 물론 빵은 아직까지도 우리가 주식으로 삼고 있으며 포도주도 중요한 음식입니다. 주님께서는 거룩한 성례의 상징을 제정하시면서 이들 음식들을 선택하셨습니다.

왜 주님께서 음식을 택하셨겠습니까? 이는 우리의 육체가 계속해서 살 수 있기 위해서는 반드시 음식이 필요한 것처럼, 그리스도의 살과 피는 우리 영혼의 영적 생명을 위하여 필요로 한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함 때문입니다. 빵과 포도주는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기억하게 합니다. (당시에는 빵을 칼로 자르지 않았기 때문에) 빵을 먹기 위해선 찢어야만 했습니다. 그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은 우리 죄값을 지불하기 위해 찢겨졌습니다. 물론 구약성경의 예언처럼 그리스도의 뼈는 부러지지 않았다는 것을 유의해야 합니다(요 19:31-36). 하지만, 그리스도의 육체와 영혼은 죽음에 의해 분리되었고, 이런 관점에서 그리스도의 몸은 우리를 위한 ‘찢겨짐’이었습니다. 포도주는 붉은 색인데 당시에 허약하고 피곤한 사람들을 위한 자극제였습니다. 포도주의 색깔을 통해 피흘림의 의미가 확실한 인상으로 더해짐으로써 그리스도의 죽음은 보다 더 확실하게 묘사되었습니다.

둘째, 주님의 만찬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이 문답에서 우리는 주님의 만찬이 주는 교훈은 두 가지로, 첫째, 그리스도께서 단 번에 행하신 것이 무엇이고, 다음으로, 그가 계속 행하시는 것은 무엇인지를 가르칩니다. 그리스도의 몸과 피는 십자가 위에서 산산조각이 나버렸습니다. 그리하여 의와 영적 생명이 그러한 그리스도님의 고귀한 죽음과 부활과의 지속적인 소통이 주었고, 혹은 그가 우리를 위해 죽고 다시 사신 바가 성신에 의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우리에게는 계속해서 음식이 필요하듯이, 우리의 영적 생명을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생명과 그로 말미암은 은혜도 지속적으로 필요로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영적은 시들시들하게 됩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빵을 찢는 것과 포도주를 붓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상에서 무엇을 행하셨는지를 생각하게 해줍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빵과 포도주를 보면서 그것을 취할 때,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우리에게 먹이시고 영원한 생명으로서 사는 우리의 영혼에 영양분을 준다’는 데 대한 보증을 받습니다. 여기 제75문답에서 ‘확실히’라는 단어가 두 번 사용된 것을 주의하십시오. 이 성례의 표면적 요소는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와 우리의 연합에 확실히 주목하게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찬에서 영적인 양식이 되시는 방식으로 자신의 약속에 합류했습니다. 이것은 마치 세례가 영적 씻음의 약속에 합류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제76문]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몸을 먹고 그의 흘리신 피를 마신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대답] 그것은 믿는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모든 고난과 죽음을 받아들이고 이로써 죄 사함과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며(요 6:35, 40, 47-54), 나아가서 그리스도 안에 또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신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그리스도의 거룩한 몸에 더욱더 연합됨을 의미합니다(요 6:55-56; 고전 12:13). 비록 그리스도는 하늘에 계시고 우리는 땅에 있다 할지라도(행 1:9, 11; 3:21; 고전 11:26; 골 3:1) 우리는 ‘그(리스도)의 살 중의 살이요 그의 뼈 중의 뼈’이며(창 2:23; 요 14:23; 고전 6:15, 17, 19; 엡 3:16-17; 5:29-30; 요일 4:13), 마치 우리 몸의 지체들이 한 영혼에 의해 살고 다스림을 받는 것처럼, 우리도 한 성신에 의해서 영원히 살고 다스림을 받습니다(요 6:57; 15:1-6; 엡 4:15-16; 요일 3:24). 

제76문답은 성찬의 본질 혹은 영적인 의미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제70문답이 영적인 씻음은 ‘보혈’과 ‘그리스도의 성신’에 의해 성취되었다고 설명한 것과 같이, 우리는 여기서 무엇이 그리스도에 대한 영적인 먹음과 마심인지를 같은 차원으로 배웁니다.

첫째, 성찬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친교합니다. 만일 불신자가 사람의 살을 먹고 사람의 피를 마신다고 하는 우리의 이야기를 들으면, 분명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혐오감까지 갖게 될 것입니다. 기독교 초기에 실제로 기독교인들은 인육을 먹는다는 죄목으로 원수들에 의해 고발당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물론 우리 앞에 있는 주님의 만찬은, 문자대로 그리스도를 물질적으로 먹고 마심이 아니라, 순전히 영적인 의미로 그렇게 하는 것임에도 말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우리는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먹는다’는 말의 의미를 정확하게 배워야 합니다. “믿는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모든 고난과 죽음을 받아들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앞선 문답에서 보았듯이, 우리는 만찬에 임하면서, 우리가 믿고 있는 그리스도에 관하여 특별히 두 가지를 생각합니다. ① 우리는 십자가 위에서 이루어진 속죄의 희생을 믿습니다. 용서와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친히 성취하신 ‘그리스도의 고통과 죽음’을 믿는 것입니다. ② 우리는 성신에 의해 그리스도의 몸에 영적으로 연합되었다는 것, 그래서 부활하신 그의 생명이 우리의 영혼에 이어져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머리이시며, 우리는 그의 몸인 교회를 이루는 한 지체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자신의 육체의 살과 뼈처럼, 그런 정도로 가까이 그리스도께 연합되어 있습니다.

