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24일(SUN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25주차(65-68문답)

[제65문] 오직 믿음으로만 우리가 그리스도와 그의 모든 은덕에 참여할 수 있는데, 이 믿음은 어디에서 옵니까?  [대답] 성신께로부터 옵니다(요 3:5; 고전 2:12; 12:3; 엡 2:8; 빌 1:19). 성신께서는 거룩한 복음의 설교로써 우리의 마음에 믿음을 일으키시며(행 16:14; 롬 10:17; 약 1:18; 벧전 1:23), 성례의 시행으로 믿음을 굳세게 하십니다(미 28:19; 고전 11:26). 

첫째, 신앙고백문답은 무슨 이유로 성례를 논합니까? 우리는 제65문답으로써 성례에 대한 공부를 시작합니다. 여기서 시작한 성례 주제는 제82문답까지 계속됩니다. 거의 20개의 문답들이 성례의 두 가지 내용인 세례와 주님의 만찬을 집중적으로 다룹니다. 삼위일체(제25문답)는 오직 한 개의 문답이고, 교회(제54문답)도 오직 한 개의 문답이고, 그리고 성경 자체에 대하여는 문답이 없는데, 왜 성례에는 이렇게도 큰 관심을 갖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신앙고백문답이 기록되었을 때(1563), 다른 교리들과는 달리 이 부분은 큰 논쟁거리였기 때문입니다.

성례에 대한 논쟁은 많았습니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성례가 어떤 의미인지에 대한 자체 견해를 가지고 있었고(화체설), 루터교도들도 흡사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고(공재설), 그리고 재침례교도들은 자기네 견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기념설). 개혁교회는 우리가 믿는 바대로 성경에 가장 가까운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둘째, 성신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믿음을 생산하십니다. 신앙고백문답의 이 부분이 참 믿음은 어디에서 오는지에 대해 묻기 시작한다는 것을 주목하기 바랍니다. 우리는 지난 번에 행위가 아닌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의 믿음으로만 얻는 구원을 살펴 보았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어디에서 오는지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이거나 아니면 우리 자신으로부터 옵니다. 만약에 믿음이 우리 자신에게서 온다면, 그 사실에 대해 우리 자신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데, 따라서 우리는 우리에게 믿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것입니다.

성경은 구원을 얻는 믿음은 선택된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이라고 확실하게 가르칩니다(엡 2:8; 딛 1:1). 성신께서 이 믿음을 선택된 자들의 마음에 창조하십니다. 그러면 성신께서는 어떻게 그렇게 하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십니다. 특히 설교되어지는 말씀은 성신에 의해 주도적으로 사용됩니다(롬 10:14).

셋째, 믿음은 자라야 합니다. 믿음이 우리의 마음에 생성된 후로는 그것은 계속해서 강화되고 성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두 가지 방법으로 이루어 집니다. 첫째, 계속되는 설교 말씀으로써 그렇게 되고, 두 번째는 성례에 의해서입니다. 이때에도 말씀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믿음을 위한 은혜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지금 살펴보려는 듯이 성례도 중요합니다.

[제66문] 성례가 무엇입니까?  [대답] 성례는 눈에 보이는 거룩한 표와 인인데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것입니다. 성례가 시행될 때 하나님께서는 복음 약속을 우리에게 훨씬 더 충만하게 선언하시고 확증하십니다(창 17:11; 신 30:6; 사 6:6-7; 54:9; 겔 20:12; 롬 4:11). 이 약속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이루신 단 번의 희생제사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죄 사함과 영원한 생명을 오직 은혜로써 주신다는 것입니다(레 6:25; 마 26:28; 히 9:7, 24; 10:10). 

우리는 신앙고백문답 제66문답과 제67문답에서 성례의 목적을 배웁니다. 문답들이 주목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제물로서의 죽음과 그러한 죽음으로부터 얻는 구원에 대해서입니다.

