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17일(SUN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24주차(62-64문답)

[제62문] 우리의 선행은 왜 하나님 앞에서 의가 될 수 없으며 의의 한 부분이라도 될 수 없습니까?  [대답]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수 있는 의는 절대적으로 완전해야 하며 모든 면에서 하나님의 율법에 일치해야 합니다(신 27:26; 갈 3:10). 하지만 우리가 이 세상에서 행한 어떤 최고의 행위라도 모두 불완전하며 죄로 오염되어 있습니다(사 64:6). 

지금까지 믿음과 의의 명확한 관계성을 보았습니다. 믿음은 그리스도를 붙잡고 그의 공의를 위한 의를 받는 도구로서의 ‘손’입니다. 이제부터는 제62문답부터 제64문답에서 선행이 의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알아보겠습니다.

제62문답은 행위에는 공로가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내어놓는 믿음조차도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63문답은 선한 행위에는 ‘상’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선행과 우리의 의의 관계에 대하여 검토해 봅시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어떻게, 또는 무엇인가를 함으로써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다거나, 자신의 죄를 갚을 수 있다거나, 죽음 이후에 자신들을 위하여 천국 자리를 마련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인간 세계의 종교는 예외 없이 선한 행위로써 스스로의 구원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오직 참 종교인 기독교만이 선행은 자신의 구원에 도움을 줄 수 없다고 가르칩니다.

선행이 우리를 의롭게 만든다거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납하도록 할 수 없는 이유는, 그러한 선행은 하나님의 요구 앞에서 함량 미달로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선행의 가치란 실상 그런 것입니다. 행위가 완전해지기 위해서는, 우리 마음에 죄가 조금도 없어야 하고, 하나님을 완전하게 사랑해야 하고, 이때 하나님뿐 아니라 사람을 향해서도 그러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신앙고백문답 처음 부분에서 살펴보았듯이(제5문답과 제6문답), 사람의 마음은 아주 악합니다. 그래서 완전하게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하나님의 거룩한 법에 온전히 순종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행위는 제아무리 인간 편에서 보기에 완전해 보여도, 실상은 불완전하며 죄로 오염되어 있습니다.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이신 하나님의 아들만이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행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모든 행위들은 완벽했고 하나님 마음에 무척이나 흡족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그리스도의 완전한 행위의 미덕과 의가 자신을 믿는 우리에게 무상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자신의 선한 행위가 선으로서의 가치가 있다거나 천국행 표를 받음직한 도덕적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치명적인 거짓입니다. 그것들은 인간이 보기에 그럴 뿐이지, 하나님 앞에서는 썩은 행위에 의한 철저하게 부패한 것일 뿐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아무도 없도다”(롬 3:10)라고 했습니다. 물론 지금 우리는 성도로서 의롭습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의 선행으로 불리는 그 어떤 것에 의해서가 아닙니다.

[제63문] 하나님께서 우리의 선행에 대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 상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는데, 그래도 우리의 선행은 아무 공로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까? [대답] 하나님의 상은 공로로 얻는 것이 아니고 은혜로 주시는 선물입니다(눅 17:10; 딤후 4:7-8). 

우리는 아직도 계속해서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과 우리의 행위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앞의 제62문답에서 인간의 선행은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의로움에 어떠한 공적이나 가치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성경이 다음과 같이 세 가지 방향으로 가르친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선을 행한 사람에게 상을 주십니다. 이 명제 앞에서 분명한 대답을 해야만 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는 선하고 순종하는 사람은 보상하고 사악하고 불순종하는 사람은 처벌한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확실히 그랬습니다. 성경에는 100개 이상의 구절에서 상급에 대해 말합니다. 가령 여기에 하나님의 은혜로 선행을 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상을 주신다고 가르치는 구절들이 있습니다. 시 19:11; 마 6:4; 19:29; 고전 3:14; 딤전 4:8; 히 6:10; 계 22:12. 우리는 제시된 이 구절들을 일일이 살펴 보아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상은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지, 공로에 의해서가 아닙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선한 일을 행하는 사람에게 오직 그러한 이유만으로 상을 주신다면, 그것은 그와 같은 선행 안에 정말로 무슨 공로가 있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순종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상급은 항상 공로가 아닌 은혜에 기초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사람에게 빚을 지지 않으십니다. 순종에 대한 공로는 결코 적립되지 않습니다.

