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31일(SUN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26주차(69-71문답)

[제69문답]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이루신 단번의 제사가 우리에게 유익됨을 거룩한 세례에서 어떻게 깨닫고 확신합니까? [대답] 그리스도께서 물로 씻는 이 외적 의식을 제정하시고(마 28:19), 그의 피와 성신으로 우리의 영혼의 더러운 것, 곧 우리의 모든 죄가 씻겨짐을 약속하셨습니다(마 3:11; 막 1:4; 16:16; 눅 3:3; 요 1:33; 행 2:38; 롬 6:3-4; 벧전 3:21). 이것은 물로 씻어 몸의 더러운 것을 없애는 것처럼 확실합니다.

우리가 학습하려는 첫 번째 성례는 제69-74문답에서 설명되고 있는 세례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고백문답에서 두 가지의 성례 각각에 대해 같은 성격으로 문답이 진행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세례가 상징이라는 데 대해서는 제69문답에서 설명되었습니다. 성례는 ⑴ 외적 표시, ⑵ 내적인 영적 축복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세례의 외적 표시는 ‘물로써 씻는 것’입니다. 내적인 영적 축복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성신에 의해 ‘죄가 씻겨지는 것’입니다. 물은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되는데, 무엇보다 대표적인 의미는 깨끗하게 하는 성격입니다. 날마다 우리는 우리의 육체를 씻기 위하여 물을 사용합니다. 이와 같은 특성을 염두에 두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영혼의 죄를 씻어 내는 것을 가르치는 물 세례를 명령하셨습니다.

침례교도들은 세례는 오직 표시에 불과할 뿐이라고 주장하지만, 성례에는 겉으로 표시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성례에는 약속이 ‘연결되어 있다’는 데 주목합니다. 물론 구원의 은혜는 성례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문답의 마지막 문구에서 이 명확한 연결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물로 씻어 몸의 더러운 것을 없애는 것처럼 확실합니다.” 그러므로 세례는 외적인 표시이고 그리고 내적인 영적 축복에 대한 인침입니다. 그러므로 세례의 결여는 구원의 외적인 표와 인의 결여를 의미합니다. 이렇게 볼 때 세례는 중요하고 필요합니다. 당신은 당신의 영적인 씻음의 표와 인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까?

그런데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것은, 세례를 받을 경우 그처럼 세례를 받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필연적으로 또는 자동적으로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인하여 자신의 죄로부터 참으로 깨끗해졌고 성신으로 거듭났다는 의미입니까? 아닙니다. 선택된 자들이라 할지라도 세례를 받을 때 즉각 깨끗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은 죽기 전까지는 깨끗해질 것입니다. 반면, 선택 받지 못한 자들은 외형적으로 세례를 받은 표가 있다 할지라도 결코 무엇 하나라도 깨끗해 질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얼마나 많은 양의 물이 세례를 받을 때 사용되어야 합니까? 침례교도들은 ‘한 통 가득’이라고 주장하는데, 결국 몸 전체가 잠길 정도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교회는 붓는 방식으로 세례식을 거행합니다. 하지만 개혁교회는 ‘뿌리는 방식’을 사용합니다. 구약의 씻음은 문자적 의미 그대로 대체적으로 뿌리는 방식이었습니다(참조. 레 16:15-16; 민 8:7; 겔 36:25). 그에 따라 우리 그리스도님의 보혈로써 씻음 역시 뿌리기라고 말하고 있는 히브리서 9:13-14과 10:22을 비교해 봅시다. 실로 세례에서 물의 양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은 세례시에 그처럼 물을 사용하는 의미이고, 이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믿고 신뢰하는 입니다.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성신으로 영혼이 깨끗해 지는 것을 상징합니다.

[제70문] 그리스도의 피와 성신으로 씻겨진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대답] 그리스도의 피로 씻겨짐은 십자가의 제사에서 우리를 위해 흘린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은 은혜로 우리가 하나님께 죄 사함 받았음을 뜻합니다(겔 36:25; 슥 13:1; 엡 1:7; 히 12:24; 벧전 1:2; 계 1:5; 7:14). 성신으로 씻겨짐은 우리가 성신으로 새롭게 되고 그리스도의 지체로 거룩하게 되어, 점점 더 죄에 대하여 죽고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겔 36:26-27; 요 1:33; 3:5; 롬 6:4; 고전 6:11; 12:13; 골 2:11-12). 

세례 시행에서 물로 씻는 것은 그리스도의 보혈과 성신으로 내적 씻음을 구현한다는 것을 앞 문답에서 보았고, 더불어 아주 상세하게 내적인 영적 씻음을 설명했습니다. 문답 70번은 우리에게 세례의 영적 의미로서 본질을 설명해줍니다. 이 구원의 씻음은 두 개로 이루어 집니다. ⑴ 그리스도의 보혈에 의하여 씻김, ⑵ 그리스도의 성신에 의하여 씻김인데, 그렇다면 이 두 가지 씻음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첫째, 그리스도의 보혈로써 씻음의 의미입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은 우리의 죄값을 지불하기 위한 희생이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신앙고백문답을 통해서 여러 번 보았듯이,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주목하게 합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은 우리의 생명을 대신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의 죽음을 대신했습니다. 우리 죄의 책임은 그리스도께 부과되었고, 그리고 하나님의 저주 또한 우리를 대신하여 그리스도에게 떨어졌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죽음을 통하여 우리를 위한 생명과 구원의 공덕을 쌓으셨습니다. 우리의 죄(죄책)는 구세주의 보혈(제물적 죽음)로 씻겨졌습니다(용서).

