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7일(SUNDAY) ● 웨스트민스터 소신앙고백문답 제014문답 해설과 묵상

[제14문] 죄가 무엇입니까? [대답] 죄는 하나님의 율법을 조금이라도 부족하게 지키거나 그 법을 어기는 것입니다(레 5:17; 갈 5:19-21; 약 4:17; 요일 3:4).

웨스트민스터 소신앙고백문답 제14문은 ‘죄가 무엇인가’를 단도직입적으로 묻습니다.  죄가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아는 일은 너무나도 중요한 일이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죄의 결과가 초래할 무시무시한 형벌에 대해서는 별로 감각이 없습니다. 죄란 무엇입니까? 신앙고백문답에 따르면, “죄는 하나님의 율법을 조금이라도 부족하게 지키거나 그 법을 어기는 것”입니다. 여기서 죄를 규정 짓는 원리로써 하나님의 율법이 제시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키는 것임에 다름이 아닙니다. 이 하나님의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성문법의 형태로 주어졌지만, 사실은 모든 인류에게 주어졌다고 보아야 정확합니다. 이것을 자연법이라고 하는데, 이해하기 쉬운 말로 양심법이라고도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율법으로서의 자연법은 성문법이 되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율법보다 시간상으로 월등히 앞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본디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의도는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삶의 질을 풍성하게 가꾸어 갈 수 있게 해주시려는 데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법을 대할 때 갖는 우리의 감정은 상당히 긍정적인 것이어야 하지만, 우리는 아담의 타락 안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무능력에 사로잡히게 되었으므로, 반대로 하나님의 율법에 대해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생각을 갖게 됩니다.

여기에 더하여 하나님의 율법이 언약의 형태로 주어진 데서 오는 변화도 생각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이 타락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방도로써 율법을 베푸셨습니다.  이 율법이 하는 일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인간의 무능력과 죄성을 드러내는 것이고, 둘째는, 그러므로 자신의 구원을 자기 자신이 아닌 바깥에서 구하게끔 해주는 것입니다. 전자를 율법의 정죄하는 권세라고 본다면, 후자는 율법의 몽학선생으로서의 기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율법이 언약의 형태로 주어졌다는 것은, 율법을 받는 대상, 즉 언약 백성은 기본적으로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전제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향후 율법의 정죄하는 기능은 의미가 상당히 약화되어버렸고, 반대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여금 참된 선을 지향할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두드러지게 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언약 백성에게는 더 이상 정죄와 심판이 주어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이라는 개념 자체가 하나님의 정죄와 심판으로부터 벗어나는 데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개혁된 교회는 율법의 이 세 번째 기능에 주목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 생활상의 준칙으로 삼습니다. 즉 언약 백성에게서의 율법이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삶을 살 수 있게 해주는 필요적절한 길잡이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것을 ‘새 계명’이라는 이름으로 의미 있게 표현하습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소신앙고백 문답의 대답이 그러하듯이, 죄를 죄로 규정 짓는 율법의 역할과 더불어 생각해 볼 수 있는 개념입니다. 가령, 네 이웃에게 거짓 증거하지 말라고 한 말씀이 있다고 봅시다. 성도가 여기에 걸리게 되면, 이는 명백히 죄가 됩니다. 율법을 지키지 못한 것이고, 나아가 확실하게 어긴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으로서 끝이 아닙니다. 성도는 이 단계에서 회개하게 되고, 그로 말미암아 향후 그러한 죄를 멀리하게 됩니다. 물론 또 반복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처음에 비하여 강도나 횟수가 현저히 줄어들기 마련입니다. 성도의 심령은 기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에 의해 활성화되기 마련이므로, 성신의 인도를 받는 삶이 충만해지면 충만해지는만큼, 그러한 죄를 멀리하게 되고, 도리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한 생활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리하겠습니다. 율법은 죄를 죄로 규정 짓습니다. 무엇이 죄인가를 명확하게 밝혀 줍니다. 심지어 성도가 마음에 품는 죄까지도 정확하게 죄라고 지적해줍니다. 그러나 언약 백성이기 때문에, 다시 말해서 성도이기 때문에 정죄되지는 않습니다. 정죄는 구원 받지 못한 세상 사람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물론 성도도 사실은 앞서 정죄를 받았습니다. 이때 예수 그리스도께 대신 물어진 정죄입니다. 그러므로 향후 성도에게서의 율법은, 죄가 죄인 것을 깨달아 이를 과감히 벗어버리게 해주는 동시에 상대적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행이 무엇인가를 알아, 이에 열심을 내게 해주는 길잡이가 되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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