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03일(SUNDAY) ● 웨스트민스터 소신앙고백문답 제009문답 해설과 묵상

[제009문]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일이란 무엇입니까? [대답]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일은 엿새 동안에 아무것도 없는 중에서 자신의 능력 있는 말씀으로 만물을 지으신 것인데(창 1:1; 시 33:6-9; 히 11:3; 계 4:11),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모든 것이 좋았습니다(창 1:31; 딤전 4:4).

제9문답의 주제인 ‘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주제는 앞의 제8문답에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작정을 어떻게 이루십니까?”라고 물은 데 대한 첫 번째 대답 조항인 ‘창조’라고 하는 주제를 좀 더 구체적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초의 창조 사건까지 포함한 모든 일을 주도면밀하게 계획하신 바에 따라 시행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창조 사역과 관련하여 두 가지 특징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인간은 무엇을 만들거나 건축한 경우, 반드시 그에 합당한 재료를 사용해야만 합니다. 가령 집을 짓는다면 철근, 목재, 벽돌, 시멘트, 연장 등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계를 창조하실 때에는 어떤 재료도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떠한 물질 자체도 있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는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 11:3)라고 했고, 같은 맥락으로 시편 저자는 “저(하나님)가 말씀하시매 이루었으며 명하시매 견고히 섰도다”(시 33:9)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통상 이야기하는 ‘무에서의 창조’라는 것입니다.

둘째, 건물을 건축하거나 물건을 제작하는 공정 과정에는 반드시 어느 정도의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만일 벽돌을 쌓아 집을 짓는다면 그만한 기간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간 개념은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벧후 3:8)고 바와 같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의 기간에 걸쳐 이 모든 우주만물을 창조하셨다는 데 대해서도, 하나님께서 그만한 시간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라는 차원에서 이해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실제로 그렇게 하신 바에 따라, 성경이 그러한 창조의 과정을 보도하는 것은 말 그대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실’과 그러한 ‘창조의 능력’을 계시하려는 의도일 뿐입니다.

다음으로, 창조가 하나님의 손에서 이루어졌을 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모든 것이 심히 좋았더라”고 한 고백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창 1:12, 18, 25 등). 이 말씀이 뜻하는 바는 명백하면서도 아주 중요합니다. 즉,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일체의 악의 기원은 결코 하나님의 창조 사역과는 상관없다는 선포인 것입니다. 죄와 악은 처음부터 창조된 것이 아니고, 스스로 타락한 천사가 만물을 오용한 도덕적 패역에서 기원합니다.

가령 이 문제를 포도주를 실례로 들어봅시다. 포도주 역시도 창조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이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런 정도로 포도주 자체는 선한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와 사람의 얼굴을 윤택케 하는 기름과 사람의 마음을 힘있게 하는 양식”(시 104:15)이라고 한 표현도 있을 만큼 말입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성경은 “술 취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때 성경은 포도주 자체를 나쁜 것이라고 정죄하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인간이 자신의 부패성으로써 이를 오용하고 남용하면서 대체적으로 죄로 치달리는 데 있는 것입니다.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입으로 들어가는 물질 자체에 의해서가 아니고, 반대로 그 마음에서 나오는 것에서입니다(막 7:15).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딤전 4:4)라고 했습니다. 이 교훈을 잘 이해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교회사 속에서 죄의 원인을 인간 바깥에, 곧 세상 물질에 두려는 경향이 있어 왔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이따금씩 물질이 오용되는 상황과 관련하여, 그렇게 오용한 사람보다는 물질 그 자체에다 죄책을 돌려 비난을 퍼부는 우수꽝스러운 일이 일어납니다. 그러면서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골 2:21-22)라고 한 말씀으로 다시금 못박아 버립니다. 이렇게 물질 자체를 악으로 보는 잘못된 관점은 계속해서 여러 가지 오류로 발전합니다. 하지만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한다”(막 7:15)는 말씀을 기억하는 것은 얼마나 중요합니까?

한 가지 덧붙여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 모든 물건을 사용할 수 있는 자유가 있지만, 동시에 남용하거나 오용해서는 안 되고 또한 사치하거나 탐닉해서도 안 됩니다. 이 원리는 화폐와 같은 ‘무형의 가치’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적절한 절제로써 제어되지 아니하면 한도 끝도 없이 뻗어나가려고 하는 육체의 소욕을 잘 억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가하지 않다”고 말씀을 잘 깨닫고 적극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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