둘째, 그리스도의 성신으로써 씻음의 의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두 번째 단계를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음’을 떠나 독립적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성신에 의한 씻음은 두 단계로 이루어집니다.

첫 번째 단계는 ‘거듭남’ 또는 ‘중생’(요 3:3; 딛 3:5)으로 불리는 우리 마음의 소생입니다. 제8문답은 ‘거듭남’의 존재에 대하여 말하고, 그리고 제53문답은 성신께서는 우리에게 참 믿음을 주시고, 계속해서 ‘그리스도의 모든 은덕에 참여하도록 만든다’고 가르칩니다. 거듭남은 순식간에 발생하고 결코 반복되지 않습니다.

성신의 씻음의 두 번째 단계는 믿는 자의 계속적 씻음인 점차적인 성화를 가르침에 다름이 아닙니다. 어떻게 우리가 ‘그리스도의 지체로 거룩하게 되어, ① 점점 더 죄에 대하여 죽고 ②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삶을 사는 것’(겔 36:25-27; 벧전 1:2)을 허락 받을 수 있습니까? 하지만 여기서 성신의 씻음의 두 가지 면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초로 하고 있다는 것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개혁교회 성도들이 받은 세례는,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자신의 죄가 용서받았고,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그리스도의 영에 의해 새롭게 만들어졌다고 가르칩니까? 성도라면 마땅히 자신이 단 번에 씻어졌고, 계속해서 씻어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제71문] 세례의 물로 씻는 것처럼 확실히 그리스도께서 자신이 피와 성신으로 우리를 씻으신다는 약속을 어디에서 하셨습니까? [대답] 세례를 제정하실 때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신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마 28:19),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막 16:16). 이 약속은 성경이 세례를 ‘중생의 씻음’이라고 부른 데서도 거듭 나타납니다(딛 3:5; 행 22:16).

제71문답은 세례를 행하기 위한 성경적 권위와 명령인 세례의 규칙에 대해서 가르칩니다. 이미 배운 바와 같이, 성례는 특별히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것’(제66문답)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명령하신 것입니다. 이 문답을 통하여 세례는 확실하게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명령하신 것이라는 데 대한 증명을 위해 성경의 네 구절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입니다(마 28:18-20).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지상명령’ 구절은 그리스도의 교회 전체에 주어진 명령으로 자신이 하늘로 승천하시기 바로 전에 주셨습니다. 여기서 교회는, ⑴ 모든 민족을 가르쳐야 하고(모든 족속을 개종하게 만든다), ⑵ 개종한 자들에게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에로 세례를 주어야 하고(성부, 성자, 그리고 성신), ⑶ 세례를 받은 기독교인들을 예수의 모든 명령으로써 지속적으로 가르쳐야 할 것을 배웁니다. 비록 구속사 속에서 세례 요한과 그리고 요한과 예수님의 제자들이 세례를 베풀었을지라도, 이제 기독교적 세례는 지상명령에 따라 삼위일체 이름에로 시행되도록 제정되어 있습니다. 이 구절은 진정 세례는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우리와 맺으신 은혜언약의 표와 인이라는 것을 가르칩니다. 물론 언약의 약속의 일부는 신앙고백문답이 특별히 강조한 그리스도의 보혈과 성신에 의한 우리의 씻음입니다.

둘째, ‘구원의 약속’입니다(막 16:16). 이 구절은 믿고 세례를 받은 사람에게 구원의 약속이 강조된 ‘지상명령’의 일부분입니다. 즉, 세례는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고백하는 사람은 반드시 받아야 하는 거룩한 예식이라는 선포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저주의 결과로서 믿음의 부재이지, 세례의 부재 때문이 아닙니다. 따라서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만약 세례 받는 것을 거부한다면, 그러면 그에게는 침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셋째, ‘영적 씻음은 필수’입니다(딛 3:5). 전에도 살펴본 바대로 이 구절은 “구원하시되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라고 말합니다. 신앙고백문답의 저자들은 이 구절을 세례에 인용했습니다. 그러나 물세례는 간접적 참여 수단입니다. 이 구절의 핵심은 성신에 의한 중생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마음의 영적 씻음에 대한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물세례를 통해서 거듭난다는 것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확실히 성경 저자들은 자신들의 표현이 그렇게 해석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는 암시조차 하지 않습니다. 이 구절에 대한 칼빈의 주석은 타당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영은 우리를 중생시키시며,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만든다. 하나님의 은혜가 보이지 않고 숨겨지기 때문에, 그것의 보이는 상징은 성령의 세례를 바라보게 한다.”

넷째, 마음의 씻음을 위하여 ‘필요한 것’입니다(행 22:16). 이 구절은, 마음의 씻음의 표와 인인 세례의 의미를 가르친 것으로, 바울이 개종했을 때 아나니아가 한 말과 정확하게 같은 의미입니다. “주님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고 한 말씀에서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표면상의 물로 씻는 행위 자체만을 가르치는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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