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3일(SUN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22주차(57-58문답)

[제57문] ‘육체의 부활’은 우리에게 어떠한 위로를 줍니까?  [대답] 이 생명의 끝에 우리의 영혼은 즉시 머리 되신 그리스도에게 올려질 것입니다(눅 16:22; 20:37-38; 23:43; 빌 1:21, 23; 계 14:13). 또한 우리의 이 육체도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일으킴을 받아 우리의 영혼과 다시 결합되어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이 될 것입니다(욥 19:25-27; 고전 15:20, 53-54; 빌 3:21; 요일 3:2). 

신앙고백문답 제57문답은 사도신경의 고백에서 열한 번째 기사인 “나는 육체의 부활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하는 부분입니다. 앞서 제45문답부터 제49문답에 걸쳐 이 부분에 대한 귀중한 진리를 배웠습니다. 여기서는 이 주제의 다른 면을 보겠습니다.

첫째, 성도로서 마땅히 이해해야 할 것은 우리는 죽는 즉시 우리의 영혼이 그리스도께로 간다는 사실에 대한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의 강도에게 하신 말씀(눅 23:43)과 스데반이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행 7:59)라고 기도한 경우에서, 그리고 빌립보서 1:23과 요한계시록 6:9-10에서 증명되었습니다. 우리는 사람이 죽게 되면 그의 영혼은 죽은 육체와 함께 무덤 속에서 ‘잔다(sleeps)’고 가르치는 제7일 안식교를 비롯하여 그와 비슷한 여호와 증인 및 기타 다른 종교집단들의 가르침을 철저하게 배척합니다. 종교 개혁자 존 칼빈은 자신 쓴 첫 번째 책에서 당시 유행하던 ‘영혼 수면설’의 오류를 성경에 근거하여 조목조목 확실하게 배척했습니다.

성경은 무덤에 묻히거나 기타 다른 방식으로 죽은 모든 육체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에 부활하게 되는 엄청난 영광의 날이 올 것이라고 확실하게 선포합니다. 고린도전서 15:51은 이 사건에 대해 ‘굉장한 비밀’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부활이란 죽었던 우리의 육체의 모든 요소들이 단순히 회복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렇지만 죽었던 몸이 다시 살아날 때에는 원초적인 신분을 유지하게 될 것입니다. 가령, 홍길동씨가 임꺽정씨로 살아나진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게 되는 새로운 몸은 마치 심겨졌던 씨앗에서 나오는 밀의 형체와도 같을 것입니다(고전 15:36-38). 하지만 씨와 형체는 다릅니다. 그러나 형체는 씨앗으로부터 나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렇게 하실는지, 그리고 또한 우리의 새로운 육체가 어떻게 만들어질지를 정확하게 이해하지는 못하겠지만, 실제로 성경에서도 입증되었듯이,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므로 죽은 자를 능히 살릴 수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우리는 육체의 부활에 대하여 세 가지를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첫째, 육체 부활의 확신은 하나님께서 확실하게 약속하신 바에 따른 것입니다. 둘째, 우리의 영혼과 육체는 더 이상 분리되어 있지 않고 다시 결합할 것입니다. 셋째,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초자연적인 육체와도 같이, 우리의 부활로 말미암은 새롭게 입게 될 완전한 육체와 완전한 영혼도 그렇게 영광스러울 것입니다(빌 3:21).

불신자들의 육체는 어떻게 될까 하는 궁금증이 생깁니다. 그들 역시 부활할 것이고, 따라서 그들의 영혼도 부활한 육체와 재결합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영원한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지옥의 완성인 곳에서 영원토록 고통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은 버려진 자들의 입장에서는 매우 두려운 날이 될 것입니다(단 12:2). 우리가 언제 부활할지, 그리고 어떻게 이 세대의 끝이 올지에 대해서는 신앙고백문답 제52문답으로 되돌아가서 다시 한 번 읽어 보면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제58문] ‘영원한 생명’은 우리에게 어떠한 위로를 줍니까?  [대답] 우리가 이미 영원한 즐거움을 마음으로 누리기 시작한 것처럼(요 17:3; 롬 14:17; 요일 3:14) 이 생명이 끝나면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한 완전한 복락을 얻어 하나님을 영원히 찬양할 것입니다(요 17:24; 고전 2:9; 고후 5:2-3). 

우리는 이제 사도신경의 마지막 기사 열두 번째 내용에 도달했습니다. 제목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성경은 영원 혹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 삶에 대한 가르침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만 28번 가량 반복적으로 설명되었습니다(요 3:15, 16, 36; 6:27, 40, 47, 54, 68).

일반적으로 우리는 죽을 때에 장차 들어가게 될 천국에서의 영원한 생명만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앞서 제42문답은 그 방법을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강조점은 새 생명은 엄청 오래 산다는 것에 있지, 새 생명의 질이나 상태에 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좀 더 깊은 의미에서 영생이란, 그리스도와 성신을 통하여 하나님과 교제하는 생활입니다. 이것이 영생에 대한 근원적인 의미입니다. 요한복음 5:24을 보면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영생이란 우리가 죽을 때까지 기다린 후에라야 누리는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 이 세상에서 소유하는 그 무엇인데, 하나님을 알고 그리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교제를 누리고 있는 것이 바로 영생입니다. 요한복음 5:24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지금 현재부터 영생을 누린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고백문답은 “이미 영원한 즐거움을 마음으로 누리기 시작한다”고 함으로써 이 문제를 아주 확실하게 가르칩니다.

물론, 그리스도 안에서의 이 생활은 영원한 것이고, 따라서 우리의 육체적 죽음 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완벽한 방법으로 하나님과의 교제를 계속하게 됩니다. 동시에 그리스도의 얼굴도 뵈올 것입니다(요일 3:2; 계 22:4).

우리는 장차 천국에 들어갈 경우 무엇을 하고 살까 하는 궁금증이 생깁니다. 사실 성경은 이 문제에 대하여 그리 많이 언급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충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추측하건대 상당히 초자연적일 것입니다. 그래도 확실한 것은 우리는 ‘완벽한 축복(완성된 행복과 축복)을 소유’할 것이고, 우리에게 주어진 일들로써 하나님을 섬김으로 “하나님을 영원히 찬양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성경은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 승천해 계신 동안 우리를 위하여 ‘새 하늘과 새 땅’(사 65:17; 계 21:1)을 만드신다고 말씀합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우리의 미래라 아니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우리는 이미 영생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그리스도 안에서의 이 기쁨을 지적을 잘 이해하면서 마음으로 확신하는 가운데 확실하게 느끼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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