둘째, 우리의 믿음은 주님의 만찬 참여에서 더욱 견고해집니다. 주님의 만찬을 먹을 때, 지상에서 성취하신 그리스도의 희생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 견고해지고, 또한 천상에 계신 그의 인격과의 우리의 연합도 견고해집니다. 우리가 먹는 것처럼, 우리는 그에게 속해 있고 그 어떤 것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의와 생명과 사랑으로부터 분리시킬 수 없음을 확신합니다.

주님의 만찬에서 우리의 믿음은 무척이나 활동적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깊이 묵상합니다. 이것이 세례와 주님의 만찬과의 다른 점입니다. 세례는 우리가 연약할 때에 그리고 아마도 그리스도께서 무엇을 하셨는지 알아채지 못하는 순간에, 우리를 하나님 자신에게 합류시키는 일이 일어났다는 데 대한 표와 인입니다. 우리는 거듭남에 있어서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성찬에서는 우리의 영혼은 아주 분주하고 확고부동한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보고, 맛보고, 먹고, 그렇게 우리의 영혼은 계속 먹으면서 그리스도를 즐거워합니다. 물론 우리는 단 번에 하나님과 연합되었기 때문에 단 한 번만 세례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매일 지속적으로 그리스도를 먹어야만 합니다. 따라서 평생 동안 주님의 만찬에 참여해야 합니다. 주님의 만찬을 통한 ‘주님과의 우리의 교제’는 단지 짧은 한 순간만으로 충족한 것이 아니고, 우리가 그것(주님의 만찬)을 다시 행할 때까지 계속 지속되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제77문] 믿는 자들이 이 뗀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시는 것처럼 확실히,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그의 몸과 피로 먹이고 마시우겠다는 약속을 어디에서 하셨습니까? [대답] 주님의 만찬을 제정하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 11:23-26). 바울 사도는 이 약속을 반복했습니다.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떡은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한 떡에 참여함이라”(고전 10:16-17).

제77번 문답에 주님의 만찬이 제정되었다는 사실이 명확하게 진술되었습니다. 즉, 그것은 그리스도께로부터 주어진 성례로 참으로 ‘성경적 권위(the Scriptural authority)’입니다. 이 문답은 ‘세례의 제정’을 보여준 제71문답과 비슷합니다. (만약 성례가 단순히 인간이 행하는 의식을 넘어 더 많은 것이 될 수 있으려면, 우리는 성례를 위하는 성경적 권위를 반드시 가져야만 합니다.)

공관복음(마태, 마가 그리고 누가)과 고린도전서 11:23-25은 성찬의 제정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그리스도의 사역과 인격에 근거해 영적인 양식을 제공하겠다는 약속이 나타나 있습니다. 참고로 고린도전서 10:16-17은 “그리고 이 약속은 역시 반복된다 ... ”라는 내용 아래 신앙고백문답에서도 역시 인용되었습니다(참고로, 이 같은 문구는 제71문답의 마지막 부분에도 사용되었는데, 이는 분명히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성례가 사도 바울에 의해 재확인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때문입니다). 거룩한 만찬의 준수와 관련하여 몇 가지 문제를 좀 더 생각해 봅시다.

첫째, 주님의 만찬은 유월절과 연결되어 그리스도에 의해 제정 혹은 임명되었습니다. 유월절 식사를 마친 후, 예수님께서는 이 새로운 성례를 제정하기 위해 유월절 식탁에서 누룩 없는 떡과 포도주를 사용하셨습니다. 성찬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죽음을 ‘돌아보고’, 그리고 ‘생각해 내는 것’ 외에도 진정 ‘유월절의 연장(the continuation of the Passover sacrament)’입니다. 실제로 구약성경에서의 유월절 성례는 미래에 성취될 그리스도의 죽음을 가리켰습니다. 다른 차이점은 유월절은 피가 반복적으로 뿌려지는 성례였지만, 주님의 만찬에서의 그리스도의 보혈은 이미 모든 사람들을 위해 단 번에 흘려졌기 때문에 그렇지 않습니다.

둘째, 주님의 만찬은 모든 믿는 자들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명령하셨습니다. “이것을 행하라”라고 한 말씀의 의미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주님의 만찬에서 주님을 반드시 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무시하는 것은 그리스도와 그의 대속 죽음을 대적하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셋째, 주님의 만찬은 교회에서 자주 시행되어야만 합니다. “가능한 자주 먹고 마시라”고 했습니다(고전 11:25). 성경에서 성찬식 거행을 몇 차례씩 하라고 정해준 횟수는 없습니다. 일부 교회들은 한 달에 한 번씩 거행하고, 다른 교회들은 세 달에 한번 거행하고, 또 일부 다른 교회들은 일년에 서너 번 거행합니다. 성찬의 횟수는 최적의 집행과 회중의 교화를 위해 지역 교회 지도자들이 결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급적 자주 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넷째, 세례가 그렇듯이 이 성례도 교회의 규례입니다. 성찬은 설교 말씀과 함께 연결하여 회중에게 거행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성찬을 제정하실 때에 제자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옛적에는 의식을 관리하는 교회 장로들이 오랫동안 개인적으로 집에서 성찬을 실행했다 할지라도 이제는 교회가 완성된 상태에서 전진하는 것이므로 성찬을 사적이 되도록 처리되어서는 안됩니다.

다섯째, 성찬에서는 함께 참여하는 다른 믿는 자들과의 영적 교제가 있습니다. 이것은 고린도전서 10:17에서 아주 확실하게 가르칩니다. “떡이 하나(loaf)요 많은 우리(partakers)가 한 몸(one body)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Christ)에 참예함이라.” 성찬 테이블에서 우리는 한 떡(one loaf)을 먹음으로써 산 떡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간에 더욱 철저히 교제하는 것입니다.

Posted in 오늘의 신앙고백묵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