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27일(SUNDAY) ●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답 제21주차(54-56문답)

[제54문] ‘거룩한 보편의 교회’에 관하여 우리는 무엇을 믿습니까? [대답]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10:11; 엡 4:11-12; 5:25-26) 세상의 처음부터 마지막 날까지(시 71:17-18; 사 59:21; 고전 11:26) 모든 인류 가운데서(창 26:4; 사 49:6; 롬 10:12-13; 계 5:9) 영생을 위하여 선택하신(롬 8:29-30; 엡 1:3-5, 10-14; 벧전 2:9) 교회를(시 111:1; 행 20:28; 딤전 3:15; 히 12:22-23) 참된 믿음으로 하나가 되도록(요 17:21; 행 2:42; 고전 3:16; 엡 4:3-6, 13) 그의 말씀과 성신으로(사 59:21; 롬 1:16; 10:14-17; 엡 5:26) 자신을 위하여 불러 모으고 보호하고 보존하심을(시 129:4-5; 마 16:18; 요 10:16, 28) 믿습니다. 나도 지금 이 교회의 살아 있는 지체이며(고전 12:27; 벧전 2:5) 영원히 그러할 것을 믿습니다(시 23:6; 요 10:28; 롬 8:35-39; 고전 1:8-9; 벧전 1:5; 요일 2:19).

이 질문은 사도신경의 아홉 번째 내용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거룩한 보편의 교회’라고 한 이 부분에 대해 어떤 번역은 “나는 거룩한 교회를 믿사오며”라고 했고, 또 다른 번역은 “나는 거룩한 공회를 믿사오며”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공회(Catholic)’라고 한 단어는 ‘우주적’이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세계 곳곳에서 그리고 모든 시대를 걸쳐 발견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우주적인 보편의 교회이로되, 로마 가톨릭 교회와 같지는 않습니다.

이 조항은 교회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지, 조직이나 교단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하나님의 눈에만 정확하게 보이는 바,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되어 그리스도에 의해 구속함을 받고 성신과 말씀에 의해 모여진 남녀노소로 이루어진 위대한 몸으로서의 이 교회는 영원토록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해 있습니다. 우리가 개혁교회에 속해 있다는 것은 아주 중요하지만, 더불어 신실한 믿음에 의해 그리스도의 한 몸의 일원이라는 것도 역시 중요합니다. 그러면, 참된 영적 교회의 특성을 주목해 봅시다.

첫째, 참된 교회는 하나입니다. 아담으로부터 시작하여 마지막 인류까지 그리스도의 몸은 오직 하나입니다. 둘째, 참된 교회는 거룩합니다. 하나님의 선택된 자들은 주님께 속해지도록 죄로부터 분리됩니다. 셋째, 참된 교회는 우주적입니다(공회).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참 믿음을 가진 모든 사람들을 포함합니다. 인종이나 나이와 상관없고, 나이, 교단 소속 등과도 상관없습니다.  

그런데 원칙적으로는 비록 하나의 참 교회만이 있고, 한 복음만이 있고, 한 믿음만이 있다 할지라도, 현실적으로 많은 교회 조직들이 있는 것을 봅니다. 우리는 지역 교회들은 누가 속해 있는지 알 수 있기에 눈에 보이는 교회라고 하고, 누가 속해 있는지에 대해 오직 하나님만 알고 계시는 교회에 대해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참 교회라고 지칭합니다.

눈에 보여지는 교회들은 결코 완전하지 않고, 게다가 일부 교회의 경우 복음에서 완전히 떠나 있기까지 합니다. 일부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교회(무형의 교회)에 속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 교회에는 속해 있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더욱이 많은 사람들이 지역 교회(유형 교회)에 속해 있지만, 모두가 참되이 믿는 자는 아니고, 그렇다고 하여 무형의 교회에 속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리고 그리스도를 고백함으로 이 양쪽의 회원이 되어야 합니다.

[제 55문] 우리는 ‘성도의 교통’을 어떻게 이해합니까?  [대답] 첫째, 신자는 모두 또한 각각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주 그리스도와 교제하며 그의 모든 부요와 은사에 참여합니다(롬 8:32; 고전 6:17; 12:12-13; 요일 1:3). 둘째, 각 신자는 자기의 은사를 다른 지체의 유익과 복을 위하여 기꺼이 그리고 즐거이 사용할 의무가 있습니다(고전 12:21; 12:31-13:7; 빌 2:2-5). 

‘성도의 교제’는 사도신경에서 교회에 대해 언급하는 아홉 번째 기사에 속해 있습니다. 교회는 성신으로 인하여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로 구성된 ‘살아 있는 몸’입니다. 살아 있는 몸을 이루는 지체로서 존재한다는 것은, 믿는 자들이 상호 간에 영적인 교제를 즐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름지기 성도라면 예외 없이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한 영적 가족에 속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진정 예수 그리스도께 속해 있는 것이라면,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공동 아버지가 되십니다. 우리는 모두가 같은 영적인 소망을 공유하였고, 그에 따라 같은 목표를 위해서 함께 일하면서 살아 갑니다. 우리 모두는 하늘 고향을 고대합니다.