셋째, 모든 선행은 사실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행해진 것입니다. 자신이 행해야 하는 것보다 선을 더 행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눅 17:10). 각 사람은 자신의 자연스러운 의무처럼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해야 할 빚을 졌습니다. 더구나, 우리가 행하는 모든 선행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힘으로 다하기에도 결코 충분하지 않습니다(빌 2:13).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상급을 내리실 빚을 졌다는 식으로는 결코 항의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우리가 보듯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상을 주십니다. 그러니 상은 은혜로만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받을만하지 못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십니다. 우리의 구원은 행위로서가 아니라 온전히 은혜로서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상급도 포함합니다.

[제64문] 이러한 가르침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무관심하고 사악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대답] 아닙니다. 참된 믿음으로 그리스도에게 접붙여진 사람들이 감사의 열매를 맺지 않는 것은 불가능합니다(시 92:12-15; 마 7:18; 눅 6:43-45; 요 15:5). 

오직 은혜로만 구원을 받고 그리고 오직 믿음으로만 그리스도의 의를 받음에 관한 모든 것을 말한 후에 우리는 실제로 우리의 행위와 행실은 구원의 수단으로는 정말 중요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선행은 정말 필요합니까?

첫째,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것은 필연적입니다. 신앙고백문답은 이 문제에 대한 성경의 진리에 대한 조화를 제공해 줍니다.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우리의 순종은 우리에게 구원의 조건으로 작용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우리의 순종은 우리 안에 심겨진 ‘새로운 생명의 특성상’ 필연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선행으로 의로워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의로워졌기에 선을 행합니다. 이 말은 의로워진 자들에게는 선을 행하고자 하는 열망과 능력이 생긴다는 의미입니다.

둘째, 우리가 구원 받은 목적은 거룩해지고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전에,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살고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에 따라 하나님을 섬길 수 있기 위하여,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셨다고 한 바를 보았습니다(제1문답과 제43문답을 다시 읽어봅시다.). 그리스도인이 그들의 구세주 앞에서 거룩하고 순종하고 감사하며 사는 것은, 단순히 바람직한 정도인 것이 아니라, 절대적이고 필수적인 것입니다. 성도가 감사의 열매는 맺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가장 큰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거룩하게 닮는 것이고(롬 8:29), 그리고 선한 일에 열매 맺도록 하기 위함입니다(엡 2:10).

셋째, 선을 행하시는 능력은 성신으로부터 옵니다. 믿는 자들은 새롭고 감사의 삶을 살기 위한 내적 능력을 어떻게 받습니까? 그것은 우리는 성신으로 인하여 새롭게 태어났으며(요 3:6-8; 요일 3:9), 그리하여 하나님의 태생이라는 사실 자체에 수반되어 있습니다. 중생시에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받았습니다.

넷째, 칭의는 순종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로마서 8:18, 22은 성도는 하나님의 종이 되었고, 그러할 때에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며 거룩하게 사는 능력이 주어졌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의 믿음에 의한 우리의 의의 열매로서의 칭의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살고자 하는 욕망을 성신께서 주셨습니까? 우리 각 사람은 종종 이 질문 앞에서 스스로 대답해보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제59문답에서 제64문답까지를 통해서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을 가르치는 위대한 성경적 교리 공부를 마무리했습니다. 다음부터는 신앙고백문답 가르침의 다음 단계인 거룩한 성례(제65-82문답)를 살펴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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