제66문답은 다양한 요소 또는 일부를 보여주면서 성찬을 정의합니다. 그러나 이 부분을 논의하기 전에, 먼저 ‘성례’라는 단어가 어디에서 파생되었는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단어를 영어 성경에서는 찾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로마 가톨릭은 그들의 라틴어 번역 성경에서 이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이 단어는 ‘신성한’ 혹은 ‘거룩한’을 의미하는 라틴어 ‘사크라(sacrare)’에서 왔습니다. 이 단어는 로마 군인들이 군에 입대할 때 하는 거룩한 서약을 의미했습니다. 이 단어가 우리말 성경에는 없다 할지라도 사용할 수는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단어는 성경에서 세례와 성찬 두 가지 의식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고백문답은 성례에는 네 가지 요소가 있다고 가르칩니다.

첫째, 성례는 눈에 보이는 것입니다. 보고 느낄 수 있는 세례와 성찬 모두는 실제로 물질적 요소로 구성되었습니다. 이것은 성례의 외적 부분입니다. 성례의 영적 부분은 하나님의 은혜로서 믿음으로 사용된 외적 요소를 수반합니다.

둘째, 성례는 거룩합니다. 성례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례는 하나님께 대한 거룩함과 경외함으로 거행해야 합니다. 세례시의 물, 주님의 만찬에서의 빵, 포도주 등의 공통 요소는 그리스도의 교훈의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을 섬기려 할 때에 일반적인 용도에서 특별한 용도로 구별됩니다(출 29:33). 이때 성례 거행 주관자는 오직 안수 받은 목사에게 속해 있습니다. 그리고 성례는 예배 시간에만 행할 수 있는 것이지, 결코 개인적으로 행할 수 없습니다.

셋째, 성례는 표시입니다. 즉, 여행자에게 확실한 방향을 가르쳐 주는 도로 표시판과 같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복음의 약속의 구체적인 실례를 가르쳐 줍니다. 그래서 교부들은 성례를 ‘눈에 보이지 않는 은혜의 눈에 보이는 표시’라고 불렸습니다.

넷째, 성례는 ‘인’ 혹은 ‘증거’입니다. 인은 권위를 나타내는 도장이나 표시입니다. 그것은 그것으로써 인이 제공하는 하나의 권위를 수행합니다. 성례는 하나님의 복음의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구원의 약속을 확실하게 수여하겠다는 데 대한 눈에 보이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표’와 ‘인’이라는 용어는 로마서 4:11에서 온 것으로, 바울은 이곳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써 받은 하나님의 의의 표와 인으로서의 할례인 구약의 성례에 대해 말했습니다. 성례는 내용을 ‘더욱 완벽하게 선언하고 그리고 복음의 약속으로 우리를 인치는 것’입니다. 성례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우리의 믿음에 커다란 도움이 됩니다.

‘복음의 약속’은 문답의 마지막 부분에서 정의되는데, 더 자세히 말하면,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한 죄 사함과 영원한 생명입니다. 성찬에 대한 이러한 질문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면 우리로서는 이 약속이 여러 번 생각나게 될 것입니다.

[제67문] 그러면 말씀과 성례 이 두 가지는 우리의 믿음을 우리의 구원의 유일한 근거가 되는 것,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제사로 향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까? [대답] 참으로 그렇습니다. 우리의 구원이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이루신 단번의 제사에 있다는 것을 성신께서는 복음으로써 가르치고 성례로써 확증하십니다(롬 6:3; 고전 10:16; 11:26; 갈 3:7). 

제67문답은 우리에게 이루어진 구원을 위하여 핵심적으로 말씀과 성례가 함께 일한다고 강조합니다. 말씀 없는 성례는 결코 있을 수 없을 것이기에 말씀은 기본입니다. 복음을 설교하는 것과 성례에 따라 제시된 복음을 언급하는 것은 다릅니다.

첫째, 접근이 다릅니다. 말씀은 귀를 통해서 우리에게 옵니다. 성례는 눈을 통해 우리에게 옵니다.

둘째, 결과가 다릅니다. 말씀은 우리 마음에 믿음을 창조하고 강화시키는데 사용됩니다. 성례는 믿음을 창조하지는 못하고 강화시키는데 사용됩니다.