이 ‘모임’은 ‘교제’ 혹은 ‘친교’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오로지 성도들만 해당됩니다. 여기서 ‘성도’란 순전히 ‘거룩한 자’라는 의미인데 결국 참된 그리스도인을 가리킵니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교회 안의 유명한 몇몇 사람만 특별히 성도로 세워진다고 가르치지만, 성경은 모든 그리스도인에 대해 성도라고 지정합니다(고전 1:2). 이 문답은 두 가지를 강조합니다.

첫째, 믿는 모든 자들은 그리스도의 은사와 복을 함께 나눕니다(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으로서의 영적 능력). 둘째, 우리는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스도의 축복을 전달하려 할 때에 이 은사를 사용합니다. 가르치는 은사든지, 음악적 은사든지, 지도력 은사든지, 재물을 버는 은사든지, 격려하는 은사든지, 다른 사람을 위로하는 기타 등등의 은사를 우리가 각자 독특하게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러한 은사와 재능을 그리스도님과 동료 성도들을 섬기는 일에 즐거운 마음으로 사용하여야만 합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도사린 죄는, 다른 사람을 향해 방해하든지 미워하든지 괴로움을 주든지 시기하든지 교만하든지 이기적이든지 기타 등등으로,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챙기게 하여 이 교제를 반대하고 헤치는 거리들을 찾게 합니다. 그러나 성신께서는 평화를 구하고, 하나님의 사람 가운데서 사랑을 계속하고, 그들의 잘못을 용서해 주고, 그들의 필요를 공급해 주는 일을 구하도록 인도하십니다. 지상에서의 우리의 행복은 같은 지체된 다른 성도들과의 참된 교제 속으로 들어가는 데 의존되어 있습니다.

[제 56문] ‘죄 사함’에 관하여 우리는 무엇을 믿습니까? [대답]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의를 만족시켰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와(시 103:3, 10, 12; 렘 31:34; 미 7:19; 고후 5:19) 우리가 일평생 싸워야 할 우리의 죄악된 본성을(롬 7:23-25)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그리스도의 의를 나에게 선물로 주셔서(롬 3:23-24; 5:18-19; 고후 5:21; 요일 1:7; 2:1-2) 결코 정죄함에 이르지 않게 하십니다(요 3:18; 5:24; 롬 8:1-2).

우리는 이제 사도신경의 열 번째 기사인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고”에 도달했습니다. 먼저 우리의 죄가 용서함 받았다는 이 사실은 얼마나 흥분되는 진리입니까? 그런데 무엇이 죄입니까? 우리는 앞서 신앙고백 제2문답과 제4문답을 통해서 무엇이 죄인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죄란 하나님의 사랑의 법을 완전히 지키는 데서 실패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은 우리가 처해 있는 비참한 모습, 더 자세히 말하자면, 우리의 죄와 죄로 인한 부패를 우리에게 똑똑히 보여줍니다. 따라서 죄에 거하게 될 경우 당연히 유죄 판결과 그에 따른 심판을 받을만합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는 우리의 죄를 용서 받기 전에는 분명히 이러한 처벌을 받고야 말 것이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도처에서 이러한 처지에 있는 우리들을 향해 베푸신 하나님의 죄에 대한 용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실로 우리로서는 복된 소식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용서’라는 말의 좀 더 구체적인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용서 받은 사람이라면 그에게서는 더 이상 죄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당신이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것은, 더 이상 그의 죄나 혹은 그의 악행을 거론하지 않는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만약 당신이 그를 상대하면서 이전의 죄들에 대해 계속 말한다면, 그렇다면 당신은 그를 용서한 것이 아닌 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더 이상 기억하기 않겠다’라고 선언하신 것은,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우리를 대적하고 있는 우리의 죄를 책망치 않으신다는 의미입니다. 게다가 우리는 단 한 번의 용서로, 항상, 또는 평생 용서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죄인으로 판결 받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거론하는 두 종류의 죄는, 첫째, 우리의 직접적인 행동에 의한 죄(생각, 말, 행동)와, 둘째, 그러한 죄를 낳게 하는 우리의 죄악된 본성(우리의 부패, 타락한 마음)을 가리킵니다. 우리에게 있는 악한 성품은 하나님을 미워하게 한다는 데서 두드러진 특징을 드러냅니다. 그러한 악한 마음을 가진 것만으로도 유죄 판결을 받기에 충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은혜로우시게도 우리의 사악함 자체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죄인으로 만드는 모든 죄들을 용서하셨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신데 어떻게 정당한 징계를 내리지 않고 죄인을 용서하실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부상합니다. 먼저 원칙적인 대답은, 그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죄는 반드시 죄값을 치러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와 우리의 죄악된 본성의 죄책에 대한 징계를 당연히 내리셨는데, 이때 우리를 대신하신 그리스도를 징계하셨습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용서하실 수 있는 우리에 대한 징계를 오직 예수님께서 제거하게 하신 것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 번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성취’만이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켰다는 사실과 대면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용서하시는 것을 가능하게 하셨습니다.

실로 우리 중에 누가 용서함을 받았습니까? 확실히 모두 다인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진심으로 그리스도를 믿고,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고, 그리고 용서를 구하는 사람들이라면 다 해당됩니다. 지금 당신은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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