셋째, 각각의 필요성이 다릅니다. 말씀은 구원에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성례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성례를 첫 번째로, 말씀을 두 번째 순위로 만든 로마 카톨릭 교회를 반대하여, 개혁주의자들의 신앙은 이 둘의 적절한 관계를 보았습니다. 우리는 성례를 너무 성대하게 치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대로 침례교회들처럼 성례를 단순히 텅 빈 징후와 의식으로만 간주하지 않도록 조심해 합니다.

다시 한 번, 우리는 신앙고백문답에서 우리를 말씀과 성례에서 그리스도에게 데려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신의 역사가 필요하다는 데 대한 강조를 봅니다. 우리의 영혼 속에서 역사하시는 성신의 능력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한, 설교 말씀을 듣거나 성례에 참여하는 것은 우리에게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신뢰하게 하고, 그리고 말씀과 성례에서 영적 양식을 취하게 해주는 것은 성신의 능력 때문입니다.

당신은 그리스도 안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물은 그리스도의 보혈에 의해 당신의 죄가 씻겼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당신의 세례는 당신이 그리스도께 속했음을 보장합니까? 성신께서 당신에게 그와 같은 믿음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제68문] 그리스도께서 신약에서 제정하신 성례는 몇 가지입니까? [대답] 거룩한 세례와 주님의 만찬, 두 가지입니다. (구약과는 달리 신약에는 다른 성례가 없으므로 세족식 같은 것을 성례로 제정할 수는 없습니다.)

첫째, 개혁교회에는 두 가지 성례만 있습니다. 제65-67문답에서 성례의 목적을 살펴보았는데, 우리는 이제 68문답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교회에 제정하신 성례의 숫자를 배우는데 많지도 적지도 않게 두 개입니다.

둘째, 하지만, 로마 카톨릭 교회는 다섯 개의 성례를 더 보탰습니다. 이것은 불필요한 주제처럼 보이는데, 왜냐하면 우리의 개혁주의 선조들처럼 우리는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하튼 로마 카톨릭 교회는 신약 성경에서 그리스도께서 주신 두 개의 성례에 다음과 같이 다섯 개를 더 보탰습니다. ① 견진 성사: 구원의 은혜가 성직자가 손으로 행하는 안수로 확증됩니다. ② 고해 성사: 사제 앞에서 죄에 대해 고백하고 그리고 죄를 속하기 위해 고통스러운 몇 가지 고행을 수행합니다. ③ 신품 성사: 사제단에 의한 성직 수여식을 통하여 사제는 대중에게 떡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실제적인 살과 피로 변할 수 있게 하는 능력을 받습니다. ④ 혼배 성사: 사제에 의해 결혼하는 사람에게는 특별한 은혜가 수여됩니다. ⑤ 종부 성사: 사제가 죽어가는 사람에게 기름으로 안수하는 것인데, 그러한 방식으로 그 사람으로 하여금 죽음에서의 마지막 고투를 위하여 힘을 돋우게 합니다.

이상의 것들은 다분히 미신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성사들’이 올바른 것처럼 보이는 것은 교묘하게 잘 꾸며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사람이 창안해 낸 것들이어서 성경적이 아니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개혁주의자들은 성경의 진리로 돌아갔습니다. 그리하려 로마 카톨릭 교회의 다섯 가지 성사를 명확하게 부정했습니다. 성경의 진리로써 우리를 돌이켜 준 개혁자들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겠습니다.

셋째, 옛 언약의 피 묻은 성례는 피 묻지 않은 새 언약의 성례에 의해 대체되었습니다. 세례와 주님의 만찬인 두 가지 성례만을 말할 때에 이들 신약의 성례가 구약 성경의 두 가지 성례인 할례와 유월절을 대신한다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세례는 할례를 대신하고, 성찬은 유월절을 대신합니다. 구약의 두 가지 성례는 피를 묻힙니다. 그것들은 피를 포함했고, 그런 식으로 미래에 그리스도께서 피 흘리실 것을 내다보게 했습니다. 마침내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위해 흘려졌으므로, 신약의 성례는 더 이상 피를 묻히지 않습니다. 구약과 신약의 성례 모두 그리스도의 죽음을 가리킵니다. 할례와 유월절은 미래를 내다보면서 그리스도의 죽음을 주목하게 했습니다. 세례와 성찬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그리스도의 죽음을 